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4)
EP.34 천수(5)
“정말 장난 아니군.”
자신들도 여러 번 뚫지 못했던 도시를 단 하루 만에 함락시키는 모습에 한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천하에서 지금 저 군대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은 없겠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지만 내심 동의하는 내용.
한수가 동탁군이 무너지는 걸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강족 부관 한 명이 다가왔다.
“주군. 병사들이 약탈을 원하고 있습니다. 허락해도 되겠습니까?”
부관의 물음에 한수가 화들짝 놀랐다.
“당장! 당장 그만둬라!”
“예? 예…. 아직 안 하고 있습니다 주군.”
한수의 밑에 들어오고 나서 한족 문화와 나름대로 융화된 강족들은 예전처럼 눈을 까뒤집고 약탈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살만한 집이 있고 배부르게 먹을 밥도 있으니 굳이 그렇게 약탈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그래도 아직 융화되지 못한 몇몇은 그때 버릇을 못 버리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흐른 식은땀을 훔쳐내며 한수가 입을 열었다.
“정릉이 병주 출신인 건 알고 있겠지?”
“예.”
“그렇다면 정릉이 그 병주에서 약탈을 일삼던 이민족을 얼마나 처죽였을까?”
“……많겠죠?”
오환족에 선비족. 거기에 흉노족까지.
서량에 있는 강족과 저족도 서로 질색을 하며 피해 다니는 놈들이었다.
부관의 대답에 한수는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야!”
“예?”
“우리가 여기서 도시를 약탈하는 순간 저 정릉이란 놈의 눈에는 우리도 그냥 토벌해야 할 이민족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하는 짓에 따라 처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말.
일단 두고 보겠다는 스산한 눈빛.
그때 그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한수는 아직도 소름이 끼쳤다.
“그럼 너희는 물론 너희를 거두어준 나까지 덤으로 목이 잘려 나갈 거다! 그러길 원하냐?!”
“아…아니요.”
“그럼 약탈하지 마!”
어찌나 필사적인지 눈가에 핏줄을 세우며 외치는 한수의 모습에 강족 부관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무해하다는 걸 알려줘야겠지! 도시의 뒷수습을 다니면서 백성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거다!”
그렇게 말한 한수는 다시 고개를 불쑥 부관에게 들이밀었다.
“물론 자기 버릇 못 고치고 백성에게 위해를 가하는 놈은 내가 직접 베어버릴 것이라 말해라!”
“아, 알겠으니까 그렇게 휙휙 들이대는 버릇 좀 고쳐주십쇼. 깜짝 놀랍니다.”
한수는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 늘 필사적인 사나이였다.
──────────
천수를 함락시킨 나는 도시를 이 잡듯이 뒤진 결과 궁에 몰래 숨어있던 동탁을 붙잡았다.
동탁은 의외로 달아나지 않고 안 보이는 곳에 자신의 몸을 숨긴 다음 나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서여를 대동한 내가 지나가는 순간,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끌고 가겠다───!!’
하면서 철퇴를 손에 쥐고 달려들었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나도 만약 누군가가 죽도록 미우면 그 누군가를 길동무 삼아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나름대로 위험한 상황이기는 했다.
동탁도 전열에서 군을 이끌며 이민족을 토벌하던 맹장.
주위에 있던 호위병들이 방패를 세웠으나 동탁의 용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방패가 찌그러진 채 나자빠졌다. 죽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지.
‘죽어라──!!’
호위병을 날려버리고 내게 다가온 동탁은 손에 든 철퇴를 휘두르며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근데 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깡─!
‘뭣이?!’
서여가 등에 메고 있던 초천검을 뽑아 동탁의 철퇴를 한합만에 날려버렸고,
‘네년은 또 뭔…. 커헉─!’
그 검면으로 얼굴을 후려쳐 동탁을 기절시켰다.
좀 감정이 실렸는지 동탁의 입술이 다 터지고 이빨도 몇 개 나갔지만 상관없었다.
‘고마워.’
‘…….’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서여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지금.
동탁은 짐승처럼 꽁꽁 묶인 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동탁의 곁에는 동탁이 수족처럼 부리던 인물들이 있었다.
이유. 동민. 우보. 장제. 이것 말고 그 외 기타 등등.
아이고 많다 많아.
동탁 쪽에 있던 모든 인재는 똑같이 내게 붙잡혀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느덧 정신을 차린 동탁은 입안에 고인 피를 내뱉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편했나 봐?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쪘네?”
“네 이놈…!”
내 조롱에 동탁이 얼굴을 붉히며 분노했다.
“눈깔을 왜 그렇게 뜨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동탁 근처에 있던 병사가 동탁의 눈을 잡아 뜯어버렸다.
“끄아아악──!!”
“…….”
그 잔혹한 행동에 동탁 측 인사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행동이랑 말 전부 조심해야 할 거야.”
난 여전히 신음을 흘리는 동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누구도 너희 편은 없어.”
내 말대로 잔혹 행위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장안에서 동탁이 무슨 짓을 했는지 직접 눈으로 본 이들이니까.
“동탁.”
“끄으으….”
“대답 안 하지?”
내 말과 동시에 방금 눈알을 뽑아버린 병사가 발로 동탁의 머리를 걷어찼다.
“커어억!!”
“대답하라니까?”
“아, 알겠다!”
이번에는 병사가 주먹질 자세를 취하자 동탁이 급하게 외쳤다.
고순이 이런 역할에 적임자가 있다며 추천한 병사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잘 들어. 일단 너도 알겠지만 네가 한 짓이 워낙 미친 짓이라 살려줄 마음이 없거든?”
“…….”
“어떻게 죽일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일단 불구로 만들어버린 다음 감옥에 던져버려.”
“뭐, 뭐라고! 기다려라! 잠깐만 기다ㄹ───”
쩌억─!
동탁이 발악을 할 낌새를 보이자 방금처럼 서여는 반대편 얼굴을 후려쳐 동탁을 기절시켰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병사가 동탁을 질질 끌고 가는 걸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수염을 적당히 기른 야윈 남성이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
“……말씀하시지요.”
동탁의 최측근 모사라 하면 누구나 이유를 떠올릴 것이다. 확실히 능력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너한테는 물어볼 게 있다.”
“…….”
“장안을 불태우자 말한 것. 네 계획이냐?”
본래 역사에서도 장안으로 천도하면 반동탁 연합은 흐지부지될 것이라 예견한 이가 바로 이유였다.
실제로 동탁이 낙양을 폐허로 만들고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자 눈앞의 목표물을 잃은 연합군은 얼마 못가 와해됐지.
내 질문에 이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만약 장안을 약탈하신다면 대장군이 끝까지 주군을 쫓아올 것이라 진언했습니다.”
“흠.”
“저는 그저 서량으로 돌아가 때를 기다리자 말했죠.”
똑똑하네.
내가 무슨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지 이유는 성공적으로 예측했다.
결국 동탁이 이유의 간언을 무시해서 이렇게 됐지만.
“그런 놈을 섬긴 걸 후회하나?”
내 질문에 이유는 눈을 감았다.
대답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거겠지.
과연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살짝 기대됐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이유는 눈을 뜨며 내게 답했다.
“아니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재밌네.”
동탁이 확실히 능력은 있다니까.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고통 없이 보내줘라.”
“……감사합니다.”
이유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직접 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은….”
“대장군!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동탁처럼 탐욕이 가득한 얼굴의 남성이 땅에다 고개를 처박았다.
“나는 형님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뿐이오! 부디 그를 생각해서…!”
“그래. 생각해서 동탁하고 똑같은 형벌이야.”
“그게 무슨…!”
“동탁처럼 불구로 만들고 감옥에 가둬놔라.”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는 동민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어쩔 수 없기는 무슨.”
약탈에 제일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는 정보가 다 있는데.
“다음은 장제랑 장수.”
내 말에 서로 닮은 인상의 남성들이 앞으로 끌려 나왔다.
이야.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익숙한 이름이네.
장제는 그렇다 쳐도 장수는 가후와 함께 조조를 쳐서 조앙과 조안민, 전위를 죽여버린 인물이다.
유부녀 킬러 쬬가 미망인에 눈이 멀어서 그만….
하여튼 미망인 하나와 맏아들, 조카, 호위 장수를 교환한 건 지금 생각해도 꽤 웃긴다.
전위도 전위지만 맏아들 조앙을 잃은 건 현대에 와서 조조의 엄청 뼈아픈 실책이라 평가받고 있으니까.
생각이 잠깐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나는 서로 닮은 얼굴의 두 남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제. 할 말은 있나?”
“…없다!”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 장제는 장안을 약탈한 놈들 중 한 명이니 살려둘 수는 없다.”
“…….”
“보니까 너는 그때 천수에서 이민족을 퇴치하고 있더군.”
“그렇소.”
장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삼촌과 친한가?”
“적어도 나 몰라라 하는 사이는 아니요.”
“같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
내 물음의 의미를 눈치챈 장수가 입을 닫았다.
장제가 놀란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네놈, 설마 저놈에게 투항할 생각은 아니겠지?!”
“……삼촌. 여기는 오래 있을 세력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소.”
장제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더니 머리로 장수를 들이받았다.
정통으로 박치기를 얻어맞은 장수의 입가와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 은혜도 모르는 금수 같은 것이 감히 날 죽인 놈에게 투항하겠다고! 그냥 여기서 죽어라! 죽어버리란 말이다!”
“…….”
생각보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나 보네.
장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내 질문에 답했다.
“투항하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장제는 형장에 보내고 장수는 풀어줘라.”
형장으로 끌려가며 길길이 날뛰는 장제를 바라본 장수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서영.”
본래 역사에서 강동의 고양이와 유부녀 킬러를 무찌른 명장.
비록 동료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군을 이끄는 능력은 뛰어나다 볼 수 있는 장수다.
“자네는 좀 특이하더군.”
“예.”
“그때 장안에 있기는 했는데 약탈은 안 했다?”
“……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영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됐어.”
“……?”
“서황에게 들었는데 투항했다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내 말과 동시에 병사가 움직여 서영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손견하고 조조를 패퇴시킨 인물이다. 죄가 없다면 중용하는 게 당연한 일.
근데 연의에서는 손견을 패퇴시킨 전공을 화웅에게 뺏긴다.
뺏긴 이유도 별거 아니다.
그 손견조차 패퇴시킨 화웅을 관우가 술이 식기도 전에 베어버렸다!
관우 띄워주기의 피해자란 거지. 슬픈 일이다.
서영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얼떨떨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은….”
그렇게 한 명씩 동탁군의 처우를 결정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슬슬 쌀을 수확하고 있을 시기인 186년 9월.
동탁군은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