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74)
EP.374 예주(2)
행동 방침을 결정한 나는 일단 계획부터 수립하기 시작했다.
“예주를 평화적으로 점령할 방법이요?”
“그래.”
평소와 같이 서류를 바라보다 내 부름에 응한 꼬꼬마 군사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으으음….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아예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점령하는 건 힘들걸요?”
“응?”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마의는 제 보랏빛 눈동자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황건적.”
“…….”
“그놈들은 교섭 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그를 들은 나는 머리를 짚었다.
이래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무섭다 하는 건가.
대체 얼마나 한나라에게 게거품을 물고 살았으면 그 사마의마저 외교 자체가 불가능한 세력으로 판단하는 거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유순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독기만 더 늘어난 모양이다.
“근데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니죠.”
그때 내 행동을 지켜보던 사마의가 말을 이었다.
“황건적이란 공공의 적이 있으니 예주자사 공주나 진왕 유총의 협력을 받는 건 쉬울 거예요.”
“음….”
“황명을 받아 골칫거리를 해결해주러 왔다고 말하면 저희를 환영하는 것 말고 방도가 없을 테니까요.”
사마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예주를 둘러보다가 죄를 몇 개 덮어씌워서 두 명의 목을 베어버리면…. 아야!”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나는 누가 이리 아니랄까 봐 무서운 계획을 내뱉는 사마의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물론 내 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꼬꼬마 군사님.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랬지?”
“호호마 아히허흥요…! 어힝해 히읍 흐망해효…!(꼬꼬마 아니거든요…! 어린애 취급 그만해요…!)”
사마의는 볼따구가 잡아당겨지는 와중에도 제 할 말은 하는 소녀였다.
내게 볼따구가 잡히면 아야야 소리만 내며 어쩔 줄 모르는 제갈량과는 다른 모습.
사마의의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확인한 나는 볼따구를 놓아주었다.
“아직 두 명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데 냅다 죽이자고 하는 건 옳지 않아.”
“씨이…. 그래도 이게 가장 확실하고 뒤탈 없는 방법인데….”
내 말을 들은 사마의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보면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사마의가 어째서 이런 계책을 냈는지 알고 있던 나는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알아. 내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낸 계책이라는 거.”
“…….”
“고마우니까 쉬는 시간 동안 같이 뭐라도 사 먹을래?”
“…흥. 그러면 제 화가 풀릴 줄 알고요?”
내가 어화둥둥 하며 쓰다듬어주자 사마의는 고개를 휙 돌리면서 말했다.
“저는 과자 먹을래요.”
“그래.”
이미 화는 가라앉은 것 같았다.
──────────
내가 비록 사마의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볼따구를 잡아당기긴 했지만, 사마의가 낸 계책이 나쁘다는 이야긴 아니었다.
황명을 등에 업은 대장군의 군세가 국가 업무라면서 자기 땅 좀 들어오겠다는데 누가 문을 걸어 잠그겠는가.
만약 그러는 인물이 있다면 저놈은 뭔가 이상하다면서 요주의 명단에 올려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예주자사 공주와 진왕 유총은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예주자사는 지금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진왕은 주변 사람의 평을 들어봤을 때 황제 자리에 오르겠다며 대형 사고를 칠 인물이 아니었다.
뭐라고 하더라.
다른 관리가 백성에게 재물을 뜯어내기만 하고 나랏일을 하지 않아 한나라 곳곳에서 흉년이 들 때 진왕의 영토에서는 풍년만 들었다고 한다.
진왕이 주술 같은 걸 부려서 풍년이 든 건 아니고, 자기 영토를 공정하게 잘 다스리니까 백성이 열심히 일해 풍년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 지역 관리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나타내는 황건군 숫자도 진국(陳國) 내부에서는 무척 적었다.
이렇게 능력 있는 인물이 제 권력욕 때문에 반기를 든다면 매우 골치 아파지겠지.
하지만 그러한 점도 엄청나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후왕이다. 제후왕.
관직으로만 따지면 대장군인 나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귀한 분이란 뜻.
제후왕은 황제가 임명한 영토 안에서 아예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다.
중국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인 팔왕의 난도 이런 제후왕을 너무나 많이 임명해서 개판이 일어난 것.
국사무쌍이라 불렸던 한신도 제후왕 할 거라며 징징거리다가 한고조에게 제대로 찍히지 않았는가.
이처럼 명예와 권력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자리인데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이상한 거지.
…문제는 그런 이상한 놈이 상당히 많다는 건데, 이야기만 들어보면 진왕은 그럴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계획대로 잘 흘러간다면 유총을 직접 마주할 수 있을 테니 그때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점은 딱 하나다.
──창천이사, 황천당립!(蒼天已死, 黃天當立!)
──세제갑자, 천하대길!(歲在甲子, 天下大吉!)
내가 아직 병주에서 흑산적과 티격태격할 때 지겹게도 들었던 구호들.
한나라를 불태우고 그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기치 아래 모인 수십만 백성의 외침이었다.
황보숭의 지휘 하에 이루어진 거록 공방전을 끝으로 그들은 예전만 한 기세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한때 한나라를 진동시켰던 황건이란 이름은 모두의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적어도 이들을 단순한 도적떼라며 얕보는 인물은 없다는 거지.
애초에 황건군을 얕보던 놈들은 난이 일어날 당시 전부 이등분 났다.
그 사마의조차 외교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은 정예 집단이지만….
지금 내 세력에는 그 인물이 있지 않나.
황건 무리를 이끌던 정신적 지주.
대현량사 장각(大賢良師 張角).
언젠가 낙양에 찾아온 적이 있던 황건군 장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분께서 선택한 세력이라면 저희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이름이 분명 관해였나.
삼국지 연의에서 그 관우와 무려 수십 합을 겨룬 장수.
난 관우와 싸운다면 화웅이나 안량처럼 단번에 정/릉이 될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지금은 관우도 사랑하는 남편을 베지 못할 테니 무승부라 봐야 하나?
하여튼 그 정도나 되는 실력이면 황건군 세력 내부에서도 한 끗 발하는 인물일 텐데,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우리 세력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예주에 남은 황건군 잔당들이 근처 세력을 이 악물고 견제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 세력이 다스리는 영토는 황건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원술을 맹주로 삼은 연합군에게 내가 두들겨 맞고 있을 때 그들의 본진에 불을 지르면서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쳤다.
이렇게 우호적인 세력이니만큼 그들을 흡수하고자 하면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황건군을 티 안 나게 흡수할 수 있을까.
외교 불가 낙인이 찍혀있는 집단을 받아들였단 소문이 퍼지면 이를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도 나올 텐데….
솔직히 지금 내 위상을 생각해보면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제게 찾아오신 건가요?”
“응.”
따로 마련된 의원에서 한가롭게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던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익숙한 몸짓으로 주방을 서성였다.
머지않아 찬장에서 찻잎을 꺼낸 여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되네요.”
“어째서지?”
“지금 활동하는 황건군은 소수밖에 없으니까요.”
여인은 내게 향긋한 향이 나는 차를 타오면서 말을 이었다.
“기껏해야 수천 명.”
“…….”
“야전에서는 매복이나 기습 같은 전술로 숫자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공성전은 불가능하죠.”
한때 동탁을 비롯한 한나라 토벌군과 몇 년동안 싸우며 여러 번 승리했던 여인이 싱긋 웃었다.
“결국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뜻인데, 예주자사가 그를 포착할 정도로 능력이 좋았다면 진작 이변이 일어났을 거예요.”
그러니까 적당히 거짓말을 치면 눈치채지 못할 거란 뜻인가.
근데 수천 명도 적은 숫자가 아닌데 말이야.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기본 단위가 만 명을 오가는 중국에선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는 걸까.
황건군이 막 일어날 당시에는 그 숫자가 수십만에 달했다고 하니 장각 입장에선 적게 보일 만했다.
난 차가 식기를 기다리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진왕 유총은?”
“으음…. 예주자사보다 유능하긴 한데 상황은 비슷하더군요.”
진왕은 제 영토와 백성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둬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장각은 대답했다.
먼저 치지는 않겠지만, 날 때리는 순간 전부 족쳐버리겠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예주 전체를 수색하는 척하면서 그들을 흡수하면 되겠군.”
“예.”
행동 방침을 완벽히 정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앞에 놓여있던 차를 마셨다.
“…….”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써.
혹시 찻잎 말고 다른 것도 넣은 건가?
“몸에 좋다는 약재도 넣어봤는데, 평은 어떠신지요?”
약재를 넣었는데 향긋한 향기가 난다는 게 놀랍구나.
난 장난스럽게 묻는 장각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선하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