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8)
EP.28 백파적(3)
어둑어둑한 밤.
산채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험상궂은 인상의 남성이 하품했다.
“젠장. 이 빌어먹을 경계는 언제까지 서야 하는 거냐?”
“다음 교대가 올 때까지 서는 거지.”
“그래서 지금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 반시진 남은 것 같군.”
체감상으로 슬슬 교대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절반밖에 안 왔다고?
“에이씨…. 우리 두목도 문제야. 이 새벽에 대체 누가 이딴 산속으로 쳐들어온다는 거야.”
“뭐. 자기가 서는 게 아니다 이거지.”
“진짜 칼로 찌르고 싶네….”
옆에 있던 동료와 대화를 나누던 남성은 지루함이 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역시 시간 보내기에는 입 털기만한 것이 없다니까. 야. 뭐 재밌는 얘기 없냐?”
“…….”
“…왜 대답이 없어?”
갑자기 말이 사라진 동료에게 의문을 느끼면서 남성이 고개를 돌렸다.
“…….”
털썩!
“어, 어 씨발 뭐야?!”
이마에 화살이 꽂힌 채 즉사한 동료의 모습에 남성은 그만 욕을 내뱉었다.
“저, 적ㅅ──!! 끄르르륵!”
재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남성이 큰소리로 외치려는 순간 피거품을 물며 자리에 쓰러졌다.
“휴. 큰일 날 뻔했네.”
남성의 목에 화살을 꽂은 적발의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도적들이 새벽 경계까지 서고 있어?”
도적이면 도적답게 행동해야지.
여포가 주변에 있던 부관에게 말했다.
“슬슬 시간 됐지?”
“예.”
정릉. 여포. 장료. 서황.
그 넷이 따로 행동하며 특정한 시간에 백파적의 산채들을 동시에 습격하는 계획.
“그렇다면….”
콰직!
부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여포는 길을 막고 있던 나무문을 단번에 부숴버리고 입을 열었다.
“전부 불 질러버려.”
씩 웃은 여포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산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학살이 시작됐다.
───────────
“저, 적이다!!”
“막아라! 막아야만…으아악!”
백파적이 있는 산채에 불을 질러버린 나는 병사들을 이끌며 명령을 내렸다.
“단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전부 불태우고 죽여버려라!”
내 말에 병사들은 도적 토벌에 더욱 열을 올리며 적들을 베어나갔다.
“비켜! 비키라고!”
“길 막지 마라!”
완벽하게 허를 찔린 백파적은 이렇다 할 저항도 생각하지 못한 채 달아나기 바빴다.
일부러 유일하게 남겨둔 출구를 향해 자신의 동료를 짓밟으며 도망가는 모습은 꼴불견스러웠다.
“다 왔다…!”
“이제 도망칠 수 있……?”
그리고 어찌어찌 출구까지 다다른 백파적을 맞아주는 건 한 치의 틈도 없이 출구를 막아놓은 방패병들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본 백파적들의 표정이 아연했다.
“으하하! 진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냐?”
“도적 새끼들이 어디를 도망가!”
진형을 뚫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백파적에게 병사들이 조롱을 날렸다.
병사들이 백파적의 뒤를 치는 광경을 본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야간 기습은 대성공이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놈들은 타죽을 거고, 허겁지겁 뛰쳐나오는 놈들은 칼의 녹이 된다.
나는 서여를 대동하고 유일하게 불이 안 붙은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백성들이 잡혀있는 포로수용소.
약탈한 재물을 모아둔 보물고.
백파적들은 고맙게도 수고를 덜 수 있게 그 역할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었다.
지금 나를 막을 백파적들이 죄다 달아나고 있었으니 지금 내 발걸음을 막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백성들이 갇힌 감옥에 도착하자 의외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으아앙──!”
“야, 얌전히 안 있으면 이 애새끼는 죽는다!”
한 남성이 어린아이를 붙잡고 인질로 삼는 모습.
나는 그 광경에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끝까지 추하게 구는구나?”
“조용히 해──!!”
흥분한 남성이 어린아이에게 칼을 더 들이대며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앙─!! 엄마!!”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어린아이의 목에 칼이 닿는 상황.
나는 침착한 어조로 인질을 삼고 있는 도적에게 말했다.
“미안하니까 진정해. 우리 차분히 대화부터 해볼까?”
“대화는 뭔 놈의 대화냐─! 날 바깥으로 내보내라!!”
예상했지만 도적은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었다.
“알겠으니까 일단 내 눈부터 바라봐.”
“무슨 헛소리….”
“보내줄 테니까 보라고.”
“…….”
내 말에 도적이 흥분을 잠깐 멈추고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불과 몇 초.
“어때? 뭐가 좀 보여?”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대체 뭘….”
그때 어린아이를 붙잡고 있던 도적의 팔이 잘려 나갔다.
“으아아악──!!”
어느샌가 도적의 팔을 베어버린 서여가 어린아이를 한쪽 팔로 붙잡고 내게 돌아왔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거리가 그렇게 먼 편도 아니었으니 내가 잠시 시선을 끈 그 시간은 서여가 도적을 베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여가 들고 있던 아이를 놓아주었다.
“엄마──!”
아이는 울면서 도도도도 달려가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안겼다.
아이를 껴안은 여성이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되니까 애부터 달려주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돌린 나는 여전히 신음을 흘리고 있는 도적을 바라보았다.
“끄으으윽…!”
“정신이 좀 들어?”
기술은 있는지 그 사이에 팔을 옷으로 묶어 지혈한 도적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개수작을 부리다니…!”
“인질 잡은 놈이 할 말이냐?”
하여간 자기가 한 짓은 생각도 안 하지.
“네가 여기 우두머리지?”
“어떻게 그걸…!”
내 물음에 앞에 있던 도적이 눈을 크게 떴다.
알기 쉬운 반응이라 좋네.
“하다못해 옷이라도 좀 갈아입던가.”
어느 말단 도적이 저렇게 비싸 보이는 동물 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다니겠냐.
나는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얌전히 따라오면 최대한 선처해줄게.”
“…정말이냐?”
진짜겠냐.
내 속을 알 리 없는 우두머리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천히 다가왔다.
방금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팔이 아니라 목이 잘려나갈 걸 알고 있으니 순순히 따르는 거겠지만.
“그, 그럼 뭐든지 말할 테니 살려다오.”
“알았어.”
그렇게 나를 따라온 우두머리가 바깥으로 나오자 나는 길을 걸으며 서여에게 말했다.
“이쯤이면 대충 소리 안 닿겠지?”
“네.”
“네 녀석들 지금 무슨 소리를….”
나는 우두머리의 말을 끊고 턱짓으로 우두머리를 가리켰다.
“팔 하나 더 잘라버려.”
“네.”
서여가 초천검을 뽑아 든 채 우두머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광경에 우두머리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네, 네놈…! 우리의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었나!”
“그 와중에 우리? 도적 주제에 소속감 하나는 확실하구나?”
내 비꼬는 말에 우두머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백파적들의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었나!!”
“이렇게 동료를 쉽게 버린다고? 너 정말 안 되겠구나.”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
놀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화를 내는 우두머리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필요 없어.”
“…뭐?”
“정보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필요 없다고.”
저놈이 말하는 정보 따위 필요 없다.
백파적과 관련된 정보는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포로가 있는 건물에만 불을 안 지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
“…….”
내 질문에 우두머리가 침묵했다.
이미 백파적을 잡는데 필요한 정보는 서황이 전부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거기서 널 죽이기엔 아이들 정서 건강에 안 좋잖아.”
어린아이한테 험한 광경 보여줄 수 없으니까 바깥에서 죽이려 한 거다.
솔직히 팔을 자른 것부터 아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구조 활동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치고.
“내가 너한테 원하는 건 딱 하나야.”
“…….”
“내일 싸울 때 너 같은 놈들 목 보여주면서 백파적 기세를 좀 꺾을 거거든?”
“이, 이봐….”
우두머리가 두려운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니까 최대한 비참한 표정으로 죽어줘라.”
내 말이 끝나자 서여의 검이 휘둘러졌다.
──────────
“두, 두목! 큰일 났소! 지금 우리 산채들이…!”
“……보고 있다.”
곽태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산채를 불태우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자리 잡은 곳들을 동시에 공격한 거지?”
시간을 끌기 위한 용도로 쓸모가 덜한 놈들을 찢어 산맥 곳곳에 배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동시에 공격당하며 각개격파 당하는 건 상정하지 않았다.
이윽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 곽태가 이를 빠득 물었다.
“분명 안에서 정보를 흘린 자들이 있다…!”
곽태의 말에 한섬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산채의 위치를 전부 아는 사람은 나랑 두목밖에…. 두, 두목?”
“그래! 네놈이…! 네놈이 전부 망쳐놓았다……!”
이성을 잃은 곽태가 어느새 검을 뽑아 들고 한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곽태는 산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뛰어난 장수가 몰래 정보를 수집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네이놈─!! 나를 팔아먹고 자기 혼자 살아남으려고 해?!”
“두목! 진정하시오! 나는 그러지 않았소! 나는…!!”
한섬이 양팔을 휘저으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곽태에게 닿지 않았다.
“감히 그런 짓을 하고도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끄아아악!!”
곽태의 검에 베인 한섬이 단말마를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한섬을 베어죽인 곽태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눈초리로 불타고 있는 산을 노려보았다.
“3만에게 고작 3천으로 덤벼…?”
그 자신감은 인정할 만했다. 그 누가 3만의 병사를 3천으로 몰살할 생각을 하겠는가.
비록 이 기습으로 절반 정도를 잃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병사의 숫자가 5배나 차이 났다.
“내일. 내일이면 내가 군을 이끌고 손수 베어주겠다….”
곽태는 그리 말하며 소름끼치는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