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25)
〈 326화 〉 만왕(?王)(2)
* * *
방통 곁에 있는 인물은 의외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올돌골.
나관중의 상상력이 총동원되는 남만 파트 중에서 가장 판타지다운 설정을 가진 인물.
구체적인 수치는 기억이 안 나는데 키가 거의 3미터에 달하고 몸에 비늘과 껍데기가 있어 창칼을 튕겨낸다는 어마어마한 장수다.
그리고 그런 인물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나는 지금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사람이 맞나?’
현대에서 거인증이 있는 사람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다, 거인증이 있어도 창칼을 튕겨내진 못할 테니 이런 당혹스러운 기분은 들지 않겠지.
하여튼 그런 인물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위압감을 주기 충분했다.
밧줄이 아니라 쇠사슬로 묶은 이유는 힘이 무척 강하기 때문일 터.
밧줄로 상체가 꽁꽁 묶인 목록대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이거 올돌골 아니야! 꽤 웃기는 모습이네!”
“…네년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남만의 최정예 부대를 이끄는 두 명은 애벌레와 흡사한 모습으로 재회했다.
목록대왕의 맹수 부대와 올돌골의 등갑 부대.
이제 남은 것은 지금도 성을 공격하느라 여념이 없는 타사대왕의 독사 부대와 맹획의 만왕 부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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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이번에도 졌어?”
“마, 만왕(?王)! 면목없습니다!”
자신의 휘하 장수에게 병사 일부를 붙여줬던 맹획은 적군에게 번번이 격파당하는 아군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맹획은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를 질책해 사기를 떨어트리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래, 그러면 적은 어떤 놈인데?”
“…예?”
상당히 어리바리한 휘하 장수, 동도나의 모습에 맹획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놈들은 자신이 꼭 풀어서 설명해줘야 알아듣더라.
이러니까 위쪽에 있는 약해빠진 샌님들조차 우리를 얕잡아보는 것이다.
한숨을 내뱉은 맹획은 동도나가 알아듣기 쉽게 질문을 풀어서 설명했다.
“정보 말이야. 적군과 맞붙었으니 대충 누가 있는지 알았을 거 아니야?”
“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털가죽으로 갑옷을 장식한 동도나는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적들이 대장군을 운운하며 함성을 지르긴 했습니다!”
“…대장군?”
꽤 멋있는 호칭….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대장군이라 하면 여기 익주를 넘어서야 나오는 인물이 아닌가?
사례주인가 사예주인가 거기서 활동해야 할 인물이 어째서 익주에 모습을 드러낸 걸까.
‘…나 때문인가?’
돌진밖에 모르는 남만인치고 머리가 좋았던 맹획은 대충 사태를 파악했다.
이 약해빠진 샌님들께서 아무래도 문을 활짝 열어주고 대장군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대장군이라….”
아무리 오지에서 머무르는 남만인이라 한들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
눈앞에 있는 놈은 빼고.
이놈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대장군.
이름은 정릉 화현이었나.
허구한 날 저기 위쪽에서 기마 민족을 때려잡으며 나라를 지킨다는 인물.
대장군 입장에서 보면 자신도 한나라를 침탈한 이민족으로 보일 테니 그가 움직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를 떠올린 맹획은 콧방귀를 꼈다.
“…흥, 어차피 언젠가 한번은 부딪혀야 할 놈이었어.”
한나라를 노리는 자신과 그 한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대장군.
그야말로 운명의 대결이 아닌가.
“…잠깐만.”
“예?”
그때 생각을 정리하던 맹획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근 계속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놈의 정체가 대장군이라면, 내가 보냈던 목록과 올돌골은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은 분명 남만의 최정예 부대들을 출정시켰을 터.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소식이 없다는 건 무슨 상황일까.
설마….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 맹획이 살짝 식은땀을 흘릴 때, 척후병이 맹획에게 다가온 다음 외쳤다.
“만왕! 보고드립니다!”
“…무슨 보고?”
맹획이 그리 묻자 척후병은 공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대답했다.
“목록대왕의 맹수 부대와 올돌골의 등갑 부대! 그 두 부대가 전부 패배하고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고 합니다!”
“무, 뭐?”
자신조차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두 부대가 단번에 격파당했다는 소식에 맹획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근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적발의 여인이 중얼거렸다.
“…한 방 제대로 먹었네.”
왠지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더라니만.
군대를 지탱하던 기둥이 무려 두 개나 무너진 것이다.
이제 타사대왕의 독사 부대와 맹획이 이끄는 부대조차 패배한다면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맹획은 다시 남쪽으로 쫓겨나는 미래를 떠올리곤 식은땀을 줄줄 흘려댔다.
적발의 여인은 맹획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지금 성을 공격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은데.”
부대를 따로 보내봤자 각개격파나 당할 뿐이고, 대장군을 아예 무시하자니 뒤쪽에 있는 보급로가 신경 쓰인다.
배가 고픈 군대는 싸울 수 없는 법.
“……어쩔 수 없네.”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고민하던 맹획이 결정을 내렸다.
“타사에게 전해. 우리는 일단 포위를 풀고 대장군부터 친다.”
“성에 있는 적들은 신경 안 써도 돼?”
“성에 있는 놈들?”
여인의 물음에 맹획은 피식 웃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몰골을 하는 놈들이 어떻게 성 바깥으로 나오겠어?”
적들이 예상보다 잘 버텼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거의 한계에 달한 상태다.
아마 사나흘 정도만 있어도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겠지.
한 가지 문제점은 대장군도 사나흘이나 있으면 자신의 보급로를 진작 박살 내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익주는 지리가 험한지라 대규모 수송을 보낼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는데, 대장군이 그곳을 틀어막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말 한 마리 지나가기 힘든 험한 길을 골라 식량을 운반하다 전부 나가떨어질 거다.
“걱정하지 마. 저놈들은 지쳐서 성 밖으로 못 나와.”
아직 장수들은 팔팔한 것 같지만 그들을 따르는 병사는 기진맥진한 상황.
아무래도 지휘하는 장수가 무능한 인물은 아닌 것 같으니 지금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타사가 선물이랍시고 이상한 걸 성 안쪽으로 던져버렸으니 뭐….”
독사와 전갈을 항아리에 담아 성 안쪽으로 투척하는 광경은 아직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적어도 그 뒷수습을 하는 동안 다른 곳을 도울 생각은 하지도 못할 터.
‘아끼는 애들이라면서? 그렇게 마구 던져도 되는 거야?’
‘하하! 어차피 언젠가 있을 전쟁을 위해 기른 놈들이니까요!’
몸에 커다란 독사를 두른 타사대왕은 맹획의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놈들이니 이렇게라도 줄여주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됩니다!’
‘…으음, 그런가?’
‘예!’
알이 여러 개 있는 광경을 본 적 있는 맹획으로선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걔들, 갑옷은 뚫을 수 있냐?’
‘……적어도 시선은 확실하게 끕니다!’
그야 그렇겠지만….
독사 부대는 무기에 독을 묻혀 사용하는 부대다.
독사와 전갈을 던지는 건 부가적인 행동(?)일 뿐이지.
‘이놈들도 똑똑해서 대놓고 있는 갑옷을 노리진 않습니다!’
타사대왕의 주장을 떠올리던 맹획은 적발의 여성에게 말했다.
“이제 가자. 지금이 아니면 싸울 기회도 없어.”
“…그래.”
자신이 걸친 무소 가죽 갑옷을 고급스럽게 치장한 맹획은 말이 아닌 붉은 털을 지닌 소 위에 올라탄 채 군대를 이끌었다.
말이 아닌 소 위에 올라탄 건 순전히 맹획의 취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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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포위를 푼 다음 군대를 이끌던 맹획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대장군의 군세를 마주할 수 있었다.
구릿빛 피부를 지닌 자신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밝은색을 지닌 피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진형을 지키는 모습은 마치 군대 자체가 한몸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에 전혀 기죽지 않은 맹획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허구한 날 온갖 고귀한 척은 다 하는 샌님들아!”
“…….”
“이 만왕께서 너희를 직접 징벌하기 위해 찾아왔다!”
커다란 칼을 뽑아든 맹획이 침묵을 지키는 대장군의 군세에게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장군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놈은 직접 앞으로 나와라─! 얼굴이나 한번 보자꾸나──!!”
“…….”
“설마 겁쟁이처럼 뒤에만 숨어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맹획이 그렇게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형 가운데가 열리면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서로 얼굴이나 보자는데 나와줘야지.”
다부진 인상을 지닌 남성은 몇몇 호위를 대동한 채 진형 앞으로 나왔다.
남성이 맹획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맹획인가?”
“그러는 네놈은 대장군이냐!”
맹획은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 힘차게 외쳤다.
“대장군이라 하길래 기대했거늘 생각보다 볼품없이 생겼….”
쒜에엑──!!
“히야악?!”
남성의 외모를 깎아내리던 맹획은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투창에 말을 잇다 말고 몸을 홱 숙였다.
맹획이 올돌골과 비슷한 무력을 지닌 장수가 아니었다면 조금 전 일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터.
“컥!”
“대, 대체 뭐냐?!”
운 없는 병사가 투창을 맞고 목숨을 잃은 상황에 맹획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장군이 말했다.
“…내가 직접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한데, 입조심하는 게 좋아.”
“…….”
“너 잘못하면 큰일 난다.”
그리 말한 대장군은 옆으로 손을 뻗었는데, 소녀의 볼을 쭉 잡아당기는 것이 마치 돌발 행동을 꾸짖는 것 같았다.
“…….”
볼이 쭉쭉 늘어나면서도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소녀의 눈길에 맹획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