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36)
〈 236화 〉 구름과 비(1)
* * *
아직 해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떠있는 시각.
말에 올라탄 채 대지를 질주하던 병사는 무언가를 찾는 기색으로 고개를 휘휘 돌려대고 있었다.
이윽고 무언가를 찾아낸 병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 여기 있습니다!”
“오, 진짜 찾았냐?”
병사가 그리 말하기 무섭게 적갈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책 백부.
과거 원술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그녀는 아버지가 구명(??, 사람의 목숨을 구함)의 은혜를 입자 그대로 대장군에게 투항한 인물이었다.
병사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긴 손책은 병사가 찾아낸 무언가를 보고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 무언가를 지켜보던 손책이 황개에게 물었다.
“…할아범, 이놈 죽었냐?”
“으음…. 아닌 것 같소만.”
황개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살짝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일단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생명이란 것은 정말 덧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무엇보다도 강인하게 살아남는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후자였던 모양.
손책은 눈앞에 나자빠진 상태로 의식을 잃은 원술을 바라보며 툭 중얼거렸다.
“평소라면 운이 좋았다고 해줬겠지만…. 이번에는 운이 없네.”
대장군은 원술을 최대한 생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대장군이 어째서 원술을 살린 채로 데려오라 했는지 손책은 잘 알고 있었다.
손책이 안쓰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넌 곱게 죽기는 틀렸다.”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원술은 그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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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얌전히 항복한 원술군을 쭉 둘러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항복한 원술군은 강제로 징집된 백성이 대다수였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녔는지 의심이 갈 정도의 빼빼 마른 몸.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떨리는 동공.
병사가 가까워질 때마다 몸을 움츠리는 심약한 성격까지.
정말 훈련은 하나도 안 시켰구나.
이들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어떻게 진형을 유지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내 근처에서 똑같이 이들을 둘러보던 조조가 입을 열었다.
“이들은 어찌할 계획인가?”
“어떻게 하기는.”
나는 조조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백성은 전부 놓아줘야지.”
원술이 천하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군(?)을 어떻게 망쳐놨던가.
인구가 제일 많고, 온갖 대도시와 길이 연결되어 있어 부유할 수밖에 없는 지역인 남양군(???).
근데 그 남양군이 아예 풍비박산 난 걸 보고 경악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정 능력이 뛰어난 인원일수록 그 놀란 정도가 더했지.
‘세상에. 여길 이렇게 망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과거 사례주에 머물렀기에 남양군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사마의가 그리 말했다.
‘…누구를 다스릴 자격이 없는 인물이군요.’
내게 임관한 제갈량은 차분한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 이것도 재주라고 해야 할까요…?’
아예 고향이 형주였던 방통은 화들짝 놀랐다.
무언가를 망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인물이 바로 원술이었다.
그 남양군조차 이러할 진데, 그보다 규모가 작은 구강군(九??)은 어떻게 됐겠는가.
내가 군대를 이끌고 오면서 대충 훑어봤는데 아주 개판이더라고.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예삿일이요, 거리에 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젊은 사람이 다 어디로 갔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물음이었다.
원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12만 군세 안에 있겠지.
내가 서여에게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흔들며 전장에 직접 나서게 했던 것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전투를 빠르게 끝낼수록 이들의 피해도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서여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정면으로 쳐들어가 장군들의 목을 따버렸다.
나와 같은 직책…. 그러니까 중나라의 대장군을 어렵지 않게 참살하더라고.
황제의 명을 받들어 군세를 지휘해야 할 중요한 장수가 순식간에 죽어버린 거다.
이를 본 원술의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그 결과 내게 항복한 포로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여전히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이들을 돌려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지.”
“흐음…. 그런가.”
조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수긍했다.
그 조조라면 내가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진작 눈치챘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 조조가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것이 있다.”
“궁금한 것?”
내가 그리 되묻자 조조는 아리송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이번 전투, 굳이 내 도움이 필요했는가?”
“…….”
“내가 뭘 해보기도 전에 얼간이를 제대로 박살 내던데 말이야.”
이를 들은 나는 상당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 전투에서 조조 부대는 후방으로 빙 돌아 원술군의 본진을 타격했었지.
그러나 이미 원술군은 무너지고 있었고, 가짜 황제 원술은 병사가 무너지는 광경에 트라우마라도 도졌는지 이미 전장에서 도망친 상태였다.
진짜 도망치는 실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나는 조조의 질문에 대답했다.
“……원술이 야전을 걸 줄은 몰랐지.”
진짜다.
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사가 지키는 수춘성에서 공성전을 펼칠 작정으로 왔는데, 정작 수성 측에서 성문을 열고 야전을 걸었으니….
내 생각을 눈치챈 조조가 피식 웃어 보였다.
“얼간이가 그리 행동할 줄은 나도 눈치채지 못했으니 비슷한가.”
“…….”
“어쨌든 그대의 요청에 응해 군을 일으켰다. 이제 내 자그마한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줄 수 있겠지?”
조조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그 정도라면 상관없다만….”
왜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걸까.
조조는 마치 안심하라는 듯 내게 웃어 보였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소가 오히려 내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다.”
“…….”
“…그래도 지금은 때가 아니군.”
때가 아니라니?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겠지?”
설명을 요구하는 내 의아한 눈빛에도 조조는 담담히 웃어 보일 뿐이었다.
“겁먹지 말고 용감하게, 아주 대담히 행동하도록.”
거기까지 말한 조조는 내 뒤에 서 있는 서여를 힐끔 바라본 다음 발걸음을 돌렸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조조의 발걸음은 지금 누가 봐도 즐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조조는 왜 저렇게 신이 난 걸까.
나는 조조의 은색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살짝 고민에 빠졌다.
“주인님.”
“응?”
그때 서여가 날 불렀다.
조금 전까지 수많은 적군을 도륙 내던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모습.
그 여포조차 한바탕 난장판을 피우고 오면 몸 곳곳에 핏물이 묻는데, 서여는 아주 살짝 튄 핏방울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깔끔했다.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니까.
여포가 평범한 인간을 넘어선 초인이라면, 서여는 그조차 뛰어넘은 무언가였다.
서여는 내 눈빛이 자신에게 향하자 무언가 우물쭈물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 소원은….”
“아, 그거?”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서여는 자신이 소원권을 받는 데 성공했는지 내게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한 활약을 펼쳤는데 어떻게 안 들어줄 수가 있어?”
“…….”
“말만 해. 가능한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내 말을 들은 서여의 낯빛이 환해졌다.
무감정한 눈빛이 조금 유순해지고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 수준이었지만 그조차도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서여는 이미 소원을 정해놓았는지 곧장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제가 부탁드릴 내용은….”
“대장군!”
그때 저 멀리서 손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 이거와 비슷한 광경 어디선가 많이 봤는데.
막 엄청나게 중요한 말을 하려는 순간 불꽃놀이가 터진다거나,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
봐라.
난데없이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은 서여의 눈빛이 엄청나게 무서워졌다.
나는 서여를 달랠 요량으로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도시로 들어가고 다시 얘기하자.”
“…주인님.”
“걱정하지 마.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니까.”
“……네.”
서여는 한 차례 눈을 감고 뒤로 물러났다.
그를 본 나는 이게 마지막 유예 시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다음에도 서여를 바람 맞히는 순간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나를 덮치겠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얌전히 있으라는 둥 무서운 소리를 내뱉지 않을까.
나는 쓴웃음을 짓고 내게 달려오는 손책을 바라보았다.
“……대장군?”
누가 그 소패왕 아니랄까 봐 내게 다가온 손책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 예!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있던 원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나는 제갈량이 건의했던 대로 병력을 배치했을 뿐인데 정말 일주일쯤 지나니까 원술이 붙잡혔다.
조조의 호표기를 피해 도망쳤던 그 원술조차도 사방에서 좁혀오는 포위망은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
나는 피식 웃었다.
“역적을 낙양으로 압송할 준비를 해라.”
“알겠습니다!”
일단 돌아가기 전에 수춘부터 좀 살펴봐야겠지.
원술이 아득바득 긁어모았을 재물들과 옥새부터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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