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26)
〈 327화 〉 만왕(?王)(3)
* * *
남만 군영에서 빠져나온 여인은 마치 나를 도발하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군은 앞으로 나와라──! 얼굴이나 한번 보자──!!”
말 그대로 금발 태닝 양아치라는 말이 어울리는 외모.
고개를 돌린 나는 근처에 있던 로봇에게 물었다.
“저 여자가 맹획인가?”
“그렇, 다.”
남만에서 태어난 거대한 로봇은 내 질문에 말을 툭툭 끊으며 대답했다.
“나보다, 병사를, 능숙하게, 다루고, 싸우는 실력도, 비슷하다.”
“…….”
“머리도, 나름대로, 잘 굴린다.”
꽤 평가가 좋은데.
남만족을 통일한 이유가 있다는 건가?
“맹획도 자네처럼 창칼이 통하지 않나?”
“…그건, 아니다.”
올돌골은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남만에 있는 로봇은 얘 하나뿐인가 보네.
그러면 딱히 어려울 건 없다.
“겁쟁이처럼 숨어있지 말고 얼굴이나 보자니까──?!”
나는 아까부터 소리를 질러대는 맹획의 제안에 응해 앞으로 말을 몰았다.
당연히 나를 호위하는 서여와 여포 등이 뒤따랐고, 앞에 있던 병사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조금씩 길을 비켜주었다.
그렇게 진형 앞으로 나온 내가 툭 질문을 던졌다.
“네가 맹획인가?”
“그러는 네놈은 대장군이냐!”
내 질문에 질문으로 되받아친 맹획은 기선 제압이라도 할 목적인지 조소를 머금었다.
설마 날 도발하려는 건가.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데.
“대장군이라 하길래 기대했거늘, 생각보다 볼품없이 생겼….”
쒜에엑──!!
“히야악!”
맹획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기세로 날아오는 투창을 고개를 훽 숙여 피해냈다.
이야, 그걸 피하네.
반응속도 하나 끝내주는구만.
아니면 하늘이 도운 걸까?
그 황충조차 기겁을 하며 땅바닥을 구르게 만드는 투창은 상체를 숙인 맹획을 지나쳐 뒤쪽에 있는 남만병을 꿰뚫었다.
“커헉!”
몸통을 꿰뚫린 남만병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곤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범인으로 추정되는 소녀를 바라봤다.
어느샌가 호위병의 창을 빼앗고 던져버린 서여의 모습.
부지불식간에 맨손이 된 호위병은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이해 못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냥 따로 투창용 창을 몇 개 만들어주는 게 나으려나.
서여가 창을 던질 때마다 맨손이 되는 병사가 한 명씩 생겨나니 곤란할 따름이다.
나는 돌발 행동을 꾸짖을 목적으로 옆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이런 말을 하긴 뭐한데, 입조심하는 게 좋아.”
“…….”
“너 진짜 큰일 난다.”
오추마 위에서 요령 좋게 창을 던진 서여의 볼따구는 평소와 똑같이 말랑말랑했다.
“하, 하하하! 네놈이 이런다고 이 만왕께서 겁이나 먹을 것 같으냐!”
맹획은 순간 목숨을 위협당했음에도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그래? 그러면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하지만! 적장을 외모로 헐뜯는 건 명예롭지 못한 일이지!”
얼씨구.
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외모를 볼품없다는 둥 헐뜯으려 하지 않았냐?
전혀 아무렇지 않게 태도를 휙휙 바꾸는 모습.
나는 거기서 일곱 번이나 잡고 풀어줘야 항복했던 맹획의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뛰어난 장수라면 전장에서 제 능력을 증명하는 법!”
맹획은 내게 커다란 검을 겨누면서 외쳤다.
“네놈도 대장군이라면 직접 능력을 증명해라!”
“…선두에서 무기라도 휘두르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꽤 골때리는 제안을 하네.
나같은 놈은 전장에서 제일 치열한 선두로 나가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릴걸.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난 뛰어난 장수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대의 제안은 못 들어주겠군.”
“…하! 역시 네놈은 겁쟁이….”
쒜애애액──!
그때 화살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맹획에게 날아갔다.
이번에는 내게 볼따구가 붙잡힌 서여가 아니라 여포가 움직인 모양.
“흐이야아악!”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날아가는 화살에 맹획은 자신이 올라탄 소 위에서 거의 굴러떨어지는 듯한 몸짓으로 이를 회피했다.
…도대체 어떻게 피하는 거지?
저것도 맹획의 목숨 스택을 없애는 걸로 취급되는 건가?
이야, 그렇다 치면 목숨을 네 개나 없앴네.
저쪽 군대에 있을 타사대왕과 맹획을 동시에 붙잡는다면 목숨이 벌써 한 개만 남는 것이다.
소의 옆구리를 꽉 붙잡고 어찌저찌 떨어지지 않은 맹획은 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두, 두고 보자! 이 치욕은 잊지 않을 것이야──!”
내게 먼저 치욕을 주려 했던 인물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쳇. 이걸 피하네.”
맹획이 진형 안쪽으로 후다닥 모습을 감추자 활을 겨누고 있던 여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탈것부터 노려야 했나?”
“장수를 잡으려면 말부터 쏘아야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포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와, 상당히 멋있는 말이네. 직접 지어낸 거야?”
“…아니.”
그러고 보니 이거 나중에 지어진 속담이었구나.
원래 있었던 말을 내가 지어낸 것처럼 만든 상황이라 기분이 조금 묘했다.
“좋아, 다음에는 그 소부터 잡아야지!”
갑작스럽게 소고기가 될 위기에 처한 맹획의 탈것이었다.
이거 내 잘못인가?
왠지 소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맹획은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군영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제 군세를 앞으로 진군시키기 시작했다.
둥─ 둥─ 둥─
알 수 없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북을 치며 위풍당당하게 진군하는 모습.
그 모습은 마치 남만족하면 떠오르는 분위기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나는 손을 살짝 들었고, 내 명령을 확인한 부관이 주변 병사들에게 외치며 군대를 움직였다.
맹획의 군대는 지금까지 만나 왔던 남만족의 군세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역시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라는 걸까.
맹획의 목숨이 위험했었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병사들은 곧이어 우리 병사들과 충돌했다.
와아아아──!!
남만족들이 싸우는 방식은 말 그대로 야만적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방식이 이토록 어울리는 민족이 있을까.
빈틈이 큰 공격도 거리낌 없이 했으며, 아군 병사가 그를 노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몸으로 받아내고 단번에 치명상을 입혔다.
물론 날붙이를 몸으로 받아낸 남만족도 무사하진 못했지만, 거친 환경에서 자라온 이민족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했다.
허구한 날 나와 부딪혔던 북방 기마 민족들도 이렇게 싸웠는데.
…이민족끼리는 서로 닮는 법인가?
광전사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싸움 방식에 우리가 어울려줄 이유는 없었다.
진형을 유지하며 섣불리 다가오는 적들을 꼬챙이로 만들고, 뒤쪽에 자리 잡은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대면 될 뿐.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남만족들도 궁수들을 지켜보고만 있진 않았다.
쉬이익─!
“뭐, 뭐야?!”
“뱀이다! 뱀이야!”
그들이 던진 자그마한 항아리에서 독사와 독충들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독충하면 흔히 떠오르는 전갈과 지네.
대체 어떻게 항아리 속에 넣은 건지 의문이 드는 말벌.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외모를 지닌 독사까지.
끝까지 판타지 요소를 끌고 오는 적들의 모습에 나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단 항아리를 던지는 식이라 사정거리가 긴 편은 아니었지만, 진형을 유지하던 병사들이 난리를 피우기엔 충분했다.
“겁먹지 마라! 저것들이 범도 아닌데, 갑옷까지 입은 놈들이 뭐가 무섭다고 쩔쩔매는 것이냐!”
위연이 힘차게 외치자 병사들은 눈을 멀뚱히 뜨면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 그런가?”
“맞아. 어차피 밟거나 후려치면 죽는 놈들이잖아?”
어렸을 때부터 곡식을 파먹는 메뚜기와 정겹게 투닥이던 병사들은 징그러운 곤충에 대한 내성이 있었고, 한 차례 용기가 생긴 병사들이 독충들을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말벌 같은 놈들은 화려하게 회피 기동을 했으나 곧 메뚜기를 잡던 팔에 맞아 몸이 박살 났다.
그나마 독사가 빠른 몸놀림으로 몇몇 병사들의 취약한 부분을 물어 쓰러트렸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뱀이 몸에 좋다는데….”
“저건 독사잖아.”
“다 방법이 있지.”
어째서 인간이 수많은 생물을 몰아내고 생태계의 정점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
쨍그랑!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독사와 독충이 계속 쏟아졌으나 우리 병사가 워낙 많아서 유의미한 타격을 주긴 힘들었다.
그래도 시선 하나는 확실하게 끄네.
독사와 독충의 분투(?) 덕분에 아군 궁수들이 쏘던 화살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황이 반전되지는 않았다.
“너흰 웬 이상한 갑옷을 걸치지 않았구나! 그러면 할만하지!”
“으악!”
올돌골과 맞서 싸웠던 병사들은 등갑병처럼 단단하지 않은 적을 가볍게 무찌르며 승기를 잡고 있었다.
“이놈들아! 내가 호랑이도 잡았는데 너희를 못 이기겠느냐!”
불타는 숲에서 맹수들을 꿰뚫던 병사들도 적들을 몰아붙였다.
한바탕 매운맛을 겪은 병사들은 이제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을 정도로 강심장이 되어있었다.
힘 싸움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면 이긴 거나 다름없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맹획이 어디 있을까 찾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