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26)
〈 226화 〉 당도고(??高)(1)
* * *
“으으…. 어, 왔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에 신음을 흘리던 장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푸른색 머리카락.
대장군 근처에 있다 보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예감이 정확히 적중했다.
…애초에 대장군의 부곡을 이끌면서 그를 호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지만.
“…흠.”
관우는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장비를 바라봤다.
“좋아. 그러면 이제 한 판 붙어볼….”
“급보입니다!”
그때 전령이 대장군 군영 내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엉?”
조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장비는 얼떨떨한 기색으로 물러났다.
말에 올라탄 전령은 장비가 물러나면서 생긴 공간으로 지나쳐 대장군에게 향했다.
장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그 어느 곳보다도 경계가 철저한 대장군의 군영 내부를 질주하는 전령.
전령이 향하는 곳은 현재 대장군이 거주하는 건물이었다.
“…?”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뭉그적거리는 걸음걸이로 건물에서 나온 대장군이 의아한 눈초리로 전령을 바라보았다.
대장군 앞까지 당도한 전령은 말에서 내린 다음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대장군! 보고 드립니다!”
“…무슨 일이냐?”
아직 졸려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얼떨떨한 기색을 보이는 걸 보면 뭔가 안 좋은 예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십상시의 난 때 사라졌던 옥새가 현재 원술에게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
장비를 비롯한 근처에 있던 사람 모두가 의문을 드러냈다.
옥새라 함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귀중한 물품 아닌가?
그 옥새를 원술이 가지고 있고, 꽁꽁 감춰뒀을 그 사실이 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는 것이 별로 없는 편인 장비도 이게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설마.”
대장군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모습이었다.
“원술 공로가 황제를 참칭했습니다!”
한 쪽 무릎을 꿇은 전령이 외쳤다.
“그는 현재 국호를 중(?)이라 정하고 자신을 당도고(??高)라 칭하며 대규모 군세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
대장군이 침묵을 지켰고, 전령은 곧이어서 말했다.
“군세의 규모는 무려 십만을 넘어갑니다!”
“…하아.”
규모를 전해 들은 대장군이 한숨을 내뱉었다.
마치 언젠가 이런 일이 올 줄 알았다는 태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인 건 맞다만, 그래 봤자 힘없는 농민들을 강제로 징집한 거겠지.”
“…….”
“이민족 문제를 해결하니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군.”
자신의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린 대장군은 잠에서 완전히 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곧바로 움직인다. 서둘러라.”
“예!”
그를 따르는 부관이 외쳤다.
“뭣들 하느냐! 빨리 움직여라!”
“예!”
대장군의 군세는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장비가 군영 내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근데 이러면 대련은 못하지 않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장비는 장팔사모를 들지 않은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나랏일보다 자신의 욕심을 더 우선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형주를 정리하기도 전에 병주에서 이민족이 침입했고, 이제는 피해를 수습하기도 전에 저기 강동에서 원술이라는 미치광이가 황제를 참칭했다.
수춘이라면 분명 형주와 가까운 곳이 아닌가.
지도로 보면 바로 근처에 있는 적대 세력이 난장판을 피우는 건데 이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황제를 참칭하며 한나라에 정면으로 도전한다고?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원술이 제대로 미쳤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뭔가 일이 꼬여가는 기분인데….”
장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짓고 있는 조운을 한 차례 바라본 다음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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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구강군 수춘현.
주변에 있는 어떤 건물과 비교해도 눈에 띌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
궁궐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호화로운 건축물 안에서 한 차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주군! 조금 더 때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앞으로 나선 문관 한 명이 허리를 숙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그 선택에 재고를…!”
“시끄럽다!”
황제를 상징한다는 면류관을 쓰고, 황제의 복식을 걸친 남성이 문관의 의견을 묵살했다.
“급한 안건이라 해서 관대한 마음으로 들어줬더니 그딴 망발이나 지껄여?!”
“허나, 지금 상황에서 제위에 오른다는 것은 주변 모든 세력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닥쳐라!”
콰장창!
원술이 던진 잔이 건물 바닥을 구르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네놈은 아직도 예언의 내용을 모르는 건가!”
술잔에 담겨있던 꿀물이 흘러내리며 고급스러운 양탄자를 적실 때, 원술은 품에 품고 있던 죽간을 촤르륵 펼쳤다.
“한나라는 오행 중 불의 기운을 받은 나라! 그리고 오행상생에 따르면 마땅히 흙의 기운을 받은 자가 임금에 올라 한나라를 이어야 하는 법이다!”
원술이 자신의 손에 있는 죽간, 참위서(??書)의 내용을 주르륵 훑어보았다.
“예언에 따르면 한나라를 이을 자는 당도고(??高)밖에 없다고 한다!”
“그, 그건….”
그저 주군의 총애를 사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냈을 뿐인 엉터리 예언이라는 말이 문관의 턱 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분노에 휩싸인 칼날이 자신의 목에 떨어지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도고의 도(?)는 내 이름인 술(?)처럼 길이란 뜻이 있지 않느냐!”
“…….”
“순 임금의 후예는 바로 원씨(??)!”
원술은 광기에 휩싸인 얼굴로 웃었다.
“원가의 적통인 이 내가 나라를 이끌지 않는다면 그 누가 나라를 이끌겠느냐!”
“…주군.”
“시끄럽다!”
문관이 입을 열 낌새를 보이자 원술이 소리쳤다.
“한 번만 더 폐하가 아니라 주군이라 부르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
그 막무가내 행동에 문관은 이 이상 충고가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침묵을 지켰다.
이제 이 세력에 희망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 원술과 문관이 있는 곳으로 장수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군!”
“폐하라 부르라고 몇 번이나 말했….”
장수는 금방 전투를 치르고 온 듯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이를 확인한 원술은 일순간 눈가를 찌푸렸으나 짐짓 자애로운 모습을 연기했다.
“오오, 그대였는가.”
“……그.”
“그래. 자네가 왔다는 건 드디어 좋은 소식을 가져온 거겠지?”
무릎을 꿇은 장수는 원술의 눈치를 살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며, 면목없습니다. 아직 장강을 넘지 못했….”
“뭐라고?!”
원술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아직도 장강을 넘지 못했다는 말이냐!”
“용서해주십시오! 유요의 저항이 워낙 거세서 어쩔 수가…!”
“입만 열면 변명만 하는구나!”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원술은 자신이 들고 있는 예언서를 내동댕이치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했다.
마치 그 예언서에 자신의 권력이 담겨있는 것처럼.
“…후우.”
몸을 부들부들 떨던 원술이 숨을 골랐다.
“지원군을 보내주겠다.”
“가, 감사합니다! 주군!”
장수는 한 차례 읍을 올리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쯧.”
원술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기색으로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장강 일대에 방어선을 펼친 유요 세력을 아직도 쓰러트리지 못한 상황.
이는 유요의 저항이 필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원술 세력 내에서 뛰어난 장군이 드물다는 것이 컸다.
다른 세력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장수는 기껏해야 장훈과 기령뿐.
그 두 명조차도 전장의 모든 방면을 책임지기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현재 전쟁을 펼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과거 광정 전투 때 조조에게 여러 장수가 전사한 것도 무시할 수 없을 터.
“이럴 때 손씨 일가만 있었더라면…!”
평소라면 손씨 일가를 떠올리는 것조차 치욕스러워 했을 원술이 그들을 찾으며 한탄했다.
손견은 유표와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이후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자녀인 손책과 휘하 무장의 능력은 원술이 매우 눈여겨볼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능력 있는 인재가 남양군을 바치면서 적 세력에 투항했으니 원술로서도 분통이 터질 수밖에.
어쩌면 원술이 억지로 황제를 참칭하는 것은 단순한 명예욕 때문이 아닐 수도 있었다.
반정릉 연합군 이후 연이은 패배로 계속해서 추락하는 권위.
이미 원술의 이름은 천하에서 비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였고, 그 어떤 군웅도 원술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저 추락한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억지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수….
“어째서 그 누구도 내가 진정한 황제라는 걸 모르는 것이냐…!”
“…….”
…아무래도 권력에 눈이 먼 것은 맞는 모양이었다.
과연 이 세력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문관으로서는 단 한 가지 결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멸망.
원술의 옆에는 그가 늘 소중하게 품고 다니던 옥새가 눈부신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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