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34)
〈 234화 〉 당도고(??高)(9)
* * *
나는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원술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적어도 10만은 가볍게 넘기는 어마어마한 대군세.
고작 수춘 하나를 지배하는 세력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병사 숫자였다.
“…일단 겉모습은 그럴싸한데.”
나는 원술의 군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으로 쓱 훑어보는 것조차 한참은 걸릴 듯한 거대한 규모.
그들이 일제히 발소리를 울리며 진군하는 광경은 확실히 장관이었다.
원술이 아예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출진한 것은 아닌 모양.
저만한 숫자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신만만해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통일 왕조의 황제들도 대충 몇십만 규모로 병사를 일으키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원술이 수성의 이점을 버린 이유를 모르겠는데.
규모를 놓고 보면 십만도 넘게 있는 원술의 군세가 우리보다 거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뿐이라는 게 문제.
전쟁이 숫자 놀음으로만 돌아가는 것이라면 병법이라는 게 왜 있고 계책이라는 게 왜 있겠는가.
복잡하게 머리 굴릴 바에야 그냥 어택땅 찍고 말지.
그때 유비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대장군, 원술의 군세가 접근해옵니다.”
“알았다.”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유비 말마따나 저 멀리서 원술의 군대가 진군해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명령을 내렸다.
“두려워하지 말고 똑바로 나아가라. 우리가 패배할 이유는 없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이미 진형을 철저히 유지하며 진군하고 있었기에 거리만 가까워진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원술의 군세와 맞붙을 수 있었다.
나는 살짝 눈길을 돌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는 조조의 부대를 확인했다.
현재 조조가 이끄는 병사들도 명령을 전달받은 모양인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황.
조조의 최정예 기병대가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시기라면 호표기(虎??)도 편성됐으려나?
청주병은 진작 만들어졌을 거고.
청주병이 정말 단순하게 청주에서 투항한 도적들로 편성된 부대라면, 호표기는 호랑이와 표범과 같은 기세를 지니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조조군 내부에서도 정예하고 용맹한 병사만을 뽑아 조직된 조조의 특수 부대.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눈치챈 여포가 조조의 호표기를 훑어보았다.
“흥, 훈련은 제대로 시켰나 보네.”
조금 전 일로 조조를 곱게 바라보지 않던 여포조차 퉁명스럽게 인정할 정도의 병사들.
어째서 본래 역사의 조조가 천하룰 일주하며 뛰어난 군공을 세우고 다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포가 툭 내뱉었다.
“그렇지만 붙으면 내가 이겨.”
“…그래.”
나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여포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본래 역사에서 너를 쓰러트린 인물이 조조란다.
“…으으.”
물론 내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여포는 얼굴을 토마토처럼 붉힐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부대는 착실하게 거리를 좁혔고, 나는 저 멀리서 귀티가 줄줄 흐르는 금발 머리의 남성을 볼 수 있었다.
원술도 원소처럼 금색 머리카락이었네.
이 세계에서 원씨 일가는 금발이 특징인가?
황제만이 쓸 수 있다는 면류관(???)을 뒤집어쓴 원술은 거리가 멀었음에도 아주 선명하게 잘 보였다.
척 봐도 엄청나게 불편해 보이는 저걸 전장에서 잘만 쓰고 다니네.
우리 황제 폐하께서도 면류관은 불편하다면서 잘 안 쓰시는데.
몇몇 고지식한 관리는 그런 황제 폐하의 모습에 곤란한 기색을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거 황제 폐하가 싫다시는데 얌전히 따라야지.
전통 어쩌고 하며 바락바락 대들던 눈치 없는 관료는 바로 관직을 강등당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좌천됐다.
정말 목숨만 부지한 채 모든 것을 잃은 빈털터리 관료가 자비를 구걸하는 모습은 상당히 추하더라고.
따지고 보면 전통 그런 것도 대부분 황제가 만들어 내는 건데 말이야.
황제는 무언가를 선도하는 인물이지 오히려 그에 휩쓸리는 애매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 뭐냐.
왕의 권위가 상당히 약한 봉건 귀족 사회에서도 왕의 취미에 따라 귀족의 유행이 휙휙 뒤바뀌지 않던가.
일국의 군주란 바로 그런 자리였다.
“이 한나라의 잔재들아! 어째서 새로운 시대를 부정하려 하는 것이냐!”
그때 원술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야. 목청 하나는 인정할 만하네.
가짜 신분으로 자신을 치장한 인물이 으레 그렇듯 원술도 큰소리치는 것 하나는 아주 뛰어났다.
“한나라는 저물고 이제 중나라의 시대가 왔다!”
“…….”
내가 원술의 말에 대답할 낌새를 보이지 않자 원술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지금이라도 내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다면 내 기꺼이 자비를 베풀어….”
“진짜 못 들어주겠네.”
나는 툭 중얼거렸다.
물론 이 말이 저 멀리 있는 원술에게 전해질 리 없으니 원술은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었다.
저런 놈과 말다툼해봤자 내 목만 아프지.
분명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 움직이도록.”
“예.”
내 부관으로 종군하던 유비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군대를 전진시키자 이를 확인한 원술이 외쳤다.
“하! 이 역적아! 그런다고 해서 내가 두려워할 듯싶더냐!”
“…….”
“중나라 군대여! 전진하라! 적을 쓰러트려라──!!”
아직도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원술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갈까 참 궁금했다.
──────────
“쯧. 이래서 출신이 천한 놈이랑은 상종하면 안 되는 것이다.”
원술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한나라의 대장군을 바라본 다음 혀를 찼다.
곧이어 원술이 자신 근처에 있던 장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디 보자…. 장훈, 준비는 끝났나?”
“예!”
중나라의 대장군, 장훈(??)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폐하께서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중나라 휘하 12만 정예 장병은 언제든지 목숨을 바쳐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하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정말 어떻게든 병사 숫자만 늘릴 목적으로 모든 것을 도외시한 결과 무려 12만이나 되는 대군이 형성되었다.
젊은 백성을 강제로 징집하고, 모든 물자를 억지로 약탈했다.
그 결과 수춘 일대는 거의 황무지와 다름없을 정도로 풍비박산 났으나 그 누구도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원술은 남양군에 있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땅을 다스렸으며, 한때 그에게 여러 차례 간언을 올렸던 신하들은 이미 그에게 실망하여 진즉 세력을 떠난 상황이었다.
제 분수에 맞지 않을 정도로 과도한 욕심을 부렸기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세력.
그게 바로 현재 원술 세력의 실태였으나 명예욕에 눈이 먼 원술은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장훈! 황제가 내리는 첫 번째 황명이다! 지금 내게 맞서려는 역적 무리를 남김없이 쓸어버리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대장군의 권위를 드러낼 목적으로 온갖 호화로운 장비를 걸친 그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섰다.
그렇게 진형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장훈이 외쳤다.
“모든 병사는 들어라!”
“…….”
“그대들은 하늘의 명령을 받들고, 진실된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명예로운 인원들!”
병사의 사기를 고취할 목적으로 전방에 선 장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천명은 그대들의 편….”
“대장군! 큰일 났습니다!”
그때 장훈을 보좌하던 장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령 장군, 무슨 일이지?”
“적 기병 부대! 아군의 전열을 향해 접근 중입니다!”
“뭐라?”
장훈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이름을 급히 언급했다.
“여, 여포. 여포가 온 것이냐?”
“아닙니다! 저도 처음 보는 장수입니다!”
원술군 제일의 맹장인 기령조차도 모르는 장수.
“…어지간히 얕보였나 보군.”
장훈은 한나라 군대가 무명의 장수를 내보냈다는 것에 살짝 어이없는 기색을 내보였다.
“좋다! 그들을 무찌르면 흐름을 가져올 수 있을 터!”
“…….”
“중나라를 가볍게 여긴 대가를 치르게 해줄….”
콰아앙───!!
“……?”
장훈은 근처에서 난 엄청난 폭음에 고개를 돌렸다.
성벽이 무너지는 것도 아닐 텐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
“끄아아악!”
“…….”
전열의 상황을 확인한 장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영물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흑마 위에 올라탄 채, 자신보다도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장수.
그 장수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창벽을 내세우던 아군이 이리저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자못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컥!”
“으악!”
새처럼 날개가 없음에도 잠깐 허공을 부유하던 병사들은 이윽고 우당탕 나자빠지며 아군을 덮쳤다.
삽시간에 견고한 진형이 무너져 내리고, 그 무너진 진형을 다른 기병이 짓쳐들어왔다.
“장군의 뒤를 따르라! 돌격──!”
와아아아──!!
그 이후로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아군 한가운데로 파고든 적 기병이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볍게 진형을 휘저었다.
기병이 만들어낸 틈으로 적군의 보병까지 침입하여 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럴 리가.”
장훈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근처에서 불어오는 따가운 흙먼지가 지금 눈앞의 광경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럴 리가, 없다…!”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도 지금 이 광경은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장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장훈이 고개를 돌렸다.
“기령! 자네라면 막아낼 수 있겠지?!”
“…맡겨주십시오!”
원술군 제일의 맹장이 자신의 애병을 든 채 말에 올라탔다.
기령은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이년─! 이제 그만 날뛰고 내 삼첨도(三??)를 받아보아라──!!”
“너 어디 가냐?”
“?!”
카앙!
“크윽!”
불현듯 갑작스럽게 날아든 일격.
이를 겨우 막아낸 기령이 눈을 부릅뜨며 말머리를 급히 돌렸다.
“아니, 이걸 막아?”
기령의 앞에는 전장에서 활약하는 장수라면 누구나 알법한 인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너 생각보다 운이 좋구나?”
“…여포.”
천하무쌍(?下無?).
여포는 자신의 핏빛 눈동자로 힐끔 전장에서 날뛰는 장수를 바라보았다.
“혼자 공을 세우게 둘 순 없지.”
“…….”
식은땀을 흘리며 여포를 경계하는 기령의 모습.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돌진해오는 이름 모를 장수.
“도, 도망쳐야…!”
그를 확인한 장훈이 급히 달아났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장훈은 눈을 부릅뜬 표정으로 목이 달아났고,
“커헉!”
“뭐야. 별거 아니네.”
여포를 상대하던 기령도 방천화극에 꿰뚫린 채 죽음을 맞이했다.
중나라가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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