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78)
EP.378 예주(6)
예주 어딘가에 있는 외딴 산속.
이런저런 재료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낸 임시 주거지 안쪽에서 여러 인물이 탁자를 둘러싼 채 모여있었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은 이도 있는가 하면, 무언가를 고심히 생각하는 듯 턱을 괸 채 창문 바깥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또 덩치가 산만한 근육질의 남성은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은 책상다리를 한 채 침묵을 지켰다.
그 인물의 성격이 극명히 드러나는 개성 있는 자세.
서로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딱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칼, 창, 둔기, 활….
가지각색의 무기를 걸친 이들의 기세가 모두 범상치 않았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전체적으로 노란빛을 띄는 장비를 걸쳤다는 것이었다.
“…이봐.”
그때 자신의 턱을 괸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여인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툭 중얼거렸다.
“내가 저번부터 고민하던 건데, 창문 크기 좀 줄여도 되지 않아?”
“…….”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크다고.”
심각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에 팔짱을 낀 조용한 인상의 인물이 대답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냐.”
“아니, 날이 어두워질 때마다 날벌레가 엄청나게 들어와!”
가벼운 무장을 걸친 여인은 자신의 소매를 걷으면서 외쳤다.
“이것 좀 보라고! 어젯밤도 많이 물렸어!”
그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여인의 팔뚝에는 벌레가 물고 간 흔적들이 여실히 남아있었다.
그런 여인을 바라보던 또 다른 인물은 한 차례 코웃음 쳤다.
“흥! 벌레한테 몇 번 물렸다고 징징대는 꼴이 나약하구나!”
“뭐라고?”
여인은 자신을 비웃은 덩치 큰 인물에게 표정을 왈칵 찌푸렸다.
“그러면 너는 한 번도 안 물렸냐?”
“하하! 당연한 소리를! 이 근육을 봐라!”
마치 그 질문만 기다렸다는 듯 거구의 남성이 재빠르게 자세를 취하면서 제 근육을 과시해 보였다.
대머리의 남성이 뜬금없이 근육을 자랑하는 모습은 그를 지켜보는 인물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선사했다.
“한낱 벌레들은 온갖 노력으로 담금질 된 내 강철 근육을 뚫을 수 없다!”
“아…. 그래?”
그건 네가 벌레에게 잘 안 물리는 체질이 아닐까.
물론 그렇게 말해봤자 저 미친놈이 알아들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저놈을 절천야차(折天夜叉, 하늘을 끊는 악귀)라 부르면서 두려워 한다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하늘을 끊는 게 아니라 제 정신줄을 끊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해라. 오늘이 어떤 날인지 잊었느냐.”
자신의 창을 옆에 기대어 둔 남성의 말.
“그건….”
“크흠….”
그 말에 시끌벅적 굴던 두 인물은 할 말이 없다는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쾅─!
“드디어 왔다!”
한 여성이 건물의 문을 힘차게 발로 차면서 등장했다.
그 요란스러운 등장에 한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문을 또 박살냈구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에잉, 발로 차도 망가지지 않게 보수해야지 원….”
노인의 말에 대답한 여성은 자신이 소중히 품고 있던 물건을 탁자 위에 쿵 소리를 내며 올려놓았다.
이 집단에서 가장 뛰어난 무력을 지닌 여성이 소중하게 품고 온 물건은 다름아닌 서신이었다.
“빠, 빨리! 빨리 열어봐!”
“우오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던 여인과 남성은 그 서신을 보기 무섭게 흥분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상한 말싸움을 벌이던 이들치고 지나치게 죽이 잘 맞는 모습.
그 모습은 방정맞다 불러도 손색이 없었으나 건물 안에 있는 인원 중 누구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
왜냐하면 자신들도 몸이 들썩이는 걸 겨우 참고 있었으니까.
팔짱을 끼고 있는 조용한 인상의 남성도, 혀를 끌끌 차며 여성을 타박한 노인도 서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한 달에 한 번만 오는 귀하고도 귀한 소식.
대장군의 묵인 하에 따로 소식통까지 만든 이들은 특정 인물로부터 계속 서신을 주고 받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특정 인물이 누구냐.
“크흑…. 대현량사님….”
“어허! 지금은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누누히 이르지 않았느냐!”
“아, 아 참. 그랬지….”
한때 수많은 백성이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인물.
본래 역사에서 한나라 멸망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이었다.
──────────
장료에게 군사 일부를 맡기면서 지휘관으로 임명한 나는 계획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장각과 대화를 나눴다.
“황건군에게 서신을 보내 미리 자리를 뜨게 만들겠다고?”
“예. 때마침 연락책도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장각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황건군 중 몇몇이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해서 낙양에 머무르고 있었던가.
황건군이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해 도시에 침입한다.
말만 들으면 꽤 무서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정작 낙양에서 하는 일은 별거 아니었다.
평소에는 상인이나 농부처럼 백성들 사이에 섞이기 쉬운 직업으로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다가, 한 달에 한 번 특정한 날이 되면 장각에게 서신 한 장을 받고 동쪽에 있는 도시로 향한다.
가는 도시는 그때그때 바뀐다만, 바뀐 목적지가 서주에 있든 연주에 있든 상관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길에 예주가 있으면 될 뿐이니까.
하는 행동만 봤을 때는 정말 무해한 백성 그 자체였기에 이들이 꼬리를 밟힌 적은 없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연락책일 뿐이다.
따로 통제 구역에 침입하지도 않고, 정보를 몰래 빼내려는 행동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들이 잡히겠는가.
물론 그들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순간 낙양 전체를 감시하는 병사들에게 바로 들키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런데, 군대 규율이 여간 빡빡한 게 아니더라고.
뭔가 잘못해서 선임에게 갈굼 받는 병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 과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지경.
게임에서 나오는 것처럼 암살자 한 명이 기지 전체를 은밀히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흔히 이 악물고 못 본 척한다 표현하는, 게임적 허용이 없는 세상이니까.
서여나 여포 같은 인간 흉기가 대놓고 쳐들어가서 몰살하는 건 가능할 지도 모르겠네.
…근데 그건 암살이 아니잖아.
나는 장각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다면 황건군들을 어디로 움직일 계획이지?”
“…그것과 관련해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장각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을…. 받아들이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받아들여야지.”
그 질문에 난 고민 없이 곧장 대답했다.
“신경 쓰이는 점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전부 죽여버릴 순 없잖아?”
“…….”
“다시 평범한 백성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리 해주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군대에서 활동하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부대를 신설할 거다.”
싸우는 것에 능숙한 정예 병사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장각만 보면 끔뻑 넘어가는 놈들 같으니 그들을 제어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터.
아마 특수 부대 개념으로 운영하면 될 것 같은데.
“새로운 부대 이름은 뭐가 좋을까….”
장각을 눈앞에 둔 채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과거 황건군이 질리도록 외쳤던 구호를 떠올렸다.
푸른 하늘은 죽었다. 곧 누런 하늘이 일어날 것이다.
때는 바로 갑자년. 그때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
“대천군(大天軍)으로 하지 뭐.”
“꽤…. 엄청난 이름이네요.”
장각의 감상평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별다른 뜻은 없었다.
내가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글자만 붙였을 뿐.
원래 옛날 특수 부대는 멋있는 이름을 붙이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조조만 하더라도 제 직속 부대에 호표기(虎豹騎)란 이름을 붙였고, 유비도 자신의 부대에게 백이병(白毦兵)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호랑이와 표범과 같은 기세를 지녀서 호표기라 불렀고, 흰색 깃털과 동물 가죽으로 무장해서 백이병이라 불린 것.
…유비는 백마의종을 이끌던 공손찬에게 영향을 받아 백이병이란 부대를 만든 걸까?
아무튼 위나라와 촉나라에 이런 멋있는 이름을 지닌 특수 부대가 있는데, 내가 밀릴 순 없다.
오나라 특수 부대는 뭐가 있었냐고?
미안하지만 까먹었어.
난 장각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들의 지휘는 네게 맡기겠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애초에 네 명령이 아니면 들을 것 같지도 않아.”
애초에 장각이 있으니까 그들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말도 있지.
나는 주변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그런 꼴사나운 인물은 되고 싶지 않았다.
“…….”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장각은 나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