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82)
EP.382 예주(10)
“아…. 진짜 골때리네.”
여성은 자신의 일행이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습에 머리를 짚었다.
자신이 쓰던 낡아빠진 무기를 외딴 장소에 숨겨둔 뒤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한 건 좋았다.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한 다음 별다른 사건 없이 낙양 성문까지 온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저리 어이없는 모습을 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그저─! 시골에서 살던─! 일개 백성일 뿐이라네─!”
얼씨구.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사람 목은 가볍게 비틀어버릴 듯한 거대한 덩치의 흉악한 대머리 남성이 제 근육을 자랑하며 자신은 무해하다 외치는 광경.
누가 봐도 이상하고 수상했다.
…저놈이 진짜 맨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여성은 성문 근처에서 아주 개난리를 피우는 덩어리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역시 저 새끼는 버리고 왔어야 했어.”
뒤통수를 후려서 기절시킨 다음 산꼭대기에 머리만 내놓고 묻어버렸어야 했는데.
저 정신 나간 놈은 그래도 죽지 않을 테니 조금 더 험하게 다뤄도 문제가 없었다.
근처에서 침묵을 지키던 남성이 여성의 중얼거림에 대답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어찌 됐든 우린 동지가 아니더냐.”
“얼씨구! 지금 같은 하(何)씨라고 감싸주는 거야?”
남성의 말에 여성은 울분이 터진다는 듯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 놈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모르는 재앙 덩어리고, 한 놈은 너무 쓸데없이 무뚝뚝하다.
개성이 이렇게 확실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 난장판에 성문을 경비하던 병사가 보일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수상한 자들이다!”
“…진짜 큰일 났네.”
경비병이 외치기 무섭게 사방으로 몰려드는 병사들의 모습.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누면서 서서히 거리를 좁히는 광경은 여성이 식은땀을 흐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희는 일단 감옥에 가두고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
“포박에 저항하면 즉결 처분이다! 순순히 항복하도록!”
상황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걸 직감한 여인이 자신의 일행에게 물었다.
“야. 이제 어떻게 하냐?”
“몇 명은 쓰러트릴 수 있겠지만….”
남성, 하의(何儀)는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는 병사들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끝이군. 사이좋게 꼬챙이가 되는 미래밖에 안 보인다.”
“그딴 걸로 사이가 좋아지고 싶진 않은데!”
여성은 그렇게 외치면서도 하의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가까이에는 창을 든 병사가 있고, 성벽 위에는 궁수들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다.
심지어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자신의 무기까지 두고 온 상황.
이런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인간을 벗어난 괴물이 아닐까.
그때 하의가 말했다.
“…문제 일으키지 마라. 서신에도 그리 적혀있지 않았나.”
“끄으응…!”
여인은 서신에 적혀있던 내용을 떠올리고 침음을 흘렸다.
───부디 문제는 일으키지 말아 주세요.
그 한 문장.
그 한 문장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장수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얌전히 있어라!”
“으으음─! 나는 억울하오─!”
제 몸에 창칼이 찔려도 대수롭지 않게 달려들던 저 근육 덩어리조차 지금은 얌전히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절천야차 하만(折天夜叉 何曼).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이상한 놈에겐 너무 과분한 호칭이었다.
평소에는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놈이 서신에 적힌 내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하는 상황.
“…….”
여인은 지금 길고 긴 대기 행렬에 황건 동지가 있는 것을 떠올렸다.
만약 자신들이 반항하기를 선택한다면 그들도 일제히 관군을 향해 달려들겠지.
말 그대로 낙양 근처가 전쟁터로 변하는 거다.
하지만 그런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겐 그분의 말씀은 절대적이었기에.
불구덩이로 뛰어들라 해도 웃으면서 따를 광신도들.
신념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에휴. 저 멍청한 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결국 저항을 포기한 여인이 양손을 들었다.
“나도 항복이나 하련….”
“잠시만 기다려 보도록.”
“끼야악! 깜짝이야!”
양손을 든 여인이 무릎을 꿇으려는 그때 근처에서 한 노인이 불쑥 튀어나왔다.
노인, 황소(黃劭)가 혀를 차며 웃었다.
“끌끌. 비명소리가 무슨 돼지 멱따는 소리 같구나.”
“시, 시끄러워!”
“아무튼 보고 있어라.”
그리 말한 황소는 자신을 경계하는 병사 앞에 고급스러운 생김새를 지닌 서신 한 장을 놓았다.
“이보시오, 젊은 양반. 우리를 가두기 전에 그것만 좀 읽어보시오.”
“…같잖은 회유나 뇌물 따위는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런 게 아니니 걱정 마시오.”
“…….”
종이가 발명됐다고는 하나 제작 과정의 문제로 아직 죽간이 대중적으로 쓰이는 시대.
그런 시대에서 관청과 상류층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종이로 만들어진 서신의 모습에 병사는 조심조심 그를 챙겨 상관에게 전해주었다.
서신을 펼쳐 읽던 관리는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신분 보증인이 있었군.”
그것도 상당히 거물이었다.
오래전부터 대장군을 위해 일해온 그 인물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킬 리 없었기에 관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무기를 거둬라.”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래.”
관리가 확답하자 병사들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순순히 무기를 내렸다.
갑작스럽게 주변 인물의 태도가 변하자 여인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니, 뭘 줬기에 저리 반응하는 거야?”
“장예님의 신분 보증서다.”
“뭐?!”
장각의 가명을 들은 여인이 자리에서 펄쩍 뛸 기세로 놀랐다.
“그러면 왜 진작 안 쓰고…!”
“시선이 끌리니까 안 썼지, 멍청한 것아.”
이 신분 보증서를 내민 이상 자신들은 공식적으로 예의주시할 대상이 된다는 거다.
안 그래도 눈에 안 띄는 게 좋은 상황인데 괜히 시선을 끌어봤자 뭐하겠는가.
“…….”
그를 이해한 여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여간 저 멍청이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이제 그 대장군이란 인물을 믿어보는 수밖에.’
유벽(劉辟)과 황소는 주변 병사들의 경계 어린 시선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
적당한 곳에 자리 잡은 나는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느낀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병사들이 무기를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길을 순순히 열어주네?”
당연히 난 의문을 표했고, 근처에 있던 부관이 병사에게 무언가를 전달받고 내게 공손히 설명했다.
“예. 장예님이 신분을 보증한 인물들이라 합니다.”
“…으음, 그런가.”
장각도 은근히 짬이 높다 보니 병사들에게 잘 대우받는 인물 중 하나란 말이지.
하여튼 뭔가 일이 커진 것 같았기에 난 멀리서 방관만 했다.
진짜, 진짜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됐으니까.
저들 말고도 성문 앞 길게 늘어져 있는 행렬에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한 황건적이 무척 많을 것이다.
몇 명은 이미 진작 낙양에 들어왔을 터.
그들의 사상이 사상인지라 백성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겠다만, 정부 건물이나 군사 건물엔 자살 테러를 가하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뭐가 됐든 정말 무서운 세력이라니까.
병사들이 무기를 거두자 눈에 무척 띄었던 대머리 남성을 선두로 일행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남성 두 명에 여성 한 명.
마지막으로 노인 한 명인가.
저 일행에 관해가 끼어있을 줄 알았는데 따로 들어오기로 계획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장각이 돌아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야 하나?
“…….”
“…….”
내가 생각을 이어갈 무렵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일행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뭐. 왜.
무슨 일로 쳐다보냐.
내가 성벽 위에 걸터앉아있긴 했는데, 하필 품 안에 꼬물이를 두 명이나 안은 상당히 깨는 모습이었던지라 저들이 어떤 첫인상을 가질지 예상이 안 됐다.
솔직히 이런 상태론 뭘 어떻게 해도 육아 등쌀에 시달리는 아버지로밖에 안 보이긴 해.
아이가 있는 걸로 추정되는 몇몇 병사들은 나를 바라보며 이해가 된다는 눈빛을 보내왔으니까.
원래 아이를 잠깐 맡겨두고 올 계획이었으나, 내 생각을 간파한 듯 껌딱지처럼 들러붙더라고.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었다.
“…….”
“감히 누구를 쳐다보는….”
불현듯 뒤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느껴진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응? 왜 그래?”
“아니, 그냥.”
내 직감에 따르면 서여와 여포를 비롯한 주변 장수가 누군가를 위협하던 것 같았는데.
하지만 평소와 똑같은 여포의 표정에 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여포가 표정 연기를 한다고?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고개를 돌려 다시 황건적 일행을 바라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재빠른 걸음으로 자취를 감추는 일행의 모습.
난 유도 신문을 할 작정으로 툭 중얼거렸다.
“…위협한 거 맞네.”
“히끅!”
뒤에 있던 여포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듯 딸꾹질을 했다.
“이제 표정 연기도 하는 거야?”
“그, 그건….”
“정말 성장했구나.”
내 말을 들은 여포의 표정이 밝아지려는 그때 나는 섭섭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근데 내게 거짓말 한 번 안 하겠다는 여포는 어디로 간 걸까.”
“미, 미안해! 미안해애!”
반응 좋고.
이러니까 내가 괴롭히는 걸 못 참는 거지.
난 픽 웃으면서 안심하라는 뜻을 담아 어찌저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