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98)
〈 298화 〉 변화(4)
* * *
내가 유비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기 전, 근처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장군! 오랜만입니다!”
“…마초?”
아름다운 여성이 많은 이 세계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확실하게 많이 자란 것이 느껴지는 청은발 머리카락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오늘따라 손님이 많은 것 같네.
“흐음….”
유비는 자신의 대화를 끊은 마초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가늠하는 모습이었다.
끼어드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고 일부러 대화를 끊은 걸까?
아니면 그저 유비 입장에서 운이 없었던 것뿐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자신들을 방해한 건 사실이었으니 유비 일행의 눈빛이 좋을 리 없었다.
“…뭐야? 갑자기 방해하네.”
장비는 이제 숨길 마음도 없다는 듯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고,
“…….”
온종일 내 눈빛을 피할 기세였던 관우조차 마초를 똑바로 바라봤다.
…기세가 무섭네.
누가 삼국지에서 이름난 인간 믹서기 아니랄까 봐 눈빛만으로 사람을 위축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마초 맹기.
삼국지 연의에서 그 장비와 며칠 동안 무기를 맞대며 깊은 인상을 남긴 장수.
정사에서도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그 조조의 목숨을 위협했던 군웅이었다.
비록 저번 대련에서는 패배했다지만, 나는 언젠가 마초가 그 만인지적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증거로 마초는 지금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나였다면 분명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여 뒤에 살짝 숨지 않았을까.
…막상 생각해 보니 엄청나게 추하네.
복숭아 자매는 계속해서 마초를 바라보았고, 마초는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언제까지 기 싸움을 벌일 기세.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이 되기 전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내게 부탁할 것이라도 있나?”
“네! 외람된 부탁이오나, 저번에 벌였던 대련을 이어서 해도 괜찮겠습니까?!”
나와 거리를 좁힌 다가온 마초는 힘찬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무언가 텐션이 엄청나게 올라가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냅다 들이박는 느낌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마초의 요청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대련이라면 굳이 내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나?
내가 장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는 인물도 아니고 그냥 당사자끼리 대화를 나누면 해결될 일인데 말이야.
내가 그런 의문을 품자마자 마초가 말을 이었다.
“그, 그리고 대련 결과가 마음에 드신다면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그런 목적이었구나.
내게 맨입으로 부탁하기에는 살짝 눈치가 보이니 어떻게든 빌미를 만들어 접근하겠단 뜻이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야.
…아니면 설욕전도 하고 내게 부탁도 하는 일석이조를 노리는 건가?
그게 더 가능성 높겠네.
마초의 의도를 파악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저번 대련을 이어서 하고 싶다는 건, 다시 장비와 맞붙고 싶다는 뜻인가?”
“예!”
그 대답을 들은 나는 근처에 있는 장비에게 물었다.
“그렇다는군. 어쩔 건가?”
“…흥, 걸려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아.”
어깨에 장팔사모를 걸친 장비는 마초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한 적 있었지.”
“…….”
“조금만 더 경험을 쌓는다면 나와 좋은 대결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장비가 자신의 장팔사모를 마초에게 겨누었다.
“어디 이번 기회에 실력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해볼까?”
얼핏 들으면 상대를 띄워 주는 것 같았지만, 결국 너는 내 아래라는 오만한 선언이었다.
그를 들은 마초도 장비와의 기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 화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이 말이 떠오르네요.”
목소리도 듣기 좋네.
이래서 서량의 금마초라 부르는 건가.
내가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마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기마전이라면 제가 이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어차피 전장에서는 말을 타고 싸울 수밖에 없잖아요?”
그 주장도 일리가 있다.
온갖 무기가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기동력이란 무척 중요한 요소니까.
두 다리로 달리는 사람보다 네 다리로 달리는 짐승이 더 빠른 건 당연한 상식 아닌가.
애초에 말이라는 생물 자체가 인간에게 매우 위협적인 흉기로 변할 수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한테 치이고 멀쩡한 사람은 없을 터.
내가 생각을 이어나가는 동안에도 마초의 도발은 끝나지 않았다.
“혹시 전장에서도 여유롭게 걸어 다니시나요?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진심은 아니겠지만 도발 수위가 좀 센데.
마초는 지금 장비에게 이 제안을 거절하면 자신에게 겁먹은 것과 다름없다며 압박을 가했다.
“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런 도발을 듣고 물러설 장비가 아니었다.
자신을 죽일 뻔한 여포에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데 마초는 오죽할까.
“도전받는 입장에서 그 정도쯤이야 어렵지 않지. 어디서 붙을래?”
“이 근처에 연병장이 있으니 거기서 붙죠.”
“좋아.”
서로 살벌한 기색으로 대화를 나누던 두 명은 곧장 대련 준비를 위해 떠났다.
…저 모습을 보면 마초도 한 성깔 하는 것 같은데.
내 앞에서만 성격이 유순해지는 건가?
‘그렇게 비실비실해서야 제대로 싸울 수는 있겠냐?’
‘…뭐라고?’
‘불만 있으면 한번 붙어보든가!’
예전부터 다른 부대와 잦은 문제를 일으키던 강족 출신 병사들.
어릴 때부터 검과 활을 쥐며 일상을 전투로 보내온 그들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으나, 그런 살벌한 주변 환경 때문에 성격이 난폭해진 그들은 다른 부대와 단합이 매우 안 되는 편이었다.
주변 부대와의 긴밀한 연계가 필수인 대규모 전장에서 자기들끼리 따로따로 노는 부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강하면서도 약한 모순적인 부대.
그게 바로 이민족이었다.
나는 강족들이 이상할 정도로 마초를 두려워하던 광경을 떠올렸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또 문제를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자, 장군! 그게 아닙니다! 저 새끼들이 먼저 시비를….’
‘이제 내 앞에서 욕까지 하네. 안 되겠다. 너희 전부…. 어, 대장군?’
그때는 별다른 생각을 안 하고 넘어갔었지만 분명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였었지.
내 기척을 느낀 마초가 홱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짓던 광경은 아직도 기억났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번 기회에 단단히 버릇을 잡아놓을 테니까요!’
‘…그래.’
지금 와서 곰곰이 떠올려 보니 강족들이 이곳에 남아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낸 것 같았다.
“익덕과 기세등등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은데 대단하네요.”
“예. 분명 실력도 일취월장(??月?, 나날이 자라거나 발전함)했겠지요.”
내가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유비와 관우가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유비는 웃으면서 말했다.
“일취월장이라, 시경(??)에서 나오는 구절이네. 정말 다 읽었구나?”
“…제가 이런 걸로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관우는 유비의 장난스러운 어투에 곤란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춘추좌씨전만 품에 안고 다니던 관우가 다른 서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니, 나도 확실히 놀라웠다.
내가 유비 자매에게 서적을 권유했던 것이 이렇게 돌아온 걸까.
장비도 관우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던데 부디 이를 계기로 성격적 결함이 고쳐지길 바랄 뿐이었다.
“흥, 그래 봤자 나한테 지는….”
“여포.”
나는 내 근처에 있던 여포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잽싸게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여포는 그런 내 행동에 화들짝 놀라곤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왜 그래?”
“정말 몰라서 물어?”
나는 오랜만에 여포의 볼따구를 찹쌀떡처럼 늘려댔다.
이 중독되는 감촉은 여전하구만.
“다른 사람한테 싸움 거는 말 좀 하지 말라고 했지?”
“미아내…!”
“따라해. 삼사일언(三?一?), 삼사일행(三?一行).”
나는 공자가 말했다는 고사성어를 언급하면서 여포를 꾸중했다.
삼사일언(三?一?), 삼사일행(三?一行).
즉 한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는 것.
솔직히 이것만 잘 따라도 인생에 있는 고난 대부분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쉽지 않은 것이 문제지만.
“상사이헌…! 상사이냉…!”
“똑바로 대답 안 해?”
내 꾸중을 들은 여포가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흘 나야 똑바호 말하이!(손을 놔야 똑바로 말하지!)”
“지금 반항하는 거야?”
“으, 으에 아이오!(그, 그게 아니고!)”
무어라 말하던 여포는 내가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바로 쭈그리가 됐다.
이렇게 혼날 것을 알면서 왜 자꾸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걸까.
서여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입을 열지 않아서 문제였고 여포는 너무 거칠어서 툭하면 싸움을 일으키는 게 문제였다.
이 둘은 관우와 장비처럼 공부를 시킬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억지로 앉혀두면 공부하는 시늉은 하겠다만 정작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게 뻔했다.
손을 놓은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일단 가서 대련 구경이나 하자.”
“으, 응….”
여포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수긍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