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30)
EP.430 강동 평정(4)
사마의에게 감옥 관리를 맡긴 다음 날.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로 착융이 갇힌 곳을 찾아갔다.
“…….”
감옥을 경계하던 병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자리를 비켜줬고, 나는 열린 문 사이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오고 둘러보기를 잠깐.
──…….
감옥 내부는 무언가 기묘할 정도로 침묵이 감돌았다.
이건 또 의외네.
나는 고문을 한다길래 들어오자마자 온갖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곳에는 착융 말고도 그를 따르던 도적 무리가 갇혀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이다지도 조용한 것이 살짝 이상했다.
…설마 전부 죽어서 조용해진 것은 아니겠지?
심지어 감옥 안의 분위기가 상당히 으스스하구만.
나 왠지 이것과 비슷한 도입부를 공포 매체에서 본 것 같았다.
여긴 도술이나 요술 같은 게 실존하는 세상이니까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지.
막상 귀신 생각이 나니 궁금하네.
서여는 귀신을 보면 화들짝 놀랄까?
“서여.”
“네.”
나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서여의 눈빛에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불러봤어.”
“…?”
서여는 내 뜬금없는 행동을 보고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렸다.
그때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여포가 말했다.
“왜 나는 그냥 안 불러줘?”
“으응?”
“이거 차별이야!”
“…….”
참 별의 별것이 차별이구나.
아이까지 낳았는데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생각한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여포를 불렀다.
“…여포.”
“흐흥. 왜?”
이름 한 번 들었다고 상당히 좋아하는 여포였다.
그렇게 살짝 이상한 대화를 나누면서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방 여러 개를 지나친 나는 곧 다른 죄수들처럼 자리에 얌전히 누워있는 착융을 찾을 수 있었다.
…자고 있는 건가?
“으어…. 으어어….”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잠꼬대 소리가 살짝 이상하긴 했는데 잠에 빠진 건 확실해 보였다.
“아, 오셨네요.”
감옥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고개를 한 차례 갸웃거릴 무렵 근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언가 묵은 체중이 내려간 것처럼 보이는 꼬꼬마 책사의 산뜻한 표정.
그를 마주한 나는 이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 얼굴이 홀가분해 보인다?”
“기분 탓이겠죠.”
아니, 너 기분 좋은 거 맞아.
사마의는 평소에 나를 볼 때마다 고양이가 앙탈 부리는 것처럼 살짝 퉁명스러운 표정이 되거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입을 앙다물고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간다고 해야 하나?
근데 오늘은 그런 표정조차 없는 걸 볼 때 기분이 매우 좋은 게 확실했다.
“어쨌든 이제 대화를 나눌 시간 아닌가요? 부관?”
“예.”
부관이라 불린 여성은 사마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감옥 안으로 들어가 착융을 깨웠다.
“일어나라.”
촤아악!
“푸헙…?!”
…양동이에 담겨있던 찬물을 뿌려서 말이다.
그래도 때려서 깨우진 않는구나.
이상한 잠꼬대를 하던 착융은 찬물 세례를 맞기 무섭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여, 여기는…?”
“어라?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네요.”
“…헉!”
착융은 사마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신을 못 차렸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도적놈은 아주 멀쩡합니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기합이 들어간 걸까.
나는 필사적으로 대답하는 착융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
눈동자는 갈피를 못 잡은 채 흐릿하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덜덜 떨리고 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상태가 아닌데 저리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라….
분명 자신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기억 때문이겠지.
내 근처로 다가온 사마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웬만한 질문에는 전부 대답할 거예요.”
“그렇구나.”
그냥 겉모습만 봐도 그럴 것 같긴 해.
착융을 아직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으나 분명 신체 어딘가가 결손된 상태겠지.
지금 철창 너머로 보이는 손만 해도 손톱 몇 개가 사라져 있었다.
“…….”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저런 상태라니.
나는 눈앞의 꼬꼬마 군사가 가진 고문 능력이 두려울 따름이었다.
사람은 고통에 취약한 생물이라 버틸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망가져 버리는 데 말이야.
이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현실에서 도피할 목적으로 미쳐버리는 건 예삿일이고, 아예 버틸 수가 없다면서 쇼크사해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괜히 지금 같은 옛날 시대에 고문 기술자다 뭐다 하면서 전문적인 직종이 있는 게 아니지.
물론 고문 기술자는 사람으로 이리저리 요리(?)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정신이 이상한 경우가 많았다.
황궁에서 일하는 고문 기술자들을 처음 만났을 땐 얼마나 놀랐는데.
합법적으로 피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기꺼이 응한 반사회적 인물도 있었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철의 의지를 지니게 된 인물도 있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지금이 옛날 시대라는 게 새삼 실감 난다니까.
…현대도 딱히 다른 건 없나?
나는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착융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꽤 많은 일을 겪었나 보군.”
“그, 그건….”
“아. 이건 대답하지 않아도 좋네.”
한낱 도적이 어디를 어떻게 고문당했는지 궁금해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난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할 준비는 됐나?”
“…….”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내일 다시….”
“뭐, 뭐든지 대답하겠습니다!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착융은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서둘러 대답했다.
“…….”
문제는 그 광경을 보고 사마의가 눈살을 찌푸렸단 걸까.
하긴, 따지고 보면 한낱 죄수가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 거니 이상할 건 없지.
“…!”
내게 외치면서도 계속 사마의의 눈치를 살피던 착융은 마치 시체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가 숨겨둔 재산부터 저와 붙어먹은 놈들까지 전부 불겠습니다! 제발…!”
이제 내가 떠나면 정말 큰일이 난다는 걸 직감한 모양.
그를 지켜본 나는 사마의에게 물었다.
“그렇다는데. 어쩔까?”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그야 나 혼자 결정하면 토라질 것 같으니까 물어본 거지.
“절 진짜 어린아이 취급하시네요….”
내 눈빛에 담긴 생각을 눈치챈 사마의는 한숨을 푹 내뱉은 다음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시죠. 저는 어차피 당신을 따를 뿐이니까요.”
“오, 그 말은 조금 감동받았어.”
“…대체 어디서요?”
사마의는 어이가 없단 목소리로 물었지만 본래 역사의 사마의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인상 깊은 대답이었다.
너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몇 년 동안 꾀병을 부리면서 끝끝내 ‘고평릉’해버리잖아.
그런 인물이 거짓말이란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나를 따른다는 말을 한 건 매우 감동적인 일이었다.
사마의에게 허락을 받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정보를 들어볼까?”
“자, 잘 생각하셨소!”
이제 보니까 이빨도 몇 개 뽑혀있네.
허전하지 말라고 전신을 아주 차근차근 다져놓았구나.
나는 이빨이 몇 개 뽑혀 상당히 흉하게 웃는 착융을 바라보곤 씩 웃었다.
“난 바깥에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끌고 나와.”
내 명령을 들은 착융은 또 뭐가 문제인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 이년들이 그 사이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네. 허튼 생각하지 못하게 차분히 타이를게요.”
“이보게! 가지 말게나! 가지…!”
어우, 남정네에게 구애받는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
착융의 간절한 목소리를 참다못한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착융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
이제 남은 것은 강동의 호족 연합밖에 없나.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긴 나는 시간을 잠깐 태평하게 보내다가 특이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이야. 네가 그 백호(白虎) 맞지?”
“아, 앗! 당신은…!”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는 손견의 딸과 자기 자신을 백호라 자칭한 소녀가 서로 만난 광경.
손책은 흥미가 동한 얼굴로 몸을 풀면서 엄백호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도망치는 꼴밖에 못 봐서 말이야. 어디 한번 기회가 된다면 서로 대련이나 해볼까?”
“히이이익…! 무서운 여자가 절 물어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엄백호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벌벌 떨다가 나를 발견하곤 도도도 달려왔다.
“도, 도와주시는 겁니다! 항복한 장수를 죽이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인 것입니다!”
“야! 너도 백호라며! 당당하게 맞서 싸워라!”
흰색과 검은색이 어지러이 뒤섞인 머리카락.
마치 방통처럼 머리 색깔이 인상적인 소녀는 손책의 말에 서둘러 외쳤다.
“지, 지금의 저는 백호가 아니라 하얀 고양이인 것입니다! 야옹!”
“…….”
너희 뭐 하냐.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에 손책은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뭐, 뭐?! 어떻게 그리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못하겠냔 겁니다! 저는 지금 동포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이가 좋다고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