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18)
〈 218화 〉 침입(7)
* * *
때는 아직 여포가 낙양에서 출진하기 전.
여포는 방천화극을 자신의 어깨에 걸친 상태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장군,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 문원.”
장료가 그런 여포에게 말을 걸자 여포는 생각을 멈추고 장료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포가 핏빛과도 같은 눈동자로 장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있잖아. 내가 조금 전부터 생각하던 게 있었거든?”
“네.”
“내 예상으로 이미 그 새끼들은 도시 코앞까지 들이닥쳤을 거란 말이지.”
“…그렇죠.”
장료는 여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들이라 함은 당연히 흉노족을 말했다.
대장군이 이런 말투를 쓰는 여포 장군을 봤었다면 그 천하무쌍의 얼굴이 또 떡처럼 늘어나는 광경을 볼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대장군은 병주에 보낼 지원군을 확인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여포가 말을 이었다.
“전령이 오는 시간을 생각해 봐. 걔가 병주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장료는 잠깐 낙양과 병주 사이의 거리를 떠올려보며 대답했다.
“평범한 경우라면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도 며칠은 걸리지 않을까요?”
“바로 그거야!”
장료의 대답을 들은 여포가 외쳤다.
확실히 여포가 언급한 것처럼 수도 낙양과 병주 태원군의 거리는 빠르게 오갈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발걸음을 빨리했다고 한들 족히 며칠은 걸리는 거리.
“내가 예상하는데 우리가 지금 출발해도 늦을 가능성이 클걸?”
“그건….”
장료가 살짝 말을 흐렸다.
비록 지금까지는 병주에 있던 수비군들이 이민족의 침입을 잘 막아냈다지만 이번에는 아예 경우가 달랐다.
남흉노의 지도자, 선우(??) 어부라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진한 것이었으니.
이민족이란 족속은 근본부터 변덕스러운지라 그들이 대체 언제 쳐들어올지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장료가 자신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자 여포는 말했다.
“그래서 내가 아주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거든?”
“좋은 방법 말인가요?”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이미 여포가 말하는 좋은 방법이란 게 무엇인지 예상한 듯 장료의 얼굴엔 살짝 쓴웃음을 떠올라 있었다.
여포는 장료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나 혼자 빨리 병주로 향하는 거지!”
“그렇군요.”
즉 병사들과 속도를 맞추지 않고 자기가 먼저 병주에 가겠다는 것.
어찌 보면 장료가 지금까지 봐왔던 여포의 언행과 딱 일치하는 방법이었다.
여포가 장료에게 물었다.
“어때? 문원만 좋다면 바로 정릉한테 물어볼게!”
“…….”
장료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묻는 여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살짝 웃었다.
과거였다면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일도 없이 곧바로 혼자 튀어 나갔겠지.
여포 장군은 분명 그랬다.
아직 병주에 있던 시절 사고를 하나 친 다음 대장군께 불려 나가 쓴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장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전투를 벌이다가 아군의 피해 규모를 키운 사건.
비록 승리하기는 했으나 여포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면 더욱 적은 피해로 이길 수 있었던 전투였다.
하필 그날은 대장군도 직접 전투에 참여했던지라 여포로서는 완전히 외통수에 몰린 상황이었다.
‘…….’
피해 규모를 종합한 보고서를 든 채 한숨을 흘리던 대장군과 그 앞에 서서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식은땀만 흘려대던 여포.
여포가 평소에 보이는 거친 성격을 생각해보면 참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대장군이 입을 열었다.
‘여포야. 내가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
‘으, 응? 뭔데?’
살짝 목소리를 떠는 여포의 모습에 대장군은 마음이 약해졌는지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했다.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고 행동해보자. 알겠지?’
‘알았어! 꼭 그럴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느냐며 화를 냈을 여포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장료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여포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치?”
장료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여포의 몸짓이 의기양양해졌다.
여포는 이제 지체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정릉에게 물어보고 올게!”
“네.”
장료는 자리에 서서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여포를 배웅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가 끝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데, 사람 한 명이 일찍 도착한다고 해서 이를 뒤집을 수 있겠냐고.
이러한 의문에 장료는 이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야! 비켜! 부딪쳐도 책임 안 진다!”
개인의 압도적인 무용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었다.
아주 대표적인 예시로는 팽성대전(??之戰)이 있겠지.
그 서초패왕이 단 3만의 군세로 무려 56만이나 되는 한나라 군세를 깨트린 전투.
비록 여포가 그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승패가 결정된 전장에 변수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여포가 온 것을 보면 병주에 있는 수비군도 조금 더 의욕을 가지겠지.
단지 그뿐일 이야기였다.
──────────
“야! 너희 참 오랜만이다!”
난데없이 근처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
“……이 목소리는.”
호주천이 이끌고 있던 흉노족들은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며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기에.
그렇게 자리에 멈춰선 흉노족이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낄 때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되냐?!”
“…우측 언덕이다! 전부 발사해라!”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눈치챈 부관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고, 흉노족들도 곧장 이에 따르며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아댔다.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정예병들은 식은땀을 흘려대며 화살을 발사했지만 아직 무슨 상황인지 깨닫지 못한 신병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수천이나 되는 궁기병이 동시에 발사한 화살은 단 한 명을 노린 채로 나아갔다.
허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눈치채는 게 느리네!”
여포는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거대한 핏빛 말 위에 올라탄 채 달려들었고, 곡사로 나아가던 화살들은 정면으로 움직이는 여포를 지나치며 그저 애꿎은 나무와 땅에만 박혀 들었다.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두려운 무언가처럼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여포.
“가자──!!”
여포가 그리 외치는 것과 동시에 적토마는 콧김을 훅 뿜으며 흉노족에게 뛰어들었다.
하루에 무려 1,800리나 달린다는 적토마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달려왔음에도 아직 팔팔한 기색이었다.
여포의 접근을 쉽게 허용한 흉노족 진형 내부에서 피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호주천이 이끌고 있던 흉노족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고향에 있을 때부터 숱한 전투를 치러온 이민족들은 근접전에도 능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포와 맞설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몇몇 흉노족은 용기를 가지고 외날검을 든 채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네 이년─! 혼자서 자기 좋을 대로 날뛰지 말라─!”
“응? 넌 또 뭐야?”
여포는 자신에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흉노족에게 고개를 돌리곤 방천화극을 크게 휘둘렀다.
“커헉!”
여포의 일격을 받은 흉노족은 별다른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반으로 갈라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 광경을 본 이민족들은 여포에게 달려드는 행동이 용기가 아니라 만용임을 알 수 있었다.
힘을 합쳐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의미가 없었고, 거리를 두며 화살을 쏘아대기 위해 등을 보이는 순간 목을 날려버린다.
여포가 타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핏빛 말을 노리려고 해도 속도가 워낙 빨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과거 흉노족은 허구한 날 자신들을 잡아 죽이는 여포에게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이용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놈들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맥아리가 없는데?”
여포는 현재 자신들로선 대적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과거부터 남흉노족 내부에서는 여포란 이름은 두려움의 대명사였다.
심지어 다른 곳에서는 홀로 아군을 꿰뚫고 다니던 조운이란 적장이 있지 않았는가?
정면에는 여포요, 측면은 조운.
도망치는 것을 전혀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민족의 문화.
그들의 후퇴 결정은 아주 신속하고 재빨랐다.
“흩어져! 전리품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 한다!”
“다 먹고 살자고 이 짓을 하는 건데 여기서 죽어 나자빠지면 무슨 소용이냐!”
이민족은 그 짧은 순간에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포가 전장에 나타났다는 소식만 들리면 그것의 진위조차 따지지 않고 달아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현재 상황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목적은 도주.
자신을 중심으로 사분오열 흩어지는 흉노족을 바라보며 여포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야! 아직 너희 몇 명 죽지도 않았잖아──!!”
타고난 기동력으로 취약한 지역을 공격하고, 상황이 불리해졌다 싶으면 냅다 도망친다.
참으로 옳은 방식이었지만 막상 이를 상대하는 처지가 되니 화가 날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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