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77)
〈 277화 〉 혼례(4)
* * *
시간은 늘 평등하게 흘러가는 법.
흔히 인생의 무덤이라는 결혼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의외로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낙양에 머무르는 동안 유일하게 열심히 하는 두 가지 일이 증발해버렸기 때문.
며칠 전부터 황궁에서 호출조차 내려오지 않고, 내게 올라오는 서류도 엄청나게 확 줄었다.
황궁은 보나 마나 혼례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거겠지.
열심히 일에 집중해도 모자랄 마당에 나를 호출할 틈이 어딨겠는가.
애초에 부인이 새 단장을 마치기도 전에 남편을 부르는 눈치 없는 놈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놈이 정말 있다면 폐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실 터.
내게 올라오는 서류의 숫자가 줄어든 이유는 단순했다.
내 휘하에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본래 역사에서 제갈량에게 전권을 위임한 유선이 과연 많은 일 처리를 했을까?
그럴리가.
기껏해야 황궁에서 황호와 함께 오락 활동이나 하고 있었겠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하나다.
휘하 직원이 무척 유능할 경우 위에 있는 사람은 심신이 편안하다는 것.
본래 역사의 제갈량은 결국 과로사를 해버리긴 했다만, 지금 이곳에는 서로의 일을 분담해줄 인재들이 많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일 처리를 하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놈이 생긴다니까요?”
“예, 예? 그런가요…?”
사마의는 제 또래인 방통 곁에서 그녀를 가르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휴, 예를 들어서 말이죠….”
한숨을 푹 내쉰 사마의가 나조차 알아듣기 어려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미꾸라지처럼 어떻게 빠져나간다고?
“으아아….”
아직 재능이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방통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 모양.
한동안 말을 잇던 사마의는 바짝 긴장한 방통의 모습에 의문을 보였다.
“…제대로 듣고 있어요?”
“드, 드드듣고 있습니다!”
“…….”
어린 봉황이 커다란 호랑이 앞에서 벌벌 떠는 광경은 꽤 재미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갈량이 살풋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가 죄 없는 새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네요.”
“…뭐라고요?”
아.
사마의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걸 확인한 나는 이다음 일어날 일이 대충 예상됐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삐딱하신 것도 정도가 있죠.”
“받는 사람이 그에 부담을 느낀다면 호의가 아니지요.”
“적어도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서로를 향한 날이 선 목소리에 나는 머리를 짚었다.
어째 잠잠하다 싶더라니 또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방통은 이미 눈에 안 띄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숨을 죽인 상태였다.
작정하고 저러니까 존재감이 상당히 희미해지네.
저게 바로 초식 동물이 육식 동물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인가?
어떨 때는 사마의가, 또 어떨 때는 제갈량이 먼저 시비를 걸면서 시작되는 말싸움은 주변 사람이 쉽게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가 존재했으니 나름대로 현명한 대처였다.
나는 이제 익숙한 모습으로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명에게 입을 열었다.
“자꾸 싸우지 말라니까?”
“윽….”
“…….”
내가 그런 말을 하기 무섭게 두 명은 곧장 입을 닫았다.
가끔 보면 내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다투는 것 같단 말이지.
물론 내 단순한 기분 탓이었다.
내 관심을 끌기 위해 다툰다기엔 너무 진심으로 으르렁거리거든.
“아, 그러고 보니 이걸 안 줬었네.”
“…뭔가요?”
나는 살짝 토라져 있는 사마의에게 한 가지 물품을 건네주었다.
“선물.”
“…….”
“예전부터 주겠다고 한 거 있잖아.”
아직 제갈량을 영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사마의는 제갈량이 가지고 다니는 부채를 볼 때마다 표정을 살짝 찌푸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러 매체에서 삼국지와 관련된 창작물을 접해왔던 나는 제갈량을 보자마자 장인에게 의뢰해 부채를 하나 만들어줬다.
제갈량의 부채, 즉 백우선(白??)은 내가 선물해준 물건이라는 것.
흰색 깃털로 만들어진 부채는 내가 봐도 아름답다 느낄 정도였다.
물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하기에는 가격이 좀 비싸긴 했다만….
나는 원래 지갑을 두둑이 채우고 다니는 놈이라 흔쾌히 지급하고도 남을 돈이 있었다.
삼국지 연의에서 나오는 장인은 수상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편이다.
복숭아 삼 형제도 탁군 근처에 있는 동네 대장간에서 심상치 않은 무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자웅일대검,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게임으로 치면 전설 아이템을 동네 시골 대장장이가 뚝딱 만들어낸 것이다.
여포의 방천화극도 내가 살짝 아이디어를 주니까 금방 만들어내더라고.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듯한 솜씨에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본인 말로는 회심의 역작이라며 다시는 못 만들 것 같다 말했지만 누가 그걸 믿겠는가.
세상에 기인이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한술 더 떴다.
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채를 볼 때마다 입술이 툭 튀어나오던데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어야지.”
“…그런 것치고는 엄청 늦게 주셨네요.”
내가 사마의에게 건네준 물건은 백우선과 비슷하게 생긴 깃털 부채였다.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깃털의 색깔이 짙은 자주색이라는 걸까.
나는 떳떳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재료가 재료인지라 어쩔 수 없더라고.”
“무슨 재료를 쓰셨는데요?”
사마의의 질문에 나는 씩 웃어 보였다.
“그건 비밀로 할게.”
“……아니, 저기요?”
가장 중요한 것을 숨기는 내 모습에 사마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를 지켜본 나는 만족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농담이지. 짐조(??)야. 짐조(??).”
“…네?”
사마의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장강 이남에 서식한다는 생물 말이에요?”
“그래.”
짐조(??).
사람도 일순(一?, 아주 짧은 시간)만에 죽일 수 있다는 독을 지녔다는 조류.
짐조가 머무르는 곳에는 어떠한 식물도 자라지 못한다고 하던가.
놀랍게도 그 새에게서 추출된 독은 아무런 색깔도 없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색무취.
한때 내가 형주 호족에게 중독될 뻔한 독이 바로 이놈한테서 나온 거지.
내 대답을 들은 사마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래 걸리셨다는 이유가 설마….”
“그래. 독 제거하느라 오래 걸렸다.”
한고조의 부인이자 중국의 악녀라고도 불리는 여인, 고황후(高??) 여치(??)가 정적들을 암살하는데 주로 사용한 물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짐주(??)다.
짐새의 독을 탄 술이라는 것.
만드는 방법도 무척이나 간단하다.
그냥 짐새의 깃털을 술에 퐁당 빠트리면 사람 하나는 골로 보낼 수 있다던데?
무슨 뱀으로 술 담그는 것도 아니고 놀라울 따름이다.
사마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제대로 없애신 거 맞죠?”
“그래. 신의가 직접 처리했으니 안심해도 좋다.”
짐새에게서 추출한 독은 화타가 의뢰 비용으로 가져가 버렸다.
구체적으로 뭐라더라.
독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던데.
솔직히 그만한 독을 어떻게 약으로 쓸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 생각이 있겠지.
아니면 그냥 연구 목적으로 가져간 것일 수도 있고.
짐새라는 생물 자체가 엄청나게 보기 드문 놈이다 보니 그럴 수 있었다.
“강동에서 활동하는 사냥꾼이 민가 근처에서 서성이던 놈을 운 좋게 잡았다면서 진상하더라고.”
“…….”
“이걸로 거슬리는 놈을 죽여버리란 뜻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여튼 그 사냥꾼은 며칠 후하게 대접해 준 다음 보상도 내려줬다.
괜한 인명 피해가 나기 전에 사고를 예방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었으니까.
“근데 시체를 살펴보니 깃털 색깔이 딱 너와 어울릴 것 같더라.”
짐새는 전체적으로 검은색 깃털을 지녔지만 가슴과 같은 몇몇 부위에는 자주색 깃털이 자라나 있었다.
검은색 깃털은 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마귀한테도 구할 수 있지만, 자주색 깃털은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희귀하지 않나.
“그래서 의뢰한 거야. 너한테 선물하려고.”
“…그런가요.”
사마의는 살짝 소심하게 부채를 어루만졌다.
“…저기요.”
“응?”
내가 자신의 부름에 반응하자 사마의는 얼굴을 푹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워요.”
“뭐라고?”
“고맙──”
우당탕탕!
“대장군! 급보입니다!”
사마의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병사 한 명이 급한 몸짓으로 뛰어들어왔다.
타이밍 한번 끝내주네.
“…….”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기 시작한 사마의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폐, 폐하께서 혼례 일자를 결정하셨습니다!”
“으음?”
그거 하나론 이렇게 당황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혼례 일자는?”
“그게….”
잠깐 머뭇거리던 병사가 외쳤다.
“오늘입니다!”
“…뭐?”
그를 들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12월 하순인데?
설마 내년 봄에 혼례식을 올리겠단 것도 다 거짓말이셨나?
“…….”
진짜 성격 급하시네.
내가 초대장을 보낸 사람들이 미리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