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25)
〈 225화 〉 조운(5)
* * *
천하는 무너졌다.
수십 년이 넘도록 이어진 부정부패.
연달아 닥치는 대기근.
곳곳에서 발호하는 도적.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굶어 죽은 백성이었고, 굶주림을 참다못해 뛰쳐나간 이들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제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부패한 관리들은 백성의 고혈을 쥐어짤 뿐이었고, 연이은 가뭄 때문에 닥친 대기근은 마치 하늘이 한나라를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질 때마다 늘 피해를 보는 이들은 힘없는 백성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필연이었으리라.
───창천이사(???死), 황천당립(????)!
───세제갑자(???子), 천하대길(?下大?)!
모두가 만만히 여겼던 백성이 한나라를 무너트리기 위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중앙 정부는 이를 별거 아닌 반란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진압군을 파견했으나 백성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국에서 들려오는 관군의 패배 소식.
심지어 몇몇 대도시를 점령당했다는 심상치 않은 보고까지.
그때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십상시는 급히 한나라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백성은 이에 필사적으로 맞섰으나 수백 년의 역사를 무너트리지 못했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꽃은 잿더미가 되었고, 백성의 울부짖음은 천천히 사그라졌다.
그 이후의 상황은 여러 역사서에서 나온 내용과 똑같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랫동안 지속되던 대기근은 사라졌으나 사람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건물을 증축하고 병사를 증원한다는 이유로 젊은 장정들을 강제로 동원한다.
젊은 사람이 없으니 농사를 짓는 인원은 노약자나 어린아이가 대부분이고, 그렇게 피땀 흘려 수확한 얼마 안 되는 식량 대부분을 세금이란 명목으로 빼앗긴다.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진나라가 어째서 멸망했는가.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던 권력을 자랑하던 진나라.
그 진나라는 너무나도 포악한 정치로 백성의 원망을 샀고, 그로 인해 동양 역사 최초로 대규모 농민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치며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진승(??).
비록 그는 진나라 토벌군을 이끄는 장한에게 괴멸당했으나, 그 반란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불씨는 결국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백성의 반란으로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지고, 권력을 손에 쥐어보려는 군웅이 곳곳에서 발호하며 진나라를 패망시킨 것이다.
지도자들은 이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는가?
어째서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비참함의 연쇄를 끊지 못한다는 말인가?
조운은 이를 바로 잡고 싶었다.
자신의 고향인 상산을 떠나 천하를 유랑하며, 의(?)와 덕(?)을 찾고자 했다.
기주를 지배하는 원소는 전형적인 군웅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저 필요에 따라 냉혹하게 활용하는 그 모습.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만들어 나가는 세상은 자신이 바라는 천하가 아님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유주를 지배하는 공손찬은 원소보다도 더한 포악한 인물이었다.
진시황이 그랬던 것처럼 대규모 공사에 젊은 장정을 강제로 동원했다.
자신이 돌봐야 할 백성을 자기 손으로 약탈하며 군비를 충당했다.
그가 역경루라 부르며 만들어 놓은 거대한 성채는 수많은 백성의 시체로 쌓아 올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은 이에 실망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말머리를 돌린 그녀가 다음에 향한 곳은 기주와 유주 바로 옆에 있는 병주 지역이었다.
“…….”
그리고 조운은 자신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았다.
변방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마을.
자신이 어디를 가든 당연하다는 듯 나타났던 백성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비록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백성은 서로의 이웃을 도우며 아낌없이 먹을 것을 나눠주었고, 마을을 순찰하던 병사는 결코 백성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백성의 몸짓에는 늘 활기가 넘쳤다.
웃음이 있었으며, 행복이 있었다.
……과거부터 이런 광경을 볼 수 있기를 쭉 바라왔다.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자신이 보일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천하(?下)를 지키는 것.
“저, 저런 미친년이 어디서 튀어나온…!”
“도망쳐라! 도망쳐!”
조운은 그날 이후 병주를 돌아다니며 이민족이 경계를 침범하는 족족 쓰러트렸다.
“으아악!”
“커억!”
모두가 말했다.
대장군의 은혜가 있었기에, 자신들이 이렇게 살 수 있던 것이라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선우! 위험합니다!”
이는 조운이 망설임 없이 신명(??)을 바칠 수 있던 이유였다.
“형님! 어서 도망쳐야 하오!”
“이, 이럴 수는 없다! 다 이긴 전투를 어찌…!”
“형님─!!”
갈 길을 정한 이상 그저 끝까지 나아갈 뿐.
“흐, 흐흐…. 예상은 했지만, 기마술도 참으로 뛰어나군….”
“…….”
“지레 겁을 먹고 등을 돌린 것이 실수였나.”
그것이 바로 신념이었다.
“형님, 미안하오….”
인의예지(????).
“어디를 가도 크게 대우받을 수 있을 그대가 어째서 병주를 떠돌고 있었는가?”
어짊.
의로움.
예의.
지혜로움.
“이곳을 보고 희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음?”
지도자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올바른 도리.
“이곳에서 맹세하겠습니다.”
“…….”
“저의 창은 당신의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을 뿐이었다.
──────────
장료와 조운의 대련이 끝난 다음 날.
갑옷을 갖춰 입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어있던 장비는 해가 뜨자마자 눈을 번쩍 뜨는 것과 동시에 상체를 확 일으켰다.
마치 어딘가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재빠르게 일어났지만 이게 장비의 평소 모습이었다.
“흐아암….”
한 차례 하품을 한 장비는 몸가짐을 정돈했다.
“좋아.”
장비가 자신의 부스스한 모습을 정리한 다음 잠이 완전히 깬 말똥말똥한 눈동자를 보였다.
“오늘이야말로 한 판 붙어봐야지.”
주어는 빠져있었으나 장비가 한 판 붙어보겠다는 인물은 현재 한 명밖에 없었다.
현덕 언니는 아예 대련을 해보라면서 등을 떠밀어줬고, 아직 할 일이 많다면서 자신을 막아서던 운장 언니도 지금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라….”
장비는 어제 현덕 언니가 자신들을 바라보며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던 장비가 실없이 웃었다.
“그 말이 맞지.”
자신에게도 쓸데없이 엄격한 운장 언니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밤새 이 말을 고민하던 장비는 현덕 언니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장비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익덕, 일어났느냐.”
“아, 운장 언니?”
그때 문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관우의 목소리에 장비가 벌떡 일어났다.
장비가 방 바깥으로 나서자 청룡언월도를 손에 쥔 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는 관우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장비의 입이 열렸다.
“아니, 그렇게 서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니까?”
“…….”
“안 그래도 무섭게 생긴 사람이 근엄한 표정으로 있으면…. 악!”
관우는 이른 아침부터 헛소리를 내뱉는 자신의 의동생에게 망설임 없이 꿀밤을 꽂았다.
그렇게 잠시후.
여느 때와 같이 장비의 머리에 꿀밤이 꽂히는 사건이 지나간 후 그 둘은 조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조운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를 알 턱이 없으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장군 곁에서 그녀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운장 언니.”
“무슨 일이지.”
장비가 자신을 부르자 관우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역시 신경 쓰여.”
“…무엇이 말이더냐?”
“조운 말이야. 조운.”
대체 어디서 무엇을 겪었는지 모르겠으나 이상할 정도로 대장군 근처를 맴돌던 여성.
겉모습만 보면 세상 모든 것을 냉철하게 판단할 여인이었으나 그 외모 뒤에는 자신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눈빛에서 딱 느껴진단 말이지.”
“…….”
“그 눈빛은 운장 언니처럼 살짝 맛이 간 충성심을 지닌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거야!”
맛이 간 충성심….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지?
“…그렇군.”
그냥 한 판 붙자는 뜻이었다.
상황을 판단한 관우가 자신의 오른팔을 들자 장비는 식겁하면서 급히 해명했다.
“자, 잠깐만! 이건 칭찬…!”
관우는 맛이 간 충성심이니 뭐니 또 헛소리를 내뱉는 장비에게 어마어마한 기세로 주먹을 꽂았다.
“으꺄아악──!!”
자신이 여태까지 맞았던 꿀밤 중 제일 강력한 것을 맞은 장비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교위님?”
근처에서 이 기행을 지켜보던 부관이 입을 열어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저는 모르는 일이랍니다.”
유비는 그런 주변 사람들의 눈빛을 슬그머니 외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