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43)
〈 344화 〉 남만(??)(11)
* * *
내게 이주 정책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꼬꼬마 군사들이 제일 먼저 보인 행동은 간단했다.
“지금 남중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총 몇 명인지 전부 알아오세요. …당장.”
“예, 옙!”
바로 인구 조사지.
어느 구역에 몇 명이 머무르는지를 알아야 세금도 가져가고, 이주도 시키지 않겠는가.
근처에서 대기하던 부관에게 서슬 퍼런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사마의가 머리를 짚었다.
“하아…. 대충 예상하긴 했는데 뒤처리는 전부 저희 몫이군요.”
정말 귀찮은 기분이 팍팍 풍겨오는 목소리.
본래 역사에서도 조조의 임관 명령에 꾀병을 부리면서 몇 년 동안 버티던 게으름뱅이 면모가 살짝 보이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게을렀던 게 아니라 조조의 성격을 진작 꿰뚫어 보고 거리를 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때 사마의의 반응을 바라보던 제갈량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일이 귀찮으시다면 푹 쉬셔도 됩니다.”
“…예?”
“주군께서 직접 맡기신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
제갈량은 그리 말하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주군’과 ‘직접’이라는 단어에 묘하게 힘이 담긴 느낌이던데, 단순히 내 착각일까?
분명 상대를 배려하는 말이었으나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쯧, 됐네요. 제가 당신 의도도 모를까 봐요?”
사마의는 제갈량이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건넸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왜 또 너희만 아냐.
나도 알려줘.
또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기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요….”
“예! 무슨 일입니까!”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일찌감치 거리를 둔 방통은 근처에 있는 맹획에게 질문을 던졌다.
“호, 혹시 지적부(???)나 호적부(???) 같은 문서가 있을까요…?”
“……?”
방통의 질문을 받은 맹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봐도 방통이 말한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모습.
“조금 더 쉽게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 그게….”
맹획이 되묻자 방통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토지나 호적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문서 말이에요….”
“아하! 그것 말씀이십니까!”
이제서야 모든 걸 이해한 맹획은 힘차게 웃었다.
“저도 일단 한 구역을 다스리는 왕이라서 말입니다!”
“그, 그 뜻은…?”
“그런 문서들은 당연히 있지요!”
오, 그건 의외다.
동굴과 산에서 모여 사는 민족이라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과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비록 맹획이 머리 쓰는 것에 약해도 이민족을 하나로 모은 이유가 있었다.
남중 사람치고는 드물게 병법서 같은 걸 읽으며 제 나름대로 학문을 갈고닦는 인물.
얼마 안 되는 실력으로 열심히 성벽을 쌓은 것도 그렇고, 맹획은 의외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뭐, 수만을 넘기는 병사를 여러 번 동원한 걸 보면 적어도 동굴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원시인은 아니라는 거지.
어엿히 국가로서 기틀이 잡힌 또 다른 나라라고 볼 수 있었다.
…주변 환경이 인간에게 워낙 적대적이라 그 수준이 미진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맹획이 방통에게 말했다.
“근데 상당히 오래돼서 정확성이 좀 떨어질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괘, 괜찮아요.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용과 호랑이가 서로 이빨을 드러내는 동안 봉황은 몰래 이득을 챙긴 뒤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둘이 싸우면 뒤에서 벌벌 떨기만 하던 작은 새가 어느덧 이렇게 성장했구나.
…근데 이런 방향으로 성장하는 게 맞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짝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된 것 같은데.
사마의와 제갈량은 여전히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방통은 맹획의 안내에 따라 호위병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러운 광경에 나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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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랜 전투로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해줄 겸 휴식 기한을 상당히 넉넉하게 줬다.
낙양에 계신 황제 폐하께서는 나를 오매불망 기다리시겠지만 어쩌겠는가.
낯선 지역에서 전투를 치른 병사들을 제대로 쉬게 하지도 않고 강행군을 시키면 필시 낙오되는 인원이 생길 것이다.
촌각을 다툴 정도로 한시가 급한 상황도 아닌데 내가 그렇게 무리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한 달 동안 계속 걸어야 하는 초장거리 행군.
나는 말이라도 타고 있어서 그나마 낫지, 보기만 해도 무거운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면서 걸어야 하는 보병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지 감이 안 잡혔다.
저기 바다 건너 있는 로마도 장비가 엄청나게 무거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장비와 군장을 합하면 20kg도 훌쩍 넘긴다던가.
애초에 무게가 얼마나 됐든 한 달을 넘게 행군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겠지만.
“주군! 이곳에 계셨습니까!”
“응?”
내가 잡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근처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
이성의 시선을 일순간 빼앗는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지닌 여성.
남만인의 구심점이라 볼 수 있는 맹획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똑같이 맹획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문제라도 생겼나?”
“으음…. 어찌 보면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맹획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 잘못하면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 어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겼길래 이렇게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부디 복잡한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평소와 같은 발걸음으로 맹획을 뒤따랐고, 나를 자그마한 건물에 안내한 맹획은 나를 홱 돌아보면서 외쳤다.
“주군!”
“…그래.”
저 하이 텐션은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
여동생인 맹우도 그렇고, 마치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연상될 지경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맹획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염치없는 부탁인 것은 알지만,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 외친 맹획은 아예 몸을 넙죽 숙이면서 내게 절을 올렸다.
“은혜?”
나는 그를 듣고 살짝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진짜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은혜를 운운하는 거냐.
“아, 제가 살짝 어렵게 말했군요!”
내 의아한 반응을 본 맹획이 실수했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대장군의 아이를 낳게 해주십시오!”
“…….”
그 난데없는 폭탄 발언에 나는 물론 근처에 있는 서여와 여포까지 쩌적 굳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 읍읍!”
나는 앞으로 나서려는 여포의 입을 막으며 차분하게 물었다.
“…어째서 그런 부탁을 하는 건지 알 수 있겠나?”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맹획은 전혀 어려울 것 없다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저희 남중 사람과 한나라 사람이 진실로 하나가 되었다는 걸 모두에게 공표하기 위해서죠!”
“…….”
정략 결혼 비슷한 건가.
정복왕 이스칸다르.
그러니까 알렉산드로스 3세도 휘하 장병에게 현지 여성들과 결혼할 것을 장려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지.
서로 문화가 다른 민족을 혈통이란 끈끈한 관계로 묶는 융화 정책을 펼친 것이다.
비록 오래 못 살고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단명해서 융화 정책이 효과를 보기는커녕 그 넓은 나라가 사분오열 쪼개졌지만 말이야.
여전히 내 품속에서 읍읍거리는 여포를 진정시키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내 아이를 낳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걸로 괜찮겠는가?”
“예?”
나는 맹획의 초록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조만간 여기서 멀리 있는 낙양으로 돌아가야 한다.”
“…….”
“하필 황제 폐하께서 나를 감싸고 도는지라 자주 찾아오지도 못하겠지.”
이번에는 나랏일이란 명목이 있으니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맹획을 임신시킨다면 나는 분명 싸지르고 튀었을 뿐인 무책임한 아버지가 되겠지.
조조는 예외로 치자.
그 여인은 분명 내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나를 놀라게 할 인물이다.
“그대가 나를 따라올 것이 아니라면 그 제안은 접어두도록.”
“그렇습니까?”
그런 내 걱정에 맹획은 힘차게 웃었다.
“제가 따라간다면 해결되는 일이라는 뜻이군요!”
“응?”
“저 맹획! 예전부터 샌님…. 아니 한나라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분명 샌님 어쩌고 하다가 말 바꾸지 않았냐.
아직 옛날 말버릇을 완전히 고치지 못한 모양이다.
맹획은 눈빛에서 별빛이 쏟아질 기세로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하물며 홀로 남겨질 여인을 이렇게 걱정하시는 분이라니! 그러면 더더욱 붙잡아야겠지요!”
“…….”
“자! 남성을 알지 못하는 몸을 마음껏 희롱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적극적인 모습에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
나도 지금까지 온갖 사람을 보았다 자부하는데, 이런 인물은 또 처음이었다.
흔히 용기 있는 자가 아름다운 여성을 품는다고 말하지.
맹획은 그 관용구가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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