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90)
EP.390 유총(3)
암살(暗殺).
몰래 사람을 죽이는 걸 뜻하는 단어.
이걸 자랑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이 세계에 태어난 이후 암살 시도를 여러 번 당했다.
그 이유도 참 가지각색이지.
‘저놈이 대장이다! 대장부터 노려라!’
단순히 적대 세력의 수장이란 이유부터,
‘네놈 때문에 우리 가문이…!’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이유까지.
이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긴 한데 가장 흔한 이유는 저 두 가지였다.
그 뭐냐.
무협지 세계에선 누군가를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 이러지 않나.
누군가의 피를 흘리게 하면 필연적으로 은원(恩怨, 은혜와 원한) 관계가 생기고, 그 은원 관계는 또 다른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하여튼 그런 골치 아픈 내용 말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죽이는 게 꺼림칙했던 나는 피가 최대한 안 흐르는 게 좋다며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평화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제 욕망에 잡아먹힌 놈들 때문에 피를 아예 흘리지 않을 수는 없더라고.
이제는 뭐 언급하기도 지치는 형주자사 유표와 꿀물 몬스터 원술이 대표 주자였다.
근데 이 두 명은 아주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대장군께 역적 유표의 목을 바칩니다!’
‘…충신은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 법이오.’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 결국 배신으로 삶을 마감한 유표와 달리 원술은 그를 끝까지 보좌하며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원술이 무능했던 것만은 아니었….
아니었…….
…무능한 놈은 맞다.
단지 의외의 면모가 있었을 뿐이야.
원술 이놈은 육적회귤(陸績懷橘)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갑자기 감수성이 폭발하는 때가 있던 인물이거든.
아버지를 따라 연회에 찾아온 어린아이가 자신의 어머니께 귤을 드리고 싶다며 몰래 가져가려 했는데, 그만 원술에게 딱 걸려버리고 만 것.
사람들이 흔히 아는 원술의 비열한 성격이라면 거기서 창피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원술은 갑자기 그 효심에 감동 받았다며 귤을 아예 한 보따리 싸주고 육적을 돌려보냈다는 훈훈한 내용이다.
더 가관인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 병량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을 이끌고 쳐들어가 육적의 아버지인 육강을 죽여버렸다는 것.
단순히 병량을 뜯어갈 빌미를 만들기 위해 귤을 준 걸까, 아니면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 불러일으킨 참사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방금 언급한 고사처럼 원술이 때때로 보여주는 감수성 넘치는 모습에 몇몇 사람은 감화되기라도 한 건지 그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쳤다.
이런 놈이 왜 가장 중요한 손씨 일가는 그리 대우해서 배신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정말 말 잘 듣는 사냥개로만 생각한 걸까?
지금 일어난 암살 사건도 원술과 관련이 있었다.
아직 해조차 뜨지 않은 새벽에 나와 만난 유총은 몸을 넙죽 숙여 보였다.
“면목없습니다! 제 시종이 그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지요.”
그 제후왕이 내게 몸을 숙인다는 흔치 않은 상황에 나는 그를 서둘러 일으켜 세웠다.
난 유총을 일으켜 세우면서 생각에 빠졌다.
유총이 데려온 시종 중 한 명.
이름이 분명…. 장개양(張闓陽)이었나.
처음에는 낯선 이름이라며 이놈이 누굴까 생각했는데, 곰곰이 떠올려보니 본래 역사에서도 이름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야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진왕 유총을 암살한 놈이거든.
암살이 일어난 계기도 별거 아니다.
그저 병량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한을 품은 원술이 의뢰를 해서 죽여버린 것.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자기가 일방적으로 물자를 요구하고, 이를 거절당하니까 앙심을 품고 죽여버린 거다.
진짜 엄청난 소인배라니까?
한 가지 의문인 점은, 원술의 수하로 일하던 자객이 어째서 유총 밑에 있는 걸까.
믿음직한 시종이라며 데려온 걸 보면 꽤 오랜 세월 동안 일한 것 같은데….
심지어 장개양이 죽이려 한 인물이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
‘진왕께서 보내셨습니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으음? 이 늦은 밤에?’
해가 저물고 저녁도 전부 먹은 시각.
슬슬 취침 시간이 가까워지던 때 방 바깥쪽에서 인기척을 드러낸 인물은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
‘…서여? 너는 또 뭐 하니?’
‘잠시 할 일이 있습니다.’
서여는 장개양의 목소리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내 뒤로 몸을 숨겼고, 어련히 이유가 있겠다 생각한 나는 담담하게 장개양의 출입을 허락했다.
‘…….’
키가 거의 8척(약 185cm)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인상의 근육질 남성은 누가 봐도 한낱 시종이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한낱 시종이 아니라는 게 맞았지만 말이야.
나와 유총, 또 이를 호위하는 인원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무기를 가지지 못한 환경.
‘…….’
장개양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성큼성큼 걸어오며 나와 거리를 좁혔고,
콰앙─!
‘커헉──?!’
곧이어 팔을 확 뻗으려는 순간 무언가에 맞고 방 바깥으로 나가떨어졌다.
뭐 박살 나는 소리 난 것 같은데.
어떻게 사람 몸에서 쾅 소리가 나냐.
‘…감히.’
장개양을 날려버린 인물은 당연히 서여였다.
분명 뒤에 있었는데 언제 내 앞으로 움직인 거지.
자세를 보면 다리로 차서 날린 것 같은데, 나를 점프해서 뛰어넘기라도 했나?
‘…….’
‘…어?’
우지끈!
서여는 기분이 무척 안 좋았는지 그를 차서 날려버린 것에 멈추지 않고 내 침상을 번쩍 들어 장개양이 날아간 곳을 향해 던져버렸다.
그래. 사람이 눕는 그 침상 맞다.
쾅──!
어마어마한 힘으로 내동댕이쳐진 침상은 당연히 박살이 났다.
…이러면 맨바닥에서 자야 하는 건가?
‘크윽…!’
더 가관인 것은 그 장개양이란 인물이 투척을 피한 다음 재빠른 속도로 달아났다는 거다.
분명 쾅 소리 나면서 날아가지 않았냐?
뼈나 내장 둘 중 하나는 곤죽이 됐을 텐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겉모습부터 심상치 않긴 했는데 아무래도 무력이 뛰어난 놈인 것 같다.
으음…. 진왕을 암살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걸까.
확실히 진왕이 지닌 무예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심지어 저놈은 유총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던 낙준까지 동시에 죽인 인물이니까.
능력 없는 암살자가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나는 내 안전을 위해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는 서여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어떻게 안 거야?’
저놈이 내 목을 분질러버리려고 팔을 뻗기 전까진 당사자인 나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거리를 좁히는 건 당연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겠거니 하고 담담히 넘어갔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서여는 내게 대답했다.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느껴졌습니다.’
‘…….’
살기라니.
무협지에서 나올 법한 단어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객이라면 그를 숨기는 방법도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서여는 그게 뭐 어쨌냐는 듯 목소리만 듣고 의도를 파악했단 뜻이었다.
‘암살자! 암살자다─!’
‘죽이지 마라!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돌고 돌아 현재 상황이 됐다는 거지.
‘잠깐 아기 갈아입힐 옷 가지러 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암살 미수.’
‘으, 으으─! 용서 못해──!!’
쾅─!
여화가 자다 말고 실례를 해서 잠깐 자리를 비웠던 여포는 폭음을 내면서 뛰쳐나갔다.
‘아부?’
물론 여화는 내 품 안에 잘 안겨놓고 말이다.
오늘따라 쾅 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네.
설마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여포가 자리를 잠깐 비운 틈을 타 내게 접근한 걸까?
진짜 실력 있는 자객인 건 확실하네.
문제는 이 자객이 왜 날 죽이려 했느냐는 건데….
“아! 저기 도망친다! 빨리 저 새끼 잡자!”
“…보채지 마라, 익덕. 이미 현덕 님께서 대기하시는 곳이니까.”
“어라, 진짜네?! 어떻게 미리 가있는 거지?!”
그건 붙잡고 물어보면 되겠지.
내게 붙잡히고 황제 폐하께 인간 수육이 돼버린 원술의 복수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세력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암살을 의뢰한 걸까.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이유이지 않나.
솔직히 오랜 세월 유총을 섬기는 시종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거 보면 전자 쪽에 무게가 실리긴 해.
와신상담(臥薪嘗膽).
섶(땔감)에서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복수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가오는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낸다는 말.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던가.
원술이 죽고 이제 2년 정도 지났으니 8년이나 일찍 실행했네.
제후왕 중 한 명을 섬기다 보면 언젠가 높은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생길 것이란 걸 예측한 걸까.
시기조차 불확실한 암살을 위해 제 삶을 바치다니.
집념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었다.
그러니까 자객 일을 한 거겠지만.
“찾았다──!!”
“무, 무슨?!”
쾅─!
여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죽은 거 아니겠지?
서여한테 한 대 맞고도 후다닥 달아난 놈이니까 죽진 않았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