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95)
EP.395 제도(3)
한순간 조앙에게 정신이 팔렸던 나는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고개를 들어 조조와 유비를 바라보았다.
“음? 무슨 일이라도 있나?”
“어…. 그냥.”
내가 바라볼 때는 이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던 두 명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두 명, 왜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안 맞는 것 같다.
그 조조와 유비니까 이상할 게 없나 싶기도 한데 본래 역사에서 이 두 명은 삼국지 초반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반동탁 연합 때 유비는 단독으로 군을 이끌며 공손찬이 아닌 조조와 같이 행동했다던가.
사실 정사에서는 공손찬 이놈 연합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북방에서 놀며 원소를 견제하기 바빴지.
삼국지 인간관계에서 흔히 나오는 치트키가 하나 있지 않나.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라고.
뛰어난 인재만 봤다 하면 사족을 못 쓰는 조조는 당연히 유비를 아꼈다.
훗날 유비가 여포를 피해 자신 휘하에 들어왔을 때 처음부터 좌장군 관직을 턱 얹어주고, 그걸로도 부족해 예주목 작위까지 얹어주는 등 대놓고 유비를 아낀다는 기색을 풀풀 풍겼지.
하지만 그때 조조는 여러 업보를 어마어마하게 쌓았던 뒤라서 유비가 조조를 고깝게 봤다는 것.
서주대학살은 뭐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고, 협천자를 하며 황실의 권위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등 조조는 이미 치세의 능신이 아니라 난세의 간웅이 되어있었다.
사실 그때 조조 휘하에 있던 유비의 생각은 누구도 알 수 없지.
조조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정말 자신과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던 걸까?
어떻게 보면 여포와 힘을 합쳐 조조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진궁과 비슷했다.
두 명 다 조조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를 배신했으니까.
이건 진짜다.
진궁이든 유비든, 둘 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조조를 배신했다.
특히 진궁은 조조가 살리려 했음에도 끝끝내 죽음을 선택한 걸 보면 더더욱 의문이지.
이런 걸 보면 그들이 어떠한 계기로 조조에게 실망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 이후로는 당연히 유비가 조조의 뒤통수를 치며 서주를 점거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조조가 유비를 개박살 낸 다음 원소가 싸움을 걸면서 관도대전이 일어난다.
…뭔가 이렇게 설명하니 조조의 짝사랑을 일방적으로 걷어찬 유비의 일대기로밖에 안 보이네.
하여튼, 본래 역사에서 이랬던 둘이 이렇게 만나자마자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길 이유가 없다는 거다.
조조는 황실을 능멸하기는커녕 서주대학살조차 일으키지 않았고, 유비는 조조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그녀의 세력 일부를 점거하지 않았으니까.
“으음….”
“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하고 들어오거라.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 아닌가?”
“그건 그렇지.”
두 명을 바라보던 내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조조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생각보다 힘이 강해 중심을 잃을 뻔했다는 건 비밀로 하자.
아니, 나보다 강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이거 맞아?
내 생각이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나를 순식간에 방으로 이끈 조조는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내게 할 말이란 게 무엇이지?”
“아, 그거 말인데….”
난 조조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방법과 그를 위한 새로운 과거 제도 설립까지.
내 설명을 들은 조조는 흥미롭단 기색을 보였다.
“호오…. 끼리끼리 모여 놀던 것들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인재를 재야에서 발굴하겠단 뜻이군.”
“어…. 그 말이 맞긴 한데.”
끼리끼리 모여 놀던 것들이라니.
표현이 좀 그렇지 않냐.
내 얼떨떨한 표정을 확인한 조조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자기들만 특권을 누리기 위해 온갖 추한 짓도 서슴지 않는 연놈들에게는 이 정도 표현도 과분하다.”
아무래도 연주를 안정시키면서 이런저런 일에 많이 시달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본래 역사에서도 기존 기득권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친족 중심 정치를 펼친 건가.
지휘권이 통일되지 못해 어디를 공격할 때마다 허탕만 쳤던 오나라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1차 합비 공방전이라던가 2차 합비 공방전이라던가 3차 합비 공방전 같은 게 있지.
아니, 진짜로.
합비에 엄청나게 꼴아박았다니까?
그냥 통곡의 벽 그 자체였다.
“스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품 안에서 활발하게 꼬물거리던 조앙은 어느샌가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한 손만으로도 포대기를 능숙하게 감쌀 수 있다니.
나도 완전 베테랑 다 됐구만.
그래도 한 손만으로 안는 건 불안하니 별다른 일이 없을 때는 늘 두 손으로 안고 다녔다.
“…후훗.”
그 광경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은 조조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대가 말한 제도를 만들어내려면 생각해야 할 것이 많구나.”
“무슨 문제를 내야 할까 그런 것들?”
“시험이니까 문제도 확실히 중요하겠지.”
내 질문에 한 차례 고개를 주억거린 조조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시험관들을 단속하는 것이다.”
“시험관?”
그건 또 어째서일까.
시험 문제를 채점하는 이들을 단속하는 이유가….
…아하.
“대충 이해한 것 같군.”
“그래.”
시험관들이 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자기 멋대로 탈락시키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자기 멋대로 합격시키는 등 문제를 저지를 수 있으니까.
또 그렇게 권력을 남용하며 제 위치를 단단히 다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새로운 청정수를 받아들이기 위해 펼친 정책이 오히려 또 다른 썩은물 세력을 만들 수 있었다.
역시 똑똑한 사람은 뭔가 다르구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점을 한순간에 잡아내며 여러 가지 해결법을 고심했다.
“또 무관과 문관처럼 범위도 세세하게 나누어야 할 테고….”
“…….”
“그래. 나처럼 둘 다 자신 있는 인재는 두 시험 전부 응시하게 해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건 조조 네가 특이한 게 아닐까.
평범한 사람은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해도 엄청나게 힘들어한다고.
문관은 당연히 머리를 써야 하는 직종이니 문제 자체가 더럽게 어려울 거고, 무관은 평범한 병사보단 뛰어나야 하니까 기마술을 비롯한 온갖 고급 기술에 통달해야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도 무과 시험에 떨어지셨다가 다시 응시해 붙었다고 하니 뭐….
시험 난이도가 어땠을지 짐작이 갈 터.
그래도 땅은 넓고 뛰어난 인재를 원하는 관직은 많으니 정말 꾸준히 노력한다면 아무리 출신이 비천하더라도 관직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내가 노리는 게 그것이기도 했고.
물론 가문으로부터 온갖 지원을 풍족하게 받을 귀족에 비하면 평범한 백성은 정말 불리하겠지.
그들은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귀족과 달리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면서 생계에도 신경 써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환경임에도 시험에 붙는다면 나는 그를 충분히 예우하며 중히 쓸 생각이 있었다.
정 뭣하면 나라에서 책을 빌려주는 방식도 생각해 봐야겠지.
아무래도 이 시기엔 책이 비싸다 보니 그를 떼먹고 슝 달아나서 되팔이하는 놈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런 놈은 다시 붙잡아 책값의 몇 배나 되는 돈을 토해내게 하면 되는 일이다.
나라의 재산을 훔쳤으니 노비가 되는 건 덤이고.
뭐? 돈이 없다고?
지금까지 겪어온 바에 따르면 나라의 재산을 훔친 도둑놈 중에 바닥까지 싹싹 긁어 돈 한 푼 안 나오는 놈은 없었다.
이 내가 지금까지 털어먹은 탐관오리가 몇 명이라 생각하는 거냐.
나도 경험이 쌓여서 이런 놈들이 어느 곳에 어떻게 재산을 은닉하는지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의심 가는 곳 쿡쿡 찌르면 화들짝 놀라서 튀어 오르는 꼴이 재밌다니까.
정말 당장 먹을 게 없어서 살고자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어떻게 하냐고?
어…. 그건 따로 관청에 가서 도와달라고 하면 담당관이 찾아가 검사를 한 다음 곡식을 지원해준다.
물론 아예 무상은 아니고, 나중에 곡식 일부를 천천히 갚으라는 식으로.
그 갚아야 하는 양도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일할 의욕이 없어서 계속 놀고먹는 게 아닌 이상 무조건 갚을 수 있는 양이라고.
그냥 어디 가서 객사하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용도라 해야 할까.
참고로 계속 놀고먹는 놈은 억지로 노동 현장에 동원한다.
그런 글러 먹은 사람은 조금 강압적으로 대해야 일을 하니까.
감옥가서 판결 받은 다음 일하기 VS 그냥 불렀을 때 얌전히 와서 일하기
선택은 자유다.
이 나라는 저렴한 인건비로 굴릴 수 있는 글러 먹은 노예를 원합니다.
어서 와서 새사람이 된 기분을 느껴보세요.
하여튼, 그런 상황에도 범죄가 일어난다면 둘 중 하나다.
그 백성이 빈민 구휼 정책에 대해 몰랐다던가, 아니면 신청한 적이 있음에도 관리자가 무능해서 정말 필요한데 지원해주지 않았다던가.
만약 후자라면 공무원이 제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셈이니 여러 후폭풍에 휩쓸린다.
상관으로부터 눈치를 받는 건 물론, 제 후배에게도 선배 취급을 못 받겠지.
정말 심각하다 싶으면 관직조차 잃고 다시 백수 신세가 된다.
철밥통에 앉았으면 일은 똑바로 하란 말이야.
…왜 또 생각이 이쪽으로 빠졌지?
이게 그 의식의 흐름인가.
조조의 조언을 들은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시험관을 잘 임명해야겠군.”
“그래. 그를 견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만, 아예 처음부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게 확실하지 않겠나.”
내가 조금 전 일을 맡긴 가후는 총책임자 비슷한 역할이라 시험관 같은 중간직도 적당히 앉혀줘야 하는데.
표기장군에 임명된 조조도 조만간 나와 함께 군대를 이끌면서 나라의 전체적인 업무를 책임져야 한다.
사람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난 살짝 고민에 빠졌다.
인물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고, 머리가 똑똑하며, 제 권력을 사사로이 휘두르지 않을 인물이라….
…대충 떠오르는 인물이 있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