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96)
EP.396 제도(4)
“그러니까…. 시험관 자리에 앉아 여러 인재들을 발굴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는 앞에서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질문을 던진 인물을 바라보았다.
방덕공(龐德公).
방통의 숙부이자 형주에서 이름을 널리 날린 명사.
그는 사마휘에게 수경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어렸을 때 그 누구도 알아보지 않았던 방통을 알아보며 봉추란 별명을 붙여준다.
심지어 제갈량에게 와룡이란 별명을 붙인 것도 방덕공이라 하지.
이걸 보면 이 인물이 바로 내가 찾던 인재라는 걸 알 수 있지 않나.
안목이 뛰어나고, 머리가 잘 굴러가며, 권력을 사사로운 곳에 휘두르지 않는다.
“허어….”
봐라.
지금도 꽤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었는데 좋아하기는커녕 귀찮아하고 있다.
대충 살펴봤음에도 의욕이 없는 게 눈에 보이는 낯빛과 표정.
그런데도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방덕공이 내게 입을 열었다.
“그, 정말로 기쁜 제안입니다만 능력이 부족한 소인보다는 다른 적임자를 찾아보는 게 어떠실지….”
“그런가.”
대충 예상하지 못한 대답은 아니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도 방통 한 명 턱 던져주고 자신은 스리슬쩍 도망치려 했으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물론 이런 상황에서 대비책을 구비해 놓았던 나는 아쉽다는 기색을 팍팍 내며 중얼거렸다.
“만약 일이 잘 풀려 수많은 인재가 들어온다면 그대의 은퇴 요청도 진지하게 고려해보려 했는데 말이야.”
“저는 예전부터 제 친우처럼 재야의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태세 전환 너무 빠른 거 아니냐.
뭐…. 그런 면모를 알고 있었기에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흔든 거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제 친우라면 설마 수경 선생으로 유명한 사마휘를 말하는 걸까.
이런 인물이 시험관을 맡는다면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인재 영입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저…. 대장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만….”
“으음? 무슨 일이지.”
“그 ‘수많은 인재’의 기준이 몇 명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오, 뭐야.
벌써 내가 파놓은 함정을 눈치챘네.
역시 머리가 잘 굴러가는 인물이라 해야 할까.
방덕공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난 웃으면서 말했다.
“글쎄. 몇 명일 것 같나?”
“…….”
“한고조와 국사무쌍(國士無雙)의 일화를 떠올려보면 도움이 될 것 같군.”
내가 예시를 하나 들면서 힌트를 던져주자 방덕공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초한지를 잘 모르는 현대인들도 이 사자성어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서초패왕 항우를 무찌르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한신에게 던졌던 질문.
‘그대가 봤을 때 짐은 병사 몇 명을 지휘할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십만 명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병사를 몇 명이나 이끌 수 있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뭔가 여기까지 들으면 살짝 버릇없는 대답이지 않나.
실제로 한신은 평소 눈치 없이 행동하면서 왕 할 거라며 징징거리는 인물이었기에 여기서 일화가 끝난 다음 숙청 스택을 하나 더 적립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안 그래도 이 일화가 나올 당시 유방과 한신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모반이다 뭐다 하면서 여러 가지 죄형을 선고받고 왕 작위도 도로 압수당했던 상황이다.
근데 한신은 평소답지 않게 한 마디를 더 말하면서 의외로 훈훈하게 일화를 마무리 짓는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아닌, 장수의 장수가 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도우심이 분명하니 평범한 사람은 폐하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 엄청난 인물평에 기분이 흡─족해진 유방은….
자꾸 유방 유방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그냥 한고조라 하자.
어쨌든 엄청난 인물평을 들은 한고조는 기분이 흡족해져 껄껄 웃었다는 일화다.
근데 그 한신으로부터 십만 명은 이끌 수 있다 평을 들은 한고조도 대단하긴 해.
실제로 나도 황제 좀 해보자며 반란을 일으킨 영포도 한신과 팽월이 죽었고, 그 한고조도 늙어서 병치레를 하는 상태인지라 자신을 막을 수 없을 거라며 당당하게 외쳤다.
근데 그 영포도 유방에게 두들겨 맞고 강동으로 달아났다가 지인의 배신으로 죽었지.
사실 상대가 항우라서 눈이 밤탱이가 되도록 처맞았을 뿐 한고조는 실제로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
명재상 소하가 계속 뒤에서 치트 쓴 것처럼 물자와 병사를 보내줬다지만, 능력이 없었으면 항우를 상대로 버티기가 가능했겠어?
항우는 상대가 무능하다면 군세를 이끌고 하룻밤 사이에 몇십만 명도 갈아버릴 수 있는 인간 학살 전차다.
한고조도 괜히 방심했다가 팽성 전투에서 단 3만 명한테 56만 명이 갈려나갔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챈 방덕공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방덕공은 내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역시 제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뜻인가?”
“헙.”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실망이 크군.”
내가 살짝 압박을 넣자 방덕공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아마 내 뒤쪽에서 호위를 서고 있을 서여와 여포도 방덕공을 무시무시한 눈길로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원하는 바는 기가 막히게 눈치채는 여인들이었으니까.
난 여전히 일하기 싫어하는 방덕공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대는 정말 자기가 했던 말을 다시 주워담는 인물인가?”
“…허어.”
지금 자신이 외통수에 몰렸다는 걸 눈치챈 방덕공은 한 차례 탄식을 내뱉었다.
“참으로 무서우신 분이군요. 제가 범에게 물려가도 이렇게 두렵진 않을 겁니다.”
“…….”
그건 아마 내 뒤쪽에 서 있는 서여와 여포 때문인 것 같은데.
실제로 나와 처음 대면하는 인물들은 이 두 명을 보고 흠칫흠칫 놀란다.
게임으로 치면 공포 유발이 달려있어 존재만으로 주변 적군의 사기를 꺾어버린다고 해야 할까.
이는 내가 다른 사람과 면담하는 자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웬만한 인물은 모두 내 앞에서 눈치를 살피는 광경이 연출된다.
이윽고 방덕공은 모든 고민을 끝마친 듯 내게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장군께서 맡겨주신 일, 온 힘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문관 쪽은 끝났으니 이제 무관만 남았나?
무관은 아무래도 몸을 쓰는 직종이니까 보이는 그대로 평가하면 될 터.
물론 병사를 지휘하는 방법이라던가 전장에서 이기는 방법도 평가해야겠지만, 이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무관 시험에 합격해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부관으로 시작하며 경험부터 쌓는다.
손자병법 같은 걸 아무리 달달 외워도 실전은 만만치 않으니까.
이 무관이 전방에서 병사와 함께 돌진하는 선봉장 스타일인지, 아니면 후방에서 전장을 조율하며 병사를 움직이는 지휘관 스타일인지 구별만 하는 용도였다.
또 병법의 기본조차 모르는 폐급 무관인지 걸러내는 용도이기도 했고.
그 뭐냐.
사람은 초식동물이라 풀만 뜯어 먹어도 된다며 식량 없이 전진하다가 몇만 명을 굶겨 죽인 독립투사 있지 않나.
하여튼 무관 시험을 채점하는 이는 충직하고 열심히 일하며, 어느 정도 전장 경험이 쌓인 인물이면 되겠지.
문제는 그 기준이 무척 힘들다는 거지만.
…근데 말이 이렇지 사실 적당한 인물이 있긴 했다.
인재를 워낙 끌어모아서 그런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 툭 튀어나온다.
한때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던 중랑장 중 한 명으로 활약하던 주준.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한나라에 대한 충정과 그 뛰어난 능력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었다.
황보숭과 노식도 생각했으나 이분들은 연세가 너무 많으니 패스했다.
이분들은 본래 역사에서도 이 시기쯤에 병으로 사망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세력에 신의라 불리는 화타가 있다지만 조심할 건 조심해야지.
그렇다면 주준은 뭐냐고?
그분은 동탁 사후 이각과 곽사를 꾸짖다가 오히려 포로로 잡히고 온갖 조롱을 받다 분사(憤死)한 인물이라 아직 정정한 편이었다.
어째 시험관이 전부 노인으로 채워진 기분인데 어쩔 수 없었다.
문관이든 무관이든 젊은 인물은 이리저리 꽁지 빠지게 돌아다니며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까.
총책임자인 가후만 하더라도 다른 일이 수두룩 쌓여있었다.
일단 과거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여러 가지 법도 만들어야 할 테고, 조조가 언급했던 것처럼 시험관이 제 권력을 사사로이 휘두르는 일이 없게 견제 방안도 마련해야 했다.
그래도 언젠가 사전 준비가 끝나고 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날이 오긴 할 거다.
그때가 되면 과거도 떠올릴 겸 한 번은 구경해야지.
응시자들이 낸 시험지를 봐도 무슨 소린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휴, 추워라.”
난 몸을 스쳐 지나가는 으슬으슬한 바람을 맞고 잠깐 부르르 떨었다.
어서 겨울이 끝나야 저 밑으로 내려갈 텐데.
나는 저 멀리 있는 장강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