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06)
EP.406 동오덕왕(東呉徳王)(6)
내가 병사들에게 준 휴식 시간은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너무 오래 쉬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둔해지니까.
자기 관리가 철저한 몇몇 사람은 그렇지 않는다지만 인간은 대부분 욕망에 지고 마는 슬픈 생물이었다.
뭐…. 이렇게 편안함을 추구하는 덕에 인간이 발전할 수 있던 거겠지만.
“…….”
그렇게 모든 휴식을 끝마치고 다시 수춘 바깥으로 나온 나는 눈앞에 펼쳐진 널찍한 강을 바라보았다.
“장강이라.”
장강(長江).
한자만 봐도 알겠지만 그냥 기다란 강이라는 뜻이다.
저기 바다에서부터 흘러들어와 무려 저기 익주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남중까지 손길을 뻗친 강.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아시아에선 제일 길고, 세계로 치면 세 번째로 긴 강이라 알고 있는데….
이만한 길이의 강이 동메달이라니, 세계가 넓긴 했다.
하여튼 제 길이만큼 너비도 만만치 않은 장강을 바라보다가 난 고개를 돌렸다.
“다른 부대의 상황은 어떻지?”
“넵! 현재 주군의 명령대로 여강을 점령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질문을 던지자 손권은 곧장 빠릿빠릿한 태도로 대답했다.
볼 때마다 무슨 훈련병 보는 것 같네.
…이번이 첫 출진인 걸 떠올리면 훈련병 맞구나.
‘저희가 질 이유가 없으니 시간도 절약할 겸 군세를 나누죠.’
불과 며칠 전 사마의가 내게 올렸던 계책.
그 계책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군세를 두 개로 나누어 각각 동쪽과 북쪽에서부터 쭉 밀고 들어가는 계획이었다.
수춘에 있는 본대가 북쪽, 여강을 차지한 별동대가 동쪽을 책임지는 셈이지.
‘솔직하게 말해서 저희 군대 규모가 너무 크잖아요.’
‘그건…. 그렇지?’
병주, 사례주, 양주(서량), 형주, 익주, 예주.
거기에 조조 세력과 합쳐지며 손에 들어온 연주, 서주, 청주까지.
엄청나게 넓은 영토와 그곳에 머무르는 수많은 인력들.
인구는 곧 국력이라 하던가.
다시 영토에 대한 장악력을 되찾고 본래 덩치를 거의 되찾은 한나라는 참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세를 지니게 되었다.
물론 책임질 땅이 넓은 만큼 빠져나가는 병사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군세가 줄어드는 건 아니란 말이지.
오히려 군대를 개편하고 적당한 곳에 발령을 내리다 보면 군세 규모가 무럭무럭 커졌다.
진짜 뒷일 생각 안 하고 작정한 채 긁어모으면 수십만은 모일 터.
이 정도 규모는 정상적인 생각을 지닌 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근데 본래 역사의 조조도 그런 생각을 하며 희희낙락하다가 적벽에서 깡그리 타죽지 않았나?
별동대를 만든다 치면 지휘관으로 누굴 정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원래라면 별다른 고민 없이 조조를 임명했겠으나 강동과 조조를 연관시키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광경이 떠오르질 않았다.
지금 조조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해서 군대를 대강 지휘하다 꼬라박을 인물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뭔가 꺼림칙하다고 해야 하나.
사마의의 의견에 생각을 이어나가다 문득 걱정이 든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음…. 그렇다면 별동대의 지휘관은 누구로 임명하는 게 낫겠나?’
‘…흥. 그건 이미 결정하셨잖아요?’
‘으응?’
이게 무슨 소리야.
별동대 지휘관을 이미 결정했다니.
사마의는 내가 무슨 반응을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혼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조조.’
‘…….’
‘그 사람을 군부의 이인자인 표기장군에 앉힌 건 다 그런 의도 아니었어요?’
사마의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얘 삐쳤구나.
…근데 왜 삐친 거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툴툴거림에 내가 속으로 궁금해할 무렵 사마의가 말을 이었다.
‘애초에 표기장군을 두고 다른 사람을 별동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하는 건 여러 가지 말이 나올 걸요?’
‘그래?’
‘…아니, 정말로 몰랐어요?’
내 반응을 본 사마의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 행동의 의도가 어떻든 겉으로만 보면 대장군이 표기장군을 견제한다는 둥 이상한 말이 나오기엔 충분하잖아요.’
그건 그렇네.
하긴, 관직이라는 게 왜 있겠는가.
어떠한 일을 믿고 맡기기 위해 권한을 주는 거지.
그리고 표기장군은 사마의가 말한 것처럼 군부의 이인자다.
근데 군부의 일인자인 대장군이 제 오른팔인 표기장군에게 지휘권을 주지 않고 다른 인물에게 별동대를 맡기면 괜히 이상한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군대 거꾸로 돌아간다든가, 역시 말뿐인 관직이었다든가….
정작 조조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다만 조조 휘하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 반응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간 정치라는 게 이래서 귀찮다니까.
내가 생각 없이 한 행동에도 별의별 이유를 다 붙여가며 ‘아니, 그런 뜻이 있었다니!’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니 아주 환장할 노릇.
이놈들은 내가 뒷방에서 엉덩이나 긁고 있어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며 날 찬양할 놈들이었다.
예전에 자주 봤던 착각물 주인공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아주 속이 더부룩해질 지경이다.
지금은 내 입지가 워낙 탄탄하니 전부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는데, 이제 막 동탁을 쫓아내고 대장군에 앉았을 때는 조정 사람들이 불행 회로를 총동원하더라고.
행복 회로가 아니라 불행 회로 맞다.
이 사람들이 십상시와 동탁에게 워낙 세게 데였다 보니 이상할 건 없었다만….
그런 사람들이 내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역시 은퇴가 답일까?
…하지만 어떻게?
이미 황제의 국부가 된 이상 좋든 싫든 무조건 평생 정치 활동에 관여하게 될 텐데.
───그대는 영원히 짐과 함께하는 것이니라.
진짜 코가 꿰여도 단단히 꿰였네.
이게 바로 황제의 정치력인가.
생각을 끝마친 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으음…. 알았다. 그러면 조조를 별동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하지.’
‘그러세요.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잖아요?’
‘…….’
그래서 왜 이렇게 삐친 거냐고.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자리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아있는 사마의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사마의.’
‘…왜요?’
‘고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 풀어줘야지.
원래 어린아이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어른의 칭찬에 약하다 하지 않는가.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네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그렇게 말한 나는 과거와 비교해서 많이 성장한 사마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 성장했다고 해봤자 여전히 꼬꼬마였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 거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
‘흥, 됐어요.’
사마의는 뾰로통하게 말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삐친 건 풀린 것 같으니 다행이네.
‘…또 꼬시고 있어.’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여포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지만 난 모른 척했다.
여포가 저러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걸핏하면 몸가짐을 정돈하라는 둥 좀 더 조신하게 다니라는 둥 생뚱맞은 소리만 내뱉는데, 그 모습이 마치 늑대에게 양이 물려가는 걸 걱정하는 듯한 양치기 같았다.
‘…….’
그때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던 서여도 여자는 다 짐승이라고 했으니 사정은 비슷하구나.
하여튼 극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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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廬江).
수춘과 똑같이 장강을 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는 지역.
“…장군, 명령대로 여강을 점령했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백호가 이끄는 산월족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던 땅이었으나, 그를 어렵지 않게 점령한 은발의 여인은 차분한 눈빛으로 눈앞의 장수를 바라보았다.
“…….”
누가 봐도 마지못해 따른다는 것이 느껴지는 몸짓.
“이 자식이 감히…!”
“됐다. 그만하도록.”
조조를 곁에서 호위하던 허저는 그 모습을 보고 당연히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조조는 손짓으로 그 행동을 제지했다.
현재 별동대를 이끄는 조조는 저 장수가 자신에게 불충한 마음을 품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장수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장수의 모습에 조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곧 다음 명령이 있을 테니 자리에서 물러나 대기하거라.”
“알겠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던 장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허저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조에게 물었다.
“주군! 어째서 저런 불충한 자를 가만히 두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는 명백한 하극상입니다.”
허저는 물론 근처에서 묵묵히 제 임무에 충실하던 전위까지 입을 열자 조조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않나.”
무려 3주(州)를 점령한 세력이 가장 거대한 세력과 합쳐지는데 잡음 하나 없는 게 이상한 법.
“저들 입장에선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 아니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물의 명령을 따라야 하니까 말이야.”
“…….”
“우린 굴러 온 돌에 불과한 외부인이란 뜻이다.”
아직 기존 대장군 세력과 자신의 세력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알고 있던 조조는 차분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이는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주겠지.”
“주군….”
“됐다. 내가 이것 하나 예상 못했을 것 같나?”
불편하다면 불편한 상황이었으나, 조조는 그때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어무아!’
지금은 낙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귀여운 아이.
‘그 뭐냐. 우리 세력에서 누가 괴롭히면 말하도록. 내가 혼쭐을 내줄 테니까.’
어울리지도 않는 헛기침을 하며 쑥스러워하던 사랑스러운 남편.
그를 떠올린 조조는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성격이 많이 죽은 것 같군.”
“예?”
“단순한 혼잣말이다. 신경 쓰지 말도록.”
단지 일을 빨리 끝마치고 가족에게 서둘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표기장군(驃騎將軍).
표기(驃騎)는 굳세고 날랜 말을 탄 기병대를 말하니, 표기장군의 의미 자체는 정예기병을 이끄는 수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쓸데없이 넓은 땅을 이름에 걸맞게 빨리 평정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조조는 장강 너머에 있을 산월족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