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37)
〈 338화 〉 남만(??)(5)
* * *
토산을 쌓아 적을 무너트린다….
제갈량의 계책을 들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나쁜 계획은 아니다.
토산이 완성된다면 사실상 성벽은 무력화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괜히 사다리나 공성 병기에 의존할 필요 없이 뚜벅뚜벅 걸어서 성벽을 넘으면 그때부터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보통 공성전이란 것은 더 우세한 전력을 가진 측이 걸기 마련이니, 수성의 이점이 사라진 수비 측은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성벽을 넘은 적에게 그대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안시성에 꼬라박은 당태종 이세민이 썼던 전략이라 약해 보이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기껏 공들여서 쌓은 토산을 고구려에게 빼앗기고 계속 죽을 쑤는 광경은 측은해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맹획이 만들어 놓은 성벽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그렇게 잘 만든 성은 아니었다.
그저 성벽이라는 구색만 갖췄을 뿐, 높이도 상당히 낮았고 많이 견고해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남만족이 성에 익숙하지 않은 게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기술력이 부족했던 걸까.
똑같이 지형이 더러운 호로관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봐도 좋았다.
지금도 낙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기술자들이 보면 뒷목을 잡았을걸.
지형이 지형인지라 공성 병기를 쉽게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식물 때문에 그냥 걷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병기를 가져오겠는가.
주변에 널린 게 나무니 여기서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겠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뻔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보도록.”
“주군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내 허락을 받은 제갈량은 몸을 낮추며 예를 표했다.
그 다음 제갈량이 보인 행동은 간단했다.
“내일까지 각자 무언가 담을 수 있는 보자기를 준비해오시길 바랍니다.”
“…….”
바로 모든 병사에게 보따리를 가져오란 명령을 내린 것.
당연히 그 대상에는 남만족 포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목을 치겠습니다.”
“!!”
처음에는 상당히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남만족이었으나, 이를 눈치챈 제갈량이 웃으면서 살벌한 경고를 꺼내자 화들짝 놀라며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날.
보따리가 있는 인원은 보따리를 챙겨오고 그게 없는 인원은 자신이 가진 옷들을 엮어 보따리와 유사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어떻게든 안 죽으려는 의도가 엿보이는구나.
하긴, 보따리가 없다는 이유로 목이 날아가면 그만큼 억울한 게 없지.
제갈량도 융통성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던지라 그런 부류는 담담히 넘어갔다.
그 다음 제갈량이 내린 명령도 간단했다.
“이제 다시 내일까지 그 보자기에 흙을 채워오시지요.”
“…?”
“이번에도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목을 치겠습니다.”
따르지 않으면 목을 날려버리겠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병사와 포로는 갑작스러운 명령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주변 땅을 파헤치며 보따리 안에 흙을 가득 채웠다.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그런 행동을 하는 인원이 십만을 넘어가다 보니 주변 산이 거의 자연 훼손에 가까운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숫자의 힘인가.
나는 흙 속에 뿌리 박고 있던 풀들이 땅 위에 이리저리 널려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잠깐 묵념했다.
다음 생에는 이런 곳 말고 아마존에서 태어나거라.
내 기도가 어찌 됐든 병사와 포로는 각각 흙 보따리를 하나씩 챙긴 채 군영에 대기하고 있었다.
병사들을 확인한 제갈량이 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맹획은 내일 붙잡힐 것입니다.”
“…그런가?”
“예.”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날 새벽.
병사를 재우지 않은 제갈량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든 병사는 흙 보자기를 가지고 성벽 근처에 버리도록 하세요.”
“…….”
“제일 먼저 성벽 위로 올라가는 자는 큰 보상을 내리겠습니다.”
제갈량이 명령을 내리자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병사들은 포로가 싸놓은 흙 보따리까지 통째로 가져가며 나는 듯한 몸놀림으로 움직였다.
“저, 적습이다! 적습──!!”
성벽 위에서 근처를 경계하던 적이 급히 큰소리로 외쳤지만, 단잠에 빠져있던 남만족들의 반응은 상당히 느렸다.
우리가 꽤 오랫동안 공격하지 않고 시간만 끌다 보니 마음이 풀어졌던 모양.
아무래도 처음 느껴보는 성벽의 든든함에 너무 의지하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래도 너무 방심한 거 아니냐.
나는 성벽 위에서 기고만장하게 웃던 맹획의 모습을 떠올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사들은 무겁지도 않은지 흙 보따리를 휙휙 풀어 재끼면서 성벽 아래에 버렸고, 남만족들이 정신을 차리는 사이 성벽과 이어지는 언덕이 생겨났다.
그 다음은 뭐…. 간단하지.
언덕이 다 쌓이기도 전에 자리에서 가볍게 뛰어올라 성벽 위에 올라간 은청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곤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제일 먼저 올라왔네.”
말해 뭣하겠는가.
그 여인의 정체는 바로 마초였다.
“이러면 큰 상을 받는 사람은 나인가?”
마초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체 무슨 상을 생각하길래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죽어라──!!”
그때 마초의 침입을 눈치챈 남만족 병사가 힘찬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마초처럼 뛰어난 장수에게 전혀 기가 죽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은 확실히 전투 민족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기세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컥!”
“이놈들, 고향에서 보던 놈들과 판박이네.”
아무렇지 않게 창을 휘둘러 남만족을 격살한 마초가 툭 내뱉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도 똑같고, 겁도 없이 달려드는 것도 똑같고….”
“으악!”
“험한 곳에서 살면 성격이 전부 비슷해지는 건가?”
“억!”
마초는 말을 이으면서도 창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살짝 귀띔해줘서 알고는 있었다만, 내가 근처에 있을 때와 근처에 없을 때 성격이 진짜 휙휙 바뀌는구나.
말 위에 올라타지 않았음에도 도살자처럼 적들을 베어 넘기는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 충분했다.
“이야, 만만치 않은데?”
자신의 쌍극을 휘휘 돌려대며 성벽 위를 바라보던 감녕은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니깐. 어디서 저런 인물이 계속 튀어나오는 거지?”
이미 장료, 관우와 목숨을 걸고 붙은 적이 있어서일까.
다른 사람의 강함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감각을 지닌 감녕이 한바탕 웃었다.
“이거 가만히 있다간 공을 세울 기회도 없어지겠어!”
감녕은 그렇게 말하더니 마초가 그랬던 것처럼 언덕 위에서 휙 뛰어올랐다.
“자, 내가 두 번째다! 뒤지고 싶은 놈들은 전부 덤벼라─!”
나는 적진을 자기 집 안방처럼 헤집는 장수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황충은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화살을 쏴댔고, 장료도 감녕과 비슷한 때에 성벽을 올랐다.
조운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서여와 여포를 대신해 나를 호위하는 상태.
서황과 고순이 이끄는 선봉대가 성을 덮치는 걸 마지막으로 난 결론을 내렸다.
제갈량이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맹획이 지키는 성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
그렇게 성을 공격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
달이 모습을 감추고 서서히 동이 틀 무렵 맹획은 또다시 꽁꽁 묶인 채로 내 앞에 끌려왔다.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또 누군가한테 기절 당한 채로 끌려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멀쩡하네?
무언가 마음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나는 전투에서 여러 번 패배한 게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수그린 맹획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가.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자네의 본거지를 점령했다만.”
“…….”
“이제 진심으로 내게 항복할 마음이 들었나?”
“…….”
“…?”
내가 질문을 던졌음에도 맹획은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지금 뭐하는 거지.
혹시 무슨 변명을 대야 내게 항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걸까?
내가 아는 맹획이라면 확실히 그럴 수 있었다.
“어찌 이리 무례한…!”
“됐다. 가만히 있거라.”
나는 주변에서 욱한 표정으로 달려들려는 장수들을 제지한 다음 말을 이었다.
“뭔가 고민되는 것이 있나 보군. 내 차분히 기다려주도록 하지.”
“그….”
“음?”
그때 맹획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복….”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라.”
무언가 중얼거리기는 하는데 너무 작은 목소리였던지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몸을 슬그머니 내밀면서 말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맹획이 고개를 번쩍 들면서 외쳤다.
“항복하겠습니다!”
“…….”
“그러니까 제발 축융 좀 살려주세요!”
그 난데없는 부탁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내가 근처에 있는 장수들에게 고개를 돌리자 장료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지금 축융이라는 인물이 의식을 잃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자리에 맹획과 맹우는 있는데 축융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유는?”
“아무래도 여포 장군께 입은 상처가 덧난 게 아닐까 합니다.”
근처에 있던 여포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엥? 이거 내 탓이야?”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맹획의 황소고집을 어떻게 꺾을까 했는데, 그 방법이란 게 자신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거였구나.
“부탁드립니디앗!”
“제발 살려주세요!”
그 자존심 강한 맹획과 맹우가 엉엉 울면서 자리에 엎드리는 광경은 꽤 진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