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06)
〈 306화 〉 한중 공방전(1)
* * *
장송의 제안을 받아들인 나는 곧장 제장들을 소집한 다음 목표를 말했다.
내 의견을 듣고 제일 먼저 입을 연 인물은 사마의였다.
“그러니까…. 내부에서 호응할 사람도 있으니 익주를 노리시겠다고요?”
“그래.”
“흐음….”
보랏빛 머리의 군사는 잠깐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나쁠 것 없죠. 오히려 혼란스러울 때 쳐들어가야 피해도 줄일 수 있어요.”
“좋아. 그렇다면 좋은 계획이라도 있나?”
내 질문을 받은 사마의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유탄(??, 유언의 차남)의 요청대로 한중부터 먼저 점령하는 게 어때요?”
“이유는?”
“익주를 향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죠.”
사마의는 어려울 것 없다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한중을 점령하기도 전에 익주에 욕심을 보였다간 저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어요.”
“…네 개 세력이 전부?”
“아뇨. 만족(??)은 혼자 놀걸요?”
혹시나 싶은 질문에 사마의는 고개를 저었다.
“콧대만 높은 기존 토착 세력이 이민족과 동맹을 맺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네요.”
“그건 그렇지.”
나는 사마의의 의견에 수긍했다.
유언의 뒤를 이은 둘째 아들 유탄과 익주 호족 세력, 그리고 한중의 장로가 동맹을 맺는 건 그렇다 치자.
애초에 공공의 적이 생기면 이를 몰아내기 위해 연합하는 법이니까.
애초에 같은 한민족(?民?)이 아닌가.
근데 걸핏하면 야만족 어쩌고 하면서 다른 민족을 멸시하는 풍토가 강한 귀족들이 남만족과 연합을 맺으리라곤 상상도 안 된다.
…솔직히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놈들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해.
한나라 귀족들이 고풍스럽게 조상을 들먹이며 말로 싸운다면, 이민족들은 일단 대화 이전에 칼부터 휘두르는 놈들이니까.
그러다가 몸값이 비싸겠다 싶으면 죽이지 않고 포로로 사로잡은 다음 돈을 뜯어가는 날강도들이다.
안 그러는 이민족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국경 부근에서 만난 이민족들은 전부 무기부터 휘둘렀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질색하지.
좋은 인상을 남겨도 모자른데 나쁜 인상만 남기니까 의견이 더욱 안 좋아지는 것이다.
조금 열려있는 사고를 지닌 나조차도 이러할 진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사마의의 의견을 머릿속에서 정리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의견 있나?”
“…….”
나는 그리 말하면서 군부에 모인 제장들을 쓱 훑어보았으나 그 누구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걸핏하면 사마의와 기 싸움을 벌이는 제갈량조차 침묵을 지켰으니 다음 방침은 이걸로 정해졌다.
“좋아, 그렇다면 한중을 점령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겠다만…. 어떻게 공격하면 좋겠나?”
나는 책사들에게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지도로만 보면 장안과 한중의 거리는 무척 가깝다.
그냥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처럼 보이지.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장안과 한중 사이에도 산맥 하나가 떡하니 펼쳐져 있거든.
산이 쭉 뻗어있는 산맥을 굽이굽이 타다 보면 분명 지도만 봤을 때 무척 짧아 보였던 거리가 무려 1,000리(400km)로 늘어나는 기적이 펼쳐진다.
심지어 길은 또 더럽게 좁아서 아주 환장할 노릇이지.
그나마 험하지 않은 길은 양평관이 자리 잡고 있네?
괜히 장로가 본래 역사에서 40여년 동안 세력을 유지한 게 아니다.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형을 지녔다 보니 조조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 것.
그때 제갈량이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제게 계책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래. 무슨 계책인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치트키나 다름없는 유능한 책사가 계책이 있다는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내 기대심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제갈량은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린 채 말을 이었다.
“성동격서(????).”
“으음?”
“그들의 병력을 양평관으로 유인한 다음 한중을 치는 것이지요.”
성동격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그냥 양동작전을 펼치잔 뜻이었다.
“양평관을 공격하는 건 별문제가 안 되지만, 어떻게 한중을 치겠다는 건가?”
굳이 양평관을 통하지 않더라도 한중을 갈 수 있기는 하다.
그래. 정말 ‘갈 수만’ 있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지나다니는 더럽게 험한 길도 일단 사람이 지나갈 순 있으니까.
병사 규모라든가 보급 문제 같은 걸 생각하면 위험 부담이 너무 크지.
설마 위연이 허구한 날 주장했던 자오곡 계책을 역으로 실행할 생각인 걸까?
안전한 계책을 선호하는 제갈량의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런 도박성이 짙은 계책을 낼 리 없을 텐데.
일단 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침묵을 지키자 제갈량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형주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형주?”
형주를 어떻게 이용하겠다는….
…설마?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자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물길을 따라 올라가겠다는 건가?”
“예.”
한중(?中).
익주에 속한 군(?) 중 하나로써, 성 근처에서 흐르는 강 하나 덕분에 전체적으로 비옥한 영토이다.
그래서 그 강의 이름이 뭐냐.
바로 한수(??)다.
저기 서량에서 여전히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그 한수(韓?)가 아니다.
한수(??).
꽤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바로 양양성과 번성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이름이지.
그러니까 제갈량은 양평관에 시선을 돌린 사이 양양성으로부터 강을 타고 올라가 한중을 급습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나는 본래 가지고 있던 중국 지도와 장송이 두고 간 파촉지형도를 대조해보며 성공 가능성을 따져봤다.
사마의와 방통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지도를 살펴보곤 말했다.
“이거…. 가능하겠네요.”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우 긍정적인 대답.
하지만 무언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는지 사마의는 곧장 제갈량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물길이 좀 길고 험해 보이는데, 저기 강동 쪽에 있는 수군이라도 불러올 건가요?”
주유를 말하는 건가?
확실히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 미주랑이라면 미꾸라지 헤엄치듯 올라와 한중을 점령해버리겠지.
당연히 양평관으로 쳐들어올 줄 알고 병사 대부분을 지원했는데 갑자기 본진이 공격받는다고?
장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거다.
나였다면 바로 항복하지 않았을까.
“아니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답니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질문에 픽 웃고는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태도에 사마의의 눈가가 좁아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 사이 안 좋은 거 광고라도 하냐.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쉴 무렵 제갈량이 말했다.
“그들은 훗날 장강을 넘어야 하는 병력이기도 하고, 방비가 약해진 한중 정도는 소수의 정예군만으로 점령할 수 있으니까요.”
“…꽤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계책을 들은 사마의가 제갈량을 한 차례 쏘아붙였다.
당연히 한 차례 쏘아붙였다고 기가 죽을 제갈량이 아니었다.
“설마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실패를 두려워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문제 될 게 뭐가 있나요?”
너무나도 간단하게 사마의를 조용히 만든 제갈량은 내게 입을 열었다.
“주군, 제가 따로 생각한 별동대 인원이 있는데, 군의 편성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안 될 것이 뭐가 있겠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보도록.”
“그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제갈량은 내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계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무슨 지혜 보따리도 아니고 계책이 두 개나 나오네.
내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자 제갈량은 꽤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외부에서 흔들고, 내부에서 흔들면 승리는 결정된 것과 다름없지요.”
“…….”
“제가 알기로는 장로 휘하에 탐욕스러운 인물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를 이용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로를 따르는 탐욕스러운 인물?
아, 그놈 말하는 건가.
제갈량이 말하는 인물이 누군지 눈치챈 나는 담담한 태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황금과 비단을 내줄 테니 그 인물을 잘 꼬드겨 보도록.”
“예.”
왠지 제갈량의 원맨쇼가 된 기분인데.
본래 역사의 유비가 어째서 제갈량을 그리 감싸고 돌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포와 관우 같은 뛰어난 무장들을 내 손으로 직접 약화시켜버려서 걱정하기도 했는데, 아직 내게는 유능한 책사들이 남아있었다.
지금까지는 힘으로 쾅 부딪쳐서 이겼다면 이제 머리를 굴릴 때가 됐다는 거지.
제갈량의 두 가지 계책을 받아들인 나는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경계심을 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선 내가 직접 양평관을 공격하는 게 낫겠지.
익주에 있는 세력들이 정신없이 치고받는 동안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할 터.
사마의 말마따나 한중은 익주를 점령하기 위한 교두보일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