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56)
〈 256화 〉 황제(1)
* * *
황하 근처에서 승선을 끝마친 나는 병사들이 짐을 꾸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짐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기도 했고, 애초에 도착 일자와 딱 맞아떨어지도록 짐을 가볍게 꾸렸으니.
물론 계산을 잘못하면 병사들이 단체로 굶는 대참사가 일어나겠으나….
지금 우리 세력에 있는 책사들이 어떤 인물인가.
사마의, 방통, 가후, 주유.
거기에다 보급과 같은 내정 방면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재주를 지닌 제갈량까지.
삼국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초호화 인재들이다.
게임에서도 이렇게 모으기는 쉽지 않을걸.
하여튼 그런 책사들의 노력 덕분에 물자는 정말 필요한 만큼만 챙겨왔다.
“이 무엄한 놈들! 내가 감히 누군지는 알고 이러는 것이냐!”
“…….”
시끄러운 짐 덩어리도 하나 있었네.
나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리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한때 황제를 참칭했던 야심만만한 인물.
자신을 당도고(??高)라 칭했던 원술은 현재 모든 세력을 잃은 뒤 수도로 압송되는 상태였다.
“본래라면 내 얼굴조차 보지 못했을 천한 것들이 나를 이따위로 방치하다니!”
확실히 지금 원술의 모습은 꾀죄죄했다.
며칠 동안 옥에 갇혀있었던 탓인지 몸도 씻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해 비쩍 마른 모습.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던 원술 처지에선 엄청나게 괴로웠으리라.
애초에 그걸 의도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검소하게 살아왔던 인물이 아닌 이상 원술 같은 고귀한 태생은 호화로운 생활이 아니면 버티지 못한다.
밥을 직접 지어서 먹고, 빨래를 직접 하며, 돈도 적당히 받는 평범한 삶.
태어났을 때부터 온갖 시중을 받으며 편하게 살아왔을 놈이 이런 삶을 꾸려나간다 쳐보자.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교육을 받았을 고귀한 태생이 과연 능력이 부족하겠는가.
정말 먹고 살고자 하면 머리를 쓰는 곳에 취직하여 평범하게 생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이건 그냥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분명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럴 정도가 아닌데도, 고귀한 태생은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너무나 큰 비참함을 느낀다.
흔히 배때지가 불렀다 해야 하나.
결국 이를 버티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물까지 나오니 뭐….
“아무리 포로라고 한들 이런 취급이 말이 되느냔 말이다!”
내 나름대로 원술을 괴롭히는 방식이 통했는지 원술은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 질렀다.
옥에 갇힌 뒤 시간이 꽤 오래 지났음에도 저렇게 힘이 남아도는 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면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저리 소리를 지를 정도로 절박하거나.
본래 지니고 있던 수려한 외모조차 전부 잃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원술의 모습은 상당히 추했다.
“이봐.”
“…?”
나는 포로를 관리하는 부관에게 말을 걸었다.
원술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부관은 내 부름을 받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만간 저놈이 그토록 좋아하는 꿀물이나 한 잔 가져다줘라.”
내 말을 들은 부관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러다가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아…. 그렇군요.”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인물답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부관은 내게 포권을 올리며 대답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조금 더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만약 원술이 진짜 자살 기도를 하더라도 재빠르게 대처하겠다는 모습.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생하도록.”
원술은 지금 죽어서는 안 됐다.
죽을 땐 죽더라도 죗값은 치르고 죽어야지.
원술의 욕심으로 헛되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몇 명인가.
원술은 현재 동탁과 상황이 비슷하다 보면 됐다.
“너희! 지금 내 말을 듣고는 있느냐! 지금 당장 내게 걸맞은 대우를….”
그래도 저건 너무 많이 시끄러운데.
여기가 하내군 근처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때 내 눈빛을 느낀 사마의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설마 하내군 근처라고 바라보신 건 아니죠?”
“…….”
어떻게 알았지.
사마의의 고향이 하내군이라서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쳐다본 건데.
“하여간 신경 쓰시는 것도 많으시네요.”
내가 침묵을 지키자 사마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슬슬 추워지고 있으니까 어서 가요.”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내군까지 온 이상 낙양은 바로 코앞이었으니.
긴 원정의 끝이었다.
──────────
꽤 오랜 시간 동안 낙양을 비웠지만 별로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번에도 포로를 잡아오셨군.”
“저놈은 또 뭘 잘못한 거지.”
내가 저번 형주 호족들을 잡아들였을 때처럼 백성들은 마차에 갇혀있는 원술을 바라보곤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금 압송되는 인물이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당하고도 가만히 넘길 놈이 아니라는 걸까.
“닥쳐라! 짐이 비록 이 꼴이 되었다고는 하나 네놈들 따위가 수군거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과연 원술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소리를 질렀다.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악다구니만 늘어난 걸까.
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발악하는 원술의 행동에 백성이 놀란 척을 했다.
“어이쿠, 우리 죄인께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은데.”
“…그나저나 짐(?)이라니? 설마 황제를 참칭했다는 그놈인가?”
원술의 귀기 어린 행동을 마주한 백성은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에잉, 재수도 옴 붙었네. 살다 살다 저런 놈을 보게 될 줄이야.”
“잘못 엮이면 우리까지 목이 달아나겠어. 어서 돌아가 일이나 합세.”
눈치가 빠른 낙양의 백성들은 자리에서 재빠르게 벗어났다.
이제 상종하면 안 되는 무언가가 돼버렸네.
아무래도 황제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은 가짜 황제를 혐오하기보단 아예 무시로 일관했다.
그렇게 백성이 하나둘 슬금슬금 자리를 벗어나자 이윽고 대낮임에도 그 낙양의 거리가 텅텅 비어버렸다.
내가 이에 놀라워하며 잠깐 발걸음을 멈추자 부관이 물었다.
“…계속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그래.”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하던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걸 깨달은 원술은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 이후는 평소와 똑같았다.
병사를 병영 내에서 쉬게 해주고, 원술은 적당한 독방에 휙 던져넣었다.
……이제 가장 걱정되는 순간.
황궁에 향한 나는 익숙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살짝 긴장은 해도 이렇게 떨지는 않았을 텐데.
솔직히 여자를 너무 많이 안기는 했다.
여섯 명이 뭐냐. 여섯 명이.
지금은 어찌저찌 넘어가더라도 언젠가 들킬 수밖에 없을 터.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손을 마주 잡고, 눈을 응시하며, 애정 어린 단어를 끊임없이 속삭여주는 것.
───…….
───여성이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정말 간단하지 않나?
나는 수춘에서 조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조조의 주장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그게 정말 간단한 것인지는 둘째 치고 말이야.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그래.”
황제를 곁에서 보필하는 관료는 저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나는 알현실 내부로 향했다.
“…….”
“…….”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불안하게 왜 저러시지.
주변에 다른 관료가 있었다면 분명 이 상황에 이상함을 느꼈으리라.
황제 폐하께서는 나만 봤다 하면 주변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반겨주시던 분이었으니까.
“…….”
“…폐하.”
결국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참지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다행히 황제는 그렇게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는지 내 부름에 대답했다.
…무서울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긴 했지만.
한쪽 무릎을 꿇는 나는 옥좌에 앉아있는 황제에게 공손히 입을 열었다.
“감히 주제넘게 황제를 참칭한 역적에게서 획득한 전리품이옵니다.”
“…….”
전국옥새(?國??).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귀한 화씨지벽(??之?)으로 만들어졌다는 전국옥새가 제 아름다운 위용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묘한 초록빛을 띠는 흰색 옥새를 황제에게 내밀었다.
“이제 적법한 주인인 황제 폐하께 이 전국옥새를 바치겠….”
“대장군.”
그때 황제가 아까와 같은 목소리로 내 말을 툭 자르고 들어왔다.
“그딴 것보다는 다른 할 말이 있지 않나?”
“…….”
아니, 그딴 것이라니요.
옥새가 들으면 울겠네.
나는 황제의 무덤덤한 눈초리를 느끼면서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