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28)
EP.428 강동 평정(2)
엄백호가 착융을 잡아 가뒀다는 정보에 사마의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뒷정리는 나중에 하고 그놈 얼굴부터 보죠.”
“어…. 굳이 그럴 이유가 있어?”
다른 건 전부 제쳐놓고 한낱 도적놈 얼굴부터 확인하겠다니.
그게 그렇게나 중요한 일일까.
내 반응을 확인한 사마의가 귀엽게 한숨을 폭 내뱉었다.
“또 이상한 생각을 하는 표정이네요.”
“…….”
“곰곰이 생각해보시죠. 저희가 처음에 어떤 명분을 들며 강동으로 출진했나요?”
사마의의 질문을 받은 나는 그 말대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황제 폐하께 표문을 올릴 때 무슨 일이 있었더라….
‘흐음, 하북이 아닌 저기 밑쪽부터 공격하겠다?’
‘예. 최근 암살 사건의 배후자가 강동에 있다는 보고가 있으니 그를 명분 삼아서….’
‘그렇군.’
폐하께서는 내 설명이 전부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현(化賢).’
‘…예.’
‘그 배후자란 놈, 죽지 않았다면 꼭 생포해서 끌고 오도록.’
그리 말씀하시면서 싱긋 웃는 모습을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솔직히 살짝 으스스했다.
‘짐은 짐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으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시기에 준비란 단어까지 나오는 걸까.
그게 무엇이 됐든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생각을 끝마친 나는 여전히 날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사마의에게 입을 열었다.
“…암살자를 찾아서 끌고 가는 거였나?”
“네. 그 과정 중 강동을 안정시키는 건 덤이죠.”
내 대답을 들은 사마의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근데 강동 평정이 덤 취급이야?
기준이 뭔가 상당히 엇나가있는데.
“덤….”
봐라.
근처에 있던 엄백호도 덤이란 단어에 눈동자가 자그마해지지 않았나.
솔직히 우리와 부딪히기 무섭게 마구 쓸려나가던 걸 생각하면 저리 말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래도 그걸 대놓고 말하는 건 조금 그렇지.
난 자칫 불쾌하게 여길 수 있을 말을 내뱉은 사마의를 타박했다.
“또 이상한 말 한다. 내가 다른 사람 얕잡아보는 말 하지 말랬지?”
“으브브븍…! 이어 노하후히효…!(이거 놓아주시죠…!)”
“어허, 반성하는 낌새가 없네.”
나는 양쪽 팔을 뻗어 사마의의 볼따구를 잡아당기고 뭉그러트리는 등 철저히 응징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어린 사마의의 빵실빵실한 볼따구가 붉게 물들어버렸다.
“으으으….”
“이제 반성했어?”
“…반성했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아닌 것 같은데.
이 퉁명스러운 아이를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난 여전히 눈동자가 자그마해진 엄백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전 말은 내가 대신 사죄하지. 그대 동족들은 확실히 매우 위협적이었다.”
“아. 가, 감사하단 것입니다….”
다행히 그렇게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은 모양.
애초에 산월족이 위협적이지 않았다면 내가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마의의 덤 취급이 틀리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강함이란 건 결국 상대적인 거니까.
산월족이 강한 건 맞는데, 우리 군대가 훨씬 강할 뿐이다.
엄백호의 반응을 확인한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쉴 무렵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니 주군께 꾸중 받는 거랍니다.”
“매일 수상하게 웃기만 하는 사람한테 그런 소릴 듣고 싶진 않은데요.”
이런.
물과 기름이 또 만났구나.
제갈량과 사마의는 서로 마주치기 무섭게 말싸움을 시작했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온건히 행동하는 것을 그리 폄하하시면 안 됩니다.”
“흥, 온건(穩健)이요? 온양(醞釀,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은근히 품고 있음)이 맞겠죠.”
누가 용과 호랑이 아니랄까 봐 용호상박(龍虎相搏, 강자끼리 싸움)을 펼치고 있구나.
“…….”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던 엄백호는 눈치를 살피면서 살짝 물러났다.
너도 이름에 호랑이(虎)가 있지 않나.
왜 이렇게 겁을 먹었어.
엄백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도 두 꼬꼬마 책사의 말싸움은 계속됐다.
“언행이 그리 가벼우니 주변에 가까운 이 한 명 없는 것이겠죠.”
“그러는 당신도 맨날 속을 알 수 없는 꼬맹이라면서 주변 사람이 피하는 거 아시나요?”
“제게 그러는 인물은 당신처럼 심성이 올바르지 않은 분밖에 없답니다.”
이젠 서로의 인간관계까지 찌르고 있군.
…말싸움이란 것은 원래 그런 거였지만.
“주군…! 시키신 일 전부 끝마쳤…. 히익?!”
앙증맞은 발걸음으로 내게 뽈뽈뽈 달려오던 방통은 두 꼬꼬마 책사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마치 아기 새 같구나.
이걸 봉황답다면 봉황답다고 해야 할까.
“으으….”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방통이 잽싸게 내 뒤로 숨더니 옷깃을 꼭 부여잡았다.
난 그 귀여운 모습에 픽 웃으면서 방통의 머리를 모자 위로 쓰다듬었고,
“…헤헤.”
방통은 두려움에 떨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지며 실없이 웃어 보였다.
이거 묘하게 중독성 있네.
마치 애완동물을 기르는 기분이야.
“…….”
“…….”
그 상황을 눈치챈 두 꼬꼬마 군사는 서로 말싸움을 멈추고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또 무슨 일이야.
“아무리 봐도 노리고 하는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그게 더 위협적인 요소….”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걸까.
“…?”
나도 그렇고, 내 옷깃을 꼭 붙잡은 방통도 두 명의 행동에 의문을 표할 따름이었다.
──────────
본래라면 강동을 쭉 순회하며 호족 세력과 대화를 나눌 계획이었던 나는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 착융이란 놈이 뭐라고 이리 얼굴을 빨리 보자는 건지 모르겠어.
어차피 며칠 일찍 봐봤자 낙양으로 데려가기 전까진 감옥에 가둬놔야 하는데 말이야.
내가 발걸음을 옮기기 무섭게 저 멀리 감옥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야만인 년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그 엄청난 성량에 엄백호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으엑…. 옥에 가두고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팔팔한 것입니다…. 어떻게 된 몸뚱이인 겁니까?”
“이 무식한 년이──!! 내가 못 들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전부 들린다──!!”
…밥을 잘 먹이기라도 한 건가?
보통 옥에 갇힌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쇠약해지는 게 정상인데, 저 착융이란 놈은 엄백호 말마따나 강인한 몸뚱이를 지닌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강인한 몸뚱이로 힘없는 백성을 약탈하고 다녔다는 걸까.
뭐, 그것도 이젠 불가능할 테니 관계없는 일이었다.
“엄백호──!!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날 풀어주고 도와준다면…?”
이윽고 서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하자 착융은 고래고래 외치는 걸 멈췄다.
난 그런 모습을 확인한 다음 입을 열었다.
“왜, 계속 말해. 도와준다면 뭐 어쩔 생각이야?”
“……어?”
창살 안쪽에 갇혀있던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성은 나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 얼굴을 확인한 착융은 표정이 확 창백해지더니 목소리를 벌벌 떨기 시작했다.
“너, 너, 너는….”
“뭐야.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그러면 이야기는 빠르겠네.
난 피식 웃으면서 착융이 갇힌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내가 가까워지기 무섭게 착융도 그만큼 거리를 벌린다는 걸까.
“흐어억…!”
물론 감옥이 그렇게 넓을 리는 없었으니 거리를 벌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이 넘어갈 듯한 착융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이제 그만해.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잖아.”
내가 그리 말하자 뒤쪽에 있던 서여와 여포가 몸을 움찔 떨었다.
“…….”
“앗…. 들켰어?”
저번에 낙양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내 속뜻이 담긴 눈빛을 마주한 두 명은 잘못한 걸 알았는지 살짝 시선을 돌렸다.
“허억…. 헉….”
“아무래도 겉모습과 달리 실력은 없는 편인가 봐?”
몸집이 크고 근육도 우락부락해서 심상치 않아 보였는데 말이야.
그냥 속 빈 강정이었던 모양.
아니면 감옥에 며칠 동안 갇혀있었으니 심신이 쇠약해진 걸 수도 있지.
나는 숨을 열심히 고르고 있는 착융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단순히 마음의 준비를 하란 뜻으로 찾아온 거다.”
“마음…. 마음의 준비라고?”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착융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무슨 마음의 준비를 하란 뜻이냐. 죽음이라도 각오하란 건가?”
“으음…. 대충은?”
“그게 뭔 개소….”
내 실없는 대답에 착융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가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이야.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구나?
난 또 아무 생각 없이 욕하다가 방금처럼 벌벌 떨 줄 알았지.
“…저기요.”
“응? 왜?”
“당분간 감옥 관리는 제가 해도 될까요?”
나는 사마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물음표를 띄웠다.
“나야 상관은 없다만…. 어째서?”
“따로 할 일이 있거든요.”
사마의는 내 질문에 대답한 다음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 말하면서 살짝 착융을 바라보는 사마의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까.”
엄청나게 냉혹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