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3)
EP.43 시찰(5)
사로잡은 북궁백옥은 따로 서신과 함께 병사를 붙여서 낙양으로 후송했다.
낙양으로 후송된 북궁백옥은 이제 내가 돌아갈 때까지 낙양의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놈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는 자기가 지금까지 저질러온 일에 따라 달라지겠지. 보나 마나 극형이겠지만.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북궁백옥은 묵묵히 병사를 따르며 낙양으로 향했다.
내게 막 나가던 경비병을 볼 때부터 예상했지만 금성의 광경은 보기 좋지 않았다.
곳곳에서 보이는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 심지어 인적이 드문 외딴 골목길에서는 시체까지 드문드문 버려져 있었다.
한수가 다스렸던 무위는 땅은 척박해도 백성들이 다부진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북궁백옥이 다스렸던 금성은 백성들이 그저 피폐하게 죽음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시달렸으면 이렇게 변했을까.
그냥 내 감에 불과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이 도시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했던 내 안에서 북궁백옥의 처우가 완전히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멋대로 대장군의 이름을 팔며 병사들을 풀어서 행인을 약탈하고 도시를 수탈하다니.
하기야 조금 전 모습을 보니 자기 병사들에게도 각박하게 굴던데 아무런 힘이 없는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굴었겠는가.
이런 놈들은 살려둬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금성을 누구에게 맡겨주느냐가 문제인데.
당분간은 내가 남아서 도시를 수습한다고 쳐도 결국 나는 낙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본래 역사에서 서량의 군벌하면 유명한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고민은 하지 않았다.
알 사람만 아는 한수보다도 더 유명한 군벌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그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마등 수성(馬騰 壽成).
솔직하게 말해 마등이 아니라면 금성을 맡길 사람이 없었다.
황보숭과 같은 인물은 이제 너무나 늙었고, 서영과 장수 같은 인물들은 이미 자리가 있었다.
한수를 따로 불러 서로 의논해봤는데 한수는 마등을 앉히는 것에 대해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도시를 다스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자신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결정을 내린 나는 한수를 따라왔던 마등을 관청으로 불러 이를 고했다.
“이 마등! 죽어서도 대장군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마등은 이를 듣자마자 바닥에 엎드리며 엉엉 울었다.
내가 이에 당황하자 근처에 있던 한수가 옆에서 살짝 귀띔해줬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는 목적 하나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온 놈입니다.”
“가난했다고?”
그건 또 처음 아는 사실이다.
한수는 여전히 엉엉 울고 있는 마등을 배경 삼아 말했다.
“마등의 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하다가 강족 여자와 만나 겨우 결혼했고, 마등도 과거에 나무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음…….”
나름대로 이름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떵떵거리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이건 또 의외다.
세상에 안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마등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인물 중 하나였다.
“제 형제를 금칠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됨됨이는 좋은 놈이니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는 이상 대장군을 평생 따를 겁니다.”
“그래. 조언 고맙다.”
“감사합니다.”
한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나는 다시 앞에서 울고 있는 마등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여전히 울고 있는 마등은 내가 말리지 않으면 온몸에 있는 수분을 전부 배출할 기세라 나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만 울고 자리에서 일어나라.”
“대, 대장군…….”
내 말에 마등은 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기골이 장대한 성인 남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덩치는 산만한 사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야.”
“…죄송합니다.”
진정한 마등은 뒤늦게 자신의 추태가 생각났는지 면목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여튼, 잘할 수 있겠지?”
“예! 제 모든 것을 걸고 대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등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취했다.
저 눈빛을 보니 적어도 게으름 부리지는 않겠다.
──────────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
광무제를 도와 후한을 건국한 개국 공신. 마원(馬援)의 후손.
다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던 아버지는 늘 그렇게 당부하셨다.
──알겠느냐 딸아. 세상 살아가는 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조금 흐릿해졌어도 아버지의 그 말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은혜와 원한은 반드시 갚아줘야만 한다.
일곱 살도 넘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할 말 치고는 조금 어떤가 싶지만, 그때 아버지는 진심을 담아 내게 말씀해주셨다.
──부당한 대우는 참지 마라. 누가 이유 없이 너를 싫어한다면 네가 직접 싫어하는 이유를 만들어줘라!
그때가 언제였더라.
그래.
──그러니까 동네 꼬마들이 널 괴롭힌다면 한 대 때려주라는 얘기다!
덩치 큰 남자애들이 나를 괴롭혔던 날.
아버지가 그 아이들을 한 대씩 쥐어박아 쫓아내고 내게 하셨던 말씀이다.
지금은 그냥 미모에 혹한 아이들이 내 관심을 끌어보려고 저지른 장난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때 자신은 겁만 먹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답답해하며 가슴을 쿵쿵 치셨지.
──저딴 놈들 별거 아니다! 그냥 내가 한 것처럼 세게 후려치면 엉엉 울면서 도망갈 거라고!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에게 맞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아이를 때리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
──암! 네가 누구 딸인데!
아버지는 자신을 번쩍 들어 올리고 목말을 태우며 말씀하셨다.
──발길질 한 번 하면 그 새끼들 다리뼈 정도야 그냥 뚝 부러져서….
──이 남정네가 지금 아이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부, 부인! 멈추시오! 아이가 있소! 악!
그 즐거웠던 광경.
아버지는 분명 답답해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소녀의 인생관과 다름없게 되었다.
───은혜와 원한은 반드시 갚아줘야만 한다.
은혜에는 보답으로.
원한에는 복수로.
“아야!”
불현듯 머리 위에 떨어지는 목검에 소녀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으으….”
머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소녀는 머리를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아무리 재능을 타고났어도 방심하는 순간 훅 가는 게 전장이다.”
마등과 한수의 부탁으로 소녀의 훈련을 도와주던 남성이 한숨을 내뱉었다.
“대련 중에 한눈을 팔다니. 무슨 자신감이냐?”
소녀는 물기를 머금은 청은색의 눈동자로 남성을 노려보았다.
“씨이…. 아저씨 너무해.”
“……아저씨가 아니라 염행이다.”
“아저씨.”
하여튼 저 싹퉁바가지하고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해야 할지, 소녀는 지 아버지를 똑 닮아 불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남성은 들고 있던 목검을 고쳐잡았다.
“오냐. 오늘 내가 네 버릇을 제대로 고쳐주겠다.”
“해볼 테면 해보시지!”
어느샌가 자신의 창을 다시 집어 든 소녀가 남성에게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그 둘이 다시 맞부딪치려는 그때, 주변에서 낯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마초야! 나 출세했다──!!”
“아버지?”
눈동자와 같은 은청색의 머리카락이 홱 돌아갔다.
다른 평범한 남성보다 덩치가 훨씬 큰 마등이 소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잠깐만, 갑자기 뭐에요?!”
“나도 이제 금성 태수다! 우리 가문은 이제 되살아난 거야!”
“태수요?”
소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리 자신이 머리 쓰는 것에 약하다지만 태수라는 게 무엇인지는 안다.
태수라면 군을 총괄하는 높은 직위가 아니던가?
분명 좋은 일이었으나 소녀는 한 가지 의문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버지 돈도 없는데 관직을 어떻게 사셨어요?”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것이냐?”
“??”
이상하다. 그 정도로 높은 관직이면 돈이 엄청 많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아니에요?”
“그런 짓을 일삼던 황제랑 십상시는 이미 전부 죽었단다.”
세상에!
소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훈련에만 열중하는 사이 세상은 휙휙 바뀌고 있었다!
“지금은 온갖 야망을 품은 군웅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기지.”
“군웅?”
아직 어려운 말을 잘 모르는 소녀가 눈가를 찌푸리다가 다시 폈다.
“어쨌든 좋은 거 맞죠?”
“그래! 엄청 좋은 거란다!”
그렇게 말한 마등은 하하 웃었다.
“대장군께 은혜를 입었으니 나도 그에 보답해야겠지!”
“은혜요?”
소녀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단어.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마등은 즐겁게 입을 열었다.
“그분 덕분에 우리 가문이 다시 살아났는데 이게 은혜가 아니면 뭐겠느냐?”
“음…….”
──은혜와 원한은 반드시 갚아줘야만 한다.
이제는 소녀의 인생이 되어버린 문장.
잠시 생각에 빠진 소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렇다면 나야 든든하지!”
은혜에는 보답으로.
원한에는 복수로.
소녀, 마초는 그리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대마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