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37)
〈 237화 〉 구름과 비(2)
* * *
원술의 본거지였던 수춘성으로 들어간 나는 엄청나게 호화로운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술 이놈은 남양군 때도 그러더니 여기서 또 이러네.
그때도 분명 저것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낙양에서나 볼법한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비록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여 거대하게 만들지 못했을 뿐, 만약 가능했었다면 원술은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낙양의 황궁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건축했을 것이다.
자신도 이제 제위에 오른 황제라면서 온갖 사치를 부리며 건물을 짓지 않았을까.
그로 인한 후폭풍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지.
원술이 어떤 인물인가를 떠올려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뒷수습하기에 앞서 나는 손책의 병사에게 보따리 하나를 받았다.
“대장군! 의식을 잃은 원술의 품속에서 발견된 물건입니다!”
“품속?”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품속에 넣었다기엔 조금 큰 크기인데….
무슨 사차원 주머니라도 있는 건가?
뭐, 옷에 주머니를 새로 달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원술이 그 급박한 도주 길에 오르면서도 버리지 않고 애지중지 간직한 물건이라.
나는 이게 대충 무엇인지 감이 왔다.
눈에 띄는 곳에 보따리를 올려놓고 매듭을 풀자 보따리가 사르르 풀리면서 한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이게 바로…….”
근처에서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그 물건을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초록색 자태.
장인이 한 땀씩 심혈을 기울여 비늘 한 장까지 섬세하게 음각한 용의 모습은 모두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구석 모퉁이가 살짝 깨져 금으로 때운 것이 그나마 옥에 티였다.
“어디 보자.”
모두가 그 아름다운 자태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나는 전국옥새(?國??)를 휙 들어 밑면에 적혀있는 글자를 살펴보았다.
‘수명우천, 기수영창(????, ?氷?)’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이사(??)가 지었다는 서문.
뭔가 있어 보이게 잘 지었네.
“진짜 옥새가 맞군.”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다시 옥새를 잘 수습했다.
이쯤 되면 원술은 레이드 몬스터 같다.
어느 특정한 시간에 대규모 이벤트를 일으키고 공을 제일 많이 세운 세력에게 레전드 아이템을 던져주는 거지.
보자기를 꽉 묶은 나는 옥새를 가져온 손책의 병사에게 물었다.
“지금 원술의 상태는 어떻지?”
“그저 굶주림과 탈수 증상이 겹쳐 의식을 잃은 것뿐이라 합니다.”
피부가 약간 까무잡잡한 강동 출신의 병사가 말을 이었다.
“의원들이 말하길 조만간 멀쩡해질 것이라고….”
“그건 다행이군.”
병사의 보고를 들은 내가 피식 웃었다.
물론 내가 원술을 좋아해서 살려주는 건 아니었다.
원술이 발견될 당시 그 누구도 원술 주변에 없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원술의 수행원이 전부 붙잡혔거나, 아니면 그를 버린 것을 알 수 있겠지.
굶주림과 탈수가 겹쳐서 죽으면 대충 아사(?死)라 보는 게 맞으려나.
그것도 고통스러운 마침표라 볼 수 있지만 원술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죗값에 비하면 너무나도 편안한 죽음이었다.
일단 중나라를 건국하며 황제를 참칭했으니 원술은 한나라 관점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역적이었고, 그런 역적들에게는 그들만을 위한 초특급 처형 코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구체적으로 뭐가 좋을까?
삶거나 튀기는 방법도 있고, 그냥 확 찢어버리는 방법도 있는데….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나는 여전히 무릎 꿇고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일단 원술을 생포하는 데 성공한 전공을 치하한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조만간 큰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도 잊지 말도록.”
손책의 병사는 내게 한 차례 예를 올린 다음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소패왕이 우리 세력에 투항한 뒤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형주 정벌 때 선봉대로 나서서 유표 세력의 기선 제압 임무도 성공했고, 강 너머에 몰래 자리 잡은 뒤 원술의 도주를 막아내라는 명령도 착실히 수행했다.
그것 외에도 내가 병주에서 흉노족과 노는 동안 형주 안정에 열심히 힘을 썼지.
이제 가짜 황제를 포획한 막대한 전공까지 세웠으니 슬슬 높은 자리에 앉혀두는 것도 생각할 때다.
…음, 구체적으로 무슨 관직이 좋을지 모르겠네.
일단 대략적인 틀만 정해놓고 나중에 직접 의견을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저번처럼 은혜를 갚았을 뿐이라며 사양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눈앞의 옥새를 집어들고 품 안에 집어넣어 보려 했으나 옥새가 생각보다 커서 불가능했다.
일일히 들고 다니기엔 너무 거추장스러운 크기.
원술 이놈은 이걸 어떻게 가지고 다닌 거야.
이 번쩍거리는 물건이 그리도 좋았더냐.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옥새를 맡기는 것도 좀 그렇지.
귀한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그런 소유욕의 문제가 아니라, 이거 잃어버리면 대참사잖아.
황궁에서도 전국옥새는 따로 관리하는 직책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물건이었다.
근데 그걸 잃어버려?
그것 참 재밌겠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옥새를 직접 가지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다른 사람이 옥새를 잃어버렸다 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겠지만 나는 멀쩡할 가능성이 크거든.
오히려 황제 폐하는 내게 참형을 내려야 한다는 관리를 끌어낸 다음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그깟 옥새야 또 만들면 되는 일이다.’
‘…….’
‘어디, 다른 의견이 있느냐?’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관리의 비명소리.
입은 웃고 있지만 싸늘하게 굳은 차가운 눈빛.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그를 마주한 황실 관료들이 몸을 바짝 숙이고, 그때서야 황제는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면 황제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있었다.
…이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병사와 장수 몇몇을 풀어 지역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해 힘을 썼다.
내게 항복한 포로도 고향에 돌아가는 걸 원하지 않는 소수를 제외하고 전부 풀어줬다.
풀어준 백성 일부가 도적이 되는 것도 염려했으나 원술에게서 뜯어낸 물자를 활용하여 구휼미를 베풀 계획이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만약 진짜 도적 무리가 된다 한들 얼마 못 가 분명 토벌당하겠지.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내가 파견 보낸 인물 사이에 조조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분간 구강군 일대를 순찰하며 치안을 바로잡도록 하겠다.’
원술을 토벌하자마자 곧장 연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조조가 그리 나오자 나는 상당히 당황했다.
현재 조조는 도겸 그 늙은이를 마무리하려다가 내가 보낸 칙서를 받고 군세를 돌린 것이었으니까.
‘나로서는 기꺼운 제안이다만, 이유라도 있나?’
‘그대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다.’
‘……내가 말을 말지.’
내 반응을 본 조조가 요망하게 미소 지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분명 돌아올 때쯤 모든 것이 끝나있을 터.’
‘갑자기 무슨 소리냐?’
‘혼잣말이다.’
히히힝─!!
조조가 말고삐를 강하게 틀어쥐자 그녀의 말 조황비전(????)이 앞다리를 들며 힘차게 울부짖었다.
‘그러면 가보도록 하지! 무사히 살아있어라!’
뭘 살아?
내가 그리 묻기도 전에 조조는 재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나는 조조의 뒤를 따르는 하후돈과 호표기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뱉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대충 다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자리를 옮겨 수춘 내부를 자세히 살펴본 뒤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하는 것뿐.
나는 슬슬 해가 저무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부대에 휴식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얌전히 수춘 병영 내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금.
나는 소수의 호위만을 대동한 채 발걸음을 척척 옮기며 원술이 머물렀을 게 분명한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제딴에는 병사를 세워두며 문단속을 철저히 했겠으나 이제 별 의미가 없었다.
내게 따질 집주인도 없는데 뭐.
콰직!
서여가 살짝 검을 휘두르자 대문의 잠금장치가 대번에 박살 나면서 활짝 열렸다.
나를 뒤따르던 호위병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문 앞에서 멈춰 섰고, 오직 서여만이 계속 내 뒤에 따라붙었다.
나는 건물 내부를 휘휘 둘러보면서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되게 호화롭네.”
원술의 식솔은 이상하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도망친 걸까?
어차피 그놈의 연좌제 때문에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테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도망친 놈들은 글쎄….
아마 같은 원씨 핏줄인 원소에게 향하지 않았을까.
원소가 알아서 하겠지.
문을 벌컥벌컥 열면서 호화로운 방 내부를 확인하던 나는 이윽고 침실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양군 때보다 침대가 좀 작은 걸 보니 원술의 방은 아닌 모양.
내가 판단한 원술은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굴 성격이라 이 자그마한 방은 결코 원술이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꽤 호화로운 가구를 보면 아마 원술의 부인 중 한 명의 방이 아닐까 생각….
“주인님.”
“…억?!”
그때 서여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어마어마한 힘에 이끌려 침대에 털썩 눕혀졌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눈을 깜빡일 무렵, 내 위에 올라탄 서여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소원.”
한동안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서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부탁드립니다.”
“…….”
서여는 그리 말하면서 내게 몸을 기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