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93)
EP.393 제도(1)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암살 미수 사건 이후 낙양은 떠들썩해졌다.
저녁 먹고 슬슬 잠이 들 시간에 ‘암살자 잡아라!’ 하면서 온갖 생난리를 피웠는데 조용하면 그게 이상하지.
북소리와 징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사가 낙양 곳곳에서 우수수 몰려나오는 광경은 참 장관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무슨 벌집을 쑤신 것처럼 튀어나오더라고.
서류로 낙양을 지키는 수비대가 많이 있는 건 알았지만 그를 직접 체험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뭐…. 가장 놀라운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지만.
해가 뜨기도 전에 가장 먼저 내게 찾아온 폐하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와 사이가 가까운 이들은 모두 한 차례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미쳤어, 미쳤어…. 제깟 것들이 뭐라고 감히….”
“사마의?”
“말 걸지 마요. 지금 바쁘니까.”
“어, 응….”
사마의는 조금 전부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무언가가 적힌 서류들을 재빠르게 읽어내렸고,
“주군, 괜찮으십니까?”
“그래. 난 괜찮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제갈량은 너무나도 무덤덤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다음 싱긋 웃어 보였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모습인데 너무 무섭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
“무,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방통.”
“만약 다치기라도 하셨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총명한 머리를 지닌 방통은 만약의 광경을 떠올리고 몸을 오들오들 떨어댔다.
너는 한결같아서 다행이구나.
난 방통에게 다가가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다.
“저기, 지금 사마의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 건드리면 큰일 날 분위기라 못 물어보겠네.”
“아…. 그거 말씀이신가요…?”
방통은 전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정보를 찾고 있을 거예요.”
“정보?”
“네.”
방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암살자 이름이 장개양이라고 했던가요? 그와 관련해서 온갖 정보를 전부 끌어모으더라고요….”
“…….”
“출입 명부부터 이름이 적힌 호적까지…. 손에 걸리는 대로 전부….”
세상에.
아무리 낙양에 수많은 기록이 있다지만 그걸 일일이 찾아볼 생각을 한다고?
농담이 아니라 죽간으로 산을 쌓았다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는 상황인데.
…그만큼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 봐도 되는 걸까?
갑자기 뿌듯해지네.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야….”
사마의는 그 순간에도 죽간을 살펴보며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역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는 건가…. 이러면 사람들을 풀어서 찾는 수밖에….”
배후가 있다면 어떻게든 잡아서 족쳐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군.
난 부하들한테 이상하게 인망이 좋았던 원술의 잔당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 생각한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정말 미친 척하고 로또 당첨을 노리는 마음으로 암살자를 보낸 것일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로또가 안 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여러 번 긁는 것이 사람이지.
정말 배후가 있다면 암살 시도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원술의 잔당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 맞다면 이번 한 번으로 끝나겠지만.
“…….”
제갈량과 방통도 각자 죽간을 살펴보는 걸 보아하니 배후 캐기에 열심인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말을 걸며 귀찮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나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저런 추리 활동은 어떠한 요소로부터 무언가를 눈치채는 직관력과 관찰력, 또 그렇게 얻은 단서를 잘 엮어내는 뛰어난 두뇌가 필요하거든.
지금 내가 할 일은 저 꼬꼬마 책사들이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일을 처리해야 할까….
이제 본격적으로 온도가 낮아지는 시기니 외부 활동은 자제해야 하는데.
적어도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와서 날씨가 풀려야 내가 군세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외정을 못한다 치면 이제 남은 건 내정밖에 없나?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이윽고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랫사람에게 일거리를 안겨주는 것뿐이지만.
아, 몰라.
원래 높은 사람은 일거리 툭툭 던져주면서 아랫사람 갈아버리는 게 일이지.
월급 루팡…. 아니, 녹봉(祿俸, 벼슬아치에게 일 년 또는 계절 단위로 나누어 주던 금품) 도둑은 용서할 수 없다.
내 일 폭탄 맛 좀 봐라.
“그러면 부탁하지.”
“네, 넵! 맡겨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눈앞에 앉아있던 방통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다음 발걸음을 옮겼다.
“…칫.”
“…저도 다음부터는 가까운 자리를 선점해야겠군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두 꼬꼬마 책사가 무어라 중얼거렸는지는 유감스럽게도 듣지 못했다.
──────────
내가 직접 발걸음을 옮긴 곳은 현재 다른 인물이 일하는 방이었다.
맡은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처리하고, 온갖 뛰어난 책사가 모인 우리 세력 안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여인.
난 문 앞에 서서 안쪽까지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잠깐 들어가도 되겠나?”
──주군이십니까. 예. 들어오시지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로 제게 찾아오셨습니까?”
마치 푸른 하늘이 연상되는 청색 눈동자.
‘나라가 천하의 민심을 잃었으니, 이미 난세는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때를 기다리시지요.’
초반 인재 부족에 시달리던 나에게 계책을 짜주며 앞길을 밝혀주었던 여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가후 문화(賈詡 文和).
삼국지에서 손꼽히는 악역인 동탁을 섬기고, 그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를 섬겼으며, 그들이 패망한 이후 장수를 섬기다가 그 난세의 간웅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인물.
그런데도 훗날 조조에게 항복하여 거의 여든 살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뜬 책사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그대와 논의할 게 있는데 따로 선약이라도 있는가?”
“아니요. 선약은 없으니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면모는 여전하네.
공적인 업무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도 교류를 나누지 않는 가후의 모습은 그냥 자발적 아싸라 봐도 손색이 없었다.
이유는 대충 예상이 간다.
혹여나 이상한 인물과 엮이는 걸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거의 병적일 정도의 자기 관리였지만, 이런 면모가 있었기에 본래 역사에서도 조비 밑에서 천수를 누리다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냥 혼자 지내는 게 편한 유형일 수도 있지.
가후의 이런 면모에 대해선 뭐라 왈가왈부할 생각이 안 들었다.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애초에 가후가 다른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이번 일을 맡기려는 거였다.
나는 가후를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인재 등용 방식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예.”
“기존에 존재했던 천거 제도 말고도 새로운 등용 제도를 만들어볼까 하는데.”
“……예?”
오, 뭐야.
가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인데?
천거(薦擧).
글자만 보면 무척 어려워 보이는 단어지만 뜻은 별거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추천해서 관직에 임명되는 방식.
그러니까 낙하산 등용과 비슷하지.
하지만 위에 황제나 왕이라는 절대적인 갑이 존재하다 보니 이 낙하산 인사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를 추천한 인물이 덤터기를 쓰면서 같이 털리는 경우도 많았다.
왕좌지재 순욱이 조조에게 수많은 인재를 데려왔던 방법이 바로 천거다.
순욱이 사람을 데려오면 그 데려온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추천하고, 그 또 다른 사람이 또또 다른 사람을 추천하면서 인재가 늘어나고….
누가 왕좌지재 아니랄까 봐 엄청난 마당발이더라.
황실에서 순욱이 와이파이를 한 번 위잉 돌리면 하늘에서 수많은 인재가 후두둑 떨어진다.
물론 이런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는 썩은물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이런 현상이 심각해지면 대대로 높은 자리를 선점하는, 문벌 귀족이란 돌연변이가 탄생하여 지들끼리 나라를 말아먹는 대환장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지 않나.
어떻게든 외부로부터 때가 묻지 않은 신선한 뉴비…. 아니, 청정수들을 받아들여 관직을 계속 순환시켜야 나라가 잘 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조조가 세운 위나라와 사마의가 세운 진나라가 망한 이유에는 천거 제도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상당 부분 차지했다.
이번 세대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내가 자리를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 괜찮다지만, 내가 세상을 뜬 이후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해보니 은퇴는 이미 물 건너갔네.
내가 관직을 내려놓고 뒷방에서 엉덩이나 긁고 있어도 내 눈치를 볼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나라는 보통 외세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의 온갖 병폐가 얽히면서 난리가 나고, 그 후폭풍 때문에 망하는 법이니 가만히 내버려 둘 이유가 없지.
나는 그저 수나라 때인가 당나라 때인가 시행됐던 과거 제도를 몇백 년 일찍 가져오려는 것뿐이었다.
“기존에 자리를 차지한 인물에게 추천받는 방식이 아니라, 시험을 보고 아예 새로운 인재를 뽑는 방식.”
“…….”
본래 역사에서 여러 군주를 섬기며 본인의 능력만으로 태위에 이르렀던 인물.
다른 사람과 개인적인 교류를 가지지 않기에 소위 말하는 깐부 같은 것도 일절 통하지 않는 인물.
가후에게 다가간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가. 그대라면 잘해낼 수 있으리라 보는데.”
무언가를 실현할 만한 권력과 재산이 있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며, 그를 보좌해줄 인재까지 있다.
“자네 생각은 어떻지?”
“…저는….”
그러면 안 할 이유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