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75)
EP.375 예주(3)
예주를 흡수하는데 대충 며칠이 걸릴까 계산하던 나는 의외로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낙양이 있는 사례주와 인접한 위치.
항복을 권유하면 높은 확률로 받아들일 소규모 세력들.
이런 두 가지 요소가 겹쳤기에 일이 아주 잘 풀린다면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인 입동(立冬, 11월 초반) 전에 예주 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걸핏하면 저기 강동이나 익주, 남중처럼 길이 험하고 거리가 먼 지역만 가다가 가까운 지역을 가니 감회가 새롭네.
알기 쉽게 다음 계획의 요점만 쏙쏙 정리한 나는 그 내용을 표문으로 적어 폐하께 올렸다.
“대장군.”
“부르셨습니까.”
그리고 그 표문을 익숙한 몸짓으로 살펴보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낙양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바깥을 돌아다니려는 것이냐.”
“…폐하?”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폐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랏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분명 매력적이다만, 짐은 그대가 시간에 쫓겨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
“심지어 대장군 곁에는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지 않느냐.”
폐하는 짐짓 엄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대의 건강과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이 표문은 들어줄 수 없다.”
“으으음….”
내 요청을 이리 단호하게 거절한 적은 처음이네.
폐하께서는 내가 일에 너무 열중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시는 모습이었다.
어찌해야 폐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는 살짝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직접 출진하지 않는 것이라면 괜찮으시겠습니까?”
“…….”
“한나라 휘하엔 유능한 장군들이 많으니 굳이 제가 없더라도 일을 잘 처리할 것입니다.”
이것마저 안 통하면 상황이 어려워지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야지.
이성보단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내가 마음을 살짝 졸이고 있을 무렵 폐하의 입이 조금씩 열렸다.
“…그렇다면 상관없다.”
“감사합니다. 폐하.”
다행히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폐하로부터 허락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하거라.”
그때 폐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약 낙양을 빠져나갔단 소식이 들리면, 곧장 황궁으로 돌아오란 명령을 내릴 것이다.”
“…….”
“정 못 믿겠다면 시험해봐도 좋다.”
흑요석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스산하게 빛내는 폐하의 모습.
그를 지켜보던 난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이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돌아가면 외정 사령관으로 누굴 임명해야 할지 고민부터 해야겠다.
──────────
폐하로부터 신신당부를 받은 나는 당분간 낙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외정 사령관으로 누굴 뽑아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군대 전체를 이끄는 사령관은 단순히 전투에서 잘 싸운다고 해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거든.
언제 어디를 어떻게 공격할지 결정하는 것도 사령관이고, 부대를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하는 것도 사령관이니까.
말 그대로 한 사람의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능력을 시험하는 자리라 볼 수 있었다.
나는 휘하 인재들이 워낙 유능해서 반쯤 업혀간 거니 예외로 치자.
여포와 제갈량을 같은 군단에서 데리고 다니는데 지는 게 이상한 거지.
사실 외정 사령관이라 하면 가장 완벽한 인물로 조조가 있긴 하다.
자신의 사이코스러운 성격이 제 발목을 붙잡지만 않았더라도 천하 통일을 이뤘을 인물.
패배한 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온갖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며 끝내 위나라를 건국한 그 능력은 어딘가를 정벌하는데 매우 걸맞은 인재였다.
그래서 그 조조가 지금 뭐 하고 있느냐.
“마응마.”
“그래. 여기 있으니 천천히 먹거라.”
조조는 내 아이를 낳은 다른 여인들처럼 아기를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였다.
“꺄우!”
“어허. 전부 흘리지 않았느냐. 다시 한번 아 하도록.”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면서 저리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그런 여성을 보고 나랏일이라며 사령관 직책을 쥐여줄 만큼 막돼먹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저번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 않나.
조조는 언제 어디서 사이코 성격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라고.
가족과 억지로 떨어진 것도 화나는데, 만약 예주자사나 진왕이 조조의 성질을 긁는 일이 생기면 대체 무슨 대형 사고가 터질지 상상도 안 됐다.
누군가는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근데 사고는 꼭 그럴 때 터지는 법이다.
“아부우.”
우물우물.
“옳지. 잘 먹는구나.”
잘게 다진 소고기와 품질 좋은 채소를 포함한 온갖 호화스러운 재료.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듬뿍 들어간 이유식을 조앙이 꼭꼭 씹어 삼키는 모습에 조조는 싱긋 웃어 보였다.
팔삭둥이로 태어난 조앙은 임신 시기는 꽤 늦었을지언정 아기 중에서는 제일 먼저 태어나 맏언니가 되어버렸다.
일찍 태어났으니 성장 과정은 서희보다도 빨라졌고, 그 결과 이유식을 제일 먼저 먹기 시작한 것이다.
보편적으로 아기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는 시기는 4달에서 6달 사이라는데, 당연히 아이마다 차이는 있었다.
‘마응마.’
조조는 조앙이 자꾸 어른이 먹는 음식을 탐내자 직접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다.
‘흐음…. 슬슬 이유식을 먹을 때인가? 어려울 것 없지.’
‘오. 요리도 할 줄 알아?’
‘직접 지켜보고 판단해 보도록.’
누가 못하는 것 하나 없는 천재 아니랄까 봐 요리도 잘하더라.
그 사이코스러운 성격만 아니었다면 본래 역사의 조조도 광무제처럼 먼치킨 행보를 걸으며 눈앞에 있는 적들을 걸리는 족족 개박살 냈을 텐데….
“무슨 생각을 그리하나?”
“잠깐 나랏일에 대해서….”
“또 재미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조조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뭐, 재미없는 고민인 건 맞지.
나라도 집안에서 나랏일 생각만 하는 부인을 보면 조조처럼 질린 반응을 보일 것 같긴 하다.
내가 살짝 얼떨떨한 기색을 드러내자 조조는 웃으면서 곱게 차린 밥상을 내밀었다.
“자, 아기 말고도 그대를 위한 밥상을 준비했느니라.”
“…….”
언제 이런 걸 다 차렸대.
나는 황궁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조차 놀라워할 수준 높은 요리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혹시 맛이 없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다만.”
“그렇다면 먹어보고 감상평을 들려다오.”
거기까지 말한 조조는 고개를 돌려 아기를 바라봤다.
“조앙아. 너는 이 어미의 요리가 어땠느냐?”
“마응마!”
누굴 닮아서 이렇게 귀여운 걸까.
어느샌가 이유식을 뚝딱 해치운 조앙은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말을 알아듣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저 모습을 볼 때 적어도 이유식이 만족스럽다는 건 알겠다.
폐하와의 알현이 끝나자마자 조조에게 찾아온 나는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난 식기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좋아. 고마운 마음으로 먹을게.”
“후후,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조조는 이런 맛에 요리를 하는 거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
그렇게 나는 조조가 내온 요리를 만족스럽게 먹어치웠다.
솔직히 높은 자리에 앉으면서 내 입맛이 좀 높아졌는데 말이야.
조앙이 맘마 거리면서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군.
조조는 능력만으로 따지면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팔방미인답게 매우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녔다.
“쿨….”
“귀엽기도 하지.”
조앙은 배가 부르자 제 어머니의 품에 폭 안겨 곤히 잠들었다.
조조는 그런 아기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조금 전에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느냐?”
“아. 그것 말이지.”
그 질문을 들은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내 설명에 조조가 입을 열었다.
“외정 사령관 말이더냐?”
“그래. 예주를 점령하는 임무를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하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전투 한 번 없이 예주를 차지하겠다만, 세상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이왕이면 성격에 모난 곳이 없고 대국적인 판단을 잘하는 인재가 맡아주면 좋을 것 같은데….
조조는 살짝 아쉽다는 기색을 보였다.
“흐음. 서주와 청주의 뒷수습만 아니었더라도 자효(子孝, 조인의 자)를 추천했을 텐데.”
그 인물이라면 인정이지.
연의에서는 영 존재감이 없지만 정사에서는 하늘이 내린 장수라며 극찬을 받았던 인재가 아닌가.
조조의 부하 장수 중 단독으로 유비를 상대해서 승리한 유일한 장수.
이렇게 생각해 보니 조조 세력엔 조조 본인 말고도 뛰어난 인물이 정말 많았다.
조조의 말을 들은 나는 피식 웃었다.
“괜찮다. 조금 전에 결정했으니까.”
“그게 누구지?”
“우리 세력 최고참.”
내가 두루뭉술하게 설명하자 조조는 의문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성격에 모난 곳이 없고, 과감하게 돌진할 때와 신중하게 행동할 때를 잘 아는 인물.
조조가 왼쪽에서 유비와 투닥거릴 때 오른쪽에서 손권을 개박살 내며 전선 하나를 통째로 책임졌던 장수가 나설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