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49)
〈 249화 〉 결심(2)
* * *
‘나는 꼭 이렇게 커다란 호화로운 수레에 타고 다닐 거야!’
이는 과거 유비가 집 앞에 있는 커다란 뽕나무를 보며 외쳤던 말이다.
비록 그 이후 자신의 숙부에게 큰 꾸중을 듣긴 했지만, 이를 보면 적어도 유비가 소심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인물 중에서도 유비는 조금…. 특출난 편이었다.
‘으아앙! 엄마아──!’
‘한 대 맞고 우는 놈이 까불어?! 일로 와!’
어렸을 때 자신을 보고 애비 없는 놈이라며 놀리던 철없는 꼬맹이들을 쥐어패고,
‘유비 네 이년─! 또 수업에서 빠지려 하느냐──!!’
‘몽둥이 들고 쫓아온다! 어서 도망쳐!!’
당대 유명한 명사인 노식 선생에게 학문을 배울 기회가 있음에도 놀러 다니는 걸 더 선호했으며,
‘그래서 내가 말이야. 그 깡패들을 어떻게 때려눕혔냐면….’
‘하하! 역시 대장이오!’
무리를 모은 다음 유협 행세를 하며 고향 일대에 이름을 떨치기도 했었다.
허나 머리가 굵어지며 어머니가 자신을 키우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깨달은 걸까.
유비의 이런 사소한 일탈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처음엔 쓸데없이 바깥으로 나도는 행동부터 줄였다.
그 다음으로는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돗자리를 짜며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겸손하고 예의 있는 태도로 대했으니, 만약 유비의 과거를 아는 인물이 이런 유비의 모습을 보았다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으리라.
허나, 그렇다고 한들 유비의 성격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황건적의 난 이후, 현령으로 지내던 유비에게 찾아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요구를 하던 독우.
만약 근처에 있던 장비가 독우를 나무에 묶어놓고 매질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기는.
유비가 직접 곤장을 들고 독우를 죽기 직전까지 매질했으리라.
오랜 수양 끝에 왈패와 다름없던 면모는 사라졌지만, 누군가가 선을 넘는 순간 격렬하게 분노를 드러냈다.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인물이 분노하면 훨씬 더 무섭다고 말하지 않나.
유비는 딱 거기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
그리고 현재.
유비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춘을 벗어날 때부터, 구체적으로 조조라는 인물의 어마어마한 발언을 들은 이후부터 유비는 쭉 이런 상태였다.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평소 입을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장비조차 눈치를 살필 지경이었다.
“운장 언니. 어떻게 좀 해봐.”
장비는 자신의 믿음직한 도우미에게 다가간 다음 자그마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관우에게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보고 뭘 어쩌라는 것이냐.”
관우는 누군가를 섬기며 충성을 바치는 방법만 알고 있을 뿐, 노여운 기색이 가득한 상관의 비위를 맞추는 법은 몰랐다.
애초에 유비란 인물은 거짓된 말을 꿰뚫어 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니 어쭙잖게 나서는 짓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만 컸다.
장비는 불퉁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면 이런 불편한 분위기로 낙양까지 가라고?”
“……그건.”
장비의 말을 들은 관우가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푸히힝….
대장군이 유비에게 선물해준 말은 힘없는 울음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왜인지 아까부터 죽을상인 걸 보니 엄청나게 힘든 모양.
현덕 언니가 그렇게 힘을 세게 준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 걸까.
잠깐 의문이 들었던 장비는 이윽고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나는 싫어! 운장 언니가 힘들다면 내가 하는 수밖에!”
“…잠깐만 기다려라.”
관우는 자리에서 튀어 나가려는 장비를 붙잡았다.
그런 관우의 행동에 장비가 고개를 돌렸다.
“응? 왜 그래?”
“일단 현덕 님께서 어찌 저러시는지부터 알아야 기분을 풀어 드릴 수 있지 않겠나.”
“…그건 그렇네.”
장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책을 좀 읽어봤다 하는 인물이면 누구나 아는 말이었다.
장비가 무언가를 고민하면서 중얼거렸다.
“으음…. 현덕 언니가 화를 내는 이유라.”
생각해보자.
웬만한 일에도 서글서글 웃으며 화를 내는 법이 없던 현덕 언니.
그런 현덕 언니가 저렇게 화를 낼 정도의 일이라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는데.”
대장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현덕 언니의 모습.
장군직을 한사코 마다한 채 교위 관직에 머무르는 행동.
과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조조라는 인물과 기 싸움을 벌이던 것을 생각하면 결론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아빠가 대장군인가?”
분명 헤어지기 직전 아이가 어쩌고 이름이 어쩌고 하지 않았는가.
장비가 볼 때 조조라는 인물은 마치 좋아하는 이성을 괴롭히는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있었다.
그렇기에 장비는 처음엔 그 말을 질이 나쁜 농담으로 받아들였으나, 잘 생각해보니 그런 농담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뛰어난 육감으로 정답을 찾아낸 장비는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대장군의 아이라는 단어에 가슴 언저리가 시큰거리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심각한 상황인 건 확실했다.
현덕 언니는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이라.”
장비의 말을 들은 관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관우는 자신의 손을 배 위에 올려두며 생각했다.
자신의 일평생을 인의를 위해 바치기로 맹세하고 몇 년.
올바른 길을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것만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를 볼 때마다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몇 년이나 되는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인가.
제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는 것은 관우의 책임감이 용납하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을 낳았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장비가 알았다면 매사에 진지한 운장 언니답다며 고개를 주억거릴 생각이었다.
“운장 언니. 아무래도 우리가 추월당한 것 같은데.”
“…….”
“생각해봐. 그 여자가 대장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건 결국 그걸 했다는 거잖아?”
그리 말한 장비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더니 그곳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는 저속한 손놀림을 보였다.
그를 본 관우가 한숨을 내쉬며 장비의 행동을 타박했다.
“보는 눈도 많은데 무슨 망측한 짓이냐.”
“아이 참,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면 나중은 어떻게 하게?”
장비가 자신을 골리며 히히 웃자 관우는 눈가를 살며시 좁혔다.
“…강한 척하기는.”
“엥?”
“익덕 네가 말만 그럴싸하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관우는 장비가 실전에 들어가면 얼굴을 확 붉히곤 아무것도 못할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남성의 나체도 본 적 없는 여성이 능숙은 무슨.
관우의 일침에 정곡을 찔린 장비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그건 말이지….”
“후우….”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장비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다른 사람한테 뒤처졌으면 우리도 서둘러 뒤쫓아가야지!”
“…….”
“애초에 조조 말고도 수상한 사람이 더 있어!”
“뭐라고?”
관우가 놀란 목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제 의동생들의 만담을 몰래 귀 기울여 듣던 유비도 몸을 움찔 떨었으나, 두 명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보다 강한 두 명 있잖아.”
“…아.”
관우는 장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챘다.
그때 당시에는 조조에게만 시선이 쏠려있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행동을 보였던 인물이 있었다.
웬 이상한 여자가 대장군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면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반응했을 두 명.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어마어마한 기색을 흩뿌렸을 소녀가 한 명 있었고, 얼굴을 붉히면서 온갖 분노를 쏟아냈을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원술과 맞붙기 직전 조조가 대장군을 유혹하자 서슬 퍼런 분위기를 보이지 않았는가.
‘…….’
‘흥.’
그러나 그 두 명은 담담한 기색으로 이 상황을 여유롭게 넘겼다.
자신은 이미 그런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라는 듯 말이다.
“그 여자처럼 대놓고 티를 안 낼 뿐이지, 이미 물고 빨고 볼장 다 봤을걸?”
“물고 빨….”
성희롱과 다름없는 그 말에 관우는 무엇을 떠올렸는지 얼굴을 확 붉혔다.
장비가 거리낌 없이 의견을 말했다.
“이제 우리도 앞서나가야지.”
“…….”
“기다리는 건 능사가 아니야. 어영부영하면 순서만 더 늦어진다고?”
“그, 그런가….”
단호한 눈빛을 마주한 관우는 살짝 목소리를 흐렸다.
그 모습에 장비가 입을 열었다.
“아이 참,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린 거야?”
“……그건.”
“내가 도와줄게. 이것만 말해봐. 좋아? 싫어?”
관우는 장비의 질문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싫은 건 아니다만.”
“그럼 됐네! 가자!”
“이, 익덕?”
자리에서 튀어 나가는 장비의 모습에 관우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현덕 언니─!”
“…왜 그러니?”
유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추진력만큼은 이미 천하무쌍을 훌쩍 뛰어넘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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