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63)
〈 364화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4)
* * *
조조는 내가 예상한 대로 도겸을 순식간에 박살 냈다.
첩보에 의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낀 장수와 병사들이 성문을 열면서 투항했다는데….
아무래도 도겸이 생각보다 더욱 무능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한때 저기 서량에서 황보숭과 함께 활약하며 강족을 토벌했던 인물이라 더 오래 버틸 줄 알았는데.
아니면 더 단순히 조조가 엄청나게 유능했던 것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가능성 있는 가설이라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조조의 진격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
파죽지세(??之?).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으로 한 번 흐름을 잡았을 때 끝을 봐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사자성어다.
훗날 오나라가 멸망할 때 나왔던 단어지.
조조는 그 사자성어를 직접 실천하며 서주를 점령한 이후 곧장 청주까지 치고 올라갔다.
청주라….
조조와는 참 연관이 깊은 지역이 아닌가.
조조는 청주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도적 무리를 소탕하고 항복한 그들을 휘하 장병으로 편입했는데, 그들이 바로 삼국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청주병이다.
수만이나 되는 병사를 거저먹은 조조가 그 순간을 기점으로 무척 강해지지.
만약 무능한 인물에게 편입됐다면 청주병은 그저 빛좋은 개살구가 됐겠지만, 조조는 중국사 전체를 살펴봐도 비교할 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뛰어난 지휘관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법한 손자병법.
손자병법은 현대 시대까지 전해지면서 수많은 버전이 만들어졌는데, 그 수많은 버전의 바탕이 된 원본이 바로 조조가 주석을 단 위무주손자(????子)다.
즉 손자병법을 조조가 위무주손자로 쉽게 풀어서 썼고, 다른 병법가들이 그를 바탕으로 기타 재해석 버전을 내놓았다는 뜻이다.
이걸 보면 손자가 병법을 진짜 어렵게 썼나 봐.
하긴, 중국 최고의 병법가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양반인데 단어 선택 자체가 되게 난해했겠지.
지금 나만 해도 뭘 읽다가 휙휙 던져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멍청한 대장군은 원본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빠르고 이해하기 쉽게 주석을 단 해석 버전을 원합니다.
진짜 읽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변에 있는 꼬꼬마 책사들을 데려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또 그렇게까지 하면서 서적을 읽고 싶진 않았다.
어른이 돼서 어린아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그런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읽기가 싫어.
한고조 유방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부를 싫어하며 유학자만 보면 오줌을 갈기지 않았는가.
훗날 숙손통(???)이라는 인물이 ‘이것만 읽으면 당신도 예법 마스터!’ 버전을 만들어 쓸데없이 유방을 닮은 건달패거리를 갱생시키지 않았더라면 황궁은 진작 개판이 되었을 거다.
난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인물이지.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공부를 하겠다는 의욕 자체가 없었다.
하여튼 조조가 침입한 청주에 자리 잡은 인물 중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공융(??).
무려 그 공구(??)의 20세손 되시겠다.
그래. 공구.
유학을 창시한 그 공자(?子)가 맞다.
혈통이라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이 시대에서 공자의 후손이라는 타이틀은 엄청나게 굉장한 거다.
유교를 배운 유학자라면 모두가 존경하는 공자의 후손이니 당연한 일인가.
공융도 어떻게 보면 동탁의 덕을 본 인물이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동탁이 이런저런 관직을 뿌릴 때 공융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북해상에 임명된 공융은 곧바로 청주로 향해 민심을 수습했고, 훗날 몇십만에 달하는 대규모 도적 무리가 일어나자 성문을 단단히 틀어막고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북해상이 이랬는데 정작 청주를 다스리던 주자사는 뭐 했냐고?
그 양반은 근심 걱정에 굿과 제사만 올리다가 시름시름 앓아 죽었다.
이름이 분명 초화(??)였나.
이놈은 뭔 기도 메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뭐…. 내가 공융을 그렇게 예의주시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 양반.
진짜 유학자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인물이거든.
위로는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한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처럼 제 주군에게도 충심을 지킨다.
어찌나 유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지 당시 사람들이 쉬쉬했던 삼년상을 무려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행한 인물이다.
실제로 삼년상을 치르다 죽기 직전까지 가 주변 사람들이 부축해줬을 정도라 하니 공융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지 않나.
동탁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패악질을 부릴 때 노식과 함께 사사건건 대립하던 인물이 바로 공융이다.
근데 이 인물이 하필 입을 또 엄청나게 잘 터네?
공융은 어찌나 말싸움을 잘했는지 그 조조도 처음에는 상대해주다가 몇 번 패배하고 그냥 무시로 일관했을 정도라 한다.
기껏해야 조조의 장자방이라 불리는 순욱이 승리한 게 전부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아마 프리 스타일로 욕을 쳐맞던 동탁 입장에선 아주 죽을 맛이었을 거다.
근데 공자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에 명성이 워낙 높아서 함부로 손댈 수도 없네?
안 그래도 적이 많았던 동탁은 결국 공융에게 관직을 쥐여주고 중앙에서 멀리 쫓아내 버리는 결정을 내린다.
당시 북해에서 황건적이 기승을 부리던 걸 생각하면 거기 가서 확 죽어버리라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었지.
근데 공융은 예상보다 훨씬 잘 버텼고, 그렇게 북해를 열심히 다스리다가 헌제를 보호하던 조조에게 칙서를 받고 몸을 의탁한다.
그 이후 한나라 황실을 무시하는 조조와 계속 대립하다가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불효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삼족이 멸족당했다.
그런데도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조조를 비판하며 죽었다 하니 얼마나 대쪽같은 성격을 지녔는지 알 수 있을 터.
공융은 왕윤과 동승처럼 한나라 황실이 멸망하는 걸 볼 바에야 죽음을 택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었기에 난 공융에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거지.
“흠….”
“주군.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탁자를 툭툭 두들기며 고민에 잠기자 그를 기가 막히게 눈치챈 제갈량이 말을 걸었다.
난 꼬꼬마 책사의 의견을 듣고자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조조가 청주의 여러 군현을 점령하며 땅을 안정시키고 있지 않나.”
“예. 최근 그 행보로 인해 천하가 떠들썩하지요.”
내 말을 듣던 제갈량이 차분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교해 어느 정도 성장한 제갈량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북해를 다스리는 공융과 충돌하게 될 텐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군.”
“그게 고민이셨군요.”
제갈량은 머리색과 똑같은 흰색 눈동자와 검은색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이라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마법의 지혜 보따리인 제갈량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백우선을 살랑이며 곧바로 해결책을 꺼내 들었다.
“폐하께 부탁하여 공문거(?文, 공융의 자)에게 칙서를 보내시지요.”
“칙서?”
“예. 공문거가 소문대로의 인물이라면 제 권력을 포기하고 곧장 황실로 찾아올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본래 역사에서 조조가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써먹자는 이야기구만.
유표는 이 칙서를 거절하고 몸이 늙었다는 둥 엿이나 먹으라는 둥 이상한 대답을 내놓는 바람에 모가지가 뎅겅 날아갔지.
무언가 날조가 들어간 것 같다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제갈량의 의견을 들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그렇게 하면 쓸데없는 피를 흘리지 않겠군. 고맙다.”
“주군을 모시는 책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갈량은 그리 말했지만 기분은 매우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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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북해군 평수현(? 北?? ???).
본래 낙양에서 활동하다가 과거 동탁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동쪽으로 쫓겨난 인물이 한 부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공융 문거(?? 文).
조정에서 파견한 청주자사가 굿을 올리다가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이후 구심점으로 활약하며 청주를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인물이었다.
말끔한 외형, 한 치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예법.
유학을 공부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핏줄까지.
“조맹덕──!!”
공융은 자신과 비교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세력을 눈앞에 뒀음에도 결코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네년은 어찌하여 조정에서 지정한 임지(??, 임무를 받아 근무하는 곳)를 벗어나 이곳까지 찾아왔느냐─!”
“아아…. 그렇군.”
공융의 당당한 외침을 듣던 조조가 살짝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청주에서 기승을 부리던 도적떼를 처치했음에도 어찌하여 세력을 넓히지 않나 의문이었는데, 말 그대로 북해상(北??) 업무에만 전념하고 있었구나.”
“…….”
“이걸 충심이 깊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조용히 하거라!”
살짝 조소하는 듯한 조조의 말투에 공융은 전혀 지지 않고 맞섰다.
“과거 다른 영토를 침범하며 제 야심을 드러내던 도공조(???, 도겸의 자)에게 합당한 벌을 내린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하지만, 지금 청주까지 제 세력을 사사로이 넓히려 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
“네년도 천하 곳곳에 자리 잡은 다른 역적들과 다르지 않다는 뜻인가!”
그 물음에 조조는 피식 웃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한 말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뭐라고?”
“연주, 서주, 청주.”
조조는 거기까지 말하고 스산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내가 마음이 급해서 오래 기다려 줄 수가 없군.”
“…….”
“당장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전부 베어버리겠다.”
“…전원─! 전투 준비──!!”
그렇게 분위기가 일촉즉발로 치닫자 능글맞은 인상의 여인이 냅다 끼어들었다.
“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십쇼!”
“…무슨 일이냐. 봉효(??).”
자신이 아끼는 책사가 앞으로 나서자 조조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나선 여인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제 예상대로라면 조만간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합의할 수 있을 겁니다!”
“…….”
“조급해하시는 건 이해하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본래 역사에서 조조가 가장 아꼈던 책사.
미래를 예지 수준으로 꿰뚫어보던 군사의 주장에 조조는 살며시 눈을 감고 냉정을 되찾았다.
“좋다. 지금은 기다리도록 하지.”
“휴우….”
그 대답을 들은 여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그 부군(??, 남의 남편을 높이 부르는 말)이라는 분이 누구길래 주군께서 가면 갈수록 조급한 행동을 보이는 걸까.
천재 군사 곽가(??)는 제 예상이 빗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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