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53)
〈 354화 〉 사냥(2)
* * *
고대 국가에서 군주가 사냥을 나간다는 건 매우 크나큰 행사였다.
군주 혼자가 아닌 그를 모시는 신하들도 사냥에 참여해야 하고, 그들을 호위하기 위한 병력도 동원해야 한다.
당연히 그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대규모 물자도 필요하며 철저한 시간 계획까지 짜야 하지.
물론 사냥하는 동안 같이 간 신하들이 나랏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건 덤이다.
심지어 군주가 있는 곳으로 짐승을 몰아줄 수많은 인력도 필요한데 더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야말로 국력 자체를 팍팍 깎아 먹는 짓이지.
괜히 옛날 사람들이 사냥 자주 나가는 군주를 암군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그러면 이 사냥이란 걸 왜 하냐고?
그야…. 재미있으니까.
사냥을 가리켜 대놓고 유흥 같은 단어가 적혀있는 걸 보면 옛날 군주들이 사냥을 어째서 그리 즐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조금 전 언급한 귀찮은 일은 아랫사람들이 전부 처리하니까.
군주는 그냥 말 타고 가서 화살만 퓽퓽 신나게 쏴대면 된다.
이게 꼬우면 직접 왕위에 오르는 수밖에 없지.
…그래도 사냥이란 활동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냥에 참여하는 군주와 신하들이 직접 몸을 움직이는 행사다 보니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사냥이라 하면 보통 숲이나 산에서 즐기기 마련이니 호위 병사들의 훈련도 겸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니까.
휴식도 없이 일만 하다간 털썩 쓰러지는 것이 사람이다.
또 군주의 권위를 드러내는 행사이기도 했으니 이걸 아예 안 하기는 또 그랬다.
중요한 건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하고 자제할 수 있느냐는 거지.
뭐든지 과하지 않고 적당히.
이런 걸 보면 살아간다는 게 골치 아프긴 했다.
하여튼, 황제 폐하께서는 사냥이란 활동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옛날 높으신 양반들의 취미 중 꼭 사냥이 들어가는 걸 생각해보면 꽤 드문 경우지.
사냥을 즐기지 않는 이유는 저번에도 떠올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뭐였더라, 사냥보다 나랑 같이 있는 게 더 즐겁다고 하셨던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는 폐하께서는 내가 사냥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걸 단번에 간파한 모양이었다.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긴 했다.
‘정릉! 같이 사냥 나가자! 사냥!’
‘싫어.’
‘힝….’
과거 병주에 있던 시절 난 걸핏하면 사냥을 나가자는 여포의 제안을 여러 번 거절했다.
내 단호한 목소리에 당당하게 들이대던 여포조차 풀이 죽은 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
이런 내가 사냥에 나설 때는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산짐승이 민가에 내려와 해를 끼칠 때.
농작물을 망치는 거대한 멧돼지나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와 곰 등 진짜 위험하다 싶은 놈이 등장했을 때 직접 말을 타고 사냥에 나섰다.
보통 내게 보고가 올라올 정도면 다른 사냥꾼들도 번번이 놓치는 아주 영악한 짐승이란 뜻이지.
이런 경우에는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나서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잡는 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장수가 잡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응원 단장 같은 거다.
내가 근처에 있으면 내게 잘 보이려는 수많은 인물이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짐승을 찾아다니니까.
호랑이, 곰, 이리 등등….
자연 보호고 뭐고 민가 근처에서 사람 맛을 본 짐승들이 돌아다니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네가 죽나 내가 죽나 치킨 게임을 벌이는 수밖에.
동물 보존은 미래 후손들이 알아서 해줄 거다.
난 일단 사람부터 보살펴야지.
이 근처에 있는 위험한 동물들을 최대한 잡아오라고 시키니 정말 육식동물의 씨를 말려버린 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게 바로 숫자의 힘인가?
하여튼 내 취향을 낱낱이 수집하고 이에 맞춰주던 황제 폐하 입장에서는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냥을 나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사냥을 좋아했으면 아마 이를 구실로 나와 같이 있을 시간을 늘리지 않았을까.
이럴 때는 내가 자택에 얌전히 늘어져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집돌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폐하께서 즉흥적으로 결정하신 사냥 행사 준비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때 부패 정치의 끝을 달렸던 낙양이다.
그런 도시 근처에 황실이 소유한 사냥터 하나 없겠는가?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심지어 전대 황제인 영제는 궁궐에서 주색잡기를 좋아했던 인물이라 사냥을 나간 적이 없었고, 지금 황제 자리에 오른 폐하께서도 사냥을 별로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사냥할 짐승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지.
오죽하면 개체 수 조절을 한답시고 동물을 잡아 부가적인 수익을 올리겠는가.
굳이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멀리서부터 짐승을 몰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냥터와 거리도 가깝고, 많은 인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으며, 이를 오래 즐기지도 않을 계획이다.
이 정도나 됐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준비가 끝났다면 출발하지.”
“예.”
나는 내 부곡을 이끄는 유비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으음….”
관우와 장비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제 맏언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티가 안 난다 생각하겠지만 서로 몸까지 겹친 내 눈에는 아주 잘 보이는 상황.
그를 지켜보던 나는 자연스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너희 진짜 뭐 잘못했니?
──────────
활쏘기.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화살 명중률이 낮은 편이었다.
그냥 무언가를 조준하는 것에 대해 무척 약하다고 할까.
에임 맞추고 마우스를 딸깍거리기만 하면 되는 게임에서도 못 맞히는데 현실은 말할 필요가 없지.
지금 저기 동쪽에서 활쏘기 시합을 즐기고 있을 조상님들이 들으면 이놈 하면서 회초리를 들고 쫓아올 생각이었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다 보니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쏘는 건 명중률이 높아지긴 했다.
열 발을 쏘면 일곱 발은 맞힐 수 있는 수준.
근데 겨우 이 정도로 활을 잘 쏜다며 거들먹거리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마 궁술?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내 화살이 허공만 가르는 광경을 본다면 무슨 귀신이라도 맞히나 생각할 것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냐.
“또 빗나갔네.”
숲에서 아주 발광을 하며 신들린 듯한 무빙을 선보이는 짐승들을 맞힐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거기서 좌회전을 하는 건 아니지 않냐?
가만히 있는 목표물도 맞히기 힘든데 보는 사람이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짐승들을 맞추는 건 어떻겠는가.
진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며 난 한숨을 내뱉었다.
푹!
“아, 아이참! 나도 빗나가 버렸네!”
그때 여포가 자신이 쏜 화살이 짐승 바로 옆에 박혀 드는 것을 보고 억지로 웃었다.
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안 맞힌 거 다 안다.”
“히끅!”
여포는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너 진짜 연기 못해.
저 연기를 간파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즐기려고 온 자리에 다른 사람이 내 눈치를 보는 건 바라는 일이 아니었으니 난 픽 웃어 보였다.
“내 체면 안 살려줘도 좋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응.”
내 말을 들은 여포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빠직!
“…아.”
서여는 무기 파괴자라 불러도 될 정도로 계속 활을 부숴 먹었다.
무언가 감을 잡아보겠다는 듯 활시위를 당겨대는데, 그 수준이 너무 과하다 보니 활(이었던 것)이 늘어나는 상황.
어째서 서여가 활보다 투창을 더 선호하는지 알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저게 진짜 가능한 일이었구나.
나무로 만든 몸체가 반으로 쪼개지는 광경은 몇 번이나 봐도 신기했다.
“확실히…. 맞히기가 힘들구나.”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폐하께서는 자꾸 땅에만 박혀 드는 화살에 의기소침한 반응을 보이셨다.
…으음, 이러면 좋지 않은데.
내 언질을 받은 병사들이 폐하 쪽으로 수많은 짐승을 몰아주었음에도 변변찮은 짐승 한 마리조차 못 잡는다는 건 문제가 컸다.
황제가 사냥을 나갔는데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다?
누가 봐도 체면을 구기는 일이지 않나.
어째서 폐하가 사냥을 즐기지 않았던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조와 헌제의 일화를 떠올리다가 황제에게 입을 열었다.
“…폐하, 화살 하나만 저에게 건네주실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 정도야 어렵지 않다만.”
황제는 내게 다가와 자신이 쓰던 화살을 건네주었다.
그 화살은 누가 봐도 황제가 쐈다는 걸 증명하는 고급스러운 자태를 자랑했다.
일회용에 가까운 화살을 이렇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황실의 권위가 어떤지 보여주는 거겠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나는 곧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지닌 수사슴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 뿔이 커다랗네.
덩치도 참 크고.
고대 중국은 사슴을 부와 성공에 비유하며 사냥에 성공하는 것을 좋게 생각했다고 했으니 딱 내가 찾던 짐승이었다.
끼이익──!!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내가 활시위를 당기기 무섭게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는 걸까.
이제 와서 빼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던지라 나는 신중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민족이 한(韓)이 아닌 다른 한(?)이라지만 조상님께서 힘을 빌려주시리라 믿는다.
아무튼 빌려주실 거라고.
퓽─!
이 화살이 빗나가면 다음엔 여포에게 맡기겠다 생각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활시위를 놓았고,
푸슉!
한동안 허공을 부유하던 화살은 사슴의 머리에 정확히 박혀 들었다.
뒤통수가 꿰뚫린 사슴은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바로 즉사.
그대로 땅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를 지켜보던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맞네.
진짜 조상님이 힘을 빌려주시기라도 한 건가.
“우와, 이걸 맞추네! 역시 정릉….”
“쉿. 조용히 해.”
“으응…?”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나를 칭찬하려 했던 여포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후 내가 활을 내리기 무섭게 시체를 확인하던 몇몇 신하가 황제의 화살을 발견하고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제를 향한 만세 삼창은 금방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삼국지 연의에선 조조가 슬쩍 황제를 가리면서 본인이 만세 삼창을 들었다고 적혀있던가.
이때 화가 난 관우가 조조를 죽이려 들고 유비가 참으라며 말리는 광경은 꽤 인상 깊었다.
나야 이 상황에서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순순히 뒤로 물러난 나는 황제가 만세를 받는 광경을 담담히 지켜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더냐?”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폐하의 모습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