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64)
〈 365화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5)
* * *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던 조조가 갑작스럽게 수비 태세를 굳히자 공융은 이를 경계하면서도 언제든지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평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기 시작한 두 군대가 군영을 차린 상황.
말에 올라탄 채 조조의 공격 명령에 맞춰 난장판을 피우려 했던 하후돈은 아쉬운 듯 대도를 허공에 붕붕 휘둘러 댔다.
“싸울 것 같았는데 휴식이라니. 갑자기 뭔가 팍 식네.”
부웅─! 붕─!
하후돈이 든 대도가 살벌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일으키자 근처에 있던 곽가가 화들짝 놀랐다.
“으앗!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런 무서운 흉기를 붕붕 휘둘러대지 마시죠!”
“걱정하지 마! 다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곽가가 아주 기겁을 하는 모습에 하후돈은 유쾌한 듯 힘차게 웃었다.
“애초에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떻게 전장에 서겠어?”
“그만한 흉기를 앞에 두고 겁먹지 않는 사람이 특이한 겁니다!”
하후돈은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는 곽가의 모습을 지켜보다 무언가가 떠오른 듯 말을 걸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전투를 말린 이유가 뭐야?”
“예?”
“자기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싸우지 않고 원만하게 합의할 수 있다며.”
“아하. 그것 말입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에 곽가는 다소 가벼운 태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군이 보시기에 저 공융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 것 같습니까?”
“글쎄…. 척 봐도 꼬장꼬장한 노인네 같은데.”
원소조차 완전히 밀어낸 다음 낙양의 정권을 장악한 동탁을 계속해서 비판하던 인물.
말이 좋아 비판이지 온갖 고사를 언급하며 수많은 욕을 퍼붓던 모습은 자신조차 눈치를 살필 지경이었다.
공자라는 뛰어난 조상을 둔 덕분인지, 그 엄청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비꼬는 공융을 동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세간의 평을 의식하여 원소도 대놓고 처리하지 못한 인물이 공융은 오죽하겠는가.
이 양반은 옛날부터 잘못된 것이 있다 싶으면 불쑥 나타나 상대가 누구든 비판을 서슴치 않던 인물이다.
부패한 십상시를 욕하고, 대장군 하진을 탄핵했으며, 서량의 동탁에게도 굽히지 않던 남자.
사람들은 공융을 두고 상대가 누구든 옳은 말만 하는 뛰어난 유학자라며 그를 칭송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생각이 들겠지.
공융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권력자들을 향해 패기 있게 맞서는 건 좋으나, 정작 그 끝을 보면 공융이 이룬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십상시는 공융이 뭐라고 비판하든 무시하며 한나라를 갉아먹었다.
하진은 탄핵서를 올린 것을 두고 원한을 품은 부하들이 그를 암살하려 했다가 하진 본인이 직접 자비를 베풀었기에 겨우 살아남았다.
공융이 제일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동탁에게도 당연히 미움을 사 북해라는 동쪽 끝까지 쫓겨났으니 그는 결국 눈에 띄는 업적을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저 청주가 완전히 도적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게 버텼다는 것뿐.
그조차도 연주에 있는 조조가 도적 대다수를 토벌하지 않았다면 군을 이끄는 통솔 경험이 별로 없던 공융은 여전히 청주를 안정시키지 못했을 거다.
만약 공융의 이런 행보가 계속된다면 후대가 내리는 공융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뉠 것이다.
자신이 부러질지언정 끝까지 불의에 맞섰던 명예로운 인물.
아니면, 그저 말만 앞서며 내부에 분란을 일으킬 뿐인 이상주의자.
그는 유학자가 가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하후돈은 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왜? 공융이 꼬장꼬장한 노인이라는 것 말고 신경 써야 할 게 있나?”
하후돈의 질문에 곽가는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참 솔직하시군요.”
“그게 바로 내 장점이지!”
“아, 네….”
하후돈은 군대를 관리하는 것에 있어서는 비상한 재주를 보였으나 정치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그 뛰어난 머리가 바로 순수해졌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던 곽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공융은 한나라 황실에 대한 충심을 가진 인물 아닙니까?”
“그렇지.”
“또 저희와 우호적인 세력 중 하나가 칙서를 보낼 수 있고요.”
거기까지 말한 곽가가 제 손뼉을 짝 부딪히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세력이 청주를 안정시키려는 저희를 도와주지 않을까요?”
“으음…. 그런가?”
“그렇죠.”
하후돈의 반응을 지켜보던 곽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저희 세력의 행보를 경계한 그 세력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데….”
“…….”
“제 예측이 맞다면 아마 무조건 도와주겠죠.”
“무슨 예측?”
곽가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작은 주인님의 아버지, 대장군 맞죠?”
“…엥? 어떻게 알았냐?”
조조가 굳이 티를 낼 이유가 없다며 쉬쉬하던 내용을 곽가는 단번에 꿰뚫어봤다.
하후돈이 놀라워하자 곽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대장군이 보낸 사절이 왔다 전달하면 분위기가 확 바뀌시는데,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늘 조조 곁에서 여러 의견을 내던 곽가는 그런 광경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봤다.
‘…흠. 또 자네인가.’
‘그렇습니다.’
가끔 사절로 유비라는 인물이 찾아오면 눈빛이 싸늘해지는 게 문제였지만.
‘…….’
‘…….’
제 주군의 싸늘한 눈빛도 참 무서웠지만 그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넘기는 유비란 인물도 어지간했다.
조조와 유비.
이 두 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저런 인물을 수하로 부리는 대장군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미안하군. 최근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지켜보는 사람마저 긴장시켰던 무시무시한 기 싸움이 다른 방향으로 변질됐다는 게 특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러오는 제 배를 쓰다듬으며 유비를 환영하는 주군의 모습.
‘운장 언니. 이제 어떻게 해?’
‘…내게 묻지 마라.’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딱 달라붙어 있던 관우와 장비란 장수도 유비의 눈치를 살피며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이 아이 좀 보거라. 누구를 닮아서 참 귀엽지 않으냐?’
‘…….’
결국 힘겹게 출산한 제 아이를 자랑스레 보여주는 조조에게 유비는 할 말을 잊은 듯했다.
‘축하…. 드립니다….’
그때 이를 아득바득 가는 소리가 살짝 들려오던 건 분명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모든 상황을 판단한 곽가는 자기 혼자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희는 사실상 혼인 동맹을 맺은 거나 다름없는데, 대장군이 제 우군을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되지 않거든요.”
“아하.”
“여자를 그렇게 늘리고 뒷감당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인 정보에 의하면 다섯 명은 족히 넘기는 것 같던데.
뭐,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니 곽가는 더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술을 마음껏 마시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게 행복한 삶 아니겠는가.
“아, 그 말이 나오니 궁금한 게 있는데.”
“예?”
곽가가 제 허리춤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광경을 지켜보던 하후돈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물을 기가 막히게 평가한다면서.”
“제가 똑똑하긴 하죠.”
“…….”
진짜 겸손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이런 특이한 성격을 지녀서 조조와 잘 어울렸던 걸까.
괴짜 곁에는 괴짜만 모인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 넌 대장군이란 인물을 어떻게 보냐?”
“아아…. 그것 말입니까?”
본래 역사에서 소패왕이라 불리던 손책이 한낱 필부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걸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
원소와 대적하던 걸 꺼리던 조조에게 원소의 열 가지 단점을 나열하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장한 책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황제(高??, 한고조 유방의 시호)와 비슷하다는 게 딱 알맞겠네요.”
“진짜?”
“아마도요.”
곽가는 연거푸 술을 들이켜며 대답했다.
그저 패현이라는 시골 촌구석에서 놀고먹던 백수.
한고조는 한신과 비교해 통솔력이 부족했고, 장량처럼 전체적인 판세를 예측하지도 못했으며, 소하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도 몰랐다.
그런 인물이 감히 대적할 자가 없다는 서초패왕을 물리치고 한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
자신의 부족한 점과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다.
휘하 인재들의 의견에 경청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며 그에 따를 수 있는 결단력을 지녔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면 영웅이 출현한다고 하던가.
하지만 그런 한고조조차 말년에 가서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여러 공신들을 숙청했다.
토사구팽(?死??).
토끼를 잡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
자세히 따져보면 한고조가 그런 결정을 내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지만….
결국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건 사실이지 않나.
고금에서 제일 뛰어난 병법가 중 하나이자 국사무쌍이라 불렸던 한신은 한고조를 가리켜 이리 평했다.
“불능장병, 이선장장.”
(不??兵, ????)
───폐하께선 병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나, 병사의 장수가 아닌 장수의 장수가 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감히 저따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엇보다 뛰어난 능력입니다.
“잉?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단순한 혼잣말입니다.”
곽가는 이미 거나하게 취한 듯 얼굴을 붉히며 실없이 웃었다.
과연 대장군은 한고조와 다른 모습을 보일까?
이를 지켜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으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