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62)
〈 363화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3)
* * *
과거, 조조는 나와 함께 황제를 참칭한 원술을 토벌한 이후 줄곧 자신의 본거지에 틀어박혔다.
직접 출정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도겸을 끝장낼 수 있던 조조가 난데없이 침묵을 지키자 천하에 자리 잡은 세력들은 당연히 의문을 표했지.
조조의 능력을 눈치챈 인물일수록 조조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더욱 궁금해했다.
물론 우리 세력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요.’
‘…….’
‘지금 공격을 멈출 이유가 없는데 어째서 진류로 돌아간 걸까요?’
지도를 펼친 채 천하의 정세를 판단하던 사마의는 제 고운 눈가를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꼬꼬마 군사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때를 노린다거나?’
‘지금이 제일 좋을 때인데요?’
사마의는 내 의견을 단번에 일축했다.
‘연이은 패배로 도겸군의 사기는 곤두박질쳤고 조조군의 전의는 한껏 오른 상황이에요.’
‘으음….’
‘이럴 땐 기세를 살려 몰아치는 게 맞는데 어째서 적이 숨을 돌릴 시간을 주느냐는 거죠.’
나조차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서 설명한 사마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으으. 조조가 그냥 무능한 인물이었으면 이런 고민도 안 했는데….’
첩보로부터 받은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며 이것을 전부 자신의 지식으로 만든 사마의.
우리 꼬꼬마 책사는 조조가 뛰어난 인물이란 것을 진작 간파하고 있었다.
사마의는 분명 조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역시 똑똑한 사람들의 세계는 심오하다니까.
‘…….’
물론 나는 조조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보였는지 알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뱃속에 있는 제 아이를 생각하며 물러난 게 아니겠는가.
도겸쯤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물리칠 수 있으니 구태여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잠깐 기다리는 걸 택한 것이다.
…애초에 조조가 이런 행동을 보인 것에는 내 영향도 상당수 있으리라.
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조조에게 서신을 보내며 임산부는 안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몸에 좋다는 약재도 많이 보내고.
내가 이러는 이유야 있었다.
조조가 만약 예기치 못한 사고로 제 첫 아이를 유산한다면 천하에 어떤 피바람이 불겠는가.
이를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서주 대효도에 버금가는 대학살이 일어나리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상상만 해도 참 두려운 일이었기에 나는 거듭 조조에게 서신을 보내며 안정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참으로 극성이구나. 알았으니 그만 걱정하거라.
오죽하면 조조가 이런 답장을 보냈겠는가.
뭐, 말만 이렇지 조조는 이런 나를 보고 또 귀엽다면서 싱글벙글 웃고 있을 게 뻔했다.
키 큰 시꺼먼 남정네를 보고 귀엽다니.
예전부터 생각하는 건데 나와 사이가 가까운 여인들은 미적 감각이 상당히 뒤틀린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렇게 행동하는 거지….’
만약 사마의가 이런 뒷사정을 안다면 나를 무시무시한 눈길로 바라보았을 터.
또 여자에게 손을 댔냐는 둥 천하 전체를 자기 자식으로 채울 거냐는 둥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쏟아냈겠지.
…왜 자기 남편에게 또박또박 잔소리하는 아내 같냐.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내가 그를 대놓고 언급할 정도로 눈치 없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말을 아꼈다.
하여튼 그렇고 그런 사정으로 제 본거지인 진류에 틀어박힌 조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훗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일단 도겸은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
본래 역사에서도 조조를 상대로 패배하기 바빴던 인물이 어떻게 그녀에게서 승리하겠는가.
심지어 이 세계에서는 서주 대학살이란 자책골도 넣지 않았으니 조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서주를 점령할 것이다.
내가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딱 한 가지밖에 없지.
‘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이름을 지어다오.’
지금쯤 조조가 소중하게 품고 있을 갓난아이.
본래 역사처럼 조앙이란 이름이 붙은 새 생명이 내가 지금 신경 쓰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이를 낳은 다음 제일 먼저 한 행동이 서주 점령하기라니.
조조도 도겸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그대와 다시 만날 때가 기다려지는구나.
나는 조조가 직접 적은 것이 분명한 유려한 필체의 서신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라도 사마의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좋을까?
아니, 뭐라고 설명하든 내 얼굴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쳐다볼 텐데.
난 살짝 고민이 깊어지는 걸 느꼈다.
──────────
내 아이들 중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서희.
두 번째로 태어난 여화.
세 번째로 태어난 관평에, 언제 태어났을지 짐작조차 안 가는 조앙까지….
몇 년 전의 내가 이 상황을 바라봤다면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 엎어지지 않았을까.
솔직히 지금도 놀랍긴 했다.
불과 1년 사이에 가족을 대체 얼마나 늘린 거냐.
내 아이가 다른 또래와 비교해 어른스러운 편이긴 했는데, 갓난아이가 어른스러워 봤자 얼마나 어른스럽겠는가.
하여튼 24시간 신경 써도 모자랄 갓난아이가 우수수 태어나자 내게 휴식 시간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시종에게 잠깐 맡기기도 뭐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갓난아이의 특성상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아주 기겁을 했기 때문.
‘으아아앙──!’
여화는 아주 저택이 떠나가라 울었으며,
‘으우우….’
관평은 뱀을 앞에 둔 개구리처럼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떨어댔다.
그리고 서희는….
“…….”
그때 내 품에 안겨있는 서희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라. 깼네.
여포의 딸인 여화가 활발한 성격을 지녔다면, 서여의 딸인 서희는 제 어머니를 닮아 기묘하리만치 차분한 성격을 지녔다.
“어…. 잘 잤니?”
“…….”
봐라.
지금도 내가 말을 걸고 있는데 아무런 반응 없이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지 않나.
여화는 그래도 내가 말을 걸면 아부부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자그마한 손으로 나를 주물럭거렸는데 말이야.
서희는 그런 것도 없이 나를 계속 쳐다볼 뿐이었다.
대체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네.
거기에 평소처럼 호위 업무에 집중한다며 나를 쭉 지켜보는 서여까지 합세한다면 어떻게 될까.
“…….”
어떻게 되기는.
내게 자석처럼 달라붙은 시선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런 모습조차 귀여워 보이는 건 내 눈에도 콩깍지가 꼈다는 걸 증명하는 거겠지.
무엇보다 이 따스하고 말랑한 감촉은 참을 수 없다.
내가 그 몽실몽실한 뺨따구를 마구 유린했음에도 서희의 표정은 지장보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런 것까지 제 어머니를 닮았네.
“…주인님.”
“응?”
그때 근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서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곧 식사 시간입니다.”
“아, 그런가.”
서여가 말을 거는 타이밍이 이상할 정도로 공교로운데 단순히 기분 탓이겠지.
어느덧 해가 하늘 중천에 떠 있는 걸 확인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서여에게 아이를 건네주려 했다.
“…….”
꽈아악.
얘 또 이러네.
나는 서희가 내 옷깃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제 어머니를 이상하리만치 닮은 서희는 여화나 관평처럼 낯선 사람이 다가온다고 울지 않았다.
단지 옷깃을 꽉 붙잡은 채 아기 판다처럼 버티기 모드에 들어갈 뿐이었다.
문제라면 그거지.
갓난아이인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다는 것.
“…….”
“…….”
나는 모녀가 또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머리를 짚었다.
아이는 보통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지 않나?
왜 나는 상황이 반대로 된 거지.
서여가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떼어내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그러다 아이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거다.
서희는 아기답지 않은 힘으로 버티고, 서여도 아이의 힘이 전부 빠질 때까지 살짝 힘을 준다.
이야. 태어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벌써부터 운동을 하네.
역시 내 딸이야.
그렇게 시작된 줄다리기에 근처에 있던 여포는 눈동자를 깜빡였다.
“…너희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마라.
아까부터 이 모습을 바라보던 여화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이 괜히 이상한 것을 배우지 않을까 걱정됐다.
“아부.”
“으응? 왜 그래?”
여포는 그를 눈치채지 못한 듯 여화를 소중히 껴안은 채 어화둥둥 하기 바빴지만 말이야.
“으음…. 운장의 딸도 저러니?”
“아닙니다.”
“정말로?”
“……예.”
유비가 던진 질문에 관우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그 대화를 듣던 장비가 의문을 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운장 언니. 침묵이 이상할 정도로 긴데?”
“익덕. 너라고 다를 줄 아느냐.”
“…엥?”
장비한테 저주 걸었네.
너도 자신처럼 피곤해질 것이라는 관우의 대답에 장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