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67)
〈 267화 〉 초선(2)
* * *
나는 왕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즉, 이 명검은 예물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하하! 그리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내 질문을 받은 왕윤이 껄껄 웃어 보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이 검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아, 칠성보도(七???)라 하옵니다.”
“칠성보도(七???)….”
내 예상대로 왕윤이 선물한 검은 칠성보도였다.
“제 기억으론 일곱 개의 보석으로 별자리를 표현했다고 하는군요.”
별자리라.
북두칠성을 말하는 건가?
예술의 세계란 참 심오했다.
“제가 한창때 이 검으로 이민족을 몇 명이나 베어 넘겼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왕윤은 그리 말하며 껄껄 웃었다.
원래 무관으로 뛰다가 문관으로 보직을 변경한 건가.
그건 또 그것대로 대단하구만.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선물, 굳이 제가 직접 쓰지 않더라도 괜찮겠습니까?”
자칫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 질문에 왕윤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대장군께 드린 물건이니 어떻게 쓰시든 저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왕윤이 껄껄 웃었다.
“그래도 검을 녹여버리거나 팔아버리는 건 참아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러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지요.”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런 짓을 하겠는가.
분명 칠성보도보다 더 뛰어난 무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의문의 대장장이가 만든 피치 시스터즈의 무기들과 비슷한 수준.
기껏해야 서여의 초천검과 여포의 방천화극 정도가 이 칠성보도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문제는 이 검을 누구에게 넘겨주느냐는 건데….
그에 대한 생각은 이미 끝마쳐놓았다.
“초선, 가져가거라.”
“…?”
내 말을 들은 초선이 의문을 드러냈다.
“어인 일로 직접 쓰시지 않고 저에게 검을…?”
“내가 그 검을 다뤄봤자 얼마나 다루겠느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좋은 검이니까 혹여나 있을 상황에 대비하긴 좋을 터.
삼국지 관련 게임에서도 칠성보도는 무력을 올려주는 보물로 자주 나온다.
…근데 무력 50은 될까 말까 한 사람이 들어봤자 의미가 없잖아.
그냥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청강검을 가진 하후은이 헌창이나 쓰던 조운에게 목숨을 잃은 것처럼, 내가 칠성보도를 가져봤자 대번에 목이 날아가고 전설 아이템이나 떨굴 것이다.
솔직히 조운이면 그냥 자연재해를 만났다 생각하고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긴 해.
비록 여포는 힘들겠지만 관우나 장비라면 어느 정도 겨뤄볼 수 있는 수준의 무장이다.
“듣자하니 최근 무예를 연습하고 있다던데.”
“아, 알고 계셨습니까.”
내 말을 들은 초선이 부끄러운 듯 말을 떨었다.
“기껏해야 취미로 하는 수준입니다. 무예를 연습한다 말하기에는 창피하지요.”
“그런 것치고는 많이 열심히 하던데.”
나는 과거에 있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왜인지 모르게 잠이 안 와 집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초선이 마당에서 검무(??)를 추던 광경을 마주한 것.
달빛을 배경 삼아 우아한 몸짓을 지어 보이던 여인의 모습은 한순간 내 넋을 쏙 빼놓을 만했다.
‘…주인님, 저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무서우니까 그만둬라.’
그 이후 사소한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건 넘어가자.
솔직히 검보다는 둔기에 가까운 무기를 가까운 거리에서 이리저리 휘두르면 그냥 위협 아니냐.
“대장군께서도 제 딸의 재능을 꿰뚫어보신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초선은 대장군을 모시기 이전부터 평범한 장정은 가뿐히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라고?
…그러면 이미 나보다 강한 거 아니냐?
어째 나보다 약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 같네.
잠깐 묘한 감상에 빠져들던 나는 다시 정신을 붙잡고 초선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이 무기가 어울리겠군. 그대가 가지거라.”
“대, 대장군.”
“어서.”
내가 칠성보도를 든 손을 척 내밀자 초선은 잠깐 눈동자를 떨었다.
나는 재촉하듯 말했다.
“이러다가 팔 떨어지겠군. 뭐 하느냐?”
“…예.”
칠성보도를 받아든 초선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원래 그대 가문의 검 아니더냐. 내게 감사를 표할 필요는 없다.”
나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정말 별거 아닌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훈훈한 광경이군요.”
왕윤은 이 상황이 만족스러운 듯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렇지. 초선, 그 검을 들고 검무를 춰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아버님…?”
갑작스러운 제안에 초선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오래간만에 내 딸의 춤사위를 보고 싶구나.”
“하오나….”
“대장군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초선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눈치챈 왕윤이 내게 물었다.
나는 어려울 것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저야 나쁠 것 없지요. 분위기도 띄우고 좋지 않겠습니까.”
“역시 저와 마음이 통하는군요!”
왕윤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대장군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이제 거리낄 것이 없겠군!”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한 차례 몸을 숙여 보인 초선은 곧장 칠성보도를 빼 들고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
천하에 둘도 없을 명검과 경국지색의 미인.
그 두 가지 요소가 어우러지니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실력이 더 늘었구나.”
과거 홀로 검무를 추던 때보다 더욱 일취월장한 실력에 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저도 저 정도쯤은….”
“그러지 말라니까?”
“…….”
그 커다란 검을 붕붕 휘둘러댔다간 분위기가 진짜 이상해질 거다.
주변 물건들이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동그라지는 건 귀여운 수준일걸.
나는 묘하게 시무룩한 기색을 보이는 서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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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별다른 일은 없었다.
평소 있었던 연회와 같이 술을 조금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잠깐 보냈다.
그렇게 날이 어느 정도 어두워지자 왕윤은 내게 인사를 올리면서 말했다.
“시간이 이리 늦어졌군요. 아쉽지만 이만 물러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편하신 때에 다시 찾아오셔도 됩니다.”
“하하! 어찌 제가 그런 눈치 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눈치 없는 짓이라니?
내가 자신의 말에 의문을 드러내자 왕윤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 딸과 대장군이 머무르는 저택에 불쑥불쑥 찾아올 정도로 염치없는 인물은 아닙니다.”
뭐?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왕윤을 바라보았다.
“한창때의 남녀가 눈이 맞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를 들은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고지식한 인물이 내게 성희롱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정말 순욱 말마따나 모든 짐을 내려놓은 것이 확실했다.
왕윤이 말했다.
“의진(?, 황보숭의 자)이나 자간(子?, 노식의 자)의 설득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정말이십니까?”
“이미 정계에서 물러난 몸, 이렇게라도 대장군께 도움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윤은 껄껄 웃고는 다시 한번 내게 인사를 올렸다.
“이 노구(??, 늙은 몸)는 비록 실패했으나 대장군께서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왕윤의 잘못이라기보단 눈과 귀를 막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한 영제의 문제 아닐까.
그렇지만 충성심이 깊은 왕윤은 감히 황제를 탓하지 못했다.
“부디 폐하를, 이 한나라를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나도 무거운 그 말에 잠깐 침묵을 지키던 나는 천천히 말을 생각해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대답이면 안심이 되는군요.”
내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 왕윤은 무거운 분위기를 날려버리려는 듯 말했다.
“아, 초선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
“어렸을 때부터 자기 할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던 아이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만….”
그런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불안해진다.
막 갑자기 내 방에 쳐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왕윤은 살짝 불안한 내 눈빛을 마주하고도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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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주인님.”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내 방에 들어온 초선은 내게 공손하게 몸을 숙였다.
“오늘 밤은 천첩(??)이 시중을 들겠습니다.”
“…….”
어째서 이런 예상만 빗나가지 않는 걸까.
눈앞이 아찔해지는 광경을 마주한 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시중이 맞나?”
“그렇습니다.”
잠옷만 걸친 내 질문에 초선은 그리 대답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게 입을 여는 초선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
나와 맺어진 이후 이제 거리낄 것도 없다는 듯 내 방에 살림을 차려놓은 서여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찌 하겠냐고 묻는 그 눈빛에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리 오도록.”
“…예.”
초선은 나와 거리를 좁혔고, 그를 확인한 서여는 또 스르르 방을 빠져나갔다.
왜인지 도망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착각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