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89)
〈 289화 〉 잔치(4)
* * *
연회장에 찾아온 낯익은 장수들은 장료 일행만이 아니었다.
유표 휘하에 있다가 내게 투항한 형주 지역 장수들.
본래 역사에서는 금범적과 노당익장이란 칭호로 유명한 감녕과 황충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카락 몇 개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건 여전하네.
본인 말로는 아무리 머리를 다듬어도 솟아오른다고 하던데.
“이야, 이곳이 그 말로만 듣던 낙양인가? 확실히 비싸 보이는 물건이 많네.”
“…언행에 주의하시길. 저희는 아직 애매한 처지니까요.”
도대체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외모를 지닌 황충이 감녕에게 주의를 시켰다.
걱정 섞인 경고에 감녕은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내가 그 정도도 모르겠어? 잔소리는 그만해.”
“…….”
“이것 봐. 괜한 꼬투리 잡힐까 봐 방울도 다 떼고 왔다고.”
그 말대로 평소 감녕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딸랑거렸을 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종일 딸랑거려봐야 내가 뭐 하는 년인지 아무도 모를걸.”
“휴우….”
“또 한숨 쉰다. 그러면 빨리 늙는다니까?”
거기서 역린을 건드려 버리네.
흔히 여자의 나이와 몸무게는 언급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들 하지 않나.
감녕은 그 선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황충이 살짝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제가 나이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한 번 재어보고 싶으신가요?”
“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으니까 진정해.”
이미 나이와 관련해서 한바탕 곤혹을 치른 적이 있는지 감녕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살짝 거리를 뒀다.
“훈련이랍시고 멀리서 화살만 쏴댈 때마다 얼마나 놀라는지 알아?”
서여가 아니었다면 진작 내 머리를 꿰뚫었을 화살이 갑작스럽게 날아온다라….
그건 좀 무서운데.
공포 영화냐?
“그게 불만이셨군요.”
황충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원하신다면 직접 무기를 맞대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에이, 됐어. 나이 먹은 사람 괴롭혀봤자 뭐해?”
“…….”
이걸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하나.
감녕은 정말 순수한 의도로 말하는 것 같은데 그 한마디 한마디가 황충의 역린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나이 공격을 연달아 맞은 황충은 석상처럼 굳어버렸고, 감녕은 그 사이 탁자 위에 놓여있는 음식을 마구 먹어치웠다.
조만간 감녕 엉덩이에 화살이 하나 박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궁금하기는 해.
황충은 도대체 몇 살…
“…….”
내가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황충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저 우연히 눈이 마주친 걸까.
아니면 초인적인 직감으로 몹쓸 생각을 한다는 걸 눈치챈 걸까.
쉽사리 확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게 두려울 따름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황충은 곧장 예를 표했지만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황충은 연의에서도 늙었다는 소리만 들으면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날뛰었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조조의 오른팔 격인 하후연도 황충에게 잘못 걸려 목이 날아가지 않았나.
연의에서 나오는 최후도 이와 연관이 있는데, 이릉대전 당시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아들을 띄워 줄 목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를 보좌하던 장수들은 전부 노쇠하여 쓸모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너희가 있으니 오나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구나!
대충 이런 말이었을 텐데.
늙어? 쓸모가 없어져?
당연히 황충은 정군산 때처럼 용맹하게 나섰다가 복병에게 화살을 맞고 상처가 덧나 죽는다.
이걸 보면 장난으로라도 늙었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되겠지.
농담이 아니라 정말 황충이 죽을 수도 있었다.
아, 정사에서는 이릉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세상을 떠난다.
“저, 정릉!”
“…?”
내가 주변 장수를 지켜볼 무렵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조만간 술이라도 같이 마시지 않을래?!”
여포는 장료에게 술을 받는 걸 성공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말했다.
대화가 벌써 끝난 건가.
내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여포와 속닥거리던 장료는 순진하게 웃으면서 동료 장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포가 지금 어떤 의도로 이런 권유를 하는 건지는 알고 있다.
조금 전 장료가 언급했던 것처럼 한창때의 남녀가 술기운에 몸을 맡기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은 게 아니겠는가.
그런 여포의 권유에 나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안 돼.”
“…어?”
내 단호한 대답을 들은 여포가 우뚝 멈춰 섰다.
나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면서 곧장 입을 열었다.
“여포, 가까이 와볼래?”
“으, 응? 그래.”
내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자 여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나와 거리를 좁혔다.
조금 전 황제가 경고를 한 것도 있으니 구태여 이쪽 대화를 엿들으려는 인원은 없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나는 여포에게 고개를 내민 다음 근처에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술은 아기한테 안 좋아.”
“…!”
내가 그리 속삭이자 여포는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놀라워했다.
여포는 저번에 애매하다면서 대답을 회피했으나, 그 이후 여포를 유심히 관찰한 나는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비록 헛구역질은 하지 않았지만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던 음식들을 이상하게 많이 먹더라고.
과일이라거나, 꿀물이라거나.
주로 당도 높은 음식들을 쏙쏙 골라 먹는 모습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여성 중 몇몇은 아이를 가지면 입맛이 확 바뀌는 일도 있다고 들었으니 여포도 서여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게 아닐까.
“…정말?”
“정말.”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여포는 떨리는 눈동자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긴.”
그에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금주해야지.”
“아앗….”
내 말을 들은 여포가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제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서 날 호위하겠다고 했지?”
“…….”
“나도 여포 곁에 있으면서 뭐 이상한 거 주워 먹지 않는지 지켜볼 거야.”
“으, 응.”
여포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네?
“곁에서…. 지켜본다.”
아, 그것 때문이구나.
곁에 있어준다는 말이 그렇게 좋을까.
여포가 내 말을 되뇌며 실없이 웃고 있을 때 주변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이 아기에게 안 좋다고?”
“폐하?”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군.”
이제 막 술잔을 드신 폐하께서는 다시 손을 내려놓으셨다.
황제는 근처에 있던 궁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런 것 말고 아이에게 좋은 음식이나 가져오거라.”
“며, 명에 따르겠습니다.”
황실에 올라올 정도면 분명 최고급 술일 텐데 망설임 없이 이런 것이라 표현하시네.
이게 모성애의 힘인가.
황실에서 일하는 궁녀들은 능숙한 솜씨로 목을 축일 만한 음료와 깨끗한 물까지 챙겨왔다.
“흠…. 이 정도면 괜찮을지 모르겠군.”
한 차례 상 위를 훑어본 황제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화현, 짐이 더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느냐?”
“…….”
내가 의사도 아닌데 자세히 알 리가 있나.
나는 그저 술과 담배만 안 하면 건강의 절반은 챙긴다는 현대 기억에 의존했을 뿐이다.
“…편식만 안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참으로 당연한 대답을 내놓았다.
…조만간 화타에게 물어봐야지.
“편식 안 하기….”
“뭐야, 어렵지 않네.”
근처에 있던 서여와 여포가 엄청난 정보라도 들은 것처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 건 넘어가자.
───────────
한창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건물의 구석.
본인의 의지로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차지한 갈색 머리의 여인이 탁자 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오늘은….”
산통과 산가지.
팔괘(??)를 표현한 나무통에 여러 개의 막대기를 넣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전통적인 방법.
원래라면 주문을 외우면서 틈 사이로 막대기가 삐져나올 때까지 흔들어야 했으나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했으니 적당히 자제하기로 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재미로 점을 보는 것에 불과했으니.
“…아, 이거다.”
그렇게 한동안 산통을 유심히 바라보던 여인이 막대기 하나를 뽑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꽤 여유로운 모습이구나.”
얼핏 들어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이게 몇 년 만인가요?”
“에잉, 그것 하나 기억 못하고 말이야….”
연회장과 어울리지 않는 추레한 몰골의 노인이 혀를 쯧쯧 차며 여인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연회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는 걸까.
한쪽 다리를 절면서 백발도 성성하게 자라난 모습.
심지어 왼쪽 눈은 멀기라도 한 듯 초점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여인은 이런 노인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