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58)
〈 359화 〉 생명(3)
* * *
내 아이가 태어난 이후 저택은 꽤 시끌벅적해졌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주군!”
“이 기쁜 날에 술이 빠질 수 있겠습니까!”
나와 사이가 가까운 남성 무장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찾아와 병나발을 불어댔지.
그 위엄 없는 모습은 흡사 동네 아저씨를 연상시킬 지경.
아마 남성의 가족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한숨을 흘렸을 것이다.
…근데 낙양에 머무르는 손견은 그렇다 치고 마등은 어떻게 이리 빨리 찾아온 거지?
자기 딸처럼 한혈마를 타고 다니기라도 하는 걸까?
물론 내 저택에 방문한 인물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나. 드디어 꿈을 이루셨네요.”
“시끄러워!”
장료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품에 아이를 소중히 품고 있던 여포는 크게 소리쳤다.
“으에엥….”
“아, 앗!”
당연히 여포 품에서 잠에 빠져있던 아이는 그 큰 목소리를 듣고 한 차례 칭얼거렸다.
그런 모습을 본 여포는 화들짝 놀라면서 아이를 열심히 어르고 달랬다.
“미안해 아가야! 다시 코 자자!”
“아우….”
여포의 필사적인 노력이 통했는지 여화는 별다른 일 없이 다시 곤히 잠들었다.
여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후훗.”
그 천하무쌍이 아이 하나에게 쩔쩔맨다는 것이 자못 유쾌한 듯 장료는 싱긋 미소 지었다.
“아가…. 코 자자…. 장군님 입에서 그런 귀여운 단어가 나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너라고 다를 것…?!”
장료의 말에 또 크게 외치려던 여포가 곤히 잠든 아이를 의식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입을 꾹 다문 여포는 목소리를 낮춘 채 다시 말을 걸었다.
“…너라고 다를 것 같아? 아이는 이렇게 말해줘야 좋아한다고…!”
여포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밥을 표현하는 맘마.
과자를 표현하는 까까.
체벌을 표현하는 맴매와 더러운 것을 표현하는 지지 등….
이런 단어들을 유아어라고 부르는데, 이런 유아어는 애착 관계 형성과 언어 능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문제는 그런 단어가 부모 입에도 붙어 평상시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는 것.
뭐,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니까….
…심각한 문제 맞나?
직장 동료한테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라고 말하려 했는데 ‘이제 맘마 먹으러 갑시다!’이러면 어떻겠는가.
당연히 수치스러움은 본인 몫이다.
이걸 누구에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더욱 창피하겠지.
여포는 살짝 매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장료, 너는 나중에 대련할 때 두고 봐…!”
“기대하겠습니다.”
어지간한 인물은 그 자리에서 벌벌 떨어도 이상하지 않을 눈빛이었지만 장료는 익숙한 듯 그런 눈빛도 담담히 받아넘겼다.
사이가 좋은 건 여전하네.
내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을 때 근처로 서황이 다가왔다.
“저…. 주군?”
“음? 무슨 일이지?”
나를 부른 서황은 계속 어딘가를 힐끔 바라보며 궁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이 지금 무엇을 하시는 건지….”
“아, 서여 말이야?”
서여에게 고개를 돌린 나는 어려울 것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몰라.”
“…?”
서황은 내 대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르는 건 모른다고 표현해야지.
서여는 지금 곤히 잠자는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명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잠자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자신을 바라보면 곧장 눈을 뜬 다음 시선을 마주쳤으니 아마 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하는 명상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어찌 보면 서여답다고 할 수 있었다.
“…….”
“…….”
이제 처음 보는 사람도 임산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배가 부풀어오른 관우.
왜인지 이상할 정도로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장비.
피치 시스터즈의 둘째와 셋째는 무언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한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맏언니인 유비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
…진짜 신경 쓰이네.
하루이틀도 아니고 계속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사이가 가깝지 않은 이들이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적당한 자리에 걸터앉아있던 나는 유비에게 말을 걸었다.
“유비.”
“예.”
내 부곡을 이끌면서 주변을 경계하던 유비는 내가 부르자마자 곧바로 반응했다.
나는 황족임을 증명하는 유비의 검은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본론부터 말하지. 무슨 일이라도 있나?”
“…….”
“최근 내가 지켜보니 그대들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더군.”
난 상담사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민이 있다면 내가 들어줄 테니 허심탄회(?心??, 품은 생각을 터놓고 말할 만큼 아무 거리낌이 없고 솔직함)하게 말해보도록.”
“그건….”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유비는 입술을 달싹였고, 관우와 장비는 살짝 기대하는 눈초리로 그 상황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로 큰일을 일으켰으리란 생각은 안 든다.
만약 문제를 일으켰어도 저 세 명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유비가 담담히 용서해줬겠지.
애초에 정말 큰일이 났다면 진작 나한테 보고가 올라왔을 터.
그걸 고려했을 때 아주 개인적인 문제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 걸 알 수 있는데, 어지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그런 사적인 영역까지 물어볼 수 있는 인물은 드물 것이다.
참 다행스럽게도 유비와 나는 사이가 가까운 편이지.
“……이.”
“응?”
그때 입에 자물쇠라도 달린 듯 꼼짝도 안 하던 유비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문제라면 워낙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해 하나도 들이지 않았다는 것.
웬만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 유비가 저럴 정도면 정말 어지간히 부끄러운 문제인 모양.
유비의 대답을 차분히 기다리던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군. 조금 더 크게 말해줄 수 있겠나?”
“…저만, 아이를, 배지 못했습니다….”
아.
“…….”
“…….”
대답을 듣자마자 유비와 나 사이에서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유비는 본래 역사에서도 50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첫 아들을 본 인물이었지.
장판파 전투 때 조조에게 잡혀간 두 딸과 훗날 낳은 두 딸을 포함해도 자식이 다섯 명뿐인 것이다.
무려 서른 명도 넘는 자식을 남긴 조조와는 천지차이라 볼 수 있는 수준.
유비가 그렇고 그런 일에선 라이벌 조조에게 훨씬 밀리는 처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조가 한 번 만에 임신을 성공한 이유가 있었구나.
이것도 고증이라 보면 고증이겠네.
아니 뭐, 다섯 명도 많이 낳은 거긴 한데 이번에는 유비가 운이 없었나 보지.
이 분위기를 어떻게 타계할지 고민하던 나는 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장비에게 말을 걸었다.
“…장비. 가까이 와보도록.”
“으, 응.”
장비는 유비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내게 다가왔다.
“흠….”
난 내게 가까이 다가온 장비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배를 매만졌다.
“으햐악?!”
“확실히 배가 좀 나온 것 같군.”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장비는 화들짝 놀라면서 파바바박 물러났다.
“가, 갑자기 무슨 짓이야! 이거 성희롱이야!”
“어어…. 미안하다.”
나한테 술을 먹인 다음 덮치려 했던 인물이 할 말인지는 의문이 드는데.
자신도 운장 언니처럼 임신할 거라며 허구한 날 달려들던 여인이 이러니까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공격은 잘하는데 수비는 약한 타입이구나.
하여튼 배를 만져본 결과 장비가 임신했다는 정보는 사실인 것 같았다.
내가 익주 정벌을 떠나기 직전 임신했다고 치면 벌써 넉 달 정도는 지났겠네.
그러고 보니 관우도 슬슬 출산할 시기 아닌가?
원술 토벌을 마친 후 낙양으로 돌아올 때 몸을 겹친 걸 생각하면 내일 출산해도 이상할 건 없는데.
……뭔가 아이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구만.
지금부터라도 적당히 자제해야 할까.
이대로 가다간 본래 역사의 조조처럼 서른 명도 넘는 자식을 남길 수 있었다.
자식을 세자릿수나 남긴 중산정왕을 넘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턱을 쓰다듬으며 잠깐 고민하던 나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우는 무사히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내 자택에서 머무르도록.”
“예.”
“장비도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하거라.”
“…흥!”
관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장비는 살짝 토라진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거 꽤 오래가겠네.
“그리고 유비는….”
나는 여전히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들지 못하는 유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날짜라도 잡겠는가?”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창피해도 챙길 것은 챙기는 유비였다.
그나저나 유비 자식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이네.
양자인 유봉으로 해야 하나, 아니면 그 유선으로 해야 하나.
유선이란 이름은 왠지 내 귀여운 아이가 이상한 것에 씔 것 같아서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