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17)
〈 217화 〉 침입(6)
* * *
병주 태원군 일대에서 일어난 전투.
한나라의 국경 지대를 수비하던 흑산적 부대와 엄청난 속도로 병주까지 쳐들어온 흉노족의 첫 번째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다.
그 이유는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가당치도 않은…!”
자신을 막으러 달려오는 인원이 몇 명이든 상관없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적장.
처음에는 제깟 년이 와봤자 얼마나 오겠냐며 자리를 지키려 했던 흉노 선우는 무서운 기세로 아군을 헤쳐오는 조운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들고 있는 창이 번뜩인다 싶으면 말에 올라탄 아군이 땅바닥에 엎어지는데 뭘 어찌하겠는가.
부하들이 실시간으로 갈려 나가는 광경에 흉노족의 장수가 급히 어부라에게 다가왔다.
양털로 된 가죽옷을 입고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털모자를 쓴 어부라의 동생, 호주천이 외쳤다.
“형님! 지금이라도 뒤로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소!”
“조용히 해라! 주변의 시선이 다 이곳에 몰려있는데 여기서 내가 쫓기는 모습을 보이면 전투가 어찌 되겠느냐!”
호주천의 의견에 어부라가 소리쳤다.
흉노족과 같은 이민족들은 개인 전투력이 매우 뛰어났지만 이런 대규모 전투에선 아주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군대를 이끄는 우두머리에게 무언가 변고가 생기는 순간 오합지졸처럼 진형이 와해되기 시작한다는 것.
세상에 안 그런 군대가 어디 있겠냐마는 평소에도 부족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잦은 내분을 일으키는 유목 민족은 그 정도가 심했다.
선우와 같이 나라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부족을 중재하지 않으면 다른 한쪽이 멸족될 때까지 싸우는 경우도 흔했다.
현재 앞에서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장수가 워낙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다닌 지라 현재 전투를 치르는 인원들은 알게 모르게 이곳으로 신경을 집중한 상태였다.
흉노족은 저 적장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싶으면 언제든지 내빼기 위해, 또 흑산적은 그 엄청난 장수를 보며 용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젠장! 괜히 앞으로 나섰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
어부라가 자신의 안일했던 행동을 후회했으나 이미 일은 벌어졌다.
분명 저 멀리 있던 적장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 호주천이 거의 비명과 다름없는 목소리를 내질렀다.
“이 이상은 진짜 무리오!”
“이럴 순 없다! 다 이긴 전투를 이렇게 어이없이…!”
“형님!”
이 와중에도 선우를 호위하는 최정예 흉노족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나섰다가 목이 잘릴 수는 없는 노릇.
어부라는 자신에게 못 박혀있는 그 서늘한 파란색 눈초리를 바라보다가 결국 말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물러난다!”
“들었냐?! 빨리 호위해!”
호주천이 외치자 끝까지 주변을 지키던 흉노족이 그들을 호위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흉노족의 우두머리가 단 한 명에게 쫓기면서 달아나는 광경은 같은 아군에게 큰 충격을 줬다.
흑산적을 밀어붙이던 흉노족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이러면 우린 어떻게 하라는 거지?”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별다른 명령을 전달받지 못한 흉노족들이 보일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선우를 도와라!”
“후퇴! 후퇴!!”
흉노족은 처음 짓쳐 들었을 때와 똑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단내가 느껴질 정도로 공격을 막아내던 흑산적은 그런 흉노족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지?”
“끝난 건가?”
자신들을 흠씬 두들겨 패던 흉노족이 난데없이 물러나는 상황.
흑산적은 이를 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얼떨떨한 기색으로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
“…쯧.”
어부라는 혀를 찼다.
적장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선우의 목을 베어들 듯 달려들던 장수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흉노족의 숫자를 보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어느샌가 모습을 감췄다.
어부라는 다시 군을 돌려 쳐들어가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나 낙양과 태원군의 거리 차이를 떠올려보곤 고개를 저었다.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지도로 봤을 때는 가까워 보이나 정릉이 머무르는 낙양과 현재 자신이 있는 병주 태원군은 무려 1,000리(400km)나 되는 거리 차이가 난다.
거기에다 중간중간 나 있는 언덕과 산 같은 험한 길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서둘러도 족히 일주일은 걸릴 지역.
병주에서 보낸 전령이 가는 시간과 정릉의 부대가 찾아올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이미 꽤 먼 거리까지 달아난지라 적들도 한숨 돌렸을 테고, 다시 방향을 되돌려 쳐들어가기엔 제아무리 흉노족이라 해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흠.”
그래. 그깟 하루쯤이야 상관없지.
한나라의 최정예 기병대?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전장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쉽지 않은 적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나, 그들은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것은 오직 말 위에서 자고, 말 위에서 먹으며, 말을 제 한몸 삼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초원의 형제자매들만 가능한 것.
고작 바깥에서 며칠 묵었다고 빌빌거리는 정착민들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진군 속도였다.
어부라는 하루가 늦어지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도록 하겠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도록.”
“알겠습니다!”
부관이 공손하게 대답을 하고 물러났다.
군영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어부라가 생각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안일한 행동으로 물러났을 뿐, 다음은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
다음날.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똑같이 병사를 이끌면서 모습을 드러낸 어부라는 정면에 있는 부대를 바라보았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버티고 선 흑산적은 여전히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꽉 붙잡고 있었다.
말이 하루지 실상 전투가 끝나고 겨우 몇 시간밖에 안 지난 상황이니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
저기 혼자서 날뛰던 적장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세운 상황.
어부라가 앞으로 손짓을 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라.”
와아아아───!!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부라 뒤에 있던 흉노족이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건만 수가 훨씬 줄어든 흑산적으로선 오늘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만 들었다.
물론 저 이민족들이 자신을 배려할 리가 없으니 그저 집에 있을 가족만 떠올리면서 최대한 자리를 지킬 뿐.
“쏴라──!!”
이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근처 산맥에 매복한 흑산적이 튀어나와 흉노족에게 화살을 발사했고 흉노족도 이에 물러섬 없이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흑산적의 우두머리, 수고가 조운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은 내가 최대한 지켜보도록 할 테니 그대는 어제처럼 마음껏 날뛰어주게.”
“예.”
조운은 수고의 말에 무뚝뚝한 어투로 대답했다.
수고는 잠깐 그런 조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전열에 있는 놈들은 방패를 들고, 후열에 있는 놈들은 화살을 퍼부어줘라!”
흑산적이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며 흉노족과 맞붙는 사이 조운은 수고가 붙여준 얼마 없는 기병들과 함께 움직였다.
현재 흑산적에게 남아있는 기병의 숫자는 어제와 비교해서 확연히 줄어있었다.
흉노족이 기병과 거리를 두며 일방적으로 화살을 쏘아대니 평범한 장수로는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다못해 보병이 있다면 그를 노려보기라도 할 텐데 이민족은 전원이 말에 올라탄 궁기병이니 그저 의미 없는 술래잡기만 하면서 부대만 갉아 먹혔다.
심지어 숫자로도 불리한 상황.
원래 기병 부대를 이끌던 장수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다가 눈먼 화살을 맞아 어처구니없이 전사했고, 그런 대형 사고가 터지자 당연히 장수의 뒤를 따르던 기병도 덩달아 큰 피해를 보았다.
이 보고를 받은 장양은 탄식하면서 공석이 된 기병 지휘관의 자리에 조운을 앉혔는데, 이는 어제 그녀의 활약을 인상 깊게 지켜본 수고의 추천이 컸다.
“하하! 이년아!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얼마 없는 기병들을 이끌며 움직이던 조운은 눈앞에 있는 부대를 보고 자리에 멈춰 섰다.
흉노 선우의 핏줄, 동생 호주천이 거의 수천 명은 될법한 흉노족들과 함께 조운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그를 본 조운의 눈가가 살며시 좁아졌다.
“…겨우 저 하나 막겠다고 그 정도나 투입하신 겁니까?”
“우리 형님께선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하실 분이 아니라서 말이다!”
호주천이 껄껄 웃었다.
“어차피 멀리서 맞지 않을 화살이나 쏘아대는 놈들은 병사 조금만 있어도 물리칠 수 있으니,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네년에게 힘을 쏟는 것이 옳을 터!”
“…….”
“그렇다면 이제 최대한 발버둥 쳐….”
쾅─!
“……?”
그때 난데없이 틀려오는 어마어마한 소리에 호주천이 우뚝 멈췄다.
흉노족 하나가 호주천 곁으로 허겁지겁 자리를 옮기면서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냐?”
호주천을 여유로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곧이어 속닥이듯 말하는 전령의 보고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뭐라고?”
호주천이 말을 덜덜 떨면서 다시 물었다.
흉노족이 대답했다.
“여포! 여포가 아군의 우측에서 나타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어부라가 외쳤다.
“말도 안 된다! 여기와 낙양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어떻게 부대를 이끌고 벌써 도착했느냔 말이다!”
“그것이….”
호주천의 질문에 흉노족이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말했다.
“혼자입니다.”
“…뭐?”
“여포가 부대도 없이 혼자서 아군을 휩쓸고 있습니다!”
“…….”
호주천은 어째서 여포가 이리도 일찍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미친년은, 자신이 이끌어야 할 부대도 내버려 둔 채 자기 혼자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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