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59)
〈 360화 〉 생명(4)
* * *
여포가 뱃속의 아이를 출산한 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조만간 관우에게도 신호가 올 것 같다는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윽.”
만삭의 몸으로도 무예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던 관우가 갑작스럽게 통증을 호소하며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다.
“…관우야?”
“운장 언니?”
그 관우가 한쪽 무릎을 꿇자 근처에 있던 유비와 장비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지.
“으, 응급상황! 도와줘─!”
그래도 방문을 부숴버리는 건 좀 참아줬으면 좋겠다.
비록 내가 고치는 건 아니지만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상당히 귀찮다고.
나는 멀쩡히 잘 있던 방문을 부수고 쳐들어온 장비를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그 이후 별다른 일은 없었다.
벌써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은 나는 발이 빠른 시종에게 임무를 내렸고, 내 시종은 아주 재빠르게 화타를 데려왔다.
“이번에도 잘 부탁하지.”
“…예.”
그때 알 수 없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화타 선생님의 눈빛이 조금 시려운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대단하긴 하지.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식을 세 명이나 남기는 인물이 있다면 나라도 살짝 묘한 눈길로 쳐다볼 것이다.
“…운장.”
“언니! 너무 아프면 심호흡! 심호흡하는 거야!”
훗날 도원결의라는 재창작이 등장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한 세 자매.
비록 유비 혼자 내버려두고 자기들끼리 먼저 앞서 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함부로 폄훼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 기기긴장하면 안 돼! 언니는 할 수 있어!”
“…긴장은 나보다 네가 더 하는 것 같군.”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비의 모습에 관우는 오히려 냉정함을 되찾은 듯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관우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비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힘들기는 하지만…. 이것보다 더한 일도 겪지 않았습니까.”
“…그렇구나.”
그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들은 유비가 싱긋 웃어 보였다.
“확실히 그날 밤은 무척 힘들긴 했지.”
“…?”
“운장이 힘없는 어린아이처럼 픽픽 쓰러지는 광경은 꽤 인상 깊었단다.”
“유비 님?”
설마 나와 보냈던 첫날밤을 의미하는 말인가.
생각보다 훨씬 차분해 보이는 관우의 모습에 유비도 여유로움을 되찾은 듯했다.
“…주군.”
“응?”
그때 관우가 근처에 있던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차마 숨길 수 없는 식은땀은 그녀가 지금 얼마나 고된 싸움을 치르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관우는 한 차례 숨을 고른 다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이름을…. 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
대충 예상은 했는데 관우도 내게 작명을 맡겼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내 이름 짓는 센스를 시험하는구나.
난 조조처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서 이름을 척척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아이를 낳아주는 여인을 위해 이름 하나 못 지어주면 아버지 실격이지.
불행 중 다행으로 관우는 정사나 연의에서 기록된 자녀가 적어도 두 명은 있었다.
연의에서는 양자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관우의 첫째 아들이었던 관평(??).
장비의 아들인 장포와 함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둘째 아들 관흥(??).
관색(??)은 주창처럼 민간전승에서 등장하다가 연의에 편입된 가공인물이고, 관은병(???)은 손권을 개로 만든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다.
유비와는 다르게 관우의 자녀들은 무언가 모자란 점이 없었으니 이 중에서 적당히 골라 쓰면 되지 않을까.
눈을 감은 채 잠깐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관우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평은 어떤가?”
“관평…. 네. 괜찮습니다.”
관우는 그 이름에서 무언가 친근한 기분을 느꼈는지 살풋 웃어 보였다.
──────────
화타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이를 낳은 관우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본래 역사와 다르게 관평이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걸까.
…딱히 이상할 건 없지.
유비와 조조가 여성이 된 세계인데 뭘.
이제 와서 그런 것에 당황할 정도로 나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를 저렇게 낳았다는 거야?”
아이를 낳는 광경이 궁금하다며 슬쩍 곁에 자리 잡았던 여포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를 들은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내 손을 꼭 붙잡고 어디 가지 말라면서 엉엉 울던 광경은….”
“뭐, 뭐래! 거기까지는 안 갔거든?!”
“일부는 인정한다는 소리네?”
“윽….”
여포도 내게 어떤 모습으로 매달렸는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돼, 됐고! 내 아이나 안아줘! 계속 안고 있었더니 힘들어!”
하나도 힘들지 않으면서 거짓말하네.
어지간한 장정도 쉽게 들지 못하는 방천화극을 온종일 휘둘러대도 멀쩡한 여포다.
그런 여포가 아이 좀 껴안았다고 해서 힘들어하는 게 말이 되겠는가.
이 부끄러운 주제에서 어떻게든 의식을 돌리겠다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조심히 넘겨줘.”
“흥! 날 뭐로 보는 거야?”
뭐로 보기는.
당연히 초보 엄마로 보는데.
여화가 칭얼거릴 때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우왕좌왕하는 여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초보 엄마였다.
…근데 나도 마찬가지라서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해.
병주에 있던 시절 수많은 어린아이를 보살폈다지만 내게 육아는 아직 미지의 세계였다.
괜히 어쭙잖은 자만심을 가지는 것보단 겸손하게 구는 게 훨씬 낫지.
여포에게서 아이를 조심히 받아든 나는 살짝 고개를 내렸다.
“…우.”
내 품속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아기.
아기는 어른보다 체온이 높다고 하는데, 확실히 이렇게 안고 있으니 따뜻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보기만 해도 없던 힘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몇몇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아기 천사님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여포가 꽤 큰 목소리로 말했던 것 같은데 저번처럼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은 놀라웠다.
이제 자기 어머니의 목소리를 완전히 기억해서 오히려 놀라지 않고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
“…역시 신기하네.”
그때 여포가 내 품 안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여포에게 물었다.
“응? 뭐가 말이야?”
“아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껴안으려 하면 눈을 번쩍 뜨고 바로 울어 재낀단 말이야.”
아하.
가끔 여화가 집이 떠나가라 울 때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이었나.
누가 여포 핏줄 아니랄까 봐 울음소리 하나는 끝내줬지.
내가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때도 여포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근데 이상하게 정릉이 껴안으면 괜찮네.”
그를 들은 나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답을 내뱉었다.
“나도 일단 아버지잖아.”
“으음…. 역시 그런가?”
“아무렴. 누구 딸인데 아버지도 못 알아볼까.”
“아…. 응….”
내가 짐짓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여포는 살짝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부.”
그때 내 품에 안겨있던 여화가 눈을 떴다.
“어라. 벌써 배고픈 건가?”
여포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뜬 여화에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여포에게 아기를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여화가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아부바.”
제 양손을 번쩍 들더니 나를 향해 휘젓기 시작한 것.
“세상에….”
자기 몸 하나 겨누기 힘들 아이가 이러는 모습에 여포와 나는 놀라운 심정을 드러냈다.
확실히 다른 아기들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구나.
물론 이 아이가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건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것만 알아들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육아가 두렵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여화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예상이 갔다.
아기는 호기심이 많아서 눈앞에 있는 물체에 관심을 보이거든.
이러한 것도 애착 관계 형성에 중요하다 들은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그 자그마한 손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게 했다.
이 말랑말랑한 감촉은 마치 폐하께서 기르는 야옹이에게 꾹꾹이를 당할 때와 비슷했다.
…이러니까 자식한테 부모가 끔뻑 죽지.
과거 내가 갓난아이였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금방이라도 심장이 멎을 듯 기뻐하셨다.
그때 나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지만 이젠 알 수 있었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주인님.”
그때 근처에서 한 여인이 나를 불렀다.
듣는 남성의 애간장을 태우는 아름다운 목소리.
이 목소리의 주인이 단번에 초선임을 눈치챈 나는 손가락으로 여화의 볼을 쿡쿡 찌른 다음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조맹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그건 또 심상치 않은 소식이네.
내게 보고가 올라올 정도면 아예 군사를 이끌고 직접 출진했다는 건데.
‘그대는 무슨 이름이 좋겠느냐?’
수춘을 떠나기 직전 내게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졌던 여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조 맹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