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10)
EP.410 강동 정벌전(4)
여포가 날린 화살 한 발로 전투에 뛰어들려던 산월족 진형이 아주 난장판이 됐다.
갑작스럽게 아군 한복판에 연쇄추돌 현장이 생겨난 셈이니 당연한 이야기지.
연쇄추돌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가.
쾅─!
“우와아악!”
당연히 잇따라 일어나는 추돌 사고다.
하물며 조종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은 물 위에서 일어난 일이니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으면 똑같이 물귀신마냥 끌려들어 가는 상황.
단순한 추돌로 배 위에 있는 산월족이 전부 죽는 일은 없었지만, 배를 움직일 수 없어 꼼짝없이 아군의 구조만 기다리는 상황이 전장에서 좋을 리 없었다.
…물론 맨 처음 부딪혔던 두 누선과 연쇄추돌의 시작을 알렸던 또 다른 누선은 아주 개박살이 났다.
진짜 어마어마하게 죽었겠구만.
그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병사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 말이야.
당연히 나는 이런 상황을 만든 여포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걸 맞출 생각을 했어?”
“응? 닻 말이야?”
내 질문을 받은 여포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직감.”
“…직감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적들을 많이 죽일 수 있을지 눈치챘단 뜻인가?
난 살짝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포가 활약을 한 건 사실이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잘했어.”
“그, 그래? 히히….”
여포는 내 칭찬을 듣기 무섭게 실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렇게 얼빠진 웃음을 짓는 여인이 화살 한 발로 배 여러 대를 망가트렸다니….
그 광경을 직접 봤음에도 여전히 믿음이 가질 않았다.
“저 배는 닻이 왜 내려간 거지?”
“…닻이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이 닻을 노리고 있다!”
산월족도 그리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사고가 일어난 이유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제일 처음 아군에게 뱃머리를 들이박은 누선을 잠깐 살펴보다가 곧바로 이상한 점을 꿰뚫고 대비에 나서는 모습.
산월족 장수로 추정되는 인원이 어마어마하게 큰 목소리로 외치자 산월족은 배 바깥쪽에 대충 매달아 놓았던 닻을 낑낑거리면서 안쪽으로 숨기기 시작했다.
역시 옛날 배는 그렇게 큰 게 아니라서 닻을 사람 힘으로 옮길 수 있구나.
현대 선박들이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거대한 기계를 써서 닻을 조종하는 걸 떠올리면 과학의 발전이 참 위대하게 느껴졌다.
“앗. 벌써 눈치챘잖아?”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여포는 다시 한번 커다란 궁의 활시위를 당기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숨기기 전에 죽이면 되겠지!”
“…….”
꽤 단순무식한 방법이구나.
쐐애액─!
장강의 물살 때문에 발을 디딘 곳이 계속 흔들렸음에도 여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망설임 없이 화살을 발사했다.
“커헉!”
그 화살은 닻을 동료와 열심히 끌어올리던 산월족 머리에 정확히 적중했고,
“미, 미친! 지금 그걸 놓으면 큰일…?!”
첨벙!
배를 고정하기 위해 무거운 무게를 자랑하던 닻은 아직 멀쩡한 산월족을 친구 삼아 같이 물속으로 다이빙했다.
…운도 지지리 없구만.
물론 닻이 내려갔다고 해서 처음처럼 연쇄추돌 같은 대박이 터지진 않았다.
“으악! 저 새끼들도 닻 내려갔다!”
“빨리 방향 돌려! 사이좋게 물귀신 되고 싶냐!”
저놈들, 속도를 조금 느리게 했거든.
안 그래도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누선은 닻까지 완전히 내려가자 자리에 우뚝 멈춰 섰고, 그 누선을 뒤따르던 또 다른 배들은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른 것처럼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제 동료들이 조금 전까지 신나게 속도를 내다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터.
근데 어쭙잖게 방향을 틀다간 또 아군에게 뱃머리를 들이박을 텐데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산월족들은 주유 말마따나 수전에 익숙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에이. 상황 판단이 왜 이렇게 빨라?”
여포는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자신의 대궁을 다시 허리춤에 걸치려 했다.
“여포, 잠깐만.”
“…?”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여포의 행동을 제지하면서 말을 이었다.
“계속 쏘면서 배들 멈추게 해.”
“으응? 어째서?”
“그야 전투에서 기동력을 봉쇄당한다는 건 크잖아.”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애물을 만드는 건 덤이고.
보니까 배를 조종하는 것이 익숙한 모양인데 얼마나 운전을 잘하는지 시험해 볼 차례다.
만약 진형 사이에 멀뚱히 멈춰 선 배를 못 피해 들이박는다면 대박이지만, 그를 피한답시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진형이 흩트려질 테고, 진형이 흩트려진다는 건 빈틈이 생긴다는 걸 의미하며, 또 빈틈이 생긴다는 건….
콰앙─!
“으아아악!”
“하하하! 제대로 부딪쳤네! 얘들아, 가자─!”
와아아아──!!
…뱃머리를 들이받는, 그러니까 충각(衝角) 전술에 제대로 대비를 못한다는 뜻이다.
내가 조금 전에도 언급하지 않았나.
대포도 없는 고대 수전은 멀리서 화살 좀 쏴대다가 쾅 붙은 다음 백병전을 벌이는 게 끝이라고.
배의 옆구리를 찔린 산월족은 자리에 나동그라지며 기물에 몸을 부딪치고, 몇몇은 아예 배 바깥으로 나가떨어지며 장강 밑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체험하게 됐다.
한순간 한순간이 중요한 전투에서 저렇게 큰 빈틈을 보이면 결과는 뻔하지.
“크억!”
“으아악!”
균형을 잃고 자리에 넘어진 산월족들은 몸을 제대로 추스르기도 전에 배를 넘어온 아군에게 학살당했다.
난 여포에게 말했다.
“저놈들 닻 거의 다 넣었다. 빨리 쏴.”
“알았어!”
내 단호한 목소리에 여포는 곧장 화살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켁!”
“억!”
와, 화살 맞추는 솜씨 봐라.
그냥 스나이퍼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전보다 실력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으, 응? 그래? …히히.”
칭찬 한 번 해줬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여포의 이런 모습만큼은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
그때 근처에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기에 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서여는 무언가를 바란다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태였다.
“…….”
“…….”
한동안 서여의 맑은 갈색 눈동자를 마주 보던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근처 부관에게 말했다.
“손권.”
“네, 넵! 부르셨습니까!”
“저기 통에 담겨있는 창들 좀 가져와 줄래?”
“알겠습니다!”
내 부관으로 종군하던 손권은 빠릿빠릿한 태도로 창이 담긴 통을 번쩍 들어서 옮겼다.
…아니, 난 주변 병사들과 같이 옮기라는 뜻으로 말한 건데.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인물이 왜 저렇게 힘이 좋아?
이게 그 호랑이의 핏줄인가.
통을 옮기던 손권은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무겁군요! 어쨌든 명에 따랐습니다, 주군!”
“어…. 그래. 고생했다.”
의외의 면모를 확인한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통에서 창을 꺼내 들었다.
일반적인 창보다도 훨씬 묵직한 무게.
이 창은 단 한 명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무기였다.
나는 그냥 들고 찔러도 될법한 창을 바라보다가 서여에게 물었다.
“…진짜 이걸 던질 거야?”
이거 창치고는 진짜 무거운데.
옛날 로마군…. 여기서는 동시대니까 그냥 로마군이라 해야 하나?
하여튼 로마군도 무거운 투창을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곤 하는데, 이는 백병전을 벌이기 전 가까이에서 창을 던져 방패를 무겁게 하고 달려드는 용도로 알고 있다.
심지어 그 투창은 한 번 던지면 날이 휘어서 재활용도 못하고 뽑기도 힘들다던가.
역시 인간의 상상력은 대단하다니까.
아무튼, 이런 무거운 투창은 지금 서여가 하려는 것처럼 멀리서 던지는 용도가 아니란 말이지.
“네. 이 정도 무게가 적당합니다.”
서여는 그런 내 질문에 평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인 남성도 한 손으로 들기엔 꽤 버거운 무게의 창을 건네받은 서여는 잠깐 자세를 잡더니 곧바로 어딘가에 창을 던져버렸다.
슈우우웅──!!
이게 무슨 소리지.
웬 미사일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지금 서여가 날린 창은 과거 창을 던질 때마다 주변 병사들의 창을 빌려서(?) 날렸던 것과 차원이 다른 소리를 냈다.
투창이 다른 건 몰라도 화살보다 파괴력과 관통력은 뛰어나다고 하던가.
콰직─!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창은 원거리 무기를 막기 위한 나무 벽을 그대로 부수며 나아가 사람을 꿰뚫어 버렸다.
“…….”
서여가 목표로 삼았던 인물은 곧바로 즉사한 듯 죽을 때 내는 단말마조차 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산월족 진형에서 중간마다 눈에 띄는 커다란 배….
그러니까 주변 누선(樓船)을 지휘하는 장수라고 보는 게 맞겠네.
주변 함선을 지휘하는 대장선은 당연히 근처 산월족이 작정하고 지키는 상태였지만, 이 투창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이 저격을 어떻게 해보려면 뛰어난 호위가 있거나 아니면 본인 자체의 무력이 뛰어나야 할걸.
이제는 그것도 쉽지 않아 보였지만.
“…….”
나는 서여의 투창을 맞고 아예 박살이 나버린 나무 벽을 바라보았다.
…저거 상당히 단단한 나무 아닌가?
저 정도 파괴력이면 그냥 선체에 던져버려도 배 하나는 침몰시킬 것 같은데.
산월족은 순식간에 장수를 잃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혼란에 빠졌다.
저쪽 방향은 끝났네.
“주인님.”
“…그래. 잘했어.”
척 봐도 칭찬을 바라는 듯한 서여의 모습에 난 당황하면서도 응해줬다.
내 주변 사람은 늘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언제나 놀라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