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00)
〈 300화 〉 변화(6)
* * *
나와 딱 한 번 몸을 섞은 적이 있던 관우가 입덧을 했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치?”
“그래. 나도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여포에게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관우.”
“…예. 주군.”
나는 관우를 부르면서 그녀의 청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섣불리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엄격한 눈동자였지만 그것도 일종의 매력 포인트 아니겠는가.
“그대가 보기엔 자신의 상태가 어떤 것 같지?”
“그건….”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좋겠군.”
비록 후대에 여러 가지 의견이 갈리나 끝까지 유비를 따랐던 충성심만큼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 인물.
그런 인물에게는 분명 주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마도 새 생명을 밴 것이 아닐지….”
봐라. 내가 살짝 진지한 분위기로 말하니까 곧장 대답하지 않나.
어째 피치 시스터즈가 적극적이다 싶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아마 관우만 임신한 상황이 아닐까.
유비가 임신했다면 조금 전 내게 더 들이대야겠다며 심상치 않은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도 않았을 테고, 장비가 임신했다면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마초의 대련 요청을 거절했을 것이다.
관우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자초지종을 모두 파악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꽤 재미있게 흘러가는데.”
“…….”
“자매들의 반응은 어땠나?”
관우는 근처에 있는 유비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 관우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정도면 진짜 어마어마하게 놀랐나 본데.
오히려 꽁꽁 감춰두니까 더 궁금해질 지경이다.
“…….”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챈 관우가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한날 한시에 죽기로 맹세한 자매의 명예(?)를 위해서 대답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나, 그 내용을 캐는 사람이 주군이자 남편인 나라면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차린 모습이었다.
엄격함과 진지함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인물인 그 관우가 이렇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다니.
나는 순간 관우를 더 괴롭혀주고 싶은 짓궂은 충동에 휩싸였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대답해다오. 유비와 장비가 어떤 반응을 보였지?”
“그, 그건….”
내가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 대자 부끄러움이 많은 관우는 평소처럼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대춧빛 얼굴인가.
잘 보면 관우도 여포와 비슷한 수준으로 숙맥이란 말이지.
유비도 평소엔 볼 수 없는 관우의 부끄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어, 그게, 저기….”
관우는 마치 뇌에 과부하라도 온 듯 횡설수설 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더 괴롭히면 강제로 스위치가 내려갈 것 같은데.
뭐, 관우의 안에서 내가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뤄지는 것 같아 기쁠 따름이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대답하기 힘들면 그만두거라.”
“가, 감사합니다….”
관우는 정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토마토처럼 잘 익은 관우를 바라보며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자녀의 이름은 정했나?”
“…예. 관평(??)으로 할 예정입니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얼굴을 붉힌 관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또 본래 역사대로 흘러가네.
관평을 흔히 관우의 양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의에서 나관중 아저씨가 창작해낸 설정이었다.
정사에서는 실제로 관우의 장남이란 뜻이지.
멀쩡한 혈연관계를 어째서 뜯어고쳤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이 세계에선 양자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친자가 된 것 같았다.
…여기선 장남이 아니라 장녀가 될 수 있으려나?
내가 아는 장수 대부분이 여성이 된 시점에서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나는 관우에게 물었다.
“자녀의 미래에 대해선 어찌할 계획이지?”
“…제 아이가 원하는 길을 밀어줘야겠지요.”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한 관우는 이미 자녀 계획까지 전부 짜놓은 모습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 그리할 것이고, 관직에 올라 공을 쌓고 싶다고 말하면 그리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건….”
내 질문을 받은 관우가 잠깐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으로 말을 흐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살짝 머뭇거리는 기색인데.
차마 대답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나?
관우의 행동에 내가 의문을 보일 무렵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비가 말했다.
“운장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무엇이 말이지?”
내가 고개를 돌리자 유비는 평소와 똑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분명 자기를 닮아 엄청난 쇠고집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죠.”
“혀, 현덕 님!”
엥, 그런 거였어?
관우는 마치 정곡을 찔린 듯 당황한 목소리로 유비를 불렀다.
그러나 유비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번 무언가를 딱 정하면 제게도 좀처럼 굽히는 법이 없거든요.”
“…….”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이니, 운장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어떠한 성격을 지닐지 예상가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릿속에서 관우의 아이를 천천히 떠올려 봤다.
관우를 닮은 엄격한 표정에, 굳센 심지를 알려주는 듯한 매서운 눈빛.
분명 제 어머니를 닮아 무척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태어나겠지.
나는 전체적으로 관우를 조그맣게 줄여놓은 관우 2세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훗날 태어날 내 자녀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
일단 모든 관심사가 내게 맞춰져 있는 서여.
설마 서여의 아이도 자기 엄마를 닮아 모든 초점이 내게 맞춰지지 않겠지?
그렇다고 치면 살짝 곤란한데.
나는 일단 아들의 경우를 떠올려 보았다.
‘저는 아버님과 성격이 비슷한 여성이 좋습니다.’
‘뭐?’
‘어머님이 아버님께 푹 빠지신 것처럼, 저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만남을 가지고 싶군요.’
…왜 이런 상황부터 생각나는 거지.
나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만 챙겨주고 풀어주는 방임형 부모라서 자식의 이성 취향까지 컨트롤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야.
아니, 아들이 이렇게 된다면 딸은 분명….
‘전 아버님을 평생 모시면서 살겠습니다.’
‘…혹시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니?’
‘…….’
‘애야?’
무언가 상상하기만 해도 두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았다.
창작물로 치면 태그 하나가 더 붙을 것 같은 기분이야.
…서여의 자녀는 최대한 아들로 태어나길 빌자.
아무리 딸 바보라고 한들 자신의 자녀를 평생 독수공방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으니까.
그래도 여포는 조금 나을 것 같은데.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죠?’
‘내, 내가 잘못했소! 그러니까 귀 좀 놓아주시오!’
‘안 돼요.’
‘부인!’
아들로 태어나면 망나니짓을 하다가 부인에게 꽉 잡혀 사는 공처가가 되지 않을까.
여포가 지금 내게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면 무조건 그럴 것 같았다.
반대로 딸의 경우에는….
‘싫어, 나 혼인 안 해.’
‘…그렇다면 네가 직접 마음에 드는 남자 한 명 골라 오너라.’
‘아이 참! 내 눈에 차는 남자가 한 명도 없다니까?!’
…얘도 살짝 문제인데?
어째 딸로 태어나면 문제가 하나씩 생기는 기분.
개인적으로 남아 선호 사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만큼은 그에 동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괜히 딸이 태어나서 이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보단 알아서 참한 색시를 물어오는 아들이 훨씬 낫지 않을까.
내 보잘것없는 망상으로만 끝나면 정말 다행일 텐데….
고개를 돌린 나는 서여와 여포를 살짝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
“…왜 그렇게 쳐다봐?”
내 시선을 눈치챈 서여는 평소처럼 나와 눈을 마주칠 뿐이었지만, 여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물었다.
나는 여포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본 거야.”
“아닌 것 같은데….”
내 반응을 본 여포가 한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웠다.
“아! 그거구나!”
여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자녀 계획은 전부 세워놨으니까!”
“…….”
“아들 하나에 딸 하나면 완벽하지 않을까?!”
…그걸 계획이라고 할 수 있나?
내가 의문을 품은 사이 여포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무, 물론 원한다면 더 낳아줄 수 있고!”
“그래. 고맙다.”
참으로 여포다운 대답에 미소를 지은 나는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여가 자신의 머리를 슬그머니 내미는 모습도 매우 귀여웠다.
…왠지 뭔가를 잊은 듯한 기분인데?
그렇게 아주 잠깐.
쾅──!
근처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장비와 마초가 대련 중이었구나.
주변에서 너무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던지라 어느샌가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