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00)
EP.400 강동(4)
유주 북평군(幽州 北平郡).
한때 백마장군이라 불렸던 이가 다스리던 도시였으나, 지금은 그 주인이 바뀐 구역.
“…….”
그리고 그런 북평 태수의 치소에서 한 여인이 담담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황금보다 더욱 반짝이는 것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백이면 백 모두가 아름답다 칭송할 외모.
그런데도 감히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칠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까지.
마치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법한 여인은 차분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도 틈을 보이지 않았나요.”
“예!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있는 욕 없는 욕 전부 외쳐봤는데 꿈쩍도 안 하더군요!”
하북쌍벽 중 하나라 불리는 장대한 기골의 여성이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놈이 겁을 먹어도 단단히 먹은 모양입니다!”
“…….”
“하긴, 그렇게 연패만 했으니 당연한 일이죠!”
그렇게 외친 안량은 거기까지 말하곤 호탕하게 웃었다.
안량과 마찬가지로 하북쌍벽이라 불리던 문추는 그런 안량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뱉으며 말했다.
“…적들이 성문 바깥으로 나올 낌새를 보이지 않는데, 앞으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흠….”
상석에 앉아있던 여인, 원소는 문추의 질문에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때 원소 근처에서 한 소녀가 등장했다.
원가의 핏줄을 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황금색 머리카락.
그러나 원소보다는 다른 누군가를 더욱 닮은 소녀였다.
그 소녀는 원소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언니! 제게 군사를 맡겨주시면 올해가 가기 전에 성을 점령해 보일게요!”
“…….”
원소는 그런 소녀를 무감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참으로 오만하고 멍청했던 제 남동생과 달리 자신을 따르던 원가 내의 또 다른 핏줄.
제 금발을 뒤쪽으로 가지런히 땋아내린 원소는 소녀를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원담.”
“…네?!”
“확실한가요?”
“그, 그건….”
마치 자신도 몰랐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동자에 소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끝만 흐렸다.
안 그래도 최근 역경루를 당당히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목이 달아난 장수가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이름이 분명 국의였던가.
원소와 공손찬이 처음으로 맞붙었던 계교 전투에서 백마의종을 물리치며 큰 전공을 세웠던 장수.
하나 너무나도 큰 전공을 세운 것이 독이 됐는지 국의는 기고만장하며 세력 내부에서 파벌을 만들다가 원소의 심기를 거슬렀다.
결국 그는 역경루 전투에서 패배했단 명목으로 처형 선고가 내려졌고, 공손찬의 정예 부대를 무찔렀던 장수는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자신은 국의처럼 원소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제 무서운 언니가 헛되이 병사만 날려 먹은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 원담의 모습에 원소는 말했다.
“원담.”
“네, 넵!”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혀 무작정 나서는 건 자제하시길.”
“알겠습니다!”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훈계하는 듯한 어투였지만 원담은 이를 두고 감히 기분이 나쁘단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제 언니에 비하면 엄청나게 부족한 건 알고 있었기에.
“…….”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자신을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원담의 눈초리를 무시한 원소는 다시 역경루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경직된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전령에게 무언가를 전달받은 문관이 공손한 태도로 원소에게 속삭였다.
“주공, 저번에 보내셨던 서신의 답장이….”
“…음? 그게 사실인가요?”
문관의 보고에 원소는 고개를 돌렸다.
“제게 건네주시길.”
“예.”
문관은 대충 살펴봐도 고급스럽게 생긴 서신을 원소에게 건넸다.
“…….”
이를 건네받은 원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서신을 확 펼쳤다.
───오랜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
아무리 살펴봐도 투박하게만 느껴지는 글씨와 문체.
자신의 친우인 조조의 유려한 글솜씨는 물론, 자신이 쓰는 글솜씨와도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후훗.”
하지만 웃음이 나오는 건 어째서일까.
고작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보고 웃기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말이다.
“헉….”
“언니?”
원소가 평소 웃음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던 근처 제장들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
주변이 살짝 혼란스러워진 걸 전혀 개의치 않은 원소는 계속해서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내가 서신을 짧게 쓰는 건 그대도 알고 있는 듯하니 빨리 끝내지.
───나는 그대와 공손찬의 전쟁에 끼어들지 않을 생각이다.
현재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군세를 이끄는 인물은 하북의 패권을 둔 전쟁에서 관망만 하겠단 뜻을 내비쳤다.
───혹시나 싶어 덧붙이는 거다만 그대를 경계해 이런 선택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대가 북쪽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남쪽을 정리할 뿐이지.
혹여 자신의 기분이 불쾌할까 걱정하며 슬쩍 덧붙이는 말까지.
보면 볼수록 대장군의 성격을 알 수 있던 문장이었던지라 원소는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비록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말만큼은 할 수 있겠군.
거기까지 서신을 적은 대장군은 마치 잠깐 쉬는 것처럼 문장을 툭 끊어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볼 수 있었다.
───공손찬은 언젠가 제 알아서 자멸할 놈이니 때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지금 원소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의 해결 방법.
───포위를 오래 유지하다 보면 공손찬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반복하게 될 테고, 그를 지켜보던 장수와 병사들이 잇따라 탈영하겠지.
───그대는 때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된다.
마치 공손찬이란 인물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전부 알고 있다는 어투였다.
이 또한 인물을 보는 눈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대장군의 능력일까.
지금 그의 곁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을 떠올리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 그래도 경계가 약해졌다고 해서 성벽을 공격하지는 말도록.
───그대라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지 않나.
아무래도 잔걱정이 많은 성격인지 대장군은 문장 뒤쪽에 다른 내용을 끊임없이 덧붙였다.
───또 이건 우리 꼬꼬마 책사들이 낸 계책인데 말이야….
짧게 끝낸다면서 대체 얼마나 많은 내용을 적은 걸까.
꼬꼬마 책사라는 귀여운 호칭이 거슬리긴 했다만, 좋은 계책임은 확실했기에 원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모든 내용을 읽은 원소가 서신을 품속에 소중히 보관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계책이 있으니 모든 제장은 제 명령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원소의 단호한 어투에 안량과 문추를 비롯한 수많은 장수들이 고개 숙여 복종했다.
모두를 휘어잡는 원소의 아름다운 모습은 지배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
폐하의 허락하에 군세를 출진한 나는 강동 근처로 향하다가 하북의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이 무엇인가 하면, 원소가 내게 후방을 공격당한 척 군사를 물리다가 역경루 바깥으로 나온 공손찬의 군세를 다시 한번 물리쳤단 소식이었다.
“이게 진짜 되네.”
내가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제갈량이 싱긋 웃어 보였다.
“공손찬으로서도 매우 절박한 상황이니까요. 전부 제 계산대로입니다.”
“그래. 정말 대단하네.”
난 피식 웃으면서 제갈량의 흰색 머리카락을 마구 쓰다듬었다.
“후후.”
“……으극.”
제갈량은 백우선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어떠냐는 듯 사마의에게 웃어 보였고, 사마의는 그런 제갈량의 모습에 분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이런 어린애 같은 기 싸움은 여전하네.
…생각해보니 지금도 둘 다 어린애 맞구나?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군께서 원소의 편을 들어주실 계획이라면 이건 어떻습니까?’
내가 원소에게 보내는 서신에 문제가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던 꼬꼬마 책사가 내게 올린 계책.
그 계책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공손찬의 서신에 호응해 원소의 뒤를 치는 시늉을 해서 역경루에 틀어박힌 공손찬을 끄집어내자는 것.
난 좋은 계책이라 생각하며 부대 기동력 하나는 무엇보다 뛰어난 마초에게 기주에 한 번 갔다 오란 명령을 내렸다.
‘네! 주군의 말인 제게 맡겨주세요!’
‘…….’
‘그러면 재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마초의 대답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됐지만 말이야.
얘가 나와 한 번 맺어지더니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됐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말?’
그때 서여와 여포를 비롯한 여성들이 날 어떻게 바라봤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나왔다.
하여튼 마초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손찬을 역경루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데 성공, 내게 호응하겠답시고 군세를 출진시킨 공손찬은 그대로 원소의 매복에 걸려 또다시 개박살이 났다.
그 와중에 공손찬 이놈은 또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더라고.
참 목숨도 질기다.
기만 작전에 성공했으니 마초는 조만간 다시 내게 돌아오겠지.
그녀의 속도를 열심히 따라갈 강족 부대가 불쌍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