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8)
EP.38 정비(4)
여포는 이쪽으로 오면 재미난 걸 구경할 수 있다는 장각의 말에 대충 도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설명했다.
“확실히 장각 말대로 재미있기는 하네.”
여전히 우리를 째릿 노려보는 오추마를 바라본 여포가 말했다.
“나는 말이 저렇게 불량한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
나도 처음이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가면 되는 걸 왜 굳이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시비를 거는 걸까.
어린애가 관심 있는 아이한테 짓궂은 장난을 치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건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말한테 받는 짓궂은 장난이라.
적어도 나는 받고 싶지 않았다.
여포에게 내 호위를 맡긴 서여는 오추마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음…. 지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제압할지 궁금한데.”
여포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 차이가 크니 정면에서 막을 것 같지는 않고…. 역시 적당히 힘 빼다가 말 위에 올라타려나?”
“그게 보통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의 말대로 서여는 적토마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오추마에 비하면 완전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멀리서 봐도 다 큰 성인 남성이 끙끙대며 올라타야 하는 크기인데 서여는 저 살아있는 전차를 과연 어떻게 제압할까.
힘은 문제가 될 것이 없어도 저 어마어마한 체격 차이는 문제가 있었다.
마치 어른과 어린아이가 싸우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히히힝──!!
서여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우리를 노려보고 있던 오추마는 울음소리를 내며 돌진해왔다.
오추마는 자신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대로 돌파했다.
나무든 돌이든 평등하게 박살 내며 다가오는 검은색 말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전차라고 비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건 선 넘은 거 아니냐.
적토마도 적토마지만 오추마는 거기서 한술 더 뜬 괴물 같은 말이었다.
“저게 뭐야.”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
나는 실시간으로 자연이 파괴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여포조차 경악한 표정으로 오추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여포는 떨리는 목소리로 옆에 있던 적토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적토야. 너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히힝.”
적토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가…….”
이제 타고 있는 말에서조차 밀리는 거냐며 여포가 충격받았다.
나는 침울해진 여포에게 다가가 살짝 양 볼을 꼬집었다.
서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말랑한 감촉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말 한 것 같은데.
“…머 하흐 지시야?(뭐 하는 짓이야?)”
난데없이 볼을 꼬집은 내 행동에 여포가 의문 섞인 말을 내뱉었다.
“괜찮아?”
“…….”
내가 어째서 이러는 건지 눈치챈 여포가 잠깐 침묵하더니 평소의 표정을 되찾았다.
“…흐. 내하 겨후 이러 히호 기하 쥬흐 거 가하? (…흥. 내가 겨우 이런 일로 기가 죽을 것 같아?)”
침울한 기색이 사라진 여포는 당당하게 말했다.
“듀호 하. 겨후 이히흐 허 아햐. (두고 봐. 결국 이기는 건 나야.)”
“그래.”
나는 그런 여포의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해서 이허 어헤 오하휴 허야? (……그래서 이거 언제 놓아줄 거야?)”
“아, 미안.”
여포의 말에 나는 잡고 있던 볼을 놓아주었다. 너무 중독되는 감촉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으으…. 아프지는 않은데 기분이 이상하네.”
“더 해줄까?”
“됐거든.”
여포는 자신의 볼을 잠깐 문지르더니 내게서 홱 고개를 돌렸다. 귀가 빨간 것을 보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여포와 그러는 사이 꽤 거리가 있던 오추마와 서여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졌다.
“오, 부딪힌다.”
여포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여는 코앞까지 다가온 오추마를 바라보다가 옆으로 움직여 돌진을 피했다.
역시 시간을 들여 오추마의 힘을 빼려는 건가…. 싶은 순간 서여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여줬다.
서여는 그대로 지나쳐가는 오추마의 꼬리를 붙잡고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말의 꼬리를 붙잡고 강제로 멈춰세우는 모습.
히힝?!
오추마도 순간 당황한 듯했지만 대놓고 힘 싸움을 거는 서여의 모습에 콧김을 뿜으며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버티려는 사람과 떨쳐내려는 말.
흙이 사방으로 튀면서 땅에 기나긴 실선이 그어졌다.
이야. 땅에서 수상스키를 타고 있네.
물이 튀는 것 대신 흙이 튀고 있으니 더 그럴듯하게 보였다.
확실히 저러면 오추마의 힘을 빨리 뺄 수 있겠지.
오직 서여만이, 그 항적만이 보일 수 있는 기예였다. 여포도 흉내는 가능하려나?
꽤 길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서여와 오추마의 싸움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히힝….
쌩쌩하게 달리던 오추마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것처럼 점점 맥을 못 추렸다.
이미 오추마의 속도는 엄청나게 줄어 거의 멈춘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오추마는 한 걸음이라도 더 딛으려 노력하고, 서여는 그 한 걸음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그렇게 잠깐.
푸르륵…….
결국 서여와 힘 싸움을 하던 검은색 말은 완전히 지친 모습으로 자리에 멈춰 섰다.
서야가 꼬리를 놓아주자 검은색 말은 뒤를 돌아 서여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 오추마는 천천히 서여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날 서여는 명마를 얻을 수 있었다.
──────────
낙양에 있는 관청.
한동안 자유를 느끼며 즐겁게 휴식을 취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기 위해 한 인물을 따로 호출했다.
내가 부른 인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청색 눈동자를 지닌 단정한 인상의 미녀가 방에 들어오더니 내게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가후 문화. 주군의 부름에 응해 찾아왔습니다.”
“그래.”
가후.
내가 삼국지 좀 안다! 하는 사람에게 처세술로 유명한 사람을 말해보라면 나올 인물.
황보숭 장군을 복직시킬 때 그와 같이 임관한 가후를 보자마자 얼마나 기뻤던지.
“내가 개인적으로 의논할 게 있어서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가후는 내가 혹여나 기분 나쁘지 않도록 늘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신을 내가 중용할 때도, 내가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볼 때도 가후는 그저 묵묵히 따를 뿐이었다.
높은 관직을 탐내지 않고 사사로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다.
개인적인 만남도 없이 그저 직장 집 직장 집 사이클을 반복하는 가후는 병적일 정도로 자기 처신에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이코 조비 밑에서도 천수를 누리다 갔겠지만.
“최근 군을 점거한 태수 같은 고위직들이 자기 내키는 대로 병사들을 징병하고 있다 하더라고.”
동탁이 낙양에서 달아나기 전 군웅들에게 마구잡이로 뿌려댄 직위들.
그를 빌미로 천하 곳곳에 자리 잡은 군웅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무슨 의도로 그러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일 수도 있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군비를 증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가만히 두고 보기엔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조서를 내려 새로운 태수를 임명해도 어디 가두거나 모른 척 죽여버릴 거란 말이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거였다.
“그냥 얘네들이 병사를 더 늘리기 전에 지금 무력으로 진압해야 할까?”
“……난세를 막고자 하시는 겁니까?”
“그래.”
걸핏하면 속으로 늘 난세다 난세다 이랬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 이를 바로 잡고자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격적인 난세가 도래하기 전에 군웅들의 기를 죽이고 고분고분 말을 듣게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리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난세를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동안 침묵하던 가후가 입을 열었다.
“이미 난세는 일어났습니다.”
“…….”
가후의 확신하는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 계층에 만연한 부패는 한나라를 좀먹고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천하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
“지독하고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살아가던 백성은 한(漢)이라는 이름에 환멸감을 느꼈겠죠.”
오랫동안 지속되는 피폐한 삶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불꽃을 일으켰다.
자기가 한나라 사람인 걸 알고 있어도 그 나라가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가진 것을 빼앗아갈 뿐이라면?
그 어떤 백성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수십 년에 걸친 불만은 쌓이고 쌓여…. 결국 폭발했습니다.”
황건적의 난.
백성들이 살기 위해서 농기구를 들고 누런 두건을 둘렀다.
백성들이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나라를 부정했다.
한낱 개인의 권력과 영화따위를 위한 반란이 아닌, 그저 살고자 하는 백성들의 숭고한 투쟁이었다.
백성의 불꽃이 한나라를 불태웠다.
“백성들과 싸운 중앙 정부는 힘을 거의 잃었습니다.”
황건적과 싸운 중앙 정부의 피해가 너무나도 컸다.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지만 백성들이 남기고 간 상흔은 한나라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라가 약해진 와중, 내분까지 일어났죠.”
십상시의 난.
힙을 합쳐 나라를 수복해도 모자랄 때에 중앙 정부는 둘로 나뉘어 서로 피 터지게 싸워대며 제 살을 깎아 먹었다.
“그리고 야망을 품은 한 군웅이 나라를 집어삼켰습니다.”
동탁.
이리와도 같던 그자는 자신의 탐욕을 숨기지 않으며 권력을 휘둘렀다.
“그 군웅이 나라를 집어삼킨 건 잠깐이었지만, 이미 흔들리고 있던 나라가 사람의 믿음을 완전히 잃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모두가 생각했다.
한(漢)의 이름을 가진 나라는 이제 죽었는가.
“천하에 있는 모든 이들의 믿음을 잃었으니, 난세는 이미 일어났습니다.”
힘에 짓눌려있던 어린 황제가 그리 생각했다.
나라의 부패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관리가 그리 생각했다.
죽은 가족의 시체를 끌어안으며 오열하던 백성이 그리 생각했다.
“지금 천하 곳곳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군웅들에게 정통성이라던가 그런 건 이제 구실에 불과할 뿐이죠.”
가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을 안 할 뿐, 이미 그들의 마음에 한(漢)나라는 이미 없으니까요.”
이게 시대의 흐름이라는 걸까.
“지금 주군이 군웅들을 굴복시키겠다 나서면 오히려 모두가 연합해 주군을 공격해올 겁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니 당분간은 내정을 살피시며 때를 기다리심이 옳은 듯합니다.”
“……그런가.”
천천히 숨을 내뱉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야겠지.”
결국 난세는 막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