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09)
〈 310화 〉 한중 공방전(5)
* * *
양평관의 성문을 넘자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드넓은 평야였다.
말 그대로 산이 한중을 지키는 또 다른 성벽의 역할을 해주는 것.
그나마 넓게 뚫려있는 길은 양평관으로 막고, 다른 경로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에 적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다.
눈앞에 둘 때부터 대충 예상했지만 수비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좋은 땅이었다.
한중에 입성한 나는 곧장 적당한 곳에 자리 잡은 다음 항복한 인원들의 처우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장로인가?”
“…그렇습니다. 대장군.”
나는 감녕의 인솔을 따라 자리에 무릎을 꿇은 온화한 인상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살집이 붙은 몸이었지만 추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좋아 보이는 인상.
후덕하다는 표현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있을까.
그래도 일국의 군주인 걸 배려해 밧줄을 묶지 않았다.
나는 묵묵히 자신의 처우를 기다리는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보자…. 듣자하니 오두미도(五???)라는 종교를 창설해서 한중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예.”
숨길 것이 뭐가 있냐는 듯 장로는 차분한 기색으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장로는 생각보다 특이한 인물이다.
훗날 도교의 원전이라 불리는 오두미도를 창설하여 제정일치의 국가를 만든 다음, 그를 기반으로 한중을 다스린 군주.
그 도교의 원전이 된 만큼 종교계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볼 수 있었다.
…삼국지에서는 별다른 존재감도 없이 퇴장했지만 말이야.
태평도가 후한 정부를 타도하자는 기치 아래 불길 같이 반란을 일으킨 종교라면, 오두미도는 외딴 도시에 자리잡은 다음 자기들끼리 영차영차 살아가는 종교였다.
종교 이름이 오두미도라 불린 이유는 간단했다.
이 종교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쌀 다섯 두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지.
나는 지금까지 장로가 한중을 어떻게 다스렸는지를 담은 죽간을 쭈욱 살펴보았다.
공공사업에 참여하는 것과 음식을 기부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신자가 기부한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 주는 기관을 설치하여 길가에 굶주리는 자가 없게 하였다.
또한 신자들끼리도 계급을 나누어 노자(?子)가 지은 도덕경(???)을 읽으면 한층 더 높은 계급으로 승진시켜줬다는 이야기도 있네.
즉 오두미도의 신자들은 공공사업에 참여하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신들이 지닌 음식을 굶주린 자에게 기부하며, 도덕경을 읽기 위해 학문을 닦는 것에도 힘을 쓴다는 뜻이다.
…뭐야 얘, 생각보다 능력 있는데?
오두미도가 한낱 사이비 종교로 남지 않고 도교의 원전이 된 이유가 있다는 건가.
이 양반이 종교를 창설하긴 했으나, 그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등쳐먹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물론 한중의 이름을 한녕으로 뜯어고치는 등 살짝 권력욕을 보이기는 했는데 다른 군웅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야 애교 수준이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에 있는 누군가와는 다르게 순순히 항복한 점을 높이 사도록 하지.”
“…….”
그런 내 말에 근처에 있던 장위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래.
넌 찔리는 게 있을 거야. 그치?
저놈이 결사항전을 주장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조금 더 빨리 한중을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내가 좀 치사하게 싸워서 피해는 없다시피 했지만 시간이 상당히 오래 끌렸다.
내가 슬그머니 장위를 바라보자 장로는 공손하게 몸을 낮추며 말했다.
“대장군, 부디 관대한 처사를 부탁드립니다.”
“…흠.”
이것도 형제를 잘 만났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장위를 뭘 어떻게 할 마음은 없었지만 슬그머니 압박을 주면 알아서 더 사리겠지.
나는 한 번만 참는다는 목소리를 연기하며 장위에게 입을 열었다.
“그대는 앞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위는 매우 창백한 표정을 짓곤 엎드리면서 절을 올렸다.
아무래도 내 면전에서 나를 모욕한 인원들이 폐하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으음, 이거 또 편지를 보내야겠는데.
가만히 내버려뒀다간 장위가 조만간 중앙으로 호출당한 다음 행방이 묘연해질지도 몰랐다.
황제와 나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유우.
황실의 대들보라고도 불리는 여인은 내 위신에 흠집이 갈만한 말을 내뱉은 놈들의 정보를 모조리 수집하여 폐하께 보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대장군일 때에도 그랬는데 국서는 뭐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아주 사소한 모욕조차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시더라고.
무슨 빅 브라더도 아니고 이게 뭐람.
보통 전장에서 만나면 서로를 향해 험한 말을 내뱉는 것이 당연하게 취급됐는데, 그 당연한 짓을 하다가 죽을 뻔하는 거다.
오늘도 한 사람을 살리기로 결정한 나는 편지에 적을 내용을 잠깐 떠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그대가 한중을 잘 다스려온 점과, 창고를 불태우지 않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후하게 대접하도록 하지.”
“영광이옵니다. 대장군.”
장로는 내게 거듭 절을 올리면서 감사를 표했다.
으음…. 대충 무슨 관직을 주는 게 좋을까.
본래 역사의 조조가 그랬던 것처럼 장로가 다시 한중을 다스리게 하는 게 나으려나?
이미 오두미도라는 종교가 한중 곳곳에 퍼져있기도 하고, 그렇게 과격한 집단은 아니니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딱히 종교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종교는 없애고 싶다 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니겠는가.
종교를 말살하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알기로는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유표의 항장 출신인 황조에게 강하를 맡긴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하도 맡겼는데 한중이 뭐 대수겠는가.
나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장로에게 입을 열었다.
“그대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한중을 다스리도록.”
“…! 가, 감사드립니다!”
내가 그 말을 내뱉기 무섭게 계속 침울한 기색을 보이던 장로는 얼굴을 활짝 폈다.
비록 항복하기는 했으나 자신과 한 번 싸웠던 인물을 태수에 임명하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였다.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는 조조가 이런 정책을 펼쳤기에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던 거겠지.
물론 서주 대학살이라는 업보가 너무 커서 천하 통일 직전 미끄러지긴 했다.
장로를 따르던 인재들도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고, 특히 결사항전을 주장했던 장위의 표정은 매우 볼만했다.
내 이런 결정은 훗날 나와 싸울까 말까 고민하는 군웅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저희 그냥 얌전히 항복하면 평생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가?’
굳이 나와 싸워서 밉보이는 것보단 항복하는 게 뒤탈이 없다는 뜻을 전하겠지.
안 그래도 이길 가능성이 턱없이 낮은 전투.
심지어 정통성도 적들이 우위인 상황에서, 순순히 항복하면 부귀영화가 딸려오는데 항복하지 않을 인물이 있을까?
어딘가의 유()씨나 원(?)씨처럼 황제가 되겠다는 권력욕에 미친 게 아닌 이상 내게 항복할 것이다.
나는 장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반기를 들 경우 다음 기회는 없으리란 걸 기억해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로는 공손한 태도로 절을 올렸고, 그를 지켜보던 나는 조운과 감녕에게 눈빛을 보냈다.
“…….”
그 두 명은 어려울 것 없다는 듯 무기를 휘둘러 자신이 포박한 장로군 무장들의 밧줄을 끊어버렸다.
병사에게 밧줄을 풀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무기를 휘두르는 거지.
알아서 처신 잘하라는 경고인가?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무장들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제 물러나도록. 나는 따로 처리할 일이 남아있다.”
“예!”
장로는 기쁜 감정이 복받쳐오른 모습으로 대답했다.
저걸 보면 배신할 일은 없겠구만.
나는 장로가 재빠르게 자리에서 멀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감녕.”
“응? 두목, 무슨 일이야?”
감녕은 내 부름에 예의가 없다 느껴질 정도로 편하게 대답했다.
근데 두목은 뭐냐 또.
자기 나름대로 예의를 보이는 건가?
참 독특한 성격이라며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제갈량이 맡긴 일은 잘 처리했나?”
“아…. 그거?”
내 질문을 받은 감녕은 고개를 돌려 수적으로 보이는 병사에게 까딱까딱 손짓했다.
감녕의 손짓을 받은 수적은 앞으로 나온 다음 자신이 들고 있던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잠깐 침묵을 지켰다.
수적이 든 상자 안에는 비열한 인상을 지닌 남성의 목이 담겨있었다.
“아,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이것도 그 꼬마 군사님이 지시하신 거야.”
“…제갈량이?”
“죄가 너무 많은 인물이라 그냥 사고로 위장해서 죽여버리라던데.”
감녕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통 계획이 들켜 주변 무장에게 살해당했다는 식으로 꾸몄지.”
“…그래.”
내가 아는 그 인물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여버릴 줄은 몰랐네.
‘주군, 안에서 내통하는 인물의 처우는 제게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딱히 상관은 없다만….’
‘감사합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제갈량의 표정을 떠올렸다.
‘히익….’
방통이 어째서 그 표정을 보고 벌벌 떨었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