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63)
〈 263화 〉 권력(2)
* * *
사마의를 떼어놓은 내가 왕윤의 자택까지 향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장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왕윤은 대문 근처까지 나를 마중 나온 상태였다.
나는 그를 보고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어찌하여 이 추운 날 바깥까지 마중 나오셨는지요.”
“하하하. 이미 관직도 내려놓은 늙은이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왕윤은 여전히 정정한 듯 건강한 모습으로 웃어 보였다.
“안에서 기다리신다고 한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을 텐데….”
“괜찮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시지요.”
이것도 고지식하다 해야 할까.
아니면 내게 부채감을 씌우려는 계산된 행동이라 해야 할까.
나는 주변에 있는 왕윤의 식솔이 우왕좌왕 걱정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일단 날이 차니 서둘러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꺼이 그러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은 왕윤이 뒤를 돌아보았다.
“뭣들 하느냐. 어서 대장군을 모시거라.”
“예.”
왕윤이 그리 말하자 그를 따르던 시종 중 하나가 내게 공손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미 잔치 준비는 끝났으니 안으로 드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잔치.
즉 왕윤이 나 말고 이곳에 초대한 사람이 더 있다는 뜻.
이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살짝 골치 아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말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인물이 아닌 이상 설득해야지.
왕윤이 아무 인물이나 초대했을 리는 없으니 어느 정도 명성을 가진 인물인 것은 확실했다.
“이곳입니다.”
시종의 안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나는 곧장 방을 훑어봤다.
정말 필요한 것만 갖춰진 방 내부는 조금 삭막했다.
지금은 관직에서 물러났다지만, 그래도 한때 삼공(三?)에 앉았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청렴함.
보통 꼬장꼬장한 노인네라 하면 유독 자신에게만 관대한 경우가 많지 않나.
근데 왕윤은 본인에게도 엄격하게 구는 한결같은 인물이었다.
이러니까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는 거겠지.
내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데 왜 너는 못하냐고 압박을 주면 아랫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
잔치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자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세 개?
왕윤과 나를 제외하면 단 한 명만 잔치에 참석한다는 소리였다.
내가 재빠르게 방을 훑어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오래 기다리시게 한 것 같아 면목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자리에 앉고 3분도 안 지났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생각보다 왕윤이 너무 저자세를 보였던지라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걱정을 덜었군요.”
왕윤은 웃는 표정 그대로 내게 설명했다.
“다름이 아니라 다른 손님의 소식을 듣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왕윤이 말을 이었다.
“그분도 곧 도착하신다고 하니 그때 잔치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기꺼이 그러시지요.”
왕윤이 이렇게 극진히 대할 정도의 손님이라.
노식(??) 아니면 황보숭(???)인가?
어쩌면 주준(?)일 수도 있다.
이들 모두가 황건적의 난 당시 조정의 명을 받고 황건군을 토벌하던 인물들이다.
또 황실 세력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기도 하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내가 질문을 던졌다.
“외람된 질문이오나 어느 분을 초대하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대장군께서도 기억하시는 인물입니다.”
내 질문에 대답한 왕윤이 선선하게 웃어 보였다.
“…….”
그러니까 그 기억하는 사람이 누군데.
왕윤은 그런 내 눈빛에도 더 알려주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닫았다.
“어르신.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래. 어서 모시도록 해라.”
아무래도 정말 근처에 있었던 모양.
왕윤이 초대했다는 손님은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도착했다.
내가 시종이 방을 빠져나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왕윤이 말했다.
“대장군, 그것 아십니까? 제가 지금 초대한 손님은 저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왕윤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저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만 알음알음 들었을 뿐,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한 번도 없지요.”
“…….”
“그래서 한 번 대화를 나눠보고자 그녀를 초대한 것입니다.”
…그녀?
“또 여자야?”
당연하게도 그녀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여포의 표정이 뚱하게 변했다.
“하하! 인기가 많은 건 여전하시군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여포의 눈치를 살피기에만 급급했을 터.
하지만 왕윤은 살짝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는 여포를 보곤 한바탕 웃어젖혔다.
확실히 담력이 있네.
과연 저 정도는 되어야 연환계를 펼칠 수 있다는 건가.
왕윤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그런 의도가 아니란 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끄응….”
왕윤의 해명을 들은 여포가 침음성을 흘렸다.
여포도 차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없었던 모양.
“…….”
서여는 여전히 담담한 기색이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여자가 얼마나 늘어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분명 서여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제 곁에만 있어주신다면 여자가 얼마나 있든 상관없습니다.’
분명 세기말 권왕 같은 소리를 했었지.
참 어마어마한 순정파였다.
그렇게 서로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얼마나 보냈을까.
이윽고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
여성을 확인한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히 왕윤 말마따나 내가 기억하는 인물이었으니까.
후계자 운운하면서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뒤집어질 만한 안건을 조정에 내놓은 인물인데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이지적인 외모의 여인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올렸다.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영광이옵니다.”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니 너무 예의를 차리지는 마시오.”
잠깐 여인을 지켜보던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왕윤과 여인이 서로 익숙한 모습으로 덕담을 주고받는 게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선명한 밝은 빛을 띠는 갈색 머리카락.
그와 대비되는 어두운 색깔의 고동색 눈동자.
나는 그러한 여인의 외모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몸집도 상당히 작았고 머리 모양도 달랐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
나는 이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내가 아는 인물과 매우 흡사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설마….
내가 그리 생각할 무렵 왕윤과 대화를 나누던 여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군이 아니십니까.”
“…그래. 이렇게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군.”
나는 여인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까지는 미처 묻지 못했다만 이번 기회에 물어보겠다. 그대는 누구지?”
“아, 혹시나 했는데 정말 모르고 계셨군요.”
…이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 세계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외모에 보정이 들어가는 편이다.
언젠가 여인의 수려한 외모가 눈에 띄었던 나는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면 새까맣게 잊어버렸던가.
즉 내 멍청한 두뇌가 원인이라는 뜻이다.
그 말을 들은 내가 멋쩍은 표정을 짓자 여인은 누군가와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성은 순(?), 이름은 욱(?), 자는 문약(文?)이옵니다.”
“…….”
“대장군께서 저를 어찌 부르든 상관은 없지만….”
잠깐 말끝을 흐린 여인이 곧장 말을 이었다.
“이왕이면 순문약(?文?)보다 순욱(??)이라 불러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여기 초특급 인재가 숨어있었네.
나는 얼떨떨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도록 하지.”
“후훗. 감사합니다.”
순욱은 자신의 조카인 순유와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가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웃는 표정도 비슷했다.
조카라 하니까 순욱이 순유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일 수 있는데, 사실 순욱은 순유보다 여섯 살이나 더 어렸다.
가끔 조카보다 어린 삼촌이 있지 않나.
그것과 똑같았다.
여기서는 삼촌이 아니라 고모라 불러야겠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순욱이 순유보다 어려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진작 성인이 됐을 나이임에도 어려 보이는 건 넘어가자.
여긴 원래 그런 세상이다.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때 대화를 지켜보던 왕윤이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슬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로군요.”
왕윤은 자신의 수염을 한 차례 쓸어내렸다.
“대장군.”
“…….”
“대장군께서 그리시는 미래란 어떤 것인지요?”
이제 시작인가.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왕윤.
내게 선명한 눈빛을 보내면서 관심을 기울이는 순욱.
나는 그들을 마주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