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70)
EP.370 중추절(中秋節)(1)
“…….”
“…….”
난 오늘도 평소와 같이 품에 안은 서희와 알 수 없는 눈싸움을 벌이다가 자리에 늘어졌다.
역시 인간은 진화하는 생물이라는 걸까.
서희는 부끄럽다며 눈을 피하는 제 어머니와 다르게 아주 강적이었다.
자리에 늘어진 채 누워있던 나는 문득 벽에 걸려있던 달력에 시선이 갔다.
누가 옛날 달력 아니랄까 봐 알아보기 더럽게 힘든 생김새구만.
다음부터는 조금 더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달라 해야겠네.
옛날 중국에서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체 현상을 기반으로 역법(曆法)이란 걸 만들어서 날짜를 계산한다고 들었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역법이라곤 기껏해야 계절마다 밤하늘에 뜨는 별자리가 달라진다는 것과 낮과 밤의 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진다는 것뿐이다.
근데 여름에 낮이 길어지고, 겨울에 밤이 길어지는 것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아닌가.
역법을 정리했다는 책을 살펴봐도 내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안 들려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초력(太初曆)이 뭐고 사분력(四分曆)이 뭐냐고.
왜 자꾸 너희만 아는 이야기 하냐?
…뭐, 애초에 천문술에 관해선 매우 뛰어난 전문가가 존재했으니 그렇게 문제 되는 점은 아니었다.
장각.
하늘을 살펴보고 천기를 예측하며, 온갖 요술도 부린다는 도사 중의 도사.
내가 정말 역법을 배우고 싶다면 장각에게 가르침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근데 학구열이라곤 쥐뿔도 없는 내가 가르침을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렇게 변변찮은 생각만 하면서 달력을 바라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
날짜를 확인하던 나는 문득 명절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추석(秋夕).
음력 8월 15일에 펼쳐지는 대축제.
여긴 중국이니까 중추절(中秋節)이라 부르는 게 맞겠구나.
중추절의 뜻은 별거 아니다.
그냥 가을의 중간이라는 뜻으로 중추절이란 글자를 붙인 것.
한 해 중에서도 보름달이 가장 밝고 둥글게 뜨는 날이라고 하지.
…솔직히 가장 둥근지는 잘 모르겠던데 말이야.
중추절…. 그러니까 추석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면 공통적으로 벌이는 축제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베트남이나 일본 등등 갖가지 나라에서 보내는 명절.
중추절의 유래 자체도 꽤 간단하다.
그냥 고대 군주들이 완벽하게 둥근 보름달을 보고 앞으로 일 잘되게 해달라며 제사를 올렸는데, 그를 지켜보던 백성들이 덩달아 제사를 올리면서 명절이 됐다는 것.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지금은 그 고대 군주가 제사를 올리는 시대였다.
중추절이 전국적인 축제가 되는 때가 바로 당나라 시대였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한나라 시대는 백성들도 같이 제사를 올리고 땡이라는 거지.
제사라 하면 보통 엄격하고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게 정상이니까.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근처에서 여화를 보살피던 여포는 멍하니 늘어져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명절.”
“…명절?”
명절(名節).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를 뜻하는 단어.
…역시 명절은 못 참겠다.
다른 사람이 명절 분위기를 내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라도 명절 분위기를 낼 뿐.
여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난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말했다.
“호병(胡餠) 사러 가자!”
“갑자기?”
내 외침을 들은 여포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호병(胡餠).
다른 말로는 월병(月餅).
한국에서 추석 때 송편을 만들어 먹는다면 중국은 중추절 때 월병을 만들어 먹었다.
아마 현대인에게는 호병이란 이름보단 월병이 더 익숙하겠지.
월병이란 이름은 나중에 가서야 붙여진 건데, 사실 월병 자체는 한나라 시대 때 호병(胡餠)이란 이름으로 민간에 계속 존재했다.
그러면 호병을 월병이라 부른 인물이 누구냐.
바로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양귀비였다.
호병이란 이름이 예쁘지 않다면서 월병으로 바꿔 말하자니까 현종이 옳다꾸나하며 바꿔버린 것.
중추절이 전국적인 축제가 된 시기가 당나라 때였고, 호병이 월병이란 이름을 가진 시기도 당나라 때네.
이것만 보면 이름처럼 달콤한 나라인 건 맞는 것 같다.
…물론 당나라의 당(唐, 당나라 당)과 그 당(糖, 엿 당)은 다른 한자지만.
근데 한자는 서로 비슷하지 않나.
나는 여전히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여포에게 말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귀찮으니까 빨리 사올게!”
“자, 잠깐만! 같이 가!”
내가 자리에서 튀어 나가자 여포는 요령 좋게 여화를 껴안은 상태로 방천화극을 챙겼다.
당연히 서여도 나와 내 품속에 있는 서희를 지키기 위해 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나는 방문을 벌컥 열었고,
“…….”
문 앞에 서 있던 초선과 눈이 딱 마주쳤다.
…깜짝이야.
너 왜 거기 서 있냐.
내 허락을 받고 허리춤에 칠성보도를 매단 모습이 인상적인 여인.
초선은 마치 할 말이 있어 이곳에 서 있다가 문을 벌컥 연 나와 마주친 모양새였다.
나도 눈치가 없는 인물은 아니었던지라 초선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그렇습니다. 주인님.”
초선은 공손한 태도로 예의를 갖추면서 대답했다.
“호병(胡餠)이라면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래?”
확실히 초선의 요리 솜씨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귀찮게 바깥으로 나가서 사 먹는 것보단 집안에서 여유롭게 호병을 즐기는 쪽이 더 끌렸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부탁하도록 하지.”
“예.”
훗날 경국지색이라 불릴 여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올리며 물러났다.
얼굴도 예쁘고 요리도 잘하는 여자라….
남성이라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전부 갖췄네.
초선을 떠올리던 내가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를 지켜보던 여포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정릉은 요리 잘하는 여자가 좋아?”
“응? 그야 좋아하지.”
미각이란 것은 인간의 행복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죽하면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다가 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겠는가.
요리는 노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힘든 일이라 이를 잘한다고 하면 몇 점은 따고 들어가는 거다.
요리를 잘하는 여자와는 평생 간다는 말도 있다고 하던데.
이와 관련해서 아름다운 여자와 요리 잘하는 여자 중 어느 쪽이 더 좋냐며 남자끼리 진지한 토론을 나누는 상황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은 여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결의가 담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요리 연습해봐야겠네!”
“어어….”
난 한 손으로 방천화극을 강하게 움켜쥔 여포를 바라보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여포가 요리를 한다고?
내 두뇌는 여러 단어가 심상치 않은 문장으로 조합되기 무섭게 팽팽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아! 또 박살 내버렸다!’
힘 조절을 잘못해 도마나 칼 같은 주방 기구를 부숴버린다거나.
‘껍질 벗기는 것 정도야 쉽지! 이것 봐…라?’
감자나 사과의 무게를 절반 이하로 줄여버린다거나.
‘…왜 이렇게 새까매졌지?’
요리 재료를 석탄으로 만드는 기적의 연금술을 선보인다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에 불안한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리를 잘하는 여포를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 어쩌면 내 괜한 선입견일 수도 있잖아?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다.
난 근처에 있던 서여에게 물었다.
“서여는 어때? 요리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서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주인님의 신변이 더 중요합니다.”
“으음….”
나는 그 대답에 잠시 고민하다가 툭 내뱉었다.
“만약 우리 둘이서 어딘가에 조난당한다면?”
“…….”
“내가 그렇게 쫄쫄 굶다가, 아니면 뭘 잘못 먹어서 픽 쓰러지면 어떻게 해?”
“…!”
그를 들은 서여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는 평소 요리를 연습하려고 해도 자칫하면 다칠 수 있다며 주변 사람이 만류하는 상황이다.
덕분에 난 요리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봐도 될 수준이지.
지금 이 시대는 라면처럼 간편한 요리도 없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내가 서여와 단둘이 어딘가에 조난당한다는 상황 자체가 없겠지만 말이야.
정 그 상황이 걱정되면 육포 같은 걸 들고 다니면 된다.
…문제는 옛날 육포가 더럽게 맛이 없다는 거지.
꼭 나무껍질을 씹는 것 같은 감촉에 이게 육포인지 소금 덩어리인지 알 수 없는 짠맛까지.
현대에서 먹었던 육포를 생각했다가는 무척 후회한다.
내가 그랬거든.
정말 살기 위해 꾸역꾸역 뱃속으로 밀어 넣는 음식이라 해야 할까.
이런 걸 주식으로 삼는 북방 유목 민족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거기는 건조하고 추운 특유의 기후 때문에 소금에 절이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한결 낫다고는 하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내가 툭 내뱉은 말이 치명타였는지 서여도 여포처럼 곧장 요리 연습을 하겠다며 나섰다.
부인의 수제 요리를 드디어 먹을 수 있는 걸까?
미래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살짝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