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67)
〈 368화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8)
* * *
조조에게 임시로 주목 관직을 주며 3주(?)를 다스리게 한 나는 조조가 언제 일을 끝마칠지 궁금했다.
말이 뒷정리지 그게 제일 귀찮은 일이 아닌가.
서주를 다스리던 도겸은 권력욕 때문에 도적과 손을 잡고 간신배와 놀아나는 등 제 본거지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청주에 머무르던 공융은 군사적 역량이 상당히 부족했기에 청주 곳곳에서 도적 잔당이 활개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를 수습하고 조조와 다시 만나기까지 적어도 한 달은 넘게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북해상 자리에서 물러난 공융이 낙양에 도착하고 얼마 뒤.
조조가 낙양 성문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뭐냐.
호로관 전투 이후 당당히 낙양에 걸어들어와 붙잡혔던 도원 시스터즈와 비슷한 경우였다.
한 세력을 이끄는 군주가 다른 세력이 다스리는 수도에 걸어들어온 상황.
‘…네? 조조가 낙양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고요?!’
‘그래. 병사들이 화들짝 놀랐다던데.’
‘저도 많이 놀랐는데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인물들은 경악하면서 수상하다는 둥 이 기회에 붙잡아야 한다는 둥 여러 의견을 내뱉었지.
당연히 그런 의견을 전부 거절한 나는 쓸데없는 자극 행위를 삼가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호위들을 거느린 채 조조를 만나러 가자 난 꽤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이고…. 이게 맞는지 모르겠네.”
“지금이라도 도주 경로를 짜는 것이….”
병사들이 둥글게 형성한 포위망 속에서 몇몇 인물이 곤란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척 봐도 자매라는 게 느껴지는 담청색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여인들.
그 여인들은 각각 대도와 활이라는 무장을 걸친 상태였다.
조조가 아무 인물이나 데려왔을 리는 없으니 아마 하후돈 같은 믿음직한 장수들이 아닐까.
애초에 조조를 따르는 형제 장수하면 그들밖에 생각이 안 나.
…여기선 자매 장수구나.
이처럼 조조를 제외하면 전부 처음 보는 인물이었지만, 저 개성 있는 모습 덕에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것 말고도 심상치 않은 기세의 장수들이 어마어마한 눈초리로 병사들을 노려보며 조조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눈빛 진짜 살벌하네.
마치 호랑이를 눈앞에서 마주한 기분이다.
엄청나게 묵직해 보이는 쌍극과 철퇴는 또 어떤가.
내 장담하는데 저 장수와 부딪치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은 몸이 찢어지거나 짜부라질 것이다.
실제로 창을 치켜든 병사들은 몸이 빳빳이 굳은 채 눈치를 살피는 상황.
저 모습을 볼 때 조조 근처에서 눈을 부라리는 장수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조조의 호위 장수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인 전위와 허저가 아니겠는가.
제 주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목숨을 구해내는 훌륭한 장수들.
난세의 간웅인 조조는 본래 역사에서 이기기도 많이 이겼지만, 질 때는 아주 완벽하게 개박살이 나며 도망치기 바빴다.
어떨 때는 조조의 이상한 성격 때문에, 어떨 때는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적군의 공세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전적이 있지.
전자로는 미망인을 탐하다가 가후에게 완벽히 허를 찔린 완성 전투가 있고, 후자로는 엄청난 돌격 속도로 부대를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던 마초에게 목숨을 위협당한 동관 전투가 있다.
전위는 완성 전투에서 비무장 상태이었음에도 창을 여러 개 부러트리고 적 병사들을 양 옆구리에 끼운 채 휘두르며 조조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허저는 동관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죽은 뱃사공을 대신해 한 손으로 노를 젓고, 다른 한 손으로 화살을 막아내는 수준이 다른 멀티태스킹을 보여주며 조조를 무사히 구출했지.
말 그대로 조조를 잡기 위해선 일단 저들부터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
그때 보기만 해도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거대한 철퇴를 든 장수가 멀리 있는 내게 시선을 향했다.
…왜. 뭔데.
어째서 쳐다보는 거야.
나를 자신이 들고 있는 철퇴로 뭉개버리겠단 뜻인가?
그건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저런 흉측한 무기에 맞으면 난 분명 토마토처럼 짜부라질 것이다.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 아닌가.
“…누굴 보는 거야?”
당연히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던 여포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눈 안 깔면 죽여버린다.”
“…….”
여포의 위협에도 허저로 추정되는 인물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당당하게 맞섰다.
용맹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답게 그 여포를 마주해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
자기 목숨을 다른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장수가 위협 좀 당한다고 물러설 리가 없었다.
애초에 허저도 연의에서는 여포와 단기접전을 펼친 적이 있으니까.
그를 지켜보던 조조가 허저 한 명으로는 안 된다며 전위와 하후 형제를 비롯한 장수 무려 6명을 대거 투입해 여포를 다구리하던 건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불굴이 달린 것이라 봐도 좋겠네.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자신의 위협에 철퇴를 든 장수가 굴복하지 않자 여포는 제 손에 든 방천화극을 고쳐잡으며 말했다.
“확실히 깡다구는 있나 봐?”
“…….”
“좋아.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너 잘 걸렸…. 읍읍!”
“그래. 거기까지 해.”
나는 급발진 준비를 하는 여포에게 잽싸게 다가가 입을 막았다.
이대로 내버려뒀으면 분명 적토마 타고 갑자기 튀어 나갔을걸.
평소에도 그랬지만 최근 여포가 나와 연관된 일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아서 그런가?
짐승은 가족을 위협하는 외부 요인이 있으면 매우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나.
여포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 보면 될 것 같았다.
──푸르릉.
내가 올라탄 말은 무어라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재주 좋게 적토마 옆으로 달라붙으며 여포를 막기 쉽게 만들어 줬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진짜 똘똘하단 말이지.
덩치가 적토마와 비슷한 것도 그렇고, 얘도 설마 천리마에 속하는 말일까?
내 신변에 대해 온갖 극성은 다 부리는 서여나 여포가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그럴 수 있었다.
솔직히 전투에서 패배해 걸음아 나 살려라 수준으로 달아나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참고로 아이는 황궁 근처에 머무르는 어머니께 잠깐 맡겼다.
‘아, 아들! 우리 귀염둥이가 자꾸 울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처음에는 내 아이를 보기 무섭게 꺄아아 거리면서 좋아하시던 어머니였지만, 내 품을 벗어난 여화가 곧장 울먹거리자 당황하시던 모습은 꽤 유쾌했다.
난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하기는요. 서로 친해져야죠.’
‘그러니까 어떻게 친해져야…?!’
으아아앙───!
‘으아아! 큰일 났다!’
결국 울음을 터트린 여화의 모습에 식은땀만 흘리기 바쁘셨지.
나는 처음부터 할머니의 기강을 세게 잡는 손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부탁하지.’
‘예.’
그나마 내 자택에서 일하며 아이들과 사이가 가까워진 초선이 육아 업무를 잘해냈다.
‘…….’
‘…….’
자신을 건네주려는 걸 눈치챈 서희가 귀신 같이 내 옷깃을 붙들고 버티는 일도 있었지만 넘어가자.
이젠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던지라 아무렇지 않았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훗날 성장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걸까.
진짜 왜 이렇게 개성이 확실한 거지.
이제 얼굴이 익숙한 몇몇 시종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던 관평의 모습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잠깐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졌구만.
하여튼 나와 여포가 보인 행동은 상당히 눈에 띄었기에 주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고 있던 은발의 여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조 맹덕.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이한 언행을 일삼으며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여인.
“오랜만이구나.”
“그래.”
조조는 과거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살짝 능글맞은 표정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차분한 눈동자.
허리춤에 메단 두 자루의 검 하며 장난스러운 기색이 느껴지는 목소리까지.
거의 1년 만에 재회한 건데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아니, 딱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구나.
“…….”
조조가 품에 소중히 껴안은 포대기 하나.
그 포대기가 자기 혼자 꼼지락거리는 걸 지켜보던 나는 포대기가 어떤 용도로 저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화현.”
“…무슨 일이지?”
“너무 열심히 움직였더니 조금 피곤하구나.”
내가 살짝 동요했다는 걸 눈치챈 조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디, 잠깐 쉴 곳을 내어줄 수 있겠느냐?”
“…….”
“그대와 같은 장소라면 더더욱 좋고.”
“…하아.”
나는 정말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주변 부관에게 말했다.
“포위를 풀어라.”
“예!”
내 명령을 전달받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창을 내려놓으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큼지막한 길 속에서, 등을 돌린 나는 조조 일행에게 입을 열었다.
“잘 따라오도록.”
“후후,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여전하군.”
나도 조금 전에 똑같은 생각 했어.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조조와 내 사이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