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17)
〈 318화 〉 목록대왕(5)
* * *
귀염둥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던 맹수 부대를 잃고, 자신이 자랑하던 요술조차 단번에 무력화된 상황.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코끼리 부대밖에 없는 상황에서 목록대왕이 보일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목록대왕은 입술을 짓씹으며 외쳤다.
“…이렇게 된 이상 돌격이다! 전부 깔아뭉개버려!”
와아아아──!!
맹수를 조련하던 남만병들과 코끼리 부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돌격해왔다.
쿵─ 쿵─ 쿵─
멀리 서 있는데도 느껴지는 육중한 발걸음 소리.
수십 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등 위에 남만 궁수들을 태운 채 돌격해오는 광경은 위압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으으….”
자리를 지키는 보병들은 헛된 개죽음을 당하는 게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자리를 굳세게 지키는 이유는 오랫동안 온갖 전투를 거쳐온 정예병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런 용기도 저 코끼리가 방진 안에 들어와서 난리를 피우는 순간 전부 사라질 터.
나는 근처에 있는 서여에게 말을 걸었다.
“서여, 내가 말한 거 기억하고 있지?”
“예.”
“좋아.”
그 망설임 없는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 코끼리 위에 있는 놈 떨어트려.”
“…….”
내 말을 들은 서여는 근처에 있던 병사에게서 창을 한 자루 받아든 다음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찾았다.
한때 내 목숨을 노렸던 황충에게 어마어마한 힘이 실린 창을 투척했던 기억.
그 창은 백 미터도 넘는 거리를 훌쩍 날아가 운 없는 유표군 병사들의 몸을 여럿 꿰뚫었었다.
그때 황충이 온몸을 굴려 창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제아무리 오호대장군이라 불리는 인물이라도 무사하지 못했을 터.
그런 서여의 행동에 여포도 황충을 찾아내고 화살을 무섭게 날려댔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창을 던진다는 지극히 간단한 행위가 전장에서 모습을 감춘 이유는 간단했다.
활과 화살에 비해 사정거리가 너무 짧았기 때문.
화살이 비록 투창보다 파괴력은 낮다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엔 충분한 화력이 나왔다.
또 들고 다니기엔 무척 불편해서 투창용 창을 열 개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지.
통만 잘 만들면 적어도 스무 개 이상 집어넣을 수 있는 화살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치명적인 두 가지 단점 때문에 투창은 어디까지나 깜짝 선물 용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쓰여왔다.
방진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창을 들다가, 난전이 벌어지면 냅다 창을 던져버린 다음 검을 뽑아드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단점들이 해결된다면 어떻게 될까?
화살보다 짧은 사정거리가 개선되고, 수많은 투창용 창이 쏟아져 나온다면?
내가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서여의 손에서 창이 떠났다.
쒜에엑──!!
“커헉!”
서여가 던진 창은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족히 수백 미터를 날아갔고, 코끼리를 조종하던 남만족 기수를 단번에 꿰뚫었다.
…투창의 단점을 그냥 압도적인 힘으로 때우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단점이 사라지긴 하지 않았나.
서여의 투창을 가슴에 맞은 코끼리 기수가 뒤로 슝 날아가며 단말마를 토해냈다.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죽었네.
코끼리 기수를 꿰뚫은 창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코끼리 등 위에 얹혀져 있던 전투실에 콱 박혀 들었다.
“이, 이게 무슨…?!”
전투실 안에서 화살을 쏠 준비를 하던 코끼리 궁수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자신들이 올라탄 코끼리를 조종하던 기수.
그 기수가 부지불식간에 죽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저만한 파괴력이면 그냥 코끼리한테 던져도 컥하고 죽겠지만, 내가 굳이 기수를 노린 이유가 있었다.
“좋아. 이제 내 차례인가?”
한쪽 팔을 붕붕 돌려대며 몸을 풀던 여포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자기 몸집만 한 거대한 활을 꺼내 들었다.
활시위에 화살을 메긴 여포가 말했다.
“그러니까 저 길쭉한 코에 화살을 맞추란 거지?”
“그래. 눈에 확 띄는 부위인데 한번 맞춰봐.”
“으음…. 그러지 뭐.”
평범한 화살이 닿지 않을 먼 거리, 지금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목표물.
그러한 요소는 여포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마가 아닌 코를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정릉이 시켰으니까.”
한 차례 기특한 소리를 한 여포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았고,
쐐애액──!!
화살은 조금 전 서여가 던졌던 창이 그랬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코끼리에게 날아갔다.
곧이어 여포가 쏜 화살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코끼리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흔히 코끼리의 코는 매우 섬세한 조작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머리가 너무 무거워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는 코끼리가 먹이를 먹기 위해 진화한 부위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는 유명한 동요도 있지 않나.
실제로 코끼리는 먹이를 코로 집은 다음 입에 집어넣는 행동을 보인다.
그런 섬세한 조작이 가능한 만큼 수많은 신경이 몰려있는 부위라는 것.
근데 그런 민감한 부위에 날카로운 무기가 박혀 든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는.
뿌우우────!!
저렇게 발광하는 거지.
사람으로 치면 커다란 바늘로 입술을 쑤시는 고통과 비슷할까?
아니다, 여포가 쏜 화살이니까 그냥 칼로 찔렀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만큼 아프다는 뜻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침팬지와 돌고래처럼 뛰어난 지능을 지닌 코끼리는 기수를 잃었음에도 침착하게 진군하고 있었지만, 엄청난 힘이 실린 화살이 자신의 코에 박혀 들자 코끼리는 큰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어어?! 이놈 갑자기 왜 이래?!”
“떠, 떨어진다! 우와악!”
코끼리의 발광에 등에 올라타 있던 남만족 궁수 몇몇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추락한 남만족 궁수는 머리부터 잘못 떨어져 즉사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에게 짓밟혀 목숨을 잃었다.
당연하지만 한번 이성의 끈을 놓은 코끼리의 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뭐야. 쟤 갑자기 자기 아군한테 돌진하는데?”
“이제 싸우기 싫다면서 집 가는 거 아닐까.”
여포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뿌우우──!!
“으악!”
“크아악!”
내 장난스러운 예상이 적중했는지 코끼리는 남만군 진형에 고속도로를 뚫어놓은 다음 전장을 벗어났다.
비록 개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코끼리는 겁이 무척 많은 동물이다.
코처럼 민감한 부위가 공격당하면 화들짝 놀라면서 도망치는 동물이란 말이지.
하물며 그 코끼리를 조종하는 기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방금처럼 난동을 부리며 적군이 아닌 아군 진형에 깽판을 쳐놓는다.
실제로 전투 코끼리를 동원했던 세력이 패배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코끼리가 놀라서 달아났다던가, 아니면 눈깔이 뒤집힌 채로 아군을 짓밟다가 패배한 것이다.
나중엔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코끼리 코 부위에 갑옷을 덧대거나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만족은 그러지 않았다.
사실 코끼리의 성격을 이용하는 게 아니면 격퇴할 방법이 마땅찮은 것도 사실이다.
가죽이 무척 두꺼워서 웬만한 창칼로는 끄떡도 안 하거든.
내가 코끼리 코에 박힌 화살을 바늘로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생에서 자주 만나는 사자나 호랑이의 고양이 펀치도 안 통하는데 사람이 휘두르는 무기는 오죽할까?
오히려 코끼리의 화만 돋워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훗날 상처를 통해 감염이 진행돼서 죽을 수 있겠지만, 그때면 이미 전투가 끝난 뒤라 의미 없는 가정이다.
“명령을 내리는 기수를 죽이고, 민감한 부위를 공격해 아군 진형에서 난동을 피우게 한다….”
내 근처에서 전장을 지켜보던 사마의가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짐승 보신 적 있으세요? 꽤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황실에 진상품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거든.”
생각해보자.
황제가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소식이 퍼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황제에게 잘 보이려는 놈들이 온갖 희귀한 동물을 데려오지 않겠는가.
그 희귀한 동물 중에는 중국 제일 남쪽에서나 보인다는 코끼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덩치는 커다란데 하는 짓은 상당히 귀엽구나.’
먹이를 엄청나게 먹고 배설물을 한가득 싸는 등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언제든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황실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네 이름은 뿌오다.’
‘…….’
진짜 이름 짓는 센스는 파멸적인 폐하의 모습에 나는 침묵만 지켰었지.
강아지를 키우면 이름을 멍멍이로 짓지 않았을까.
부디 뱃속에서 태어날 아이에게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길 바랄 뿐이다.
“코끼리를 조종하는 기수를 먼저 노리도록. 알겠나?”
“예. 궁수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고순은 공손하게 읍을 올린 다음 병사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부대가 코끼리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았을 터.
코끼리가 적군 진형에서 난장판을 피우던 걸 지켜보던 병사들은 한층 용기가 생긴 듯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뿌우우우──!!
이제 저 드루이드인 척하는 짝퉁 판타지 군대를 박살 낼 때가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