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93)
〈 293화 〉 진류왕(1)
* * *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연회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저번에 제갈 가문을 환영하기 위한 연회를 열었을 때도 사흘이 지나서야 끝났는데 황제의 결혼식은 오죽할까.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좌자의 신통방통 도술 덕분에 어제가 시끌시끌했다면 오늘은 사람들이 또 다른 요소로 웅성거렸다.
그래서 그 또 다른 요소가 무엇이냐.
“아, 안녕하세요.”
“…진류왕 전하?”
진류왕.
삼국지를 본 독자라면 헌제라는 칭호가 더 익숙하겠네.
본래 역사였다면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남았을 인물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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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민황제(????), 줄여서 부르면 민제(??).
효헌황제(????), 줄여서 부르면 헌제(??).
이는 모두 한 인물을 이르는 말이다.
유협(??), 자는 백화(??).
동탁이 황제를 꼭두각시로 부리기 위해 소제를 강제로 폐위한 다음 황제 자리에 앉혀놓는 인물.
왜 시호가 두 개씩이나 되느냐면 각각 촉나라와 위나라에서 지어준 시호이기 때문이지.
누가 서로 앙숙 아니랄까 봐 이런 곳에서도 기 싸움을 벌였다.
유협은 이미 한나라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 즉위했던지라 시대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었던 인물이다.
동탁을 어찌어찌 물리치긴 했으나 그 이후에는 이각과 곽사가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고, 결국 도적 무리 하나조차 제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한나라가 기울어버린다.
유언이나 유표 같은 주목들은 제 부임지에서 황제 노릇을 하느라 황제를 달가워하지 않고, 동탁이 세운 황제를 인정하지 않은 원소는 아예 유우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려 하는 등 적대적인 행보를 보였다.
유비는 이 시기에 뭘 했더라.
아마 조조와 한 차례 충돌한 이후 서주를 열심히 수복하고 있던가?
조조가 효도를 한답시고 워낙 개판을 쳐놓아서 이각과 곽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
애초에 거리 문제도 있고 말이야.
이각과 곽사에게 시달리던 유협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며 한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근데 상대가 치세의 능신이 아닌, 난세의 간웅으로 완전히 타락한 조조네?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던 유협은 결국 조조를 암살하려 하는데, 이조차도 들통이 나 당시 임신 중이었던 후궁이 처형당하고 외척이 몰살당하는 등 뼈아픈 공격을 제대로 맞는다.
이후에도 자신의 부인인 황후가 머리카락을 붙잡힌 채로 끌려가 유폐당하여 죽고, 그 황후가 낳은 제 자식들도 죽고, 자기편이라 할 수 있는 다른 아군도 우수수 죽어나갔다.
조조는 말 그대로 유협에게만 손을 안 댔을 뿐, 다른 주변 인물은 전부 족쳐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별수 있나.
유협은 결국 조조에게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완전한 꼭두각시가 되며, 조조 사후 조비의 압박으로 ‘선양(??, 임금의 자리를 물려줌)’을 하게 된다.
그나마 위안인 점이라면 조비가 순순히 제위를 양보한 점을 생각해 산양공(山??)이란 작위를 내리고 말년을 한적한 곳에서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일까.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눈을 감은 인물.
창작물로 치면 후회와 피폐 태그가 붙어도 손색이 없을 파란만장한 삶을 겪는 것이 바로 유협이란 인물이었다.
“전하, 이곳에는 무슨 일로…?”
나는 눈앞의 인물을 바라보며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는 기를 쓰고 모습을 비추지 않으려는 인물이 웬일일까.
폐하보다 약간 키가 작고,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소녀가 자그마하게 말했다.
“폐하와 대장군이 맺어지는 날이니까요. 이런 날에까지 숨어있을 수는 없죠.”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다분한 긴장한 목소리.
유협은 황실의 핏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검은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흑요석과 같이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나는 눈동자와 똑같은 색깔을 지닌 검은색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니 준비를 제대로 한 모양.
아니면 별다른 관리를 안 했음에도 머릿결이 좋은 것일 수도 있었다.
폐하와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유순한 눈매를 지닌 유협은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를 지켜보던 나는 유협이 어째서 칩거를 그만두고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 수 있었다.
유협은 혹여나 연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 때문에 현 황제이자 자신의 언니인 유변에게 미움을 사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헤헤….”
이걸 한결같다고 해야 할까.
유협은 자신의 존재가 황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하나밖에 없는 제 혈육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구와의 만남도 거절한 채 개인 궁궐에 틀어박힐 리 없지 않은가.
얘는 어째서 이 세계에서도 피폐물을 찍고 있는 거야.
폐하께서는 진류왕 전하에게 언니로서의 정(?)을 품고 계셨지만 이를 전혀 모르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긴 폐하께서 지금까지 숙청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숙청 대상에는 황족이라고 한들 예외가 없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정치를 근처에서 봐왔을 유협이 두려움을 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면전에서 대놓고 나를 모욕하던 놈들.
음습하게 뒷공작을 펼쳐 내 입지를 줄이려던 놈들.
그런 놈들은 황제의 감시망에 걸리는 즉시 옷을 벗거나 어딘가에 유폐당했다.
정도가 조금 과하다 싶은 놈들은 아예 물리적으로 몸이 이등분 나더라고.
…말하고 보니 둘의 사이가 어색해진 데에 내 지분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은데.
폐하께서는 나를 해하려 한 놈들에게 피의 숙청을 행하고, 진류왕 전하께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공포감을 품는다.
맞네.
내 지분도 어느 정도 있었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내게 맞서던 놈들에게 책임이 있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겠는가.
어디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던가 아니면 땅에 파묻혀서 지렁이와 인사하고 있을 텐데 말이야.
사실 본인의 방에서 두문불출하는 진류왕 전하가 걱정되어 과거 여러 번 찾아가기는 했다.
처음 한두 번은 거절당했지만 계속 찾아가니까 문을 열어주시더라고.
아무래도 어리다 보니 호기심은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그 이후는 최대한 이런저런 놀이를 해주면서 사이가 좋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
병주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를 보살피며 시간을 보낸 내 경험이 빛을 발할 때였다.
…워낙 어른스러운 분이라 중간부턴 유협이 내 행동에 맞장구를 쳐주는 느낌이었지만.
하여튼 언니로서의 정을 품고 있는 황제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나는 황궁에 방문할 때마다 유협과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이 노력만으로는 둘의 사이를 가까이 만들 수 없었던 모양.
“…흐음.”
폐하께서는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진류왕 전하를 바라보면서 잠깐 생각에 빠지셨다.
아니, 저런 매서운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보면 아직 어린아이인 유협이 무서워한다니까.
181년에 태어난 유협은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14살의 어린아이였다.
“…….”
봐라. 지금도 살짝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지 않나.
내 필사적인 눈빛을 폐하께서도 눈치채셨는지 뒤늦게 아차 하는 기색으로 입을 여셨다.
“진류왕은 짐의 근처에 앉도록.”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황제가 그리 말하고 자리에 앉자 유협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오네.
자신을 곁에 두고 직접 조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 거겠지.
그를 지켜보던 나는 유협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고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대장군?”
내 갑작스러운 말에 유협이 의문을 표했다.
나는 최대한 안심시키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전하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하시니까요.”
“…….”
“혈육의 정을 믿어보십시오.”
걸핏하면 골육상쟁이 일어나는 황실에서 주장하기엔 우스운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좋게 지낸 형제자매들도 있으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주장이지.
“그래도 두렵다면 저를 믿어보시지요.”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저만 보면 끔뻑 죽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 제가 의견을 올리면 폐하께서도….”
“헛소리는 그만하고 이리 오거라.”
“예.”
황제의 목소리에서 언짢은 기색을 느낀 나는 재빠르게 옆에 착석했다.
살짝 부끄러운 기색도 있으셨다는 건 폐하의 위엄을 위해 비밀로 하자.
나와 같이 이를 눈치챈 고관대작들은 마치 손녀를 보는 듯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 사마의가 골이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거다.
“…….”
계속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유협도 황제가 내 말을 구태여 부정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들어 황제와 눈을 마주쳤다.
어찌 보면 무엄하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를 지적할 만큼 눈치 없는 인물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 눈을 얼마나 마주쳤을까.
“자, 잘 부탁드립니다! 폐하!”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같은 핏줄로 이어진 자매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작전 성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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