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48)
〈 248화 〉 결심(1)
* * *
내가 군을 이끌고 수춘을 빠져나오자 조조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군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조조의 모습을 보고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도겸과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았나?”
“아, 그 노인 말인가?”
내 질문을 들은 조조가 평소처럼 살짝 얄미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력만 커다랗지 실속은 없는 그깟 노인네는 언제든지 쓰러트릴 수 있다.”
“그런가.”
그를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즐기는 자 모드구나.
뭐, 조조가 진지하게 싸우지 않더라도 도겸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불리한 전황을 뒤집는 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도겸이 지닌 장수들로는 불가능할걸.
도겸 휘하 장수들 중 뛰어난 인물이 있냐 물으면 한 명도 없었다.
기껏해야 단양병을 이끄는 조표 정도?
근데 이놈은 여포가 유비에게서 서주를 뺏을 수 있게 뒤통수를 친 인물이라 기억하는 것이다.
“이제 도겸을 물리칠 계획인가?”
“음? 지금 그럴 생각은 없다.”
내 질문을 받은 조조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지금 서주의 늙은이가 야전에서 나를 이겨낸 적이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래.”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전보를 울릴 때마다 내게 편지를 보내서 자랑을 하는데 이걸 어떻게 모르겠는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니 그 늙은이가 성벽 뒤에 숨어서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조조는 도겸을 비웃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일부러 빈틈을 드러내고, 도시로 향하는 보급로를 끊어도 끝까지 버티기만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
“아무래도 공손찬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볼 모양이더군.”
이건 또 본래 역사대로 흘러갔다.
정사에서 나온 내용대로라면 이제 남은 것은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복숭아 삼형제가 서주를 구원하기 위해 출진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조조와 서주에서 한 판 붙은 다음, 사례주에서 쫓겨난 여포가 진궁과 협력해 연주 지역을 점령하는 걸로 본격적인 악연이 시작되는 건데….
아이고 세상에나.
지금 공손찬 세력에 유비가 없네?
유비는 이미 내 사주를 받고 공손찬의 뒤통수를 후려친 전적이 있다.
내가 아는 공손찬이라면 아마 사소한 일 하나하나 전부 잊지 않고 속에 담아둘 인물이었으니 지금 다시 찾아가봤자 문전박대만 당할 터.
현재 공손찬은 지원을 보낼 병력은 있어도 그를 지휘할 장수는 부족한 상황일 게 뻔했다.
유일한 희망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조운조차 없는 상황.
이것만 보면 공손찬 세력은 금방이라도 원소에게 멸망할 것 같았지만, 원소로서도 조금 상황이 꼬여있는지라 공손찬을 금방 끝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유우의 잔당을 흡수하면서 원소를 지원했을 세력 하나가 줄었고, 원소와 손을 잡아 공손찬을 공격했을 오환족도 최근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개판이 됐다고 들었다.
공손찬이 본래 역사보다 약해진 건 사실이었으나 3:1로 공손찬을 후드려 팼을 원소도 나름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길에 근처에서 나를 보좌하던 유비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찌할 계획이지?”
나는 다시 조조에게 물었다.
조조가 당연하다는 어투로 대답했다.
“보급로는 전부 끊어놓았으니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지 않나.”
“…….”
“포위망은 자효(子?, 조인의 자)가 알아서 관리할 터.”
그리 말한 조조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그 늙은이에게 남은 미래는 천천히 말라죽는 것밖에 없느니라.”
뭐야.
그냥 즐기는 자 모드인 줄 알았는데 다 생각이 있었구나?
“그리고 임산부에게는 안정이 최우선이지 않나.”
“…….”
조조의 폭탄 발언과 동시에 분위기가 쩌적 얼어붙었다.
“…저게 무슨 소리래?”
“…조용히 하거라.”
아직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장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관우는 그런 장비의 눈치 없는 행동을 타박했다.
“임신…?”
“……설마.”
사마의와 제갈량은 정말 드물게도 경악한 반응을 내보였다.
“…….”
“흥.”
과거였으면 깜짝 놀라 뒤집어졌을 서여와 여포는 너무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이미 나와 맺어졌기에 보일 수 있는 여유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래도 일행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
황제 폐하께서 전체적으로 성장하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검은색 생머리를 조금 더 길게 기르고, 더욱 유려한 몸매를 지닌 여인.
유비는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역시 믿음직하다니까.
다른 사람이 냉정함을 잃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 혼자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건 유비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었….
“푸르륵?”
…아닌가?
나는 유비의 말인 적로가 의아한 울음소리를 내는 걸 바라보았다.
손등을 자세히 보니까 핏줄이 튀어나와있는 것이 힘을 엄청나게 주고 있는 모양새.
꾸구국.
온몸에 힘을 주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적로의 허리를 감싼 유비의 허벅지에도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갔고, 그 때문에 생긴 압력은 적로가 고스란히 부담해야만 했다.
“푸릉….”
적로가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창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 광경에서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조조는 자신의 발언으로 주위가 혼란스러워진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배를 사랑스럽다는 손길로 쓰다듬을 뿐.
“아직 하혈(下血)이 나올 시기는 되지 않았다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잠깐.”
나는 조조가 또 폭탄을 터트리기 전에 이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조조의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나 진한 것이 내 안에 잔뜩 쏟아졌는데 임신하지 않고 배기겠느냐.”
그 충격적인 말에 그녀를 따르던 하후돈은 입을 헤 벌렸다.
나도 같은 심정이었고.
“흠…. 이름은 뭐로 하는 게 좋을까.”
조조는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무슨 이름이 좋겠느냐?”
“……휴우.”
한 차례 조조를 쏘아붙이려던 나는 그 진실된 미소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는 장난스러웠지만, 지금 조조가 진심으로 행복해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앙(, 높을 앙)은 어떻나?”
“호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좋은 울림이로군.”
그야 당연하지.
조앙(?)은 본래 역사에서 조조의 첫째 아들이었으니까.
지금 내가 어영부영 넘어갔더라도 결국 첫째의 이름은 조앙이 됐을 것이다.
막상 떠올려보니 궁금하네.
과연 여기서는 남자로 태어날까 여자로 태어날까.
지금 고민해봤자 해결되지 않을 고민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아이를 낳으면 조만간 초대하도록 하지.”
조조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또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일단 내가 낙양으로 찾아가 황제 폐하께 충성을 증명하는 것이 먼저겠구나.”
“…굳이 그래야만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그대를 따르는 인물들이 나를 경계할 테니 말이다.”
정말 무방비한 상태로 본진에 찾아와 우리가 사실상 같은 세력임을 선포하는 것.
조조는 정말 세력을 합병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 세력이 얼마나 거대해지는 거지?
연주와 예주 일부, 그리고 서주의 절반까지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하네.
현재 우리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도겸과 공손찬이 듣는다면 바로 자리에 나자빠질 소식이었다.
강동의 유요와 익주의 유언도 분명 똑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본초가 우리 사이를 눈치채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지는군.”
거기서 왜 갑자기 원소가 언급되는 걸까.
비록 조조와 내가 몸까지 섞은 친밀한 사이라지만, 원소가 그에 반응할 이유는 없을 터.
하도 오랫동안 안 보니까 이제 외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금색 머리카락에 금색 눈동자인 건 기억한다만….
원소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언제였지?
동탁을 낙양에서 쫓아내고, 원소가 기주로 떠나기 전 대화를 나눴던 게 마지막이었을 터.
그때 왠지 모를 분위기에 취해 권력에 눈이 멀지 말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한 기억이 있는데 그건 지금 내 흑역사 중 하나로 남아있었다.
원소는 그 특유의 처세술로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으나, 분명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내 의문스러운 눈길을 마주한 조조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 대장군의 생각이 그렇다면 따로 짚고 넘어가지는 않겠다.”
뉘앙스가 조금 묘하네.
마치 쓸데없는 걱정을 한 애인을 격려하는 듯한….
그때 나와 거리를 좁힌 조조가 이리 속삭였다.
“그대가 얼마나 되는 여인을 품에 안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구나.”
“…….”
대충 예상은 했다만, 일부러 대형 폭탄을 터트린 모양.
내게 한 번 웃어 보인 조조는 담담한 손짓으로 제 군대를 이끌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보고 대체 뒷수습을 어떻게 하란 거지.
사방에서 느껴지는 눈초리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