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47)
〈 247화 〉 수춘(6)
* * *
손씨 일가에게 수춘을 맡기고 며칠.
나는 그 며칠 동안 수춘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기에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생각했지만, 혹여나 손책이 수춘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야.
그러나 그 우려가 괜한 것임을 깨닫고 고개를 주억거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봐도 되나?
손책이 정말 싸우는 것만 잘하는 인물이었다면 본래 역사에서도 원술 밑에서 활약한 실력 좋은 장수로만 기록됐을 터.
허나 독자적인 세력을 일으켜 세우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강동 일대를 호령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다스리는 능력이 훌륭했다는 뜻이다.
강동이장(??二?)이라 불리는 오의 정치가, 장소와 장굉도 손책의 요청으로 관직에 오르지 않았는가.
몸이 노쇠했다는 이유로 내 부름을 거절한 그 깐깐한 노인네들이 손책을 보좌했다는 것은 분명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손책은 사고 하나 안 치고 자신의 맹렬한 성격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는 것.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자매인 주유와 차분히 의논하고, 건수가 조금 크다 싶으면 내게 칼같이 보고서를 올렸다.
솔직히 제 주제를 모르고 자신에게 대드는 몇몇 놈들은 충동적으로 후려칠 줄 알았는데 매우 의외였다.
그 뭐냐.
결국 손책이 죽은 이유가 성격적 결함 때문이잖아.
너무나도 조급한 성격과 쓸데없이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손책의 잔혹한 성정은 결국 고스란히 업보가 되어 되돌아왔다.
손책에게 원한을 품은 자객들에게 큰 상처를 입고야 만 것.
그를 치료한 의원은 상처가 나으려면 족히 몇 달은 걸리니 얌전히 안정을 취하라 일렀는데, 손책은 그 충고를 무시하고 온종일 화를 내며 방을 뒤집어엎다가 상처가 터져 죽었다.
의사가 하지 말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거늘….
참고로 이건 소설이 아니라 정사에 나오는 내용이 맞다.
삼국지 소설에서는 우길이라는 도사를 죽였다가 우길의 혼령이 손책을 계속 괴롭혀서 죽였다는 오컬트적 전개가 나오던가?
…막상 생각하고 보니 조금 불안해지는데.
여기서도 우길을 콱 죽였다가 돌연사하는 일은 안 일어나겠지?
나는 갑작스럽게 걱정이 들었고, 그런 내가 보일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우길이라 불리는 도사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공손하게 맞이한 손책은 한순간 어리벙벙한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손책에게 말했다.
“자기보다 명성이 드높다고 질투하면서 해하려 들지 마라.”
“…제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하지만 손책 너는 진짜 그랬는걸.
자신을 떠받들어야 할 장수와 백성들이 웬 이상한 노인네를 더 찬양하니까 질투해서 죽였다는 게 버젓이 적혀있다고.
구체적으로 수하 장수들에게 뭐라더라.
내가 저 노인네보다 못해서 사람들이 저리 모여드는 거냐고 말하던가?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노인과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은 괴력난신(?力??,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 같은 게 실존하는 세상이다.
제 좋을 대로 행동하다가 누구한테 잘못 걸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겠지.
물론 그럴 확률은 엄청나게 낮겠지만, 그런 사람한테 잘못 걸려서 사망한 인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손을 대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니 어기지 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가 대답을 들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기색으로 단호하게 말하자 손책은 몸을 숙여 보였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손책이 기묘할 정도로 내게 유순하다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본래 성격이 튀어나오는 것 같던데.
이건 지금까지 손책이 보여왔던 침착한 면모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주유는 최근 강한 물살을 거스르는 훈련을 한답시고 형주와 강동 지역의 장강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거든.
‘조금 더 여유롭게 지내도 괜찮은데 벌써 대규모 훈련을 하려는 건가?’
‘대장군께서 맡겨주신 직무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말한 주유는 초선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미색을 뽐내며 잔잔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바로 앞에 놓여있던 차를 마시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군영 내부에서 남녀불문하고 자네를 우상으로 삼는 병사가 많다 하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군.’
‘…?’
내 갑작스러운 혼잣말에 주유가 의문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주유 앞에서 대놓고 중얼거렸다.
‘능력, 외모, 성격.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으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
내 이야기를 들은 주유의 얼굴이 확 붉어졌었다.
본래 역사에서 주유는 정말 부족한 것 하나 없는 만능 인재였다.
통솔이면 통솔, 무력이면 무력, 지략이면 지략.
단지 사마의처럼 제갈량에게 밀리는 2위의 인상이 강할 뿐이지.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것이라 하면 수명밖에 없다.
주유가 어째서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단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능력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그리 짧은 세월만 살다 가는 것은 남자로서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 있는 주유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의원은 자주 찾아가고 있나?’
‘예. 제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주유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내가 낙양으로 불러 몸에 이상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굳이 낙양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뭐….
화타가 거기 있거든.
누군가는 그 이름 높은 신의를 자주 찾아갈 수 있느냐 물을 수 있는데 당연히 가능했다.
권력 좋다는 게 뭐겠는가.
내가 헛기침만 해도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렸는데 의원 한 명 주선해주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이를 보면 어째서 권력을 쥔 사람이 타락하는지 알 것 같긴 해.
나도 이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권위를 자주 내세우진 않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게 제일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주군?”
“아, 미안하군.”
내가 좀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는지 눈앞에 있던 손책이 의문을 드러냈다.
나는 손책의 적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나는 낙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
“내 생각대로라면 꽤 오랜 세월 동안 돌아오지 않을 터.”
나는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지금 물어보도록.”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찬바람 맞으면서 행군하는 수가 있었다.
걷는 것도 힘든데 쉴 때도 쉬는 게 아닌 겨울 행군.
더울 때는 엄청나게 덥고, 잠깐만 발걸음을 멈춰도 온몸의 땀이 얼어붙는 그 기분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나로서도 그런 소름 돋는 일은 피하고 싶었으니 지금 움직여야지.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수춘에서 지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낙양에 있을 내 유일한 상관의 눈치를 받기 싫으면 올해는 넘기지 말아야 했다.
분명 늦게 돌아가면 심통 맞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겠지.
‘……야옹아. 콱 할퀴어버리거라.’
과거 내가 선물해준 고양이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 큰 고양이는 황제의 양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느긋한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애옹.’
참고로 야옹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내가 선물한 고양이는 애옹거리며 울었다.
그러면 이름을 야옹이가 아니라 애옹이라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잡생각을 하면서 손책의 대답을 기다렸고, 이윽고 무언가를 고민하던 손책이 내게 대답했다.
“궁금한 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됐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다음에 찾아올 때까지 잘 다스리고 있도록.”
“…….”
“여하(??, 그 형편이나 정도가 어떠한가를 나타내는 말)에 따라 보상을 내려보는 것도 검토해보지.”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보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손책이 의욕을 내보였다.
역시 상을 내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니까.
뛰어난 인재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건 그냥 자신의 뒤통수를 때려달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옥살이를 하고 있을 어딘가의 꿀물 황제 수준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멍청한 짓이지.
무언가를 떠올린 나는 손책에게 물었다.
“낙양에 있을 그대의 부모와 동생들을 수춘으로 데려올 마음이 있나?”
“…아니요.”
손책은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주군께서 일방적으로 신뢰를 베푸시는 것도 아니 될 일이지요.”
“…….”
“만약 제가 길을 엇나간다면 마땅히 할 일을 하시옵소서.”
즉 자신의 가족을 볼모로 잡아두라는 말.
손책은 지금 손씨 일가의 미래를 내게 맡겨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뭐지.
순간 충성심의 대명사인 관우의 모습과 겹쳐 보일 지경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